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밴드들에 대한 오마쥬와 현재까지 이어온 밴드 역사의 정리
DEF LEPPARD [Songs From The Sparkle Lounge]
“데프 레파드는 메틀밴드가 아니라 캣치한 곡을 쓰는 락밴드다.”라는 필 콜린(Phil Collen)의 이야기를 굳이 들춰내지 않더라도, 1977년 영국 셰필드에서 결성된 데프 레파드는 색슨(Saxon), 아이언 메이든(Iron Maiden) 등 비슷한 시기에 출발선에 서 있던 강경한 노선의 뉴 웨이브 오브 브리티시 헤비메틀(NWOBHM) 밴드들에 비해 보편적인 융통성을 가진 밴드였다. 이들은 외형에서부터 다분히 과격함을 느낄 수 있는 가죽 옷과 쇠사슬을 과감히 벗어버리는 대신 유니온잭이 그려진 깔끔한 티셔츠와 헐렁한 트렁크 차림으로 등장해 AC/DC 풍의 단순하고 과격한 리프를 두터운 사운드의 레이어로 희석시켰고, 특유의 팝퓰러한 멜로디와 보컬의 다채로운 화음을 접목시킨 유연한 사운드로 팝메틀이라는 용어가 탄생하기 훨씬 이전부터 헤비메틀이라는 틀에 박히고 한정된 영역을 보다 넓힐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작업들이 대중들에게 인정받는데는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자신들의 팬 베이스를 수평적으로 확장시켰던 세 번째 앨범 [Pyromania] (1983)를 빌보드 앨범차트 6위에 올려놓으며 압지에 잉크가 스며들 듯 부지불식간에 팝과 락, 메틀의 경계를 허물어뜨린 이들은, 드러머 릭 앨런(Rick Allen)의 왼쪽 팔 절단이라는 치명적인 사건 이후 발표된 세 번째 앨범 [Hysteria] (1987)는 넘버원 싱글 ‘Rocket’의 히트와 함께 결국 앨범차트 정상의 자리로 등극했다. 스티브 클락(Steve Clark)의 죽음을 딛고 발매된 후속작 [Adrenalize] (1992) 역시 앨범차트 넘버원을 기록하며 말 그대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해 나갔다. 물론 음악적 노선에 다소 변화를 가져왔던 [Slang] (1996) 이후 그 열기가 다소 사그라진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재기되기도 했지만, 이들의 활동기간 동안 음악의 트렌드와 환경이 숨가쁘게 변화해 왔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이렇게 30년 이상 데프 레파드에게 쏟아지고 있는 사랑은 실로 대단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의 이렇듯 꾸준한 활동은 뛰어난 기량을 가진 한 두 명의 ‘스타 플레이어’가 가진 화려한 개인기가 아니라, 멤버들의 이어지는 불행에도 밴드를 굳건히 지킬 수 있었던 우정을 바탕으로 한 철저한 팀웍에 기인한 것이다. 그리고 [X] (2002) 이후 6년 만에 발표하는 신곡을 담은 스튜디오 앨범 [Songs From The Sparkle Lounge] 역시 이러한 밴드의 노선에 큰 변화는 없다.
[Songs From The Sparkle Lounge]는 크게 볼 때 리메이크 음반인 전작 [Yeah!] (2006)에서 보여준 선배 밴드들에 대한 오마쥬와 지금까지 만들어왔던 데프 레파드 사운드의 화학적 결합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음반을 발표하며 조 엘리엇(Joe Elliot)이 했던 “이 앨범은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다.”라는 이야기에 대한 더욱 완고한 표현이라고나 할까. 분명 데프 레파드의 곡이긴 하지만 그 가운데는 비틀즈(The Beatles)에서 퀸(Queen), 또 AC/DC와 같이 우리가 고전이라고 이야기하는 여러 뮤지션들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으며, 이든 다분히 의도적 시도의 결과라는 이야기다. 결국 드러머 릭 앨런을 제외한 네 명의 멤버가 각각 자신의 개성을 마음껏 발휘한 곡들을 수록했지만, 이 모든 사운드는 바로 데프 레파드라는 하나의 귀결점으로 통하고 있으며 이는 앞서 언급했던 팀웍에 의한 밴드 사운드의 구축이라는 밴드의 기본적 노선의 연장인 것이다.
