1968년 알 쿠퍼(Al Cooper)와 마이크 브룸필드(Mike Bloomfield), 스테픈 스틸스(Stephen Stills)의 슈퍼세션(Super Session)은 물론, 1969년 에릭 클랩튼(Eric Clapton), 진저 베이커(Ginger Baker), 스티브 윈우드(Steve Winwood) 그리고, 릭 그레치(Ric Grech) 등 크림(Cream)과 트래픽(Traffic)의 주축 멤버들로 결성되었던 블라인드 페이쓰(Blind Faith). 또 1970년대를 호령하던 프로그레시브록 밴드들의 알짜 멤버들인 존 웨튼(John Wetton), 스티브 하우(Steve Howe), 칼 파머(Carl Palmer), 저프리 다운스(Geoffrey Downes)가 1982년 결성한 아시아(Asia)나, 새미 헤이거(Sammy Hagar), 닐 숀(Neal Schon), 케니 아론슨(Kenny Aaronsen) 그리고 마이클 슈리브(Michael Shrieve)의 HSAS에 이르기까지 대가들의 사이드 프로젝트는 마니아의 한 사람으로 언제나 흥미진진하다. 일시적이건 그렇지 않건 그들의 결합은 단순히 ‘1+1=2’라는 물리적 결과가 아니라 ‘+α’라는 흥미로운 화학적 반응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지난 2009년, 우린 지금까지 이어오던 ‘슈퍼 그룹’의 계보에 치킨풋(Chickenfoot)이라는 다소 우스꽝스런 이름을 추가할 수 있었다. 밴 헤일런(Van Halen) 출신의 보컬리스트 새미 헤이거와 베이스 주자 마이클 앤써니(Michael Anthony), 레드 핫 칠리 페퍼스(Red Hot Chili Peppers)의 드러머 채드 스미쓰(Chad Smith), 그리고 그 이름만으로 모든 것이 설명되는 기타리스트 조 새트리아니(Joe Satriani)가 그 슈퍼 그룹의 구성원들이다. 밴드 결성의 아이디어는 새미 헤이거로부터 시작되었다. 멕시코에 있는 그의 클럽 ‘카보 와보(Cabo Wabo)’에서 밴 헤일런을 탈퇴한 새미 헤이거와 마이클 앤써니 그리고 채드 스미쓰를 멤버로 한번씩 잼 공연을 펼치던 도중, 그들의 공연을 본 청중들이 음반과 정식 공연에 대한 관심을 이야기하자 평소 친분이 있던 조 새트리아니에게 연락을 해서 정식 밴드의 틀을 갖춘 것이다. 이렇게 결성된 밴드는 2008년 2월, 라스베가스에서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Rock and Roll’이나 트래픽(Traffic)의 ‘Dear Mr. Fantasy’와 같은 곡들로 첫 번째 공식 공연을 가졌다. 마이클 앤써니는 이 공연을 마친 후 멤버들 간의 화학작용을 느낄 수 있었고, 다음 작업으로 넘어갈 결정을 내렸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그리고 2009년, 평화의 상징인 피스(Peace)마크와 밴드의 이름인 치킨풋(닭발)의 발자국 이미지를 교묘하게 결합한 로고를 앞세운 셀프타이틀의 데뷔앨범이 발매되었다. 밴 헤일런의 음악이 흥겨운 록큰롤을 기반으로 한 하드록 사운드였고, 레드 핫 칠리 페퍼스는 리듬이 강조된 훵키한 록, 반면 조 새트리아니는 퓨전적인 어프로치의 기타 인스트루멘틀을 해 왔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과연 이들의 사운드가 어떻게 표현될 지에 대한 호기심을 갖는 건 어쩌면 당연했을 터. 피스 마크는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에 이르는 시기, 즉 ‘플라워 무브먼트(Flower Movement)’ 시기를 대표하는 상징이다. 이러한 상징을 해학적으로 재해석한 밴드의 로고야말로 앞서 언급한 치킨풋의 초기 커버 레퍼토리와 함께 이들의 사운드를 예측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복선이다. 이제 하나씩 조합해보자. 6~70년대의 클래시컬록에 뿌리를 두고, 퓨전과 훵키 사운드가 가미된 흥겨운 하드록 사운드. 물론 그 사운드를 관통하는 정서는 권위적인 진지함이 아니라 해학적 즐거움이다.
