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타리스트의 선생님, 이정선 디스코그래피 2

지난 포스팅에 이어 이정선의 5집 음반부터 가장 최근이라고 할 수 있는 11집 음반까지의 정규앨범들을 알아보는 시간이다. 11월 19일 성공리에 막을 내린 ‘제1회 서울레코드페어’에서는 이정선 음반 특별전과 함께 특별공연이 열렸는데, 로다운30의 윤병주와 함께 만든 무대에서 만난 그의 건재한 모습은 너무나 반가웠다. 후진양성과 함께 다소 소극적이었던 뮤지션으로서의 활동도 더욱 활발해지길 바란다.

5집 이정선 5 (1979)

이정선의 디스코그래피 가운데서 가장 커다란 변화가 있던 시기에 발표된 음반이다. 이 앨범을 위해 이정선은 뮤직맨 일렉트릭 기타를 구입했고, 스스로 리드기타를 담당했다. 인터뷰를 통해 그는 이 시기가 ‘뿌리를 찾아가는 시기’ 였다고 밝히기도 했다. 포크록 스타일과 실내악식 편곡, 조금씩 관심을 보이던 국악의 멜로디에, 아직은 살짝이지만 일렉트릭 기타를 이용한 블루스로의 접근이 혼재한다. 물론 평소 그의 음반과 마찬가지로 어지럽게 널리지 않고 정돈되어 깔끔하다. 초반과 재반은 수록곡의 순서가 다르며 상여가 나가듯 국악풍의 음습한 ‘그렇게 살아가는데’, 리코더 연주곡 ‘달빛아래 피는 꽃’과 ‘불새야 동산으로’ 대신 ‘슬픈 얼굴’과 ‘아가’, ‘처음 만난 순간부터’가 각각 수록되었다. 전작까지 경계가 모호했던 해바라기와 이정선 솔로활동의 경계가 확실하게 나뉘게 되는 음반이라는 점에서도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6집 이정선 6 (1981)

이전음반에서 간간이 선보이던 블루스의 느낌이 오프닝 트랙인 ‘사랑의 흔적’의 중반부 기타 애들립과 함께 음반에서 전면으로 돌출되기 시작한 음반이다. ‘일요일 아침의 평화’는 몽환적인 코러스를 동반한 실험적인 시도가 돋보이며, 5집 음반부터 새로 잡은 일렉트릭 기타가 이제 완전히 몸의 일부분이 된 듯 느껴지는 명곡 ‘한밤중에’가 수록되었다. 이후 신촌 블루스의 음반에 수록되는 곡으로, 당시까지 그렇게 많지 않았던 연주 위주의 곡으로 자신감이 넘치는 호연을 들을 수 있다. 손석우가 작곡한 송민도의 고전 ‘나 하나의 사랑’은 편곡이 제2의 창작임을 확실하게 일깨워주는 트랙. 연결고리가 완전하게 끊긴 것은 아니지만, 연작들 사이에서 가장 큰 음악적 지각변동을 느낄 수 있다.

6 1/2집 6 1/2 (1981)

최근에는 ‘X.5’집과 같은 음반이 많지만, 당시만 해도 [6 1/2]이라는 타이틀은 무척 생경한 것이었다. 음반사의 이적과 함께 6집과 같은 해에 발표된 앨범으로 반 정도의 수록곡은 예전의 음반 수록곡인데, 일렉트릭 기타에 의한 편곡을 통해 변모해 가는 과정은 충분히 흥미롭다. 이정선에 의하면 유럽으로 떠나기 위한 여비를 마련하기 위해 발표한 음반이라고 한다. 전체적으로 블루스적인 성향을 띠는 음반은 아니지만, 사운드적인 측면이나 창법에서 그의 음악이 복잡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으며, 전작에 수록되었던 ‘한밤중에’를 비교해보면 그 차이는 명확하다.


