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길 편곡+데블스 연주+여가수 노래
록과 사이키델릭이 주를 이루던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반까지, 소울(Soul)이라는 독보적인 장르를 고수하며 힘찬 브라스파트를 앞세웠던 데블스의 활동은 밴드 자신들의 활동보다 오히려 밴드 활동 이후에 이어진 여가수들과의 활동으로 더욱 유명하다. 하지만, 세션이나 편곡의 개념이 거의 잡혀있지 않았던 국내 현실상 음반 어느 곳을 찾아봐도 그에 대한 정보를 알아차릴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이번 호에는 데블스의 기타리스트 김명길이 편곡을 하고 데블스가 연주를 맡았던 윤승희의 음반 두장을 꼽아봤다. ‘김명길 편곡+데블스 연주+여가수 노래’라는 시스템 아래에서 나왔던 음반은 윤승희의 음반 외에도 이은하, 정애리, 정난이의 음반이 있다.
윤승희
아빠랑 엄마같이 / 그리운건 너 (서라벌, SR-0048, 1976)
Side A
① 아빠랑 엄마같이
② 지금의 내 마음을
③ 얘야! 시집 가거라
④ 지난 날
⑤ 또 만나겠지
⑥ 병사들의 합창
Side B
① 그리운건 너
② 말없이…
③ 마음은 풍선처럼
④ 그 소녀
⑤ 다음 다음에 만나요
⑥ 겨레여 용사여
노만기획을 설립했던 박영걸이 구상한 ‘김명길 편곡+데블스 연주+여가수 노래’라는 1970년대 중반 이후 데블스 활동의 시작점이 된 음반이다. 그리고 이러한 구상은 음악적으로나 상업적으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켜 이은하, 정애리, 정난이의 음반으로 이어지며, 노만기획은 단번에 메이저 음악씬에서 큰 입김을 행사하는 조직으로 성장하게 된다. 윤승희는 현란한 춤보다는 모델 출신이라는 이력에서 볼 수 있듯 날씬한 몸매와 애교 만점의 귀여운 얼굴로 많은 남성 팬들을 거느리게 되는 가수로, 이 음반을 통해 데뷔했다. 최초의 히트곡 <아빠랑 엄마같이>는 가사는 다르지만 동일한 시기 발표된 김만수의 <푸른 시절>과 동일한 멜로디를 가진 곡으로, 이 두 곡을 비교해 보면 데블스 편곡의 특징을 그대로 알아차릴 수 있다. 김만수의 곡이 기존 주류가요 스타일의 평범한 편곡인 반면, 윤승희의 곡은 당시 고고 클럽의 플로어 앞에서 흘러나왔을 법한 전형적인 8비트 고고의 밴드 음악으로 편곡되었다. 데블스의 활동에서 볼 수 있었던 호쾌한 브라스파트와 날카로운 기타 사운드의 조화라는 매력은 그대로 담겨있다. 데블스의 명곡 <그리운건 너>는 겹줄 벤딩의 기타연주 대신, 분절되고 그루비한 기타와 베이스가 만드는 섹션을 치고 올라오는 시원스런 브라스파트 인트로로 기존 버전과 차별성을 두고 있지만, 인트로 이후 진행되는 곡의 흐름은 거의 동일하다. <얘야! 시집 가거라>는 다시 가다듬어 2년 뒤 발표한 정애리의 버전이 히트하며 그녀의 대표곡으로 자리 잡았고, <다음 다음에 만나요> 역시 뒤에 발표된 이은하의 버전이 인기를 모았다. 이 앨범의 가장 큰 히트곡이었던 <아빠랑 엄마같이> 역시도 김만수의 <푸른 시절>의 인기를 따라가지 못해 윤승희 최고의 전성기는 아쉽게도 다음 음반으로 유보된다.
윤승희
제비처럼 / 추억의 길 (서라벌, SR-0077, 1977)
Side A
① 제비처럼
② 사랑의 기도
③ 보고싶어요
④ 바닷가에서
⑤ 구름 바람 그리고 당신
⑥ 다음 다음에 만나요
Side B
① 추억의 길
② 말해주오
③ 사랑의 빛
④ 출근길
⑤ 예전엔 몰랐어요
⑥ 육군가 (군가)
윤승희의 두 번째 앨범이며 그녀의 짧은 전성기를 열었던 대표작이다. 첫 앨범보다 더욱 안정적인 연주, 또 보컬과의 조화를 보여주는 <제비처럼>은 ‘김명길 편곡+데블스 연주+여가수 노래’로 대변되는 노만기획의 창조물 가운데서도 단연 으뜸에 꼽을만한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 앞면 첫 곡에 박진감 넘친 8비트 고고 트랙을, 그리고 뒷면 첫 곡으로는 느린 소울 발라드 스타일을 포진 시켰던 데뷔앨범과 동일하게 <추억의 길>은 날카로운 김명길의 기타가 청자의 감정을 자극하는 슬로우 넘버. 연주는 모두 데블스가 담당했지만 데블스의 기타리스트 김명길 외에도 최종혁과 방기남이 편곡자로 참여하고 있어 곡마다의 느낌은 상당히 다르다. <사랑의 기도>는 최종혁이 편곡을 담당한 곡으로 잔잔한 시작이 브라스파트의 웅장한 클라이맥스로 진행되어가는 일종의 ‘가요제 스타일’인 반면, 방기남이 편곡을 담당한 <말해주오>는 이렇다 할 특징을 찾아보기 어렵다. 전반적으로 데블스의 연주는 김명길의 편곡에 의해 더욱 큰 시너지 효과를 가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시너지효과도 프론트에 나선 가수와의 상호작용에 의해서만 만들어질 수 있는 법. 2년 뒤 제작된 「윤승희 신곡모음 제3집: 안녕이라 말했지 / 줄다리기」(서라벌, SR-0146, 1979)는 데블스의 물오른 연주와는 대조적으로 1집과 2집에서 간헐적으로 보여지던 윤승희의 트로트적인 감성이 전면에 부각된 음반으로, 음악적으로나 상업적으로 모두 실패를 기록했고 이러한 실패는 이후 발매되는 음반으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20120928)
글 송명하
* 월간 핫트랙스 매거진(http://info.hottracks.co.kr/company/main)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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