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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ER'S MUSIC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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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대수 [욕망(Urge)] 젊은 작곡가 집단의 영입으로, 보다 다양한 음악적 표현 한대수가 58세 되던 해인 2006년 발표한 [욕망(Urge)]는 그 발매와 함께 인터넷 매체들을 통해 급속히 입소문이 번져나갔다. 그건 비단 새로운 앨범을 발표했다는 단편적인 이야기도 아니고, 조승우가 주연을 맡았던 영화 ‘타짜’의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그의 음악이 흘러나왔기 때문도 아니다. 바로 앨범 재킷과 속지를 아내의 누드사진으로 꾸몄기 때문이다. 음반에 수록된 음악들은 오히려 재킷에 의해 가려졌고, 누드 사진은 그저 누드 사진일 뿐 그 의미를 알고자하는 사람은 그다지 없는 듯하다. 어차피 여인네들의 벌거벗은 사진들은 인터넷을 통해 얼마든지 볼 수 있는데도 말이다. 한대수에게는 언제나 ‘최초’라는 단어가 어울린다. 국내 최초의 히피가수이며, 국내 최초의 싱어 송 라이터다. 그렇다면 그가 발표..
팝스타 엘튼 존, 그 디렉터스 컷 혹은 스페셜 피처 팝 음악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엘튼 존(Elton John)이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다. 소위 ‘한국인이 좋아하는 팝 음악 100선’과 같은 차트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이름, 또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을 비롯한 몇몇 뮤지컬 음악을 작곡한 인물이라는 점에 신문을 통해 보도되는 몇몇 가십들로 어쩌면 우린 엘튼 존이란 뮤지션에 대해 참 익숙하다는 생각을 해 왔던 것 같다. 데이비드 버클리(David Buckley)의 은 이러한 우리의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차분하게 일깨워준다. (전략) 엘튼 존은 버니 토핀에게 ‘매우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사람들은 엘튼 존하면 대단히 돈이 많은 사람, 방탕하게 사는 사람, 꽃에 돈을 많이 쓰는 사람, 모발 이식을 한 사람, 동성애자, 에이즈 재단을 ..
내한 공연을 앞둔 75세의 거장 톰 존스가 후배들에게 들려주는 회고담. Long Lost Suitcase 올 초에 놀라운 보도 자료를 받았다. 톰 존스(Tom Jones)가 내한공연을 가질 계획이라는 내용이었다. 1983년 방한한 이후 33년만의 내한공연. 솔직히 이번에 소개할 「Long Lost Suitcase」을 들은 건 내한 소식을 들은 뒤였다. 그만큼 톰 존스는 멀어져 있었나보다. 하지만 음반을 접하고는 보도 자료를 접했을 때보다 더 놀랐다. ‘미스터 다이너마이트’ 혹은 ‘미스터 타이거’라는 전성기 그의 별명을 떠 올리긴 힘들 것이라는 선입견이 플레이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무너져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예전처럼 그의 폭발적인 가창이 필요한 곡을 담진 않았지만, 일반적인 노래에서도 그의 예전 모습은 여지없이 떠오른다. 분명 멋지게 연륜이 쌓인 공연 포스터의 자신 만만한 모습이 목소리에도 그대로 남아있다..
글램메탈의 역사, 80년대 헤비메탈 전성기를 견인했던 머틀리 크루 원년 멤버들의 자서전 GREATE$T HIT$ 1981년 1월, 미국 LA에서 결성된 한 밴드가 있다. 베이시스트 니키 식스(Nikki Sixx)를 중심으로 드러머 토미 리(Tommy Lee), 보컬리스트 빈스 닐(Vince Neil), 그리고 기타리스트 믹 마스(Mick Mars)로 구성된 머틀리 크루(Mötley Crüe) 이야기다. LA메탈, 글램메탈, 혹은 헤어메탈로 불리는 장르의 선봉에 서서 1980년대 후반까지 헤비메탈의 중흥기를 견인했던 밴드. 미국에서만 2천 500만장, 전 세계적으로는 1억장 이상의 음반 판매고를 올렸고, 외형적인 면에서부터 음악적인 면까지 숱한 추종자를 낳았던 밴드가 바로 이들이다. 지난 2015년 12월 31일, 머틀리 크루는 자신들이 스스로 마지막이라 칭한 공연을 마쳤다. 35년 전 처음 머틀리 크루라는 이름으로..