7집 30대 (1985)

이정선의 초창기 음반들 가운데 CD로 정식 재발된 몇 안되는 정규음반 이라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음반의 발매 당시 보다 이후에 더욱 큰 평가를 받았던 음반이다. 앞서의 음반과의 공백이 생긴 이유는 유럽여행에서 받은 ‘문화적 충격’으로 한동안 기타를 잡지 못했던 이유에서이다. 이정선이 발표한 음반들 가운데 가장 블루스적 성향이 강한 이 음반에는 예전에 발표했던 ‘건널 수 없는 강’이 더욱 블루지한 편곡으로 담겨, 이후 한영애의 리메이크에 결정적인 모태가 되고 있으며, 신촌 블루스의 1집에 수록되는 ‘바닷가의 선들’은 ‘건널 수 없는 강’의 어쿠스틱한 블루스와 대조적인 묵직한 프레이즈의 일렉트릭 기타가 압도하는 또 하나의 명곡이다.

8집 Ballads (1988)

신촌블루스를 통해 본격적인 블루스 밴드활동을 하던 시기였지만, 이 앨범과 신촌블루스의 상관관계는 오히려 7집보다 먼 듯 느껴진다. 대체적으로 음반의 타이틀로 알 수 있듯, 전작의 격한 창법을 의도적으로 배제하여 편안하고 완만한 연주와 어우러진다. 어찌 본다면 이정선의 ‘성인가요’적 접근이라고 생각되는 음반. 물론 그의 접근은 우리가 늘 들어오던 성인가요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 고상하고 고급스럽다고 해야 할까. ['84 젊은이의 노래]에 수록된 명곡 ‘외로운 사람들’이 보다 차분한 편곡으로 다시 수록되어 머릿곡으로 자리 잡았고, ‘우연히’의 기타연주를 연상시키는 ‘호기심’이 연주곡으로 담겼다. ‘같은 하늘 아래’는 이후 조하문에 의해 다시 불린 곡.

9집 雨 (1990)

전작의 성인가요적 접근이 보다 심화된 음반이다. 한 인터뷰를 통해 ‘나이에 맞는 음악’을 하겠다고 이야기한 부분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며, 그런 의미에서 ‘며칠째 비는 내리고’에 등장하는 “아름다웠던 젊은 시절도 너를 따라서 흘러가고... 이젠 돌아가 쉬고 싶어”라는 가사는 의미심장하다. 스스로 신촌블루스 활동을 등졌던 만큼 신촌블루스와의 연결고리는 거의 남아있지 않아, 8집 이전 음악과도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항구의 밤’은 노골적으로 트로트를 도입했지만, 이정선이라는 여과장치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보여주는 확인시켜주는 곡이며, 연주곡의 비중도 높다.



10집 Ten (1994)

8집부터 꾸준하게 시도해온 성인성향의 음악스타일이 결실을 맺은 음반이다. 포크와 블루스를 표방했을 무렵도 마찬가지지만, 그의 스타일은 동시대에 존재하는 비슷한 부류의 음악들과는 의도적인 거리를 둔 듯 확실한 차이가 있다. 때문에 당시 유행했던 ‘Unplugged’라는 용어가 부제로 등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접근방법은 많이 다르다. 아마도 이정선 스스로가 일렉트릭 기타를 멀리했다는 의지 정도로 받아들이면 될 듯 하다. 하모니카 연주곡 ‘기다림’이나, 박선주가 작곡한 보사노바 넘버 ‘시간속에서’, 가벼운 레게 느낌이 나는 ‘그대에게 가는 길’ 등에서 월드뮤직으로 접근하는 이정선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11집 Hand Made (2003)

9년만에 발매된 정규 11집 음반이다. 음반의 타이틀이 주는 뉴앙스처럼 대체로 어쿠스틱한 연주들이 거친 질감으로 담겼다. 언뜻 ‘건널 수 없는 강’의 도입부 기타를 연상시키는 블루스넘버 ‘살다보면 언젠가는’, 재지한 ‘상실’이 있는가하면 ‘항구의 밤’이나 ‘담담한 날에는 여행을’과 같이 포크스타일에 적당한 텐션코드를 사용하여 초기 이정선의 음악과의 교량역할을 하는 넘버까지, 신곡들임에도 불구하고 과거 회상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다시 말해서 예전에 발표했던 곡들과 연관성을 찾는 재미가 있다. ‘빗속에 서있는 여자’는 신촌블루스나 명혜원의 음반에 이미 수록되었던 곡으로, 나른한 느낌으로 재수록되었다.


글 송명하 (20111130)

* 밀러 공식 블로그(http://blog.naver.com/blogmiller)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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