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곤, 창작욕 왕성했던 실험으로 충만한 데뷔앨범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기타와 장구를 배운 김태곤은 이후 군에 입대하여 육군본부 군악대에 근무하게 된다. 군악대에서는 주로 기타와 드럼 보컬 등을 맡았으나 군 동료 국악인들과 가깝게 지내면서 점차 국악의 매력에 눈을 떴고, 이때부터 국악과 현대음악을 접목하는 퓨전음악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군 제대 후에는 스튜디오에서 1년 반 정도 세션활동을 하다가 발표한 음반이 바로 이번에 재발매되는 [김태곤 창작 11곡 제1집: 내 가슴속에 님의 숨결이…](유니버어살, SUL-806, 1977)다. 바로 그의 이름과 함께 누구나 머릿속에 떠 올릴 수 있는 대표작 ‘망부석’과 ‘송학사’가 수록된 음반. 바로 군복무시절 그가 관심을 기울였던 국악과 록, 그리고 포크가 결합된 일종의 퓨전음악이 수록된 음반이었다. 이 곡을 부를 때 김태곤이 입었던 무대 의상인 도포와 삿갓이 김태곤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고, 우스갯소리로 “송학사가 있는 곳은?”이라는 물음에 “산모퉁이 바로 돌아”라는 답이 이어졌다는 이야기는 이 노래들의 파급력이 얼마나 컸는가에 대한 설명이 될 듯하다.

사실 김태곤의 데뷔앨범은 이 두곡의 인기 때문에 많은 부분 가려지긴 했지만, 창작욕 왕성했던 실험으로 충만한 음반이다. 단순히 록 음악의 밴드 사운드와 국악의 퓨전을 시도한 것이 아니고, 여기에 군악대에서 익혔을 법한 실내악과 취주악 파트를 기존에 자신이 작업했던 곡에 접목하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기존의 작업이란 물론 그가 군에 입대하기 전 활동했던 포크음악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 음반을 통해 전반적으로 곡의 줄기를 만들어가는 악기가 어쿠스틱 기타라는 점은 이러한 추론을 증명한다. 김태곤 음악의 뿌리가 포크임을 암시하는 부분이다. 실제로 김태곤은 대학시절인 1972년, 옴니버스 앨범 [우리들: 아름다운 사람아 아름다운 노래를](유니버어살, UL 726)에 ‘하루, 이틀, 사흘’이란 곡을 수록한 적이 있다. 특유의 사투리 억양만 제외한다면 ‘송학사’나 ‘망부석’을 히트시킨 인물과 동일 인물임을 알아채지 못할 정도의 미성으로, 어쿠스틱 기타와 어울린 플루트와 첼로 반주로 입맛 까다로운 아트록 팬들도 스피커 앞에서 걸음을 멈추게 만들 흡인력을 가지고 있는 트랙. 물론 전반적인 흐름은 포크의 영역에 있는 곡이었다.

전반적인 포크의 흐름을 따르고 있는 ‘송학사’는 말할 나위도 없고, 쇠를 비롯한 사물과 대금, 거문고 금 등 국악기가 등장하는 ‘망부석’에서도 곡의 진행은 어쿠스틱 기타를 타고 흐른다. 이 두곡과 함께 데뷔앨범에서 시도한 국악과 양악이 조화된 트리플 콤보라고 할 수 있는 ‘아리아리 아라리오’는 국악기가 배재되고 16비트의 리듬과 퍼즈 이펙트의 기타가 강조된 전형적인 밴드 성향의 편곡을 가진 곡이다. 국악을 표현해 내는 방법이 단순히 국악기의 삽입에 의해서가 아니고, 곡 자체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아리아리 아라리오’의 밴드 기본편성에 부가적으로 사용된 관악과 현악파트는 연주곡으로 이루어진 뒷면 트랙들을 주도한다. 

