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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ER'S MUSIC LIFE/EXTERNAL CONTRIBUTIONS

월간 토마토 2011년 9월호..


이번 달 원고.. 책이 나온 뒤 받아보니, 심하게 잘렸다.. ㅠㅠ 벌써 아홉번째 원고인데도 아직 분량을 잘 못맞추다니;;; 어쨌든 여기엔 잘리기 전의 원본 글을 옮긴다. 다음 원고부터는 좀 더 많은 분량의 음반 리뷰를 실어볼까 하는데, 그 분량을 줄이는 연습이 절실하다...

송명하의 테마음악 파일 #9
음악, 오래전 편지와 같은

글 송명하 (트위터 @MyounghaSong) / 사진제공 에볼루션 뮤직, 칠리 뮤직

오늘도 집에 들어가며 어제와 마찬가지로 비어있는 우편함의 문을 열었다 닫았다. 그나마 어쩌다 들어있는 건 말도 되지 않는 내용이 쓰인 광고 전단지나 자동이체 영수증들 뿐. 우편함을 여는 습관적 버릇에 더 이상 어떤 기대나 설렘이 없어질 만큼 메마른 일상이 쌓여가고 있는 지금, 오래전 펜벗들이 가끔 그리워 상자 속에 차곡차곡 모아둔 예전 편지들을 꺼내본다. 무슨 고민들이 그렇게 많았던지, 그때 내가 보냈던 편지의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 편지에 대한 답장은 지금의 나를 웃음 짓게 하고 또 부끄러워 혼자 얼굴 달아오르게 만든다. 오래 전 뮤지션들이 발표했던 미공개 음원이나, 그동안 활동이 뜸했던 뮤지션들이 오랜만에 발표하는 신보 소식은 마치 오래전 편지를 들추듯 낯선 긴장감보다는 익숙한 편안함으로 우리를 유혹한다. 그리고 그 유혹은 우리를 치명적인 맹독으로 순식간에 마비시키기보다, 은은한 향기로 오래도록 달콤한 꿈속에 머물게 만든다.

Yes / Fly From Here
프로그레시브록의 선구자적 위치에 있는 예스(Yes)지만, 비슷한 시기인 1960년대 말 등장했던 여타 프로그레시브록 밴드들의 사운드와 예스의 그것과는 확실한 차이가 있었다. 복잡하게 휘몰아치는 박자의 변화는 정교한 비르투오소 집합에 의해 능수능란하게 요리되었으며, 어두운 단조보다는 밝고 맑은 장조 음계를 주로 사용하여 소위 ‘천상의 목소리’라 일컬어지는 존 앤더슨(Jon Anderson)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부각시켰다. 그 때문이었는지 세월이 흐르고 트렌드가 변화하며 필연적으로 점차 단순해진 악곡의 전개와 연주가 기존 예스 팬들의 결속을 와해시킨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2001년 [Magnification]을 발표한 지 꼭 10년 만에 발표하는 스튜디오 앨범. 이번에는 밴드의 얼굴로 인식되었던 존 앤더슨마저 건강을 이유로 밴드를 이탈하고, 캐나다에서 예스 트리뷰트 밴드인 크로스 투 디 엣지(Close To The Edge)의 보컬로 활동했던 베노이트 데이빗(Benoit David)이 새로운 보컬로 영입되었다. 때문에 1980년 앨범 [Drama]를 발매할 당시 밴드를 등진 존 앤더슨과 릭 웨이크먼(Rick Wakeman)의 후임으로 참여해 꺼져가는 예스의 생명 불씨를 연장시켰던 버글스(The Buggles)출신 제프 다운스(Geoff Downes)와 트레버 혼(Trevor Horn)이 각각 키보드와 프로듀서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그보다는 존 앤더슨의 부재가 호 불호 논쟁의 중심에 오르내린다. 하지만 이러한 표면적인 변화를 잠시 접어두고 음반을 접하길 권하고 싶다. 제프 다운스와 트레버 혼이 이미 버글스 시절 만들어 두었던 25분대의 ‘Fly From Here’ 조곡은 전성기 예스의 치열함으로 다시 복귀했음을 만천하에 선포하고 있으며, 음악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트래버 혼의 탁월한 프로듀싱은 마치 시공을 초원한 로저 딘(Roger Dean)의 앨범 아트워크처럼 오히려 새로운 팬층을 만들어 낼 수 있을 정도의 정교함과 세련됨으로 충만하다. 트레버 혼과 오래도록 교류를 해온 제프 다운스의 키보드 사운드는 말할 것도 없고, 스티브 하우(Steve Howe)의 스틸 기타는 아직도 날카롭고 섬세한 날이 서 있으며, 해저에서 끌어올린 듯 선이 굵고 또렷한 크리스 스콰이어(Chris Squire)의 베이스 연주 역시 여전하다. 음반의 타이틀처럼 비약을 위한 시발점이 될 지는 미지수지만, 어쨌거나 다소 실망스러웠던 밴드의 행보에 터닝 포인트가 될 만한 수작 앨범임은 분명하다.