신보에 수록된 곡들의 구상이 구체화되기 시작한 것은 2006년 저니(Journey)와 함께 했던 투어가 한창일 무렵부터였다. 데프 레파드의 공연장에는 언제나 백 스테이지에 리허설 룸이 준비되는데, 그 곳에는 간단한 악기들과 함께 이들의 기타 테크니션 데이브 울프(Dave Wolf)가 설치한 크리스마스 장식과도 같은 작은 전구들이 깜빡이는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번 음반의 타이틀 ‘Songs From The Sparkle Lounge’는 바로 그 곳에서 착안된 제목으로, 바로 백 스테이지에서 나온 음악이라는 이야기다. 예전 데프 레파드의 음반들이 투어를 모두 마친 뒤 어느 정도의 휴식기간을 가진 뒤 작업에 들어갔던 것을 생각한다면,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조 엘리엇은 지난 음반 [Yeah!]에 대해서 이미 30년 이상 머릿속에 들어있던 음악이었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고도 작업이 가능했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이러한 방식은 틈틈이 백스테이지에서 작업했던 악상들을 음반에 옮긴 이번 음반을 제작하는 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었다. 때문에 투어기간 동안의 에너지를 순발력을 발휘해 음반에 그대로 담을 수 있었다고 필 콜린은 이야기한다.
이러한 점을 증명이라도 하듯 [Songs From The Sparkle Lounge]는 사운드적인 측면이 아니라, 그 분위기 상으로 이전에 듣기 어려웠던 압도적인 무게를 느낄 수 있는 ‘Go’로 포문을 연다. ‘Rocket’처럼 원시적 퍼커션 루프가 인상적인 곡으로, 오랜만에 등장하는 비비안 캠벨(Vivian Campbell)과 필 콜린의 주고받는 기타 애들립이 반갑다. 첫 번째 싱글 ‘Nine Lives’는 컨트리 싱어 팀 맥그로(Tim McGraw)와 함께 한 곡이다. 역시 공연 중 백스테이지에서 만난 팀 맥그로와 필 콜린이 서로 이야기하던 도중 아이디어를 맞춰가며 순식간에 탄생한 곡으로, 내슈빌에 있는 팀의 스튜디오에서 보컬파트 부분이 녹음되었다. 데프 레파드식 컨트리 넘버라고나 할까.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컨트리의 냄새보다는 오히려 언뜻 언뜻 3집의 히트싱글 ‘Photograph’를 떠오르게 만드는 곡으로, 최근 본 조비(Bon Jovy)가 발표한 본격 컨트리 음반 [Lost Highway]과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롭다. 릭 새비지(Rick Savage)가 작곡한 ‘C'mon C'mon’과 ‘Love’는 조 엘리엇이 공식 사이트를 통해 밝힌 것처럼 70년대 스타일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는 트랙들이다. 특히 ‘Love’는 이들의 유려한 멜로디라인에 퀸의 웅장한 오페라틱 코러스가 가세한 데프 레파드식 ‘Bohemian Rhapsody’라고 할 수 있는, 음반의 베스트 트랙 가운데 하나. 비비안 캠벨이 작곡한 러닝 베이스에 이어지는 퓨전 스타일의 ‘Cruise Control’, ‘Strawberry Fields Forever’나 ‘Lucy In The Sky With Diamond’에서 들을 수 있었던 멜로트론의 삽입으로 간접적인 비틀즈의 영향이 느껴지는 ‘Only The Good Die Young’, ‘Gotta Let It Go’는 [Slang]의 분위기를 이어가는 곡들이다. 이 외에도 필 콜린이 작곡한 ‘Tomorrow’과 ‘Hallucinate’와 같이 우리 귀에 익숙한 전형적인 데프 레파드의 사운드에서 조 엘리엇의 AC/DC 풍 리프를 가진 업템포 락커빌리 넘버 ‘Bad Actress’, ‘Come Undone’에 이르기까지 총 11곡의 오색빛깔 트랙들로 음반은 모두 마무리된다.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이 데프 레파드의 이번 음반은 무척 다양한 음악적 스타일이 혼재되어있다. 물론 [Songs From The Sparkle Lounge]이 지금까지 몸담았던 소속 음반사에서 마지막으로 발매되는 음반이라는 이유도 큰 작용을 했겠지만, 이러한 다양함이 전혀 이질적이지 않고 오히려 선배 밴드들에 대한 오마쥬와 현재까지 이어온 밴드 역사의 정리라는 결론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 두 가지 결론 역시 서로 배타적이지 않고 하나의 사운드로 통일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70년대 락의 향수를 그리워하는 사람에서부터 현재의 락매니아를 모두 한데 묶을 수 있는 데프 레파드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인 것이다. (2008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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