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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ER'S MUSIC LIFE/LINER NOTES (OVERSEAS)

Garbage / Not Your Kind Of People

‘클래식 가비지 사운드’로 발표하는 7년만의 신보





말 그대로 혜성과 같은 등장이었다. 스푸너(Spooner)와 파이어 타운(Fire Town) 등 여러 밴드에서 활동했던 듀크 에릭슨(Duke Erikson)과 부치 빅(Butch Vig) 그리고, 스티브 마커(Steve Marker)가 자신들이 만든 스마트 스튜디오(Smart Studio)에서의 아이디어들을 스스로 표현하기 위해 앤젤피시(Angelfish)에서 활동하던 보컬리스트 셜리 맨슨(Shirley Manson)을 영입해 결성한 밴드 가비지(Garbage). 1995년, 부치 빅이 너바나(Nirvana)의 명반 [Nevermind]의 프로듀서였다는 점을 증명이라도 하듯 신인 밴드의 데뷔앨범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미끈하게 잘 빠진 셀프타이틀의 데뷔앨범을 발표한 이들은 ‘Queer’, ‘Only Happy When It Rains’, 그리고 ‘Stupid Girl’을 줄줄이 히트시키며 승승가도의 행진을 이어갔다. 서서히 그 힘을 잃어가던 시애틀 그런지를 그 바탕에 깔고 있지만, 탁월한 아이디어와 그 아이디어를 오롯이 음반으로 옮길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던 세 명의 멤버가 일궈낸 실험성이 독특한 매력의 프론트 우먼 셜리 맨슨의 보컬과 함께 독창적인 음악으로 거듭난 결과였다. 인기의 고공 행진은 3년 뒤 발표된 두 번째 음반 [Version 2.0]으로 이어졌다. 


전작에 비해 일렉트로닉 사운드의 비중을 높인 가비지식의 테크노를 표방한 이 앨범 역시 영국을 비롯한 몇몇 나라에서 앨범차트 넘버원을 기록하고, 연말 그래미어워즈에서 두 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는 히트를 거뒀다. 사운드적인 측면에서 볼 때 테크노를 표방했다고는 하지만 전체적인 멜로디의 비중은 더욱 커졌다. 이들이 두 번째 음반을 제작할 때 레퍼런스로 삼았던 음악은 1960년대에서 1980년대에 이르는 음악 가운데서 오케스트라의 화려한 현악파트가 삽입된 음악이다. 가비지식 테크노란 그 현악파트의 자리에 전자악기를 배치하며 표현했던 새로운 시도를 의미한다. 강렬한 사운드에서의 공격적이고 절분된 보컬의 진행은 크리시 하인드(Chrissie Hynde)의 프리텐더스(Pretenders)가 떠오르지만, 감성적인 보컬의 하모니나 기타 사운드 등에서 60년대의 말랑말랑한 음악이 연상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실제로 ‘Push It’에서는 비치 보이스(Beach Boys)의 멜로디를 차용하기도 했다. 과거와 현재,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자연스런 공존이라고 할까.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어쩌면 이러한 밴드의 의도가 더욱 잘 표현된 음악은 이 음반 이후 얼마 되지 않아 발표된 007 시리즈의 주제가 ‘The World Is Not Enough’라고 할 수도 있겠다. 


다시 3년 후인 2001년, 세 번째 음반 [Beautiful Garbage]가 발표된다. 기본적으로 기타와 베이스, 드럼으로 이루어진 밴드 편성의 구성은 두 번째 음반에 비해서는 단순한 느낌으로 다가오지만, 적절하게 배치된 발라드 넘버들로 앨범 자체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지지 않도록 전체적인 균형을 맞췄다. 녹음 방식 역시도 아날로그 테이프에 먼저 녹음된 음원을 디지털로 변환하는 방식을 취하며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공존이라는 전작의 방법론을 더욱 구체화시켰으며, 테이프의 역회전에 의한 과거의 첨단 효과들도 자연스럽게 삽입되었다. 물론 일정 수준 이상의 히트를 기록하긴 했지만, 전작들의 화려했던 결과에 비한다면 이들의 세 번째 음반은 음악적으로나 상업적 모두 실패한 음반이 되고 말았다. 음반 발매와 함께 이어진 투어에서는 부치 빅이 건강상의 문제로 도중하차하고 세션 드러머들이 공연을 마무리하기도 했다. 결국 가비지의 멤버들은 순회공연이 끝난 뒤 2003년 뿔뿔이 흩어진다. 흩어진 멤버들이 다시 모이게 된 것은 2005년 네 번째 앨범 [Bleed Like Me]를 제작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4집의 음반활동 역시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앨범차트 4위를 기록하긴 했지만, 공연도중 돌연 밴드가 ‘무기한 활동 중단’을 선언한 것이다. 밴드는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 “계속되는 투어로 완전히 힘이 빠져버렸다. 우리는 언제나 스튜디오에서 음반을 만드는 일에 행복해 했다. 하지만 음악 산업은 패닉에 빠졌다. 대규모 음반사는 자신들의 아티스트들에게 압력을 가했다. 우리의 레이블은 역시 더 많은 돈을 원했고 우리의 차트 성적이 더 높길 바랐다. 사실 우리가 계약한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Bleed Like Me]를 통해 우린 비평에 시달렸다. 사람들은 우리가 우리의 날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 역시 우리의 즐거움을 잃었다.”며 그러한 상태에서 가비지의 음악을 들려주기 싫었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어쨌거나 가비지는 투어를 포기하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서 가비지 이외의, 음악 이외의 그리고 나머지 세상 이외의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7년이 흘러 새로운 음반 [Not Your Kind Of People]을 들고 우리를 찾아왔다. 밴드로서는 통산 다섯 번째 정규음반이다.