Olivia / Just For Love
이 지면을 통해 한 번 소개한 바 있는 올리비아의 초창기 음반 두 장이 뒤늦게 국내에 정식 공개되었다. 싱가포르 출신으로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녀에겐 언제부터인지 ‘보사노바의 여신’이라는 예명이 따라다니고 있지만, 초기 그녀의 활동은 한 장르로 한정되어 우리 머릿속에 각인된 형상과는 꽤 많은 차이가 있었고 [Just For You]라는 타이틀로 등장한 이 앨범은 그러한 그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CD1에 수록된 [Precious Stones]는 원래 2005년에 발매되었던 앨범이다. 에이벡스(Avex) 소속의 하우스 뮤직 프로듀싱 팀 GTS의 프로듀서 지(Gee)의 진두지휘아래 녹음된 수록곡들은 전자음의 위압적 비트로 보컬을 구속하지 않고 오히려 연약한 올리비아의 목소리를 부각시켜, 눅눅한 물기를 걷어내 가벼운 가을바람에 날리듯 상쾌하다. 몰입을 요구하는 음악은 아니지만 ‘It's Real’은 모르는 사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중독성 있는 트랙이며, ‘Make It Mutual’의 이색적인 하우스 비트에 어우러진 올리비아의 목소리는 클럽과 라운지 모두를 포용할 만큼 너른 영역을 지녔다. 이 외에 2006년 일본에서만 공개되었던 필 콜린스의 ‘Against All Odds’와 캐롤 킹(Carol King)이 발표한 ‘It's Too Late’의 올리비아 버전을 비롯한 8곡의 트랙이 수록된 미니 앨범 [Tamarillo]가 함께 수록되었다.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어렵사리 다가온 가을이지만, 여전히 풍요 가운데 넉넉하다.


Whitesnake / Live At Donington 1990
올해 통산 11번째 스튜디오 앨범을 발표하고, 오는 10월 26일 내한공연을 확정짓는 등 나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끝없는 음악적 열정을 불사르고 있는 화이트스네이크의 미공개 라이브 앨범 한 장이 발매되었다. 두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출중한 뮤지션들이 배출되고 또 거쳐 갔던 화이트스네이크의 활동이지만 이 라이브 앨범의 크레디트에 등장하는 기타리스트 스티브 바이(Steve Vai)의 이름은 그 존재만으로도 락 애호가들의 관심을 끌기 충분하다. 화이트스네이크의 명반 [Slip Of The Tongue]를 통해 이미 가공할 연주력을 쏟아내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건강을 이유로 잠시 밴드에서 이탈했던 애드리안 반덴버그(Adrian Vandenberg)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한 임시 멤버였다는 점이 아쉬웠던 팬들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언제나처럼 ‘Are You Ready! Here's Song For You’를 힘차게 외치며 시작되는 공연은 1990년에 도닝턴 성에서 벌여졌던 ‘몬스터즈 오브 록 (Monsters Of Rock)’ 실황이다. 스티브 바이의 참여가 반가운 건 [Slip Of The Tongue]를 원래 연주했던 기타리스트의 연주를 들을 수 있다는 점도 있지만, 앞서 언급한 듯이 화이트스네이크를 거쳐 갔던 여러 출중한 기타리스트들의 연주와 스티브 바이의 연주를 비교할 수 있다는 점에도 커다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두 장의 CD와 한 장의 DVD로 구성된 화이트스네이크의 긴 음악 여정 가운데 물질적으로나 음악적으로 최고의 정점을 찍었던 자신감 충만한 시기를 그대로 담은 스냅사진과도 같이 소중한 기록. 세월의 흐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변함없는 색깔을 유지하고 있다.


Symfonia / In Paradisum
레볼루션 르네상스(Revolution Renasissance)에서 헬로윈(Helloween)의 미하일 키스케(Michael Kiske)의 원숙한 보컬과 하모니를 맞추던 기타리스트 티모 톨키(Timo Tolkki)가 이번에는 또 다른 프로젝트로 음반을 발표했다. 헬로윈 출신 드러머 울리 쿠시(Uli Kusch)와 바이퍼(Viper), 앙그라(Angra)를 거친 브라질의 영웅 앙드레 마토스(Andre Matos), 핀란드를 대표하는 프록메틀 밴드 에버그레이(Evergrey)의 야리 카이눌라이넨(Jari Kainulainen), 그리고 소나타 아티카(Sonata Arctica)의 미코 해르킨(Mikko Härkin) 등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 설레게 만드는 말 그대로 멜로딕메틀계 슈퍼스타들의 집결이다. 거침없는 리프와 질주하는 드러밍으로 80년대 헤비메탈 전성기를 그대로 재현하는 오프닝 ‘Fields Of Avalon’은 새롭게 조직된 밴드의 지향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베스트 트랙이며, ‘Alayna’의 가슴 저미는 서정성은 앙드레 마토스의 음악적 출발점이었던 바이퍼의 ‘Moonlight’와 20년이 넘는 시간의 간극을 뛰어 넘으며 동일한 감동으로 청자를 안내한다. 이 외에도 중세 세속음악을 듣는 듯 독특한 멜로디를 가진 ‘Pilgrim Road’, 혼성 합창으로 청자를 압도하는 타이틀 트랙 ‘In Paradisum’ 등 출중한 멤버들의 조합인 만큼 한 곡 한 곡의 완성도 역시 훌륭하다. 커다란 화제 속에 친정이라고 할 수 있는 스트라토바리우스(Stratovarius)를 탈퇴한 티모 톨키지만, 그의 독자적 활동과 스트라토바리우스가 펼치는 선의의 경쟁을 지켜볼 수 있다는 점은 청자의 입장에서 언제나 흥미진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