데블스 / 드디어 LP로 재발매되는 아웃사이더 데블스의 데뷔작 사실 2000년대 초반까지 데블스(Devils)란 밴드는 거의 잊힌 존재였다. 혹시 아는 사람이 있더라도 그저 “한때 ‘그리운 건 너’를 히트시켰던 원 히트 원더(one-hit wonder)의 70년대 밴드”정도로 기억할 뿐이었다. 데블스가 발표했던 음반들은 그 존재 유무가 논란이 될 정도로 눈에 잘 띄지 않았다. 발표한 정식 음반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그 활동 기간이 짧았던 편도 아니지만 너무나 쉽게 잊혔다. 물론 동시대에 활동하던 다른 밴드들 역시 그랬다고 한다면 다른 할 말은 없겠지만. 한 컬렉터의 끊임없는 추적과 함께 2003년 들어 데블스의 공식 두 번째 음반이 LP로 재발매됐다. 닫힌 창살을 등지고 있는 독특한 표지만으로도 관심의 대상이 되었던 데블스의 두 번째 정규작은 앞서 이야기했듯 그 ..
이성원 / 1980년대 한국 언더그라운드 포크를 대표하는 이성원의 데뷔작 이성원은 1980년대 국내 언더그라운드 포크를 이야기할 때 김두수, 곽성삼과 함께 어김없이 거론되는 인물이다. 이 세 명의 싱어 송 라이터의 음악은 ‘토속적’이고 ‘사색적’이라는 공통분모를 만들고 있지만, 확실한 개성 아래서 독창적인 영역을 구축했다. 발표 당시에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이후 이들의 음악을 찾아 듣는 사람들에 의해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 전해지며 초기에 발표한 음반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랐다. 이번에 재발매되는 이성원의 데뷔앨범 역시 마찬가지다. 이성원의 데뷔앨범은 1987년에 발매됐다. 고향인 경남 진해에서 진해상고를 나온 그는 마산의 라이브 카페를 거쳐 상경한 이후에도 몇몇 라이브 카페를 전전하다가 자신의 카페 ‘쉼표’를 열어 꾸준하게 노래했다. 또 1986년에는 크리스탈 문화센터..
양병집 [The Sounds of Yang Byung Jip 1974-1993] 포크의 독보적 존재 양병집, 초기 걸작의 집대성 양병집, 그의 이름엔 언제나 ‘김민기, 한대수와 함께 국내 3대 저항가수’라는 표현이 붙는다. 하지만 그러한 표현보다 오히려 ‘넋두리’라는 한 단어가 그에게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다. 물론 ‘넋두리’는 양병집의 데뷔앨범 타이틀이다. 그리고 음반의 발표와 함께 그의 음악을, 아니 그를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는 ‘넋두리’가 됐다. 그의 데뷔앨범 [넋두리](1974)는 박정희 정권 당시 금지곡 파동에 휘말려 발표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량 회수되어 폐기처분됐다. 물론 그의 음반은 폐기시킬 수 있었지만 그의 음악까지 회수할 순 없었다. 그가 발표했던 음악들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오히려 더욱 긴 생명을 얻었다. 그의 넋두리는 음반이 아니라 소외되고 억압받는 소..
여러 음악인 / 히 식스의 전성기에 발매된 ‘김홍탁 작·편곡집’ 히 식스(He 6)의 연주와 김홍탁의 작, 편곡으로 된 음반으로, 객원 싱어들인 선우영아, 임성훈 그리고 송혜경이 참여했다. 히 식스는 알려져 있다시피 히 파이브의 해산 후 멤버가 재편되며 결성된 밴드다. 1970년 4월 11일 경향신문에는 “‘초원’ 등 인기곡으로 알려진 에레키 그룹 「더 히·파이브」가 지난달 29, 30 양일간 살롱 코스모스로 고별공연을 갖고 17일의 시민회관 쇼 무대를 마지막으로 해산한다.”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이렇게 4월 17일 마지막 공연을 펼친 히 파이브의 잔류 멤버 두 명, 즉 김홍탁과 조용남의 후속 행동은 빨랐다. “소울과 사이키딜릭 사운드의 한국 상륙과 더불어 그룹사운드 활동무대의 총본산이 된 유네스코회관 뒤의 코스모스 룸은 살롱 드라마에 이어 전속 그룹사운드 「더 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