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울림 4,5,6집

산울림 4, 5, 6집이 가지는 독립성.

언젠가 산울림 1집부터 3집까지의 연관성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지만, 이번에 소개하는 4집에서 6집에 이르는 시기는 각 음반마다 확실한 독립성을 가진다. 4집은 일종의 옴니버스 음반이며, 5집은 변화를 모색한 음반, 그리고 6집은 산울림의 오리지널 멤버 가운데 두 명이 빠진 음반이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다시 7집에서 9집까지의 음반은 다시 일정한 연관성을 부여할 수 있다. 한 마디로 산울림에게 있어서는 가장 ‘격동의 시기’로 표현해도 좋을 시기가 바로 4집에서 6집에 이르는 시기다. 대체적으로 이 음반들은 산울림의 열혈 팬들이 아니라면 그냥 지나치는 음반들이 되기도 하지만, 분명 호락호락한 음반들은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가벼이 여겼던 이들이 있다면 이번 기회에 다시 들으며 새로운 체험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을 듯하다.





산울림 제4집: 드라마, 영화, 연극 삽입곡을 모은 옴니버스 소품집.

데뷔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산울림은 그 파격적인 음악성에 비해서 일반 대중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때문에 당시 연극이나 TV, 라디오의 주제가나 삽입곡들을 부를 기회가 많았는데, 산울림의 네 번째 음반은 당시 이들이 맡았던 연극, 영화, 드라마 등의 주제 음악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만든 편집앨범이다. 이 앨범 발매 이전에 산울림은 1979년 2월 28일부터 3월 1일까지 이틀동안 문화체육관에서 리사이틀을 가졌다. 1일 3회의 공연이 펼쳐졌으니 총 6회의 공연이 열렸다. 

“(중략) 오후 1시에 막이 오른 이 공연을 보기 위한 입장 행렬이 체육관에서 법원 앞에 이르기까지 5백 미터에 이르는 장사진. 경찰 병력이 동원되어 질서를 잡았지만 워낙 폭발적인 인파 때문이 일대에 교통 혼란이 빚어지지도 했다. (후략)” (주간경향 1979년 3월 11일, 529호)

이 기사는 당시 산울림의 인기를 짐작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이 리사이틀은 4월에 입대하는 산울림의 김창훈과 김창익이 마지막으로 참여한 일종의 고별 공연이었다. 김창완은 인터뷰를 통해 이 공연에 대해서 “공연이 끝난 후 팬들이 던진 꽃다발로 무대가 꽃밭이 될 정도로 황홀한 공연이었지만, 정작 개런티를 지급 받지 못했던 공연이었다. 당시는 이런 일들이 참 많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 내용에 있어서는 잊지 못할 공연이었지만, 당시 ‘업계의 관행’들로 피해를 본 공연이라는 얘기다. 그런 관행들은 공연 뿐 아니라 음반 역시 마찬가지였다. [산울림 제4집]도 바로 그러한 관행 아래서 발매된 음반이다. 김창완은 이 음반에 대해 “개인적으로 탐탁하지 않게 생각하는 음반이다. 당시 음반만 내면 잘 팔리니까, 무리하게 강행해서 만든 음반이었다.”라고 얘기했다. 물론 공연과 마찬가지로 그 내용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다.