음반의 타이틀은 가비지 자신들을 표현한 문구다. 그들은 “우린 일렉트로니카를 이용했지만 일렉트로닉씬에 맞지 않았고, 팝퓰러한 음악을 해도 힙스터 씬에 맞지 않았다. 얼터너티브 록 씬에 맞지 않았던 것 역시 사실이다. 단 한 번도 맞지 않았다.”며 오래도록 자신들의 음악적 스타일이 씬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이러한 아웃사이더로서의 상태를 받아들이며 자신들의 사운드가 어느 누구의 사운드와도 같지 않음에 자부심을 느끼게 된 것이다. 그리고 밴드를 압박하는 메이저 레이블의 손을 벗어나 ‘Stunvolume’이라는 자신들의 레이블을 만들었다. 음악을 떠나 따분한 나날을 보내는 동안 멤버들은 상처에서 스스로 벗어났으며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모두 자유롭고 안정된 상태는 그대로 새로운 음반에 표현되었다. 이번 음반의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는 멤버 각자의 포지션이 정해져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모두가 프로듀서였고 모두가 엔지니어였으며 모두가 작곡을 했다. 밴드는 “예를 들어 셜리에게서 아이디어가 생기면 부치가 기타연주를 하고, 스티브가 드럼 루프를 입혔다. 모두가 키보드 연주자였고 모두가 훌륭한 프로그래머였다. 이 모두의 작업이 밴드를 독특하게 만들었다. 가비지의 사운드는 모두가 우리 네 명의 입력에 의해 만들어졌고, 성공의 대부분은 이러한 아이디어의 교환에서 이뤄졌다. 누군가에게서 시작된 아이디어는 결과적으로 완전히 다르지만 더 좋은 결과로 바뀌어간 것이다.”며 초심으로 돌아간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그렇게 도출된 결과는 스스로 ‘클래식 가비지 사운드’라고 칭할 정도로 초기 가비지를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는 음악들이다. 


음반발매에 앞서 선공개된 싱글 ‘Blood For Poppies’에서 들을 수 있는 선 굵은 리프와 가벼운 멜로디의 공존은 이미 가비지의 음악에 한번 이상 매료되었던 사람이라면 거부할 이유가 전혀 없는 전형적인 가비지 스타일의 트랙이며, 서정적인 도입부에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스타일의 헤비한 리듬 파트가 덧입혀지는 ‘Control’은 꿈틀대는 그루브로 충만하다. 그런가하면 ‘Man On A Wire’는 푸 파이터(Foo Fighters)의 방법론으로 접근하는 프리텐더스식 표현과 같은 느낌을 주며, 타이틀 트랙의 꿈을 꾸듯 중독적인 나른함 가운데서 셜리 맨슨은  ‘Queer’의 요염한 자태를 뽐낸다. 단순히 초기 사운드라고 이야기하지만, 데뷔앨범이 발매된 것은 1995년이다. 20년이 가까운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CD의 플레이 버튼을 누르자마자 거침없이 쏟아져 나오는 댄서블한 리듬과 함께 시작되는 ‘Automatic Systemic Habit’에서 “Lies, Lies, Lies”를 외치는 셜리 맨슨의 목소리를 통해 ‘으흠. 가비지군’을 혼자 되뇔 수 있도록 만드는 이들의 능력에는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언뜻 유행을 되찾은 씬스팝의 느낌도 들지만, 오히려 반복되는 루핑의 탐미적인 몰입은 두 번째 앨범 [Version 2.0]에서 보여준 테크노의 감각적인 수용과 함께 더욱 뚜렷하고 독특한 정체성을 규정지었다.


시간은 흘렀고, 가비지와 함께 출발선에 서 있던 많은 밴드들이 이미 필드에서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몇 차례 모임과 흩어짐을 반복하긴 했어도 가비지는 처음 멤버 그대로 새로운 음반을 들고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휴식이 길었던 만큼 듀크 에릭슨, 부치 빅 그리고 스티브 마커의 아이디어는 그 어느 때보다도 충만하며, 셜리 맨슨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자신들이 이야기한 것처럼 단 한 번도 당시의 씬에 맞지 않았던 것은 아마도 가비지라는 밴드가 트렌드 세터로서 언제나 씬을 앞서 갔다는 하나의 이유도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Not Your Kind Of People’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스스로 과거를 돌아본다는 이야기를 한다. 이미 앞서 가비지가 발표했던 음악과 걸어왔던 발자취를 봐 왔기에, 이들의 과거는 추억을 답습한다는 회귀로서의 의미가 아니라 또 다른 미래를 향한 실험적인 접근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단순히 노장의 귀환이 아니라 또 한 번의 새로운 시작이다. 이들의 행보를 주시해야할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글 송명하 (월간 파라노이드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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