‘슬픈 미소’는 원래 트리퍼스(Trippers)의 후신이라고 할 수 있는 김선민과 거인들(Giant)이 발표한 [동그란 얼굴 / 너를](유니버어살, DJ가-1, 1976)에 수록되었던 곡이다. 이 음반의 크레디트를 살펴보면 원래 김태곤의 제목을 붙이지 않은 작품들 가운데 ‘18’과 ‘24’를 합쳐 만든 곡으로, ‘18+24’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음반 발매 이전에 이미 많은 습작들을 썼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김태곤의 음반에 수록된 버전은 김선민과 거인들의 음반에 수록된 버전과 유사하지만, 오르간이나 어쿠스틱 기타 연주가 조금 더 사이키델릭한 느낌으로 다가온다는 차이가 있다. 앞서 언급했던 [우리들: 아름다운 사람아 아름다운 노래를]에 담긴 바 있는  ‘하루, 이틀, 사흘’ 역시 연주곡으로 다시 담겼다. 이미 발표되었던 버전과 달리 코러스의 화성과 차분한 실내악 풍 연주를 통해 제 2의 창작물이 되었다.

물론, 앞서 김태곤의 창작욕 왕성했던 실험으로 충만한 음반이라고 표현했지만 그 실험들이 완성된 음반이라고 보긴 어렵다. 수록곡들의 편차가 심하고 통일성이 결여되었다는 점이 바로 그 이유다. 하지만 ‘망부석’과 ‘송학사’의 히트는 이러한 김태곤의 창작 에너지를 두 번째 앨범과 세 번째 음반에 계속해서 수록할 수 있는 여유를 제공했다. 1978년 발매된 두 번째 음반 [골든 힛트앨범 Vol. 2: 태백산 갈래갈래 님의 숨결이…](유니버어살, SUL-811)에는 데뷔앨범에 미처 수록하지 못했던 ‘망부석’의 10분짜리 버전이 도사리고 있다. 창과 가야금으로 시작하는 새로운 버전은, 중반부 오고 연주를 지나 록의 기본 편성과 가야금의 협연으로 이어진다. 그의 히트곡들에 묻혀 제대로 소개가 되지 않은 것이 아쉬운 곡으로, 이후 음반인 [바람 속에 님의 숨결이…](한국음반, H.C.-200098, 1981)에 수록된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 풍 ‘합장’과 더불어 1970년대 후반 한껏 물올랐던 그의 창작력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이번에 재발매되는 CD에는 보너스 트랙으로 수록되었다.

김태곤의 음반 크레디트를 살펴보면 연주에 ‘김태곤과 외돌괴’라고 되어있다. 원래 외돌괴는 제주도의 서귀포에 있는 기둥바위인데 외롭다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다. 김태곤과 외돌괴는 여기에서 착안된 밴드명으로, 결국 김태곤 혼자의 원맨밴드라는 이야기다. 이후 김태곤은 한국의 전통악기인 소(簫)를 마치 서양의 팬플루트처럼 연결하고 자신의 이름을 따서 ‘태소’란 악기를 만들어 3집 [바람 속에 님의 숨결이…]의 ‘아야 우지마라’에서 연주하기도 했고, 국내 최초로 수화로 노래를 하는 등 자신의 음악을 통해 여러 실험을 펼쳐 보였다. 국악풍으로 편곡된 ‘아야 우지마라’는 김태곤과 함께 [우리들: 아름다운 사람아 아름다운 노래를]로 데뷔한 박두호의 원곡이나 황경숙이 리메이크했던 업비트의 버전과 비교해도 흥미롭다. 

김태곤은 실험적인 음악성을 입증했던 초기 석장의 음반 이후에도 국내 최초로 인도 악기 시타나 타블라를 대중음악에 접목하는 등 의욕적인 몇 장의 음반을 더 발표했다. 하지만 음악적 성과나 상업적인 결과 모두 전작들에 미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될 수 있겠지만, 그의 정식 데뷔앨범에 수록되어 스매시히트를 기록하며 이후 활동에 어느 정도의 자유를 안겨주었던 ‘망부석’, ‘송학사’가 이번엔 이후 활동의 발목을 잡은 것이 가장 클 것이다. 양날의 검이었다고나 할까. 인기 가수로 완전하게 이미지가 박혀버린 그의 모습에 새로운 음악적 시도들은 ‘배신’으로 밖에는 비춰지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국내의 록 음악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님의 숨결이…’ 시리즈라고 할 수 있는 초기 석장의 음반은 반드시 들어보길 권한다. 김태곤은 그저 삿갓 쓰고 도포 입은 대중가수가 아니고 초기 국악과 록을 실험적으로 결합하며 독창적인 음악세계를 구축했던 진취적인 뮤지션이었음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글 송명하 (파라노이드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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