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0월호.. 이제 정말 두번만 더 연재하면 올해가 가는구나;;;
송명하의 테마음악 파일 #10
가을, 재즈가 그립다.
글 송명하 (트위터 @MyounghaSong)
그다지 계절의 흐름에 민감하게 살고 있진 않지만, 또 음악과 계절이 그렇게 큰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어쨌거나 가을은 음악 듣기에 적당한 계절인 것만은 분명하다. 평소에 그냥 흘려들었을 음악일지언정 알싸한 공기와 함께 살갗 아래로 스며드는 음악은 귀나 머리가 아니라 마음을 자극한다. 어딘가 혼자서 여행이라도 떠나고 싶은 계절 가을. 한 낮에 과일나무에 탐스럽게 열린 과일을 수확하는 모습을 보면 한없이 풍요로운 계절이지만, 아침 저녁 쌀쌀한 바람에 나도 몰래 옷깃을 여미게 되는 이중적인 얼굴을 가지고 있다. 아침에 세수를 할 때 본능적으로 온수쪽으로 수도꼭지를 돌리는 계절엔 재즈가 그립다. 조심스런 피아노 건반의 터치처럼, 아니면 스네어를 쓰다듬는 브러시의 움직임처럼 누군가에게 위안 받고 싶은 욕구 때문일 것이다. 이번 호에는 최근에 발매된 음반 가운데 재즈 음반 몇 장을 골라봤다.
European Jazz Trio / Best Repertoire (포니캐년 코리아)
피아노의 마크 반 룬(Marc Van Roon), 드럼의 로이 다커스(Roy Dackus) 그리고 베이스의 프란스 반 더 호반(Frans Van Der Hoeven)으로 이루어진 유러피안 재즈 트리오가 최근 발표한 베스트 음반이다. 국내에는 지난 9월 21일에 있었던 공연을 위해 발매된 일종의 투어 에디션 음반이지만, 원래는 일본에서 가졌던 공연 가운데 호평을 받았던 곡을 추린 음반이다. 그리고 그 선곡의 배경에는 밴드가 음반에 써 놓은 것처럼 일본 대지진으로 힘든 나날에 직면해 있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치유라는 전재가 있다. 팝과 클래식, 그리고 영화음악이라는 이질적인 레퍼토리들을 한데 아우르는 이들의 포용력은 바로 이러한 전재에서 출발한 것이며, 곡들 사이의 간극은 그렇게 멀지 않다.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 (Overture No.3 BWV.1068)’가 되었건 아바의 ‘Dancing Queen’이 되었건, 아니면 사카모토 큐가 불렀던 1960년대 일본 가요 ‘見上げてごらん夜の星を (올려다봐 이 밤의 별을)’이 되었건 이들의 연주는 연약한 피부의 상처를 어루만지듯 조심스럽게 속삭인다는 이야기다. 어느 곡 하나 치고 올라오는 법은 없어 그저 흐르는 듯 듣기 적당한 음반. 하지만 갑자기 들리는 친숙한 멜로디에 깜짝 놀라 트랙 번호와 제목을 맞춰보게 만드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Lisa / Let Me Love You (칠리 뮤직)
영화배우 출신, 아름다운 여성 재즈싱어 리사 러브랜드(Lisa Lovbrand)의 두 번째 앨범으로, 본격적인 스탠더드 재즈 음반을 표방했던 전작에 비해 팝적인 요소가 강하다. 최근 음악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말 그대로 상한가를 달리고 있는 케이티 페리(Katy Perry)의 ‘Hot'N'Cold’는 상큼한 보사노바 스타일로 편곡되어 음반의 성격을 규정짓고 있다. 일본음악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쿠와타 밴드를 거쳐 일본의 국민밴드 서던 올 스타즈(Southern All Stars)에서 활동하고 있는 쿠와타 케이스케 원곡의 ‘No Maybes (내일은 맑을까)’와 ‘Tears of Love (현대동경기담)’도 귀에 익숙할 것이다. 도어즈(The Doors)의 ‘Light My Fire’를 전방 배치시키며 줬던 의외의 선곡은 이번 음반에서 밥 딜런(Bob Dylan)의 ‘Don't Think Twice’로 재현된다. 특히 차가운 빗방울이 들듯 명징한 피아노 전주에 이어지는 가성과 진성을 오가는 목소리가 매력적인 이 곡은 올 가을 계속해서 리피트하고 있는 개인적인 베스트 트랙 중 하나다. 공동 프로듀서로 참여한 팝의 연금술사 데이빗 포스터(David Foster)의 진가를 다시금 확인시켜주는 웰 메이드 앨범 <Let Me Love You>. 그 타이틀의 의미가 바로 음악을 듣고 있는 우리가 그녀에게 건네고 싶은 이야기다.