3집 음반에서 ‘내마음 (내마음은 황무지)’로 본격 록 보컬리스트로서의 자질을 확인한 김창훈은 ‘특급열차 (속에서)’로 당시로는 충격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오프닝을 담당했다. 당시 인기 TV 프로그램이었던 ‘영 11’에 출연해서 성대모사를 했던 한 개그맨은 세상에서 가장 느린 노래라며 [산울림 제1집]에 수록된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거야’를, 또 세상에서 가장 빠른 노래로 바로 이 곡을 불렀다. 개그의 소재로 사용될 만큼 놀라운 곡이었지만, 또 그만큼 인기도 있었다는 이야기에 대한 방증이 될 것이다. 추송웅의 연극에 사용되었던 곡. 나른한 느낌의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소’와 도발적인 ‘풋내기들의 합창’은 각각 TBC와 KBS의 라디오 드라마의 주제가였다. 그런가 하면 임권택 감독, 박은수, 정희, 이덕화, 안소영이 주연을 맡았던 영화 <내일 또 내일>(1979)에서는 ‘유리인형’, ‘어디로 갈까’, ‘내일 또 내일’, ‘바람 부는 강 언덕’ 이렇게 네 곡이 선곡됐다. 산울림의 다른 음반들과 달리 1분대의 짧은 러닝타임을 가진 곡이 많아 총 13곡이 수록되었지만, 어찌 본다면 <내일 또 내일>의 O.S.T.에 몇몇 곡이 추가된 음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비중이 높다. ‘거인의 숲’은 MBC-TV의 어린이 연속극 주제가인 만큼, 비슷한 시기 발매된 산울림 동요집과 그 성격을 공유하는 곡. 어쿠스틱 소품 ‘그리움’은 김창완의 포크적 이면을 대변한다. 

옴니버스 성격을 띠는 음반인 까닭에 음반의 전체적인 통일성은 결여되어 있다. 하지만, 이 음반 역시도 앞선 석장의 음반과 동일하게 산울림의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고, ‘내일 또 내일’을 히트 시켰으며, 여전한 실험성과 풋풋함이 살아있는 음악성은 개별적으로 인정받아 마땅하다. 두 명의 멤버가 군에 입대하기 전에 만든 실질적인 마지막 음반이다.





산울림 제5집: ‘사운드’와 ‘그루브’로 도모한 음악적 변화. 

‘아니 벌써’,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와 같은 곡들로 1970년대 말을 장식했던 산울림의 다섯 번째 음반으로, 김창완을 제외한 두 명의 멤버가 군에 입대하기 전 기획되었다가 휴가를 맞춰 녹음한 음반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녹음 후 발매는 그 시기를 조정해서 이뤄졌다. 앞선 네 번째 음반이 그동안 발표한 곡들이 모인 일종의 옴니버스 음반이었다는 점, 그리고 그 전까지의 음반인 1집에서 3집까지의 음반이 비슷한 시기에 녹음되었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이 음반은 실질적으로 3집에 이어지는 음반이며 1~3집과는 조금 달라진 모습을 보이는 음반일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그리고 음반을 들어보면 그 추측이 맞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가장 커다란 차이점이라면 녹음에 있어서 사운드의 변화를 꾀했으며, 리듬에 있어서는 그루브를 중시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첫 곡 ‘한낮의 모래시계’는 물론 이어지는 ‘오솔길’ 역시 1집에서 3집까지 음반 수록곡들에서 들을 수 있었던 기타 사운드의 특징 가운데 하나였던 노골적인 퍼즈 이펙트의 도입은 깔끔한 클린톤 사운드와의 조화를 이루며 보다 풍성한 느낌으로 다가오며, 특유의 ‘오르간’ 사운드가 아니라 키보드의 스트링 효과가 가미되어 전체적인 무게는 가벼워졌다. 몽환적인 반음 하강 진행의 멜로디라인을 가진 ‘포도밭으로 가요’는 무표정하게 침잠하는 보컬파트와 달리 드럼 연주는 탐탐을 고루 사용하며 역동적으로 청자의 감정을 고조시킨다. 그런가 하면 첫 번째 음반에 수록된 ‘청자(아리랑)’에서 시작해서 두 번째 음반의 ‘떠나는 우리 님’까지 토속적인 정서를 담은 시도를 해 왔던 산울림의 실험은 다섯 번째 음반에 수록된 ‘무녀도’에서 만개 한다. 드럼의 리듬은 서양의 그것이라기보다는 사물놀이에서 듣는 타악의 효과에 더욱 근접하고 있으며, 멜로디의 진행 역시도 한국의 전통 가락과 서구의 본격적인 록 문법 사이를 절묘하게 저울질하며 마치 무당의 굿 한판을 보는듯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3집 ‘내마음 (내마음은 황무지)’와 4집 ‘특급열차 (속에서)’에 이어지는 김창훈의 고음역대 목소리는 불안한 듯 날카롭게 폐부를 파고든다. 두말할 나위 없이 이 음반의 백미로 꼽기에 손색이 없는 트랙이다. 이와는 반대편에서 반복적이고 그루브감 넘친 리듬으로 전통적인 정서를 표현하는 ‘이렇게 갑자기’ 역시 5집 음반을 통해 선보이는 이색 트랙. 산울림의 다른 음반들에 비해서 특별한 히트곡을 발표하지 못했던 5집 음반에서 가장 대중적인 사랑을 받았던 곡은 ‘왜! 가’다. 김창완이 17살에 작곡했다고 알려진 이 곡은 블루스 스타일이지만 끈끈한 감성이 배제된 차분한 진행이 인상적이다. 전작들과 달리 [산울림 제5집]이 ‘사운드’와 ‘그루브’에 많은 부분을 할애했음은 ‘백자’에서도 어김없이 드러난다. 중독성 강하게 반복되는 베이스 멜로디, 기타의 펑키한 리듬 커팅은 키보드가 그리는 ‘아리랑’의 주제와 교묘하게 어우러진다. ‘가창’위주의 당시 음악 판에서 5분 가까이 연주가 진행되다가 잠시 등장하는 보컬은 산울림의 ‘밴드’로서 가진 정체성을 대변한다.

