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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ER'S MUSIC LIFE/EXTERNAL CONTRIBUTIONS

서울 나그네가 참여한 또 하나의 문제작, 김준 / 휘파람 하이킹

Side A

1. 휘파람 하이킹
2. 그때 그 여인
3. 그 누가 뭐래도
4. 너랑 나랑
5. 사랑 실은 계절
6. 내 마음은 풍선
7. 하늘을 보면
8. 말 좀 하세요
9. 우리 함께 월츠를
 
Side B
1. Introduction (서곡)
2. 생각 합니다 (노래: 최이철)
3. #1
4. 흙냄새 그 아가씨
5. #2
6. 별 하나
7. #3
8. 9월의 노래 (노래: 이현아)
9. 여보소 날 보소
10. #4
11. 사랑하니까
12. 생각 합니다
 
1976 / 오아시스

사랑과 평화의 역사를 살펴볼 때 중요한 세 인물과의 만남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첫번째는 십대였던 최이철이 소속된 밴드 아이돌(Idol)을 발탁했던 김대환이고, 또 한명은 김준이다. 나머지 한명은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사랑과 평화의 명반인 1집과 2집이 존재할 수 있게 만들었던 이장희다. 김대환과 이장희에 비한다면 상대적으로 김준의 이름은 사랑과 평화의 이름과 그다지 일직선상에 놓일 일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김준은 그저 ‘자니 브라더스에서 활동했던 멋쟁이 가수’로만 알려져 왔고, 그 뒤 재즈로 완전히 음악성을 전향한 후에도 저스트 프랜드, 야뉴스 재즈와 함께 떠오르는 남성 재즈 싱어일 뿐 사랑과 평화와의 연결고리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없다. 알려진 바와 같이 사랑과 평화의 계보는 앞서 언급한 아이돌에서 영 에이스를 거쳐 서울 나그네로 안착되며, 서울 나그네가 개명하여 사랑과 평화가 되었다. 김준은 영 에이스에서 서울 나그네로 넘어가는 시기에 밴드의 구성원들을 자신의 음반에 참여시킨 뮤지션이다.
 
사실 197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국내 ‘가수’의 음반에 연주자의 이름이 명기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어디까지나 연주자는 가수의 보조 역할로만 존재했던 까닭이다. 하지만 김준은 「마음의 날개 / 꿈속의 연인」(1974)에서 재킷의 뒷면에 연주자의 이름과 사진을 공개했다. 거기다 “73년을 보내면서 작곡자 김명곤씨의 첫 작품 발표에 기쁨과 성원을 보내면서...”라고 일청을 권하는 이야기까지 겻들이며 그들을 추켜세우고 있다. 이 음반에 참여한 연주자는 최이철(기타), 이남이(베이스), 김명곤(키보드), 권용남(드럼) 그리고 류복성(퍼커션) 등이다. 권용남은 히 식스, 신중현과 엽전들에서 활동했던 드러머고, 류복성은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고의 퍼커션 주자다. 그리고, 나머지 멤버 세 명은 바로 서울 나그네의 주축을 이루게 되는 핵심멤버들이다. 그리고 이들의 협력체제는 1년 터울로 발매되는 「여보소 날 보소 / 하고 싶은 이야기」(1975)를 거쳐 이번에 소개하는 「휘파람 하이킹 / 생각 합니다」(1976)에 이르며 단순히 가수와 연주자가 아니라 두 뮤지션의 스플릿 음반, 혹은 한 밴드의 음반에 김준이 객원 보컬로 참여 한 것과 같은 독특한 모습을 띄게 된다. 이 음반에 참여한 밴드의 구성원은 바로 최이철(기타), 이남이(베이스), 김명곤(키보드), 김태흥(드럼) 그리고 이철호(퍼커션). 바로 서울 나그네다. 서울 나그네가 담당한 LP의 뒷면에 먼저 눈이 간다.
 
우선 그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당시 국내 음반에선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Introduction (서곡)>을 시작으로, <#1>, <#2>와 같이 숫자로 이루어진 곡들이 징검다리와 같이 브릿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제목이 따로 있지 않은 곡들은 서울 나그네의 연주만으로 구성된 트랙들이다. 빗소리 효과음과 함께 다분히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Wish You Were Here」, 특히 <Shine On You Crazy Diamond>의 영향력이 짙게 드리운 <Introduction (서곡)>에 이어지는 최이철 보컬의 <생각 합니다>, <#1>의 접속곡은 사랑과 평화 시절에도 듣기 어려웠던 프로그레시브한 어프로치의 곡들이다. 그런가하면 후반부 화려한 드럼 솔로가 펼쳐지는 <#3>는 전형적인 서울 나그네 혹은 사랑과 평화 풍 펑키 사운드로 이루어진 트랙이며, 객원 보컬 이현아의 스캣이 발자국 효과음과 피아노 연주로 발전되는 <9월의 노래>는 나른하고 신비하다. 김준의 전작 수록곡 <여보소 날 보소>의 테마에 이어지는 <#4>는 무그와 일렉트릭 기타의 난수표와도 같이 흩어지는 연주가 청자를 몽환적 사이키델리아로 인도하며, 명곡 <사랑하니까>에 이르러 숭고함마저 느끼게 하는 클라이맥스로 치닫는다. 그리고 최이철의 노래로 삽입되었던 <생각 합니다>가 차분한 피아노 연주로 재현되며 음반은 모두 끝을 맺는다.
 
물론 이 음반은 어디까지나 힘찬 호루라기 소리와 상쾌한 휘파람 효과음이 흥겨운 스매시 히트곡 <휘파람 하이킹>, 장미화의 목소리로도 많이 알려졌고, 2년 전 극적으로 재발매되며 황홀한 연주의 향연을 만끽할 수 있었던 서울 나그네의 리메이크로도 유명한 <내 마음은 풍선>이 수록된 김준의 음반이다. 때문에 한 장의 음반 안에서 작곡과 연주, 창법이 이질적인 부분도 많다. 하지만 누구라도 이 음반을 접할 때 허를 찔린 듯한 느낌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음악, 진보적인 의도가 탁월한 연주로 오롯이 표현된 음악과 접하게 되기 때문이다. 같은 해 서울 나그네는 자신들의 이름으로 두 장의 음반을 발표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랑과 평화로 개명한 후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반까지 국내를 대표하는 밴드로 확실한 자리매김을 하게 된다.

글 송명하 (20120224) 

* 월간 핫트랙스 매거진(http://info.hottracks.co.kr/company/main)에 기고한 글입니다.   

 

서울 나그네, 국내 락의 암흑기에 발표된 초인적인 연주의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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