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ONER'S MUSIC LIFE/LINER NOTES (DOMESTIC)

GOST WIND [Korean Rd.]

더욱 강력해진 리프, 심포닉한 구성, 고음역대의 보컬이 돋보이는
GOST WIND [Korean Rd.]


사용자 삽입 이미지

판소리, 창과 헤비메틀의 결합이라는 독창적인 음악성으로 주목받았던 고스트윈드의 두 번째 앨범이 발매되었다. 첫 번째 음반으로 실험대에 올렸던 독창적이라는 단순한 단어의 의미를 넘어서 완전한 밴드의 스타일을 확립한 앨범이다.

우린 예전부터 해외의 선진 문물이나, 값싸고 실용적인 공산품이 대거 유입될 때, ‘신토불이’ 운운하며 언제나 구매자들의 애국심에 의존해 그 무방비 상태에서의 피해를 줄이려 해 왔다. 하지만, 소비자는 냉정하고 현실적이다. 동정이나 호기심에 의한 한번의 실수는 있을지언정 나를 희생해 가면서 어줍잖은 애국심에 줄을 설 만한 사람은 없다는 이야기다. 음악 역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음악인이 ‘국악과 양악의 결합’ 운운하면서 수많은 음들을 낭비해 가며, 그저 애국심에만 호소해 왔던가. 하지만, 앞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한번 속았던 경험이 있는 애호가들이 이렇듯 내용 없는 음악들을 통해 ‘국악과 양악은 결코 결합될 수 없는 것’이라는 정의를 스스로 내리고,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것 역시도 필연적인 결과였다. 물론 이 이야기는 그러한 시도를 한 모든 뮤지션에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저 짜맞추기식 나열로, 음악이 아닌 호기심만을 자극하려했던 ‘사이비’ 뮤지션들을 말하는 것이다.

‘헤비메틀과 판소리의 결합’이라는 색다른 방법론으로 지난 해 데뷔앨범을 발표했던 고스트윈드 역시도 그 뛰어난 시도에도 불구하고 그저 몇몇 매스컴들의 ‘반짝 관심’에만 안주했다면 그저 일탈을 꿈꾸는 뮤지션들의 잠시 ‘외도’로만 기억되는 밴드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이들의 데뷔앨범 발매 이후, 이들을 소개하는 기사들은 고스트윈드가 시도한 밴드 자체의 새로운 시도들이나 음악성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국악을 전공하는 사람도 헤비메틀을 하더라’라는 식의 흥미성 보도로 일관했던 것 역시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은 첫 번째 앨범을 통해 보여준 가시적이고 단발적인 관심을 뒤로하고 또 한번의 탈피를 시도했다. ‘Korean Rd.’, 바로 한국인의 길이라 이름 붙여진 두 번째 앨범이 바로 그 결과다.

고스트윈드는 앞서의 밴드들이나, 동시대에 함께 활동하는 밴드의 음악과 그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비교의 대상이 없는 그룹이다. 때문에 한 장 한 장 발표하는 이들의 음반들은 바로 스스로의 음악에 대한 매뉴얼이며, 아무도 가지 않은 곳에 만들고 있는 새로운 길인 것이다. 미지의 길을 개척해 나가는 선구자라는 입장에서 볼 때 두 번째 정규음반의 타이틀인 [Korean Rd.]는 무척이나 의미심장하다. 물론, 첫 번째 음반에서 두 번째 음반으로 이어지는 길이 그다지 순탄하지 만은 않았다. 여타 밴드들과 같이 소포모어 징크스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여러 문제들로 교체된 멤버들과의 새로운 호흡을 맞춰야 했으며 애써 녹음했던 두 번째 음반의 원본은 기획사와의 마찰로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전화위복이랄까, 오히려 기획사와 떨어진 홀가분한 마음은 정말 하고 싶은 음악을 음반에 담을 수 있는 자유를 가져다 주었고, 새로운 멤버들과의 활동은 지난 1집 음반의 복제가 아닌 또 한번의 변화를 가능하게 했다.

[Korean Rd.]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라면 우선 보컬파트를 들 수 있다. 판소리라고 해서 마치 시조를 읊는 듯한 저음역대의 목소리만을 생각했던 사람들이라면 분명 ‘충격’으로 다가올 만한 왕해경의 보컬은 특히 고음에서 강한 아우라를 분출하며 고스트윈드의 음악적 스펙트럼을 넓히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첫 번째 음반에서는 북한의 개량악기인 저대가 사용되었지만, 이번 음반에는 대금이 등장한다. 이렇듯 새로운 라인업이 만들어내는 보컬과 대금의 조화는 종종 서로 대등한 위치에 놓이면서 고스트윈드의 멜로디라인을 만들어 간다. 기타의 사운드는 데뷔앨범보다 강해져 스래쉬메틀의 리프를 구사하지만, 베이스, 드럼과 함께 오히려 리듬을 탄탄히 받쳐주는 백킹의 역할에 충실하다. 이렇듯 멜로디 악기가 가세한 리듬라인이 국악에 그 뿌리를 두고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 하다. 이전과 다른 또 하나의 변화라면 악곡의 전개에 있어서 심포닉한 경향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오케스트라가 직접 협연한 것은 아니지만, 어쿠스틱의 소리에 최대한 접근하기 위해 행했던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얻어진 오케스트레이션 효과는 이제 밴드에 있어서 새로운 특징으로 자리잡을 만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이제 고스트윈드의 사운드는 단순히 국악과 양악의 조화를 떠나서 고전음악과 대중음악의 만남으로 그 영역을 확대시켰고, 모든 음악의 뿌리는 본디 하나였음은 구차한 설명이 아니라 직접적인 행동으로 표현된다.