다른 음반들에 비해 ‘대표곡’이 없다는 이유, 또 밴드로서는 멤버 구성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 발매되었다는 이유 때문에 산울림의 음악 가운데서는 그렇게 많이 소개가 되지 않았던 음반이지만, 여러 새로운 음악적 시도들이 결실을 거뒀던 음반임은 분명하다. 이러한 결실들이 이후 발매될 음반들에 직, 간접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됨 역시도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오히려 뒤늦게 그 진가를 발휘하는 숨겨진 명반이다.





산울림 제6집: 고장난 시계와 함께 한 어쿠스틱 성향의 음반.

동생들이 군에 입대한 후, 김창완은 소속 음반사와의 관계로 노고지리, 김신덕, 박일준, 손미나 등의 음반에 참여했다. 이 가운데 몇몇은 마치 산울림의 1집에서 3집 사이 수록곡을 듣는 듯 참여한 김창완의 음악 색깔이 그대로 묻어있다. 1979년 데뷔앨범을 발표했던 노고지리의 두 번째 음반 [노고지리 제2집](서라벌, SR-0176, 1979)의 경우, 원래 의도는 김창완이 작곡에만 참여하는 것이었지만 첫 녹음의 결과가 그의 의도와 전혀 다르게 만들어져 결국 어레인지와 연주에 직접 손을 댄 음반이다. 때문에 노고지리의 음반 가운데 가장 이색적인 음반이 되었고, 산울림 팬들은 노고지리의 이 음반이 마치 산울림의 그것인 냥 음반샵에서 집어 들었다. 일종의 ‘대리만족’의 일환이랄까. 어쨌든 음악은 물론 삼인조 편성의 멤버 구성까지 ‘제2의 산울림’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한 노고지리의 인기 가운데 반 이상은 산울림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노고지리의 음반과 비슷한 시기 발매된 음반 중 김창완이 참여한 이색작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손미나의 데뷔앨범 [손미나의 새 노래들](서라벌, SR-0173, 1979)이다. 노고지리의 음반에 비해 고유번호가 세 개 빠른 음반으로, 당시 서라벌 레코드 소속의 김창완과 정태춘의 곡이 각각 A면과 B면의 타이틀곡으로 잡았던 앨범. 김창완은 이 앨범에서 세 곡에 참여했는데, 별도의 크레디트가 명기되어있지는 않지만, 그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김창완의 존재를 이내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그만의 독특한 개성을 확인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산울림의 6집에는 노고지리의 최고 히트곡인 ‘찻잔’과 손미나의 음반에 먼저 수록됐던 ‘한밤에’가 담겼다. ‘찻잔’은 노고지리의 버전과 달리 단출한 어쿠스틱 기타 반주와 김창완의 목소리만으로 이루어진 소품의 성격이며, 음반에서의 위치도 B면의 거의 끝부분이다. 노고지리 음반의 타이틀곡으로 이미 커다란 히트를 거둔 곡이었던 만큼 그 인기에 편승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 의도로 보이지만, 악기편성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곡을 관통하는 정서에는 커다란 변화가 없다. 