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수는 1986년에 데뷔음반을 발표한 포크싱어다. 동시대에 활동하던 이성원, 곽성삼과 함께 토속적인 음악을 포크 멜로디에 실어 표현해 흔히들 1980년대의 포크 3인방이라고 부르곤 하지만, 본인은 오히려 의아해 한다.
그가 음반 데뷔한 1986년. 대중음악인에 대한 제재가 어느 정도 누그러졌으리라 생각되는 시기지만, 수록곡 ‘철탑 위에 앉은 새’는 제목이 ‘불손’하다는 이유로 ‘작은 새의 꿈’이라는 ‘건전한’타이틀의 곡으로 바뀌었다. 자신의 얼굴 대신 일러스트로 음반 자켓을 꾸며보려 했지만, 음반사측의 요구(!)에 의해 준비한 자켓과 자신의 사진 위치가 앞뒤로 뒤바뀌게 되었다. 데뷔음반의 자켓이 픽셀이 깨진 것처럼 분명하지 않은 것은, 자켓 뒤에 들어갈 작은 사진이 필요할까봐 준비한 사진의 사이즈를 억지로 늘인 까닭이다. 음반사측의 요구는 여기에만 그치지 않았다. 포크 싱어인 만큼 많은 사람들이 따라 부를 만한 곡을 하나쯤 음반에 끼워 넣어야 한다는 것 역시 그들의 요구 때문이었다. 음반의 마지막에 위치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바로 그 때문에 수록되었다. 타의에 의해 바뀌어버린 음반의 첫 곡과, 역시 예전에 같은 손길에 의해 제목이 바뀌어 발표되었다가 가까스로 자기 제목을 찾은 마지막 곡의 위치는 참 아이러니하다.
이렇듯 김두수 자신에 있어서는 불만투성이의 첫 번째 앨범이었지만, 그 수록곡들은 그때까지의 귀에 익숙한 포크와 많은 차이가 있었다. 읊조리는 부르는 창법은 레너드 코헨을 비롯한 해외의 싱어 송 라이터들의 그것을 연상시키지만, 김두수의 음악은 지극히 토속적이고 중독성이 있다. 어머님의 주검 앞에 남긴 ‘꽃묘(시오리길 2)’가 그 대표적인 예다. 한번만 듣더라도 이후에는 지나치는 꽃만 봐도 머릿속에 멜로디 라인이 그려지며, 꽃을 보지 않고 멜로디를 들으면 꽃밭을 지나는 상여의 모습이 연상된다.
여러 가지 문제로 그 존재조차 알리기 힘들었던 첫 번째 음반이 발표되고 2년이 지난 뒤 두 번째 음반이 발표된다. 1985년 이후부터 자신의 위치를 확고하게 만들었던 ‘동아기획’표 음반. 스스로 데뷔음반이라고 인정하지 않았던 첫 번째 음반의 대표곡들이 다시 한 번 수록되었다. ‘작은 새의 꿈’은 비로소 ‘철탑 위에 앉은 새’라는 자신의 이름을 음반 자켓에 써넣을 수 있었다. 데뷔앨범의 문제작 ‘꽃묘(시오리길 2)’역시 다시 두 번째 음반에도 등장한다. 두 번째 음반은 첫 번째 음반과 비교할 때 사운드가 윤택해졌다는 느낌이 강하다. 아마 레이블이 가지는 특성이 음반에 깊숙이 관여했기 때문일 것이다.
두 번째 음반의 B면 트랙들은 마치 유럽의 프로그레시브락 그룹들이 동양의 사상에 젖어있을 때 발표한 음반을 듣는 듯한 느낌을 준다. 특히 3부작 형식으로 진행되는 ‘내 영혼은 그저 길에 핀 꽃이려니 / 황혼 / 신비주의자의 노래 (한 송이 꽃이 열릴 때면)’는 시의 낭송, 여성코러스의 등장, 파이프 오르간의 웅장함이 뒤섞인 독창적인 트랙이다. 청자들의 허를 찌르는 재즈풍의 변주나, 다소 지루함이 느껴지는 진행에도 불구하고 이 곡은 많은 프로그레시브락 매니아들의 가슴속에 하나의 ‘가능성’이라는 희망을 심어준 곡이었다. 하지만, 의욕적인 두 번째 음반을 발표한 이후, 이번에는 건강의 악화 때문에 제대로 된 활동 한번 펼쳐보지 못하고 다시 칩거하게 된다.
