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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ER'S MUSIC LIFE/EXTERNAL CONTRIBUTIONS

팝스타 엘튼 존, 그 디렉터스 컷 혹은 스페셜 피처


팝 음악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엘튼 존(Elton John)이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다. 소위 ‘한국인이 좋아하는 팝 음악 100선’과 같은 차트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이름, 또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을 비롯한 몇몇 뮤지컬 음악을 작곡한 인물이라는 점에 신문을 통해 보도되는 몇몇 가십들로 어쩌면 우린 엘튼 존이란 뮤지션에 대해 참 익숙하다는 생각을 해 왔던 것 같다. 데이비드 버클리(David Buckley)의 <엘튼 존 (Elton: The Biography)>은 이러한 우리의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차분하게 일깨워준다.


(전략) 엘튼 존은 버니 토핀에게 ‘매우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사람들은 엘튼 존하면 대단히 돈이 많은 사람, 방탕하게 사는 사람, 꽃에 돈을 많이 쓰는 사람, 모발 이식을 한 사람, 동성애자, 에이즈 재단을 만든 사람, 축구클럽 회장, <라이온 킹> 음악을 만든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나서 ‘그 사람이 음반도 낸대’하고 말하죠. 이런 점을 내가 그에게 말했고 그도 전적으로 동의했습니다. (후략)” - 364P


사실 엘튼 존의 이야기를 직접 인용한 문단만 보더라도 앞서 이야기했던 생각은 비단 우리만의 것이 아니었던 것 같다. 이 책은 엘튼 존이 태어났던 1947년부터 2006년까지를 다루고 있다. 엘튼 존 본인이나 소속사의 협조 없이 쓰여진 까닭에 공인되지 않은 전기지만, 그 대신 엘튼 존 주변의 많은 사람들과 나눈 인터뷰가 그 틀을 이루고 있다. 여기에 그동안 엘튼 존이 했던 많은 매체의 인터뷰들이 필요한 부분에 첨가되어 전체적인 이해를 돕는다. 스스로 자서전을 음반 「The Captain & The Kid」(2006)로 대신했던 까닭에 우리에겐 이 책 한 권이 더욱 소중하다. 아무래도 노래 가사보다는 친절하게 해석된 책이 이해하기 좋으니까.


나도 직업상 인터뷰를 해야 할 경우가 많다. 하지만 어떤 한 인물을 인터뷰할 때 그 당사자의 이야기만 가지고 기사를 쓰다보면 개인적인 상황이나 주장에 이끌려 본질에서 벗어날 경우가 없지 않다. 또 자신이 한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몇 해가 지나 다시 인터뷰를 할 때 그와는 전혀 다른 내용이 나오기도 한다. 이 책 가운데서도 엘튼 존이 이야기했던 몇몇 내용들이 주변 인물들의 인터뷰들과 대치되는 부분이 언급되기도 한다. 의도했던 건 아니겠지만, 아무래도 한 개인의 기억에 의한 내용이 ‘완벽’할 수는 없다는 얘기가 될 것이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엘튼 존의 전기 형식을 띠고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를 둘러싼 인간관계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역시 저자인 데이비드 버클리의 접근 방식이 엘튼 존의 주변인물을 통한 우회 접근이라는 이유가 가장 클 것이다. 우린 일반적으로 엘튼 존이 괴팍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주변인물이 무척 어려워했을 거라는 생각을 무의식중에 하고 있지만, 마지막 책을 덮을 땐 그 역시도 잘못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첫 부분에 등장했던 인물이 거의 마지막까지 등장하기도 하고, 중간에 언급되지 않았던 인물이 다시 뒤에 등장한다. 주변인물에 대한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주변인물과의 관계와 더불어 엘튼 존 자신의 ‘중독’에 대해 이 책은 이야기한다. 술, 마약, 쇼핑, 일 그리고 음악. 술과 마약은 재활을 통해 이제 엘튼 존과 영원한 이별을 고했지만, 나머지 중독들은 현재까지도 진행 중이다. 책에서 언급됐듯 휴가 중에 무엇을 해야 할지를 몰라 어리둥절해 하던 또, 계속해서 새로운 음반을 사 모으며 신세대 음악에도 귀를 기울이는 장면은 일과 음악에 중독된 그의 모습을 대변한다. 또 올해(2016년) 발매된 신보 「Wonderful Crazy Night」 역시 마찬가지다.


뮤지션을 다룬 책이 흥미로운 점 하나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았던 부분을 알게 된다는 점이다. 블루레이 디스크로 말한다면 ‘감독판’이나 ‘스페셜 피처’와 같은 역할 말이다. 특히 이 책에서 저자는 각 음반이 발표될 당시 스튜디오 녹음 에피소드나 대표곡의 배경 같은 부분들을 당시 매체의 리뷰나 인터뷰 자료를 통해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존 레넌(John Lennon), 다이아나(Diana) 왕세자비, 지아니 베르사체(Gianni Versace),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닐 다이아몬드(Neil Diamond), 바브라 스트라이샌드(Barbra Streisand)에서 엘튼 존 자신과 그의 오랜 파트너 버니 토핀(Bernie Taupin)... 제목을 일일이 열거하진 않겠지만 이들이 소재가 된 원곡을 찾아 들으며 책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 역시 이 책을 읽는 독자들만을 위한 또 하나의 특권이다. 마치 영화를 봤지만 스페셜 피처가 보고 싶어 블루레이를 다시 구매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 외에도 많은 이야기들이 한 권의 책에 담겼다. 엘튼 존은 팝 음악에 있어서 하나의 대명사와도 같다. 영화 <올모스트 페이모스>(2000)에서 투어버스를 타고 가던 밴드 스틸 워터(Still Water) 멤버들의 서먹한 관계는 구구절절한 대사가 아니라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Tiny Dancer>를 함께 부르는 것으로 자연스레 풀어진다. 또 영화 <러브 액추얼리>(2003)에서 <Christmas Is All Around>로 1위를 차지한 빌리 맥(Billy Mack)을 엘튼 존이 파티에 초대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렇게 아무런 설명 없이 삽입된 영화에서의 장면들은 엘튼 존이, 또 엘튼 존의 노래가 이름과 곡목 자체만으로 갖는 무게에 대한 설명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우리에게 40년 이상 대명사로 존재했던 그에게 조금 더 다가갈 수 있게 하는 장치가 된다.


‘내가 예순 살이 되었을 때 누가 교회로 가는 나의 길동무가 될까?

그들이 나에게 준 늙은 개도 무덤에 들어간 지 10년이 지났을 텐데.’


<Sixty Years On>, 가사:  버니 토핀, 음악: 엘튼 존


언제 들어도 콧날 시큰한 「Elton John」(1970)에 수록된 명곡 <Sixty Years On>의 가사다. 하지만 가사에 드러난 우려와는 달리 이 책이 원래 공개된 다음해인 2007년 3월 25일, 뉴욕의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린 그의 60세 기념 공연 오프닝 곡으로 불린 이 곡에 수많은 그의 팬들이 함께 했다. 그리고 지난 해 11월 내한공연을 펼친 데 이어,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 나이로 70세가 된 그는 신보 「Wonderful Crazy Night」로 다시금 우리를 찾아왔다. 책을 읽으며 지난 음반을 찾아듣는 재미도 쏠쏠했지만, 책을 읽은 후 듣게 되는 그의 신보 역시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엘튼 존이 그 전보다 훨씬 가까이에 있는 느낌이다. (20160328)



글 송명하 (파라노이드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