Akane Nakajima / Four Leaf Jazz Clover (칠리 뮤직)
나카지마 아카네가 2008년 발표한 두 번째 음반이 뒤늦게 국내에 공개됐다. 나카지마 아카네는 ‘Girl Meets Jazz’라는 캠페인을 앞세워 모리카와 나츠키, 니로와 같은 여성 재즈보컬리스트들의 음반을 발표한 기자(Giza)레이블의 또 다른 얼굴이다. 이미 고전으로 자리메김되어 귀에 익숙한 ‘Lullaby Of Birdland’는 집시풍의 화려한 룸바 리듬으로, 또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다소곳한 오드리 헵번(Audrey Hepburn)의 음성을 통해 첫 선을 보였던 ‘Moon River’는 당김음의 매력을 한껏 살리며 스윙감 넘치게 거듭났다. 데뷔 전에 재즈와 그다지 큰 관계를 갖지 않았던 그녀기에 전작에 비해 음악에 대한 자연스러운 접근이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며, 연주와 어레인지에 참여한 일본의 대표 퓨전 밴드 디멘션(Dimension)의 멤버들은 특유의 정갈한 스타일로 음반의 전체적인 따스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행운을 준다는 네잎 클로버의 이야기처럼 전체적으로 기분 좋은 연두색 에너지로 충만하다. 처음 접하는 가수라서 선뜻 손 내밀기 힘들다면 기자 레이블을 대표하는 가수들의 음악으로 채워진 컴필레이션 <Flavor Jazz>시리즈를 먼저 권한다. 살랑살랑 나긋해 재즈가 어렵다는 선입견을 지우기에 적당한 음반들이다.
이부영 / Reverie (루바토 / 포니 캐년)
이부영은 이미 1993년에 한 가요제를 통해 일찌감치 대중음악계에 입문했지만, 재즈를 경험한 뒤 본격적인 재즈를 공부하기 위해 네덜란드로 건너갔던 유학파 재즈 보컬리스트로, 학사와 석사과정을 마친 후 네덜란드에서 앨범 <European Sketch>를 발표하며 데뷔했다. 이후 한국에 건너온 그녀의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된 것은 2010년 네덜란드의 피아니스트 로브 반 바벨(Rob Van Barvel)과 함께 <One Day>라는 앨범을 발표하면서 부터다. 얼마 전 발매된 <Reverie>는 통산 세 번째에 해당하는 음반으로, 피아노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로브 반 바벨이 담당하고 있으며 다른 연주파트 역시 네덜란드 출신의 뮤지션으로 이루어졌다. 전체적으로 피아노 트리오 편성의 악기파트는 걸걸한 중저음의 탁성의 매력을 가진 이부영의 매력을 부각시키는 동시에 중간 중간 기타와 트럼펫 같은 솔로 악기를 등장시키며 곡의 흐름에 긴장과 이완을 조율한다. 스캣으로 이끌어가는 빌 에반스(Bill Evans)의 명곡 ‘Waltz For Debby’나 ‘My Foolish Heart’에서 조우하는 에릭 사티(Eric Satie)나 드뷔시(Debussy)는 한 보컬리스트의 솔로음반으로서가 아니라 연주를 담당하는 세션파트와 보컬이 하나의 세트로 이루어진 공동체임을 증명해 보인다. 늦가을에 듣기엔 위험한 음반이다. 특히 혼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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