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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ER'S MUSIC LIFE/LINER NOTES (DOMESTIC)

ISHTAR / 슬픔과 아름다움, 강렬함과 섬세함이 공존하는 메틀 서사시 [Conquest]

by coner 2011. 8. 21.

헤비메틀이라는 장르는 그 시작부터 힘의 논리를 앞세운 음악으로 인식되어왔다. 잔인하게 포효하는 보컬이나, 음습하고 육중한 기타 사운드,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듯 극악무도한 드럼의 질주 등은 당연한 듯 헤비메틀의 가장 중요한 요소들로 각인되었고, 뮤지션의 겉모습은 징 박힌 가죽옷과 굵은 쇠사슬로 포장되었다. 때문에 이 장르는 A부터 Z까지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하지만 헤비메틀을 진정으로 영접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외형에 버티고 있는 이러한 특징의 내면에 도사린 슬픈 아름다움을 경험했을 것이다. 세월이 흐르며 금녀의 땅 헤비메틀이라는 성역에 조금씩 여성을 프론트에 내세운 밴드들이 등장한다. 이는 천편일률적으로 흐르는 한 장르의 흐름에서 이탈하여 보다 다채로운 사운드를 추구하거나, 전술한 슬픈 아름다움을 극대화 시키려는 뮤지션들의 열망이 반영된 자연스런 움직임이었다. 특히 후자의 경우 멜로디를 강조하는 멜로딕메틀 혹은 심포닉메틀로 대변되는 장중한 사운드나, 중세의 신비한 세속미를 메틀에 투영한 고딕메틀과 같은 장르에 효과적으로 대입되며 여성만이 가질 수 있는 정교한 섬세함과 투명한 아름다움을 특유의 메틀릭 사운드에 접목시켰다. 그리고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하게 유독 고전음악에서 찬란한 유산을 남긴 선조들을 가진 유럽에서 발전했다.

이슈타르(Ishtar)는 이러한 유럽발 심포닉메틀과 고딕메틀 밴드들의 자양분을 골고루 흡수하며 2006년 결성된 밴드다. 소프라노 보컬을 구사하는 프론트우먼 빈나(Binna)를 주축으로 결성되어 활동하다가, 2007년 예전 스래쉬메틀 밴드 사혼에서 활동했던 그레이(Grey)가 가입하며 정예화된 밴드는 2008년 디지털 싱글 [Two in One]을 발매한다. 특이하게도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프로그레시브락 밴드 뉴 트롤즈(New Trolls)의 ‘Shadows’를 자신들의 스타일로 편곡하여 수록했던 이 싱글로 매니아들의 적잖은 관심을 끌어내긴 했지만, 아쉽게도 빈나의 유학과 함께 밴드는 휴지기를 맞이한다. 그리고 빈나가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2010년 이슈타르는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빈나와 그레이 외에 새롭게 기타리스트 원(One)이 가입했고, 여성 뉴메틀밴드 매드프렛(Mad Flat)에서 활동했던 혜인(Hye In)과 드러머 웅범이 합세하여 EP [Nothing's Atrocity]를 발매한 것이다. ‘팝페라’라는 용어가 만들어지기 훨씬 전부터 오페라와 팝음악의 조화를 실험대에 올리며 독특한 음악성을 자랑했던 키메라(Kimera)와의 우연찮은 만남으로 재탄생한 ‘Sea Queen’을 위시한 5곡의 트랙은 호기심 속에 출범했던 디지털 싱글 [Two in One]의 새로운 시도와 의욕이 탄탄한 실력과 함께 비로소 제대로 된 궤도에 올랐음을 보여주었다. 개인적인 이유로 밴드를 떠난 드러머 웅범의 자리에 데드포인트(Dead Point)와 다운인어홀(Down in a Hole)을 거친 신(Shin)이 가입하며 안정된 라인업으로 거듭난 이슈타르는 2011년 3월 헬로윈(Helloween)과 스트라토바리우스(Stratovarius)의 합동 내한공연 단독 오프닝을 비롯 수많은 공연을 소화했고 메틀밴드로는 유일하게 ‘EBS 스페이스 공감’의 헬로루키로 선정되는 등 정규앨범을 발표하기 전부터 국내 메틀씬에서 단연 눈에 띄는 활동을 벌였다.