앨범의 타이틀답게 고요한 아침을 깨고 한국만의 락음악을 세계로 알리고자하는 밴드의 의지를 표현한 짤막한 샘플링인 ‘Morning Clam’으로 두 번째 앨범은 시작한다. 변형된 자진모리 리듬을 차용한 ‘Tears In Memory’는 새로운 멤버들에 의한 밴드 사운드의 변화를 확연하게 느낄 수 있는 곡으로, 커다란 변화가 없는 듯 발전해 나가는 곡의 진행 방식은 ‘정중동’이라는 우리의 정서에도 정확히 부합하고 있다. 악기들의 이합집산 위로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대금의 연주도 감상의 포인트. 타이틀곡인 [Korean Rd.]는 수록곡들 가운데에서는 보컬의 멜로디가 가장 판소리의 기본에 충실한 트랙으로, 대금과 보컬을 제외한 모든 악기가 리듬파트에 배치되어 있으며, 특히 대금이 메인 리프를 만들어간다는 점도 흥미롭다. 고스트윈드식 슬로우 넘버 ‘Last Shine’에서 보여지는 서정미는 어렵지 않은 멜로디라인과 함께 이들의 이름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데 일조를 할 만한 곡. 인더스트리얼 풍의 편곡을 들을 수 있는 ‘Escape’에 이어지는 ‘Revolution’은 데뷔앨범 수록곡인 ‘Lost Nowhere In Kang-nam’과 리프를 공유하고 있는 곡으로, 두 번째 파트에 해당한다. ‘바꿔!’를 외치는 코러스와 함께 한번 듣더라도 이내 흥얼거릴 수 있는 멜로디라인은 음반의 베스트 트랙 가운데 하나로 꼽을 수 있을 만큼 그 흡인력이 강하다. 진성으로 시작하는 독특한 발라드 ‘Clone Love’는 나란 존재보다 남을 더 의식하는 현대인들, 사랑마저도 정해진 틀에 매여 남들처럼 해야하는 풍조를 복제인간에 비유한 가사를 담고 있는 곡으로 장중하지만 점차로 고조되는 감정의 흐름이 특징이다. 같은 슬로우 넘버이긴 하지만  ‘Last Shine’와는 상극적인 매력이 있는 곡. ‘Crane Dance’는 블루스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셔플리듬과 3박의 리듬이 교묘하게 교차한다. ‘Day Of Wrath’는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 을 염두하고 국내에서 특히 사랑 받는 모차르트의 레퀴엠 중 ‘Dies Irae (진노의날)’을 고스트윈드만의 사운드로 리메이크한 곡이다. 가사는 원곡과는 달리 진노한 날이 온다면 마땅히 벌을 받아야할 특정 국가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가지고 있으며, 질주하는 투베이스 드럼의 연타 위로 겹쳐지는 연주는 종교적 느낌이 물씬 풍기는 코러스와 함께 이미 앞서 이야기 한 듯 국악과 양악, 또 대중음악과 고전음악이 한 데 어우러진다. 밴드가 추구하는 지향점이 그대로 보여지는 베스트 트랙으로, 향후 이들의 사운드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 지에 대한 단초가 될 만하다. 러닝타임이 조금 더 길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느껴지는 곡. 다소 펑키한 리듬을 가진 이색적인 트랙 ‘Wing’으로 앨범은 모두 마무리된다. 

누구나 아이디어는 가지고 있다. 하지만, 생각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분명 커다란 차이가 있다. 고스트윈드가 자신들의 생각을 음악으로 옮긴 두 번째 음반. ‘충격’이란 단어는 처음에 비해서 그 이후 그 효력이 떨어진다. 때문에 이들의 두 번째 음반은 분명 첫 번째 음반에 비해 충격으로 다가오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 이 음반에는 그 충격을 넘어서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 그것은 이제 완전히 본 궤도에 올라선 안정된 밴드의 음악성이며, 계속해서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갈 이들의 방향성이다. 그리고 그 길은 해외의 그 누구도 갈 수 없는 바로 우리들만의 길 ‘Korean Rd.’인 것이다. (2006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