이번에 LP로 재발매되는 세 번째 음반은 그로부터 3년 뒤인 1991년에 발매되었다. 건강이 완쾌되지 않아 병마와 싸우는 도중 녹음된 음반. 그런 때문인지 그의 목소리는 더욱 나지막하지만 그만큼 비장하다. 애초에 김두수 음악의 진가를 먼저 알아챈 이들은 포크 매니아들이 아니고, 해외의 진보음악에 열광하던 프로그레시브락 매니아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김두수의 이름을 발견한 것은 바로 이 음반에 수록된 ‘보헤미안’이라는 곡 때문이다.
브로큰 코드의 어쿠스틱 기타에 이어지는 한숨과도 같은 목소리로 시작하는 이 곡은 베이스의 초퍼를 나름대로 응용한 기타 연주로 이어지며 하나씩 더해지는 악기와 함께 점진적으로 발전해 나간다. 그의 목소리는 낮은 톤으로 바로 앞사람에게 이야기하는 듯 하지만 오히려 질러대는 커다란 목소리보다도 몇 배의 중압감을 느낄 수 있다. 연주에 있어서도 기교들이 철저하게 배제되고 목소리를 위한 최소한의 서포트를 하고 있지만, 껍질뿐인 테크닉만이 난무하는 음악들과는 그 격이 다르다. 노래의 가사 역시도 이 음반의 발표와 함께 은둔자의 길로 접어든 자신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8분에 가까운 ‘보헤미안’과 함께 또 하나의 문제작은 10분이 넘는 대곡 ‘청보리밭의 비밀’이다. 앞서 두 번째 음반이 마치 유럽의 프로그레시브락 그룹들이 남긴 동양 지향적 사운드와 유사하다고 했지만, 이 곡은 본격적인 국내의 포크락 음악이 독자적으로 추구한 프로그레시락 음악이고 그 결과는 이전 유로피안 프로그레시브락의 결과물을 앞서고 있다고 이야기한다면 나만의 독단일까. 평범한 멜로디의 반복이지만, 뚜렷한 기승전결을 느낄 수 있으며 동시대의 포크싱어 이성원이 참여한 코러스 라인은 두 번째 음반에서 표현했던 것과는 또 다른 ‘열반’의 세계로 청자를 인도한다. 마치 ‘보헤미안’의 가사처럼 천국의 문을 열고 하늘로 가는 느낌이랄까.
음반의 공통적인 정서는 많은 것들이 있지만, ‘자유’를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다. 이러한 맥락으로 볼 때 “너울 너울”이라는 가사만 가지고 흐느끼는 ‘햇빛이 물에 비쳐 반짝일 때 -명상을 위한 목소리 Ad-lib-’의 몽환적인 목소리 역시도 빼 놓을 수 없는 트랙이다.
이미 두 장의 음반을 발표했지만, 활동한번 제대로 못했던 보헤미안 김두수에 있어서 과연 ‘자유’가 주는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이 음반의 발표와 함께 다시 은둔자의 생활로 접어든 김두수는 과연 자유로웠을까. 자유가 되었던지 아니면 방황이었던지, 그가 다시 음악의 길로 접어들게 된 것은 2003년이니 세 번째 음반이 발표되고 꼭 12년만이었다. 하지만, 네 번째 음반의 타이틀이 [자유혼(自由魂)]인 것은 앞서의 의문에 어느 정도의 해답이 되지 않을까.
처음 출반될 당시에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들어 볼 기회가 없었던 음반. 음반이 폐반 된 이후에 뒤늦게 그 가치를 알아차린 컬렉터들에 의해서 초반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뛰어올랐지만, 그 마저도 구하기가 어려워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만들었던 음반의 재발매다. 모쪼록 이 좋은 기회를 놓치고 뒤늦게 다시 이 음반을 찾아 해매는 우를 범하지 않길 바란다.
글 송명하 (월간 파라노이드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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