이미 데뷔앨범을 통해 공개된 뮤직비디오 ‘Oh Yeah’나 ‘Soap On A Rope’를 본 느낌은 어떤가. 일찍이 즐겁고 유머러스한 분위기 가운데 있는 듯 보이던 다른 멤버들은 물론 마치 철인 삼종경기를 막 마치고 돌아온 듯 강인한 이미지를 풍기던 조 새트리아니마저도 블랙 코미디에 등장하는 무표정의 개그맨 같은 인상을 풍긴다. 그 때문인지 발표하는 음반들마다 마니아가 아니라 같은 연주자들을 절망의 나락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던 그의 프레이즈는 한층 청자와 가까워진 느낌이다. 치킨풋의 출발선에는 단순히 록의 슈퍼 밴드를 만들려 하기보다는 지금껏 치열하게 해 왔던 음악을 조금 벗어나 말 그대로 음악을 즐기려는 의도가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도는 멤버 개개인의 탁월한 개인기와 함께 ‘+α’가 되어 기존 이들이 몸담았던 밴드의 음악과는 유사하면서도 차이가 있는 특징으로 자리잡았다. 언뜻 조 새트리아니의 명곡 ‘Satch Boogie’의 도입부를 떠올리게 하는 ‘Soap On A Rope’지만 받아들여지는 느낌이 확실하게 다른 건 바로 그 때문이다.
그리고 지난 해 말, 채드 스미쓰가 소속된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공연일정 때문에 늦춰졌던 치킨풋의 두번째 앨범 [Chickenfoot III]가 발매되었다. 언뜻 ‘III’라는 타이틀 때문에 3집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두번째 앨범이다. 원래 음반 발매 이전에 구상했던 ‘Chickenfoot IV’라는 타이틀로 미뤄볼 때 타이틀 자체에 그다지 큰 의미는 없어 보이며, 3D 입체안경이 동봉되어 입체적인 느낌을 표현한 음반 자켓 때문에 붙은 타이틀이 아닌가 생각된다. 감촉에 따라 색깔이 변했던 데뷔앨범 자켓의 독특한 질감과 함께 ‘음원’이 아닌 ‘음반’을 모으는 재미를 주고 있으며, 올해 그래미 어워즈에 ‘Best Recording Package’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기도 했다.
음반이 주는 전체적인 느낌은 데뷔앨범의 성격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음반에서 첫번째로 싱글 커트된 ‘Big Foot’은 단순한 듯 힘에 넘치지만 청자의 예상을 조금씩 앞서거나 뒤로 빠지는 절묘한 템포가 긴장감을 유도하며, ‘Three And A Half Letters’에서는 가사를 통한 문제 제기를 통해 흥겨움과 즐거움이 밴드 사운드의 일부가 될 수 있을지언정 모두가 될 수 없음을 일깨워준다. 특히 블루지한 발라드 넘버 ‘Something Going Wrong’은 밴드 구성원들의 전력을 모두 알고 있는 청자들이라도 반드시 들어봐야 할 이색작이다. 새미 헤이거의 시각은 밴 헤일런 시절보다 오히려 그 이전에 자신이 몸담았던 몬트로즈(Montrose)에 가깝게 느껴지기도 하며, 조 새트리아니의 기타 사운드 역시 평소 그가 즐겨 사용하던 이펙트의 조합을 벗어나 비교적 내추럴 톤에 가까운 소리를 뽑아낸다. FM의 심야방송이 아직 제 구실을 하고 있다면 충분히 단골 레퍼토리로 선정될 만한 소지를 모두 갖춘 트랙이랄까.
전작에 비해 차트상에서 조금은 아쉬운 성적을 기록하고 있긴 하지만, 여기는 출발 당시의 호기심이라는 거품이 비켜간 이유가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오히려 치킨풋은 두번째 음반을 발표함으로 인해서 단발의 프로젝트성 그룹이라는 의구심을 비켜갈 수 있었고, 새미 헤이거는 세번째, 네번째는 물론 베스트 음반까지 발표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며 밴드의 롱런을 예고하는 이야기를 남기기도 했다. 얼마 전 데이브 리 로쓰(Dave Lee Roth)를 다시 받아들인 밴 헤일런이 신곡을 발표했다. 치킨풋과 밴 헤일런의 한판 멋진 대결. 마니아의 한 사람으로 흥미진진하지 않을 수 없다.
글 송명하 (2012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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