이는 시작부터 공격적인 퍼즈 기타와 나른한 여성 보컬, 플루트의 삽입이 어우러진 독특한 사이키델릭 트랙이었던 손미나 버전과 달리 여백이 많은 출발에서 점진적으로 발전해다가는 구성으로 변모한 ‘한밤에’ 역시 마찬가지다. 삼인조 밴드의 기본편성(기타, 베이스, 드럼)에 키보드 세션으로 이뤄졌던 초기 산울림 스타일과 달리 6집 음반을 들어보면 플루트(‘못잊어’, ‘나 그대의 넓은 대지가 되고져’), 바이올린(‘백합’), 하모니카(‘창문넘어 어렴풋이 옛생각이 나겠지요’)와 같이 다양한 악기들이 사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가하면 앞서 얘기한 초기 산울림 음악의 악기 편성과 동일하게 편곡된 ‘이 노래가 끝나기 전에’와 같은 경우도 산울림과는 확실하게 다른 스타일의 연주로 이루어졌다. 지판을 종횡무진 가로지르던 김창훈의 베이스 연주도, 일정 패턴 속에서 강약을 조절하던 김창익의 드럼 연주도 아니다. 이미 두 동생과 먼저 녹음해서 옴니버스 음반에 삽입되었던 버전이 그대로 실린 ‘빨간 풍선’과 그 외의 트랙들을 비교해보면 그 차이는 확연하다. 음반에 참여한 뮤지션들은 두 동생의 입대 후 김창완이 잠시 함께 했던 고장난 우주선이란 밴드다. 구성원들은 이후 남궁옥분의 ‘사랑 사랑 누가 말했나’의 작곡자로 잘 알려졌으며, 엄인호와 함께 장끼들을 결성해 활동했던 박동율, 어쿠스틱 기타에 대해서는 국내 손꼽히는 실력자였던 유지연, 그리고 제1회 대학가요제에서 ‘나 어떡해’로 대상을 차지할 당시 샌드 페블스의 드러머 김영국이다. ‘프로’ 뮤지션이라고 부르기는 어렵겠지만 어쨌거나 산울림 초창기의 ‘아마추어리즘’보다는 세련되고 안정된 연주를 들려준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물론, 연주가 다르다고 이 음반에 붙은 [산울림 제6집]이라는 타이틀에 대해 토를 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만큼 김창완의 독창적인 개성은 장르나 편곡을 모두 뛰어넘을 만큼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창문넘어 어렴풋이 옛생각이 나겠지요’의 스매시 히트로 동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산울림이 건재함을 만천하에 알렸다. 여담이지만, 이 곡은 홍수철의 ‘등대불이 왜 켜있는지 그대는 아시나요’, 장덕의 ‘어른이 된 후의 사랑은 너무 어려워’같은 곡들과 과연 어떤 곡의 제목이 가장 긴가를 비교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는 이 곡의 히트가 소수의 마니아에 한정되지 않았음을 단적으로 알려주는 예라고 하겠다. 전반적으로 어쿠스틱한 성격을 띠면서도 밴드 고유의 색깔은 잃지 않았던 이 앨범은 군에 있던 두 동생이 복귀하기 전 산울림이 발표한 마지막 음반이다. 이후 산울림은 김창훈, 김창익 형제의 가세, 녹음 기술과 악기의 발달이 맞물리며 7집 음반을 통해 또 한 번의 변신을 시도하게 된다. (20140711)


글 송명하 (파라노이드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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