이번에 발표되는 [Conquest]는 이슈타르의 첫 번째 풀랭쓰 정규앨범이다. 이미 발표했던 디지털 싱글과 EP에 비교할 때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보컬의 표정이 다양해졌다는 점과 전체적인 사운드는 보다 심포닉해졌으며, 그 구성은 더욱 탄탄해졌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탄탄한 악곡의 구성은 음반 전체를 일관된 하나의 고리로 연결하며 개별적 선곡이 아니라 전체적인 감상을 종용한다. 음반의 성격을 규정짓는 하나의 고리는 바로 ‘대자연’이다. 대자연 안에서 인류가 자연과 공생하는 이상적 시각을 기반으로, 현대 인류의 과욕으로 인한 문명의 건설과 발전에 따른 필연적 반대급부인 자연파괴 등 점차 인류 자신들이 살아갈 곳을 잃어가고 있는 현실들에 대한 자연 혹은 신(이슈타르)의 분노를 표현한 복잡다단한 악곡의 전개는 다채로운 표정의 보컬과 함께 앨범 전체를 입체적으로 수놓고 있다.

전작들에 비해 보다 심포닉해진 밴드의 단면을 볼 수 있는 압도적 스케일로 포문을 여는 타이틀 트랙 ‘Conquest’에 이어지는 ‘Wrath of Sun’은 지구상 모든 생명들의 원천인 태양이 자연을 하찮게 여기고 파괴해온 인간들을 멸하려 한다는 주제를 엇박과 정박을 넘나드는 변화무쌍한 템포 체인지의 프록메틀 스타일로 표현한 곡이다. 동일한 멜로디라인을 가진 도입부 어쿠스틱 기타 연주가 ‘Wrath of Sun’의 후주와 다리를 놓고 있는 ‘Death and Rebirth’는 서정적 주제의 점층적이고 심포닉한 발전을 통해 청자에게 탐미적인 몰입을 종용하는 인스트루멘틀 넘버로 ‘Navy Forest’와 같은 곡과 함께 북구의 차가운 정서가 그대로 재현된다는 점에도 주목할 만하다. ‘All of Us’는 다른 수록곡에 비해 러닝타임이 다소 짧긴 하지만, 시작부터 시원스레 전개되는 거침없는 질주를 통해 이들을 몰랐던 이들에게도 쉽사리 이슈타르라는 밴드의 이름을 각인시킬 수 있을 만큼 보편적 정서를 공유한다. 특이하게도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포카혼타스’에서 그 소재를 차용한 이 곡이 플러스라면, 어쿠스틱 세트로 이루어진 처연한 발라드 넘버 ‘Penitence’ 마이너스에 해당하는 트랙으로 치열한 수록곡의 진행 가운데 양쪽 끝에 위치하며 상극적 긴장감을 유지한다. 그리고 결국 ‘Waves of Tears’와 같은 곡에서 양 극은 만나고 또 흩어지며 이슈타르의 음악적 특징을 규정지으며, 인트로에 해당하는 ‘Conquest’의 주제가 장중한 혼성 코러스와 함께 재현되어 수미상관식 구성의 대미를 작성하는 ‘Mater Natura’로 음반은 모두 마무리된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신화에 나오는 이슈타르는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의 여신으로서 미와 연애, 풍요와 다산, 전쟁, 금성을 상징하지만, 기독교나 구 성경 혹은 중세 서적에선 칠대 악마 중 하나로 나오며 강렬함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현재의 밴드 이슈타르의 음악과 시공을 초월한 소통을 한다. 그리고 이렇듯 상반된 음악의 공존은 선과 악이 평행선상에 배치된 이번 음반의 흐름 가운데 천사와 악마의 경계를 자유자제로 넘나드는 빈나의 보컬과 변화무쌍한 밴드의 연주로 더욱 구체화된다. 국내엔 그 저변이나 유사한 음악을 하는 밴드가 전무한 만큼 이들의 시선이 국내에 한정되기보다 더욱 넓은 세상을 향하리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국내 블랙메틀을 대표하는 오딘(Othean)과 함께 서브 헤드라이너로 내정된 인도네시아의 락페스티벌 ‘Rock in Solo’는 그 시선을 향해 나아가는 시발점이 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밴드 이슈타르의 음악 문을 열 시간이다. 슬픔과 아름다움, 강렬함과 섬세함, 또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메틀 서사시 [Conquest]. 신화 속에서 여신 이슈타르의 사랑을 받는 인간이 그 가혹한 정열과 질투로 인해 짐승과 같은 운명을 겪게 되지만 그 치명적 매력에 사로잡혀 운명을 거스르지 못했던 것처럼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리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일 듯하다.

글 송명하 (2011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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