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메이크 음반 이후, 더욱 강렬함으로 무장한 신보
PAUL WELLER [As Is Now]
포크적인 요소를 적극 수용하면서 다양한 음악적인 변모를 보여줬던 리메이크 음반에 이어 폴 웰러의 정식 7번째 음반이 발매되었다. 소위 ‘아버지 세대’로 불리며 많은 추종세력을 거느리고 있는 그의 음악인만큼 시대를 초월해, 또 한번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요소가 가득한 음반이다. 폴 웰러는 1970년대 중반 활동을 시작한 뮤지션이지만, 1990년대 이후 불어닥친 영국 음악계의 모드-리바이벌의 붐을 타고 스미스(Smiths)나 오아시스(Oasis)와 같은 젊은 음악인들에 의해 그 이름이 다시 오르내리면서 끊임없는 재조명을 받고 있는 뮤지션이기도 하다. 그가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그룹 잼(The Jam)이다.
잼이 결성된 것은 1975년이다. 동창생들이었던 폴 웰러(Paul Weller, V/G), 브루스 폭스턴(Bruce Foxton, B/V), 릭 버클러(Rick Buckler, D)로 구성된 트리오 편성의 그룹이었던 잼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 레게를 적극적으로 펑크에 도입했던 클래쉬(Clash), 맨체스터 출신의 버즈콕스(Buzzcocks) 등과 나란히 브리티시 펑크에 큰 영향을 끼치며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반에 걸쳐 커다란 성공을 일궈냈던 그룹이다. 물론 커다란 성공이라 함은 영국에 한정된 의미이긴 하지만 말이다. 국내에서 섹스 피스톨즈나 클래쉬의 명성에 비해 이들의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이유는 아마도 잼의 활동이 영국에만 국한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잼과 여타 그룹들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이들은 킹크스(Kinks)나 후(The Who), 스몰 페이시스(Small Faces)로 대변되는 모드세대의 자양분을 충분히 섭취하여 자신들의 음악적 토대로 삼았으며, 펑크와 모드의 토대 위에서 사회 비판적인 목소리를 높였다는 점이다. 첫 싱글 ‘In The City’가 영국 차트에서 40위권을 차지한 이후 ‘All Around The World’, ‘News Of The World’, 킹크스의 리메이크곡 ‘David Watts’등을 계속해서 인기차트 상위권에 진입시켰으며, 1980년대 들어서며 ‘Town Called Malice’로 UK 차트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음악적인 면에 있어서도 초기 사운드에 비해서 많은 변화가 생겼다. 좀더 부드러운 노선을 선택함과 동시에 브라스 파트를 도입하여 미국풍의 소울과 R&B사운드를 접목시켰다. 이러한 음악적 변화는 1977년 전미 순회공연의 커다란 참패가 간접적인 도화선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1982년 ‘The Bitterest Pill (I Ever Had To Swallow)’가 영국차트 2위에 오르며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던 가운데 폴은 숙원사업이었던 미국시장 진출을 이루지 못한 채 돌연 그룹의 해체를 선언한다. 해산 이후 릭과 브루스는 타임 유케이(Time U.K.)에서 함께 활동하다가, 후에 브루스만이 스팁 리틀 핑거즈(Stiff Little Fingers)에서 음악활동을 하게 되고 릭은 음악계를 떠난다. 폴은 1983년 후반기 잼에서 실험했던 자신의 의도를 다욱 발전시킨 스타일 카운실(The Style Council)을 결성한다.
스타일 카운실은 후기 잼이 가지고 있던 미국풍 소울과 R&B, 그리고 재즈의 요소가 더욱 구체적으로 표현된 그룹이었다. 물론, 이러한 요소들은 어디까지나 그룹에 의해서 영국적이며 유럽 지향적인 스타일로 가공되었다. 신세사이저와 드럼머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으며 언제나 좌익의 편에 섰던 폴의 가사는 인종주의와 마가렛 대처, 또 성차별주의에 대한 비판을 담았다. 하지만, 계속해서 음악적인 실험을 계속하는 스타일 카운실은 하우스 리듬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던 다섯 번째 음반이 소속 레이블인 폴리돌(Polydor)에서 반려되며 1990년 공식적인 해산을 발표한다.
1992년 셀프타이틀의 데뷔앨범을 발표한 이후 7번째에 해당하는 [As Is Now]는 지난 2002년 발매된 [Illumination]과 마찬가지로 전반적으로는 스타일 카운실의 음악을 철저하게 계승하면서도 사운드 면에서는 더욱 강렬함으로 무장한 음반이다. 지난 음반에 참여했던 오아시스의 노엘 겔러거나, 스테레오포닉스의 켈리 존스와 같은 그의 절대적인 지지세력들이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스타일 카운실부터의 동료인 스티브 화이트(Steve White)나 그 자신이 전폭적인 도움을 아끼지 않는 오션 컬러 씬의 몇몇 멤버들은 계속해서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들은 한 장의 음반에서 계속되는 그루브감을 통해 폴이 추구하고자 했던 소울과 R&B, 그리고 재즈의 요소를 적절하게 표현해 나간다. 이러한 밴드의 기본 편성에 소규모 브라스 섹션의 도입으로만 이끌어 나가는 원초적인 락과 검은 빛 물씬 풍기는 음악과의 결합에서, 올드 락 팬이라면 어렵지 않게 트래픽이나 험블파이와 같은 그룹들을 떠올릴 수도 있다. “사람들은 아직도 제가 언제나 스몰 페이시스의 음악만 듣는다고 생각하죠. 저는 절대 ‘모드의 대부’가 아닙니다.”라고 이야기하며 웃음 짓는 그의 음악적인 뿌리를 유추해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지난 리메이크 음반 활동을 통한 여유기간이 작곡활동에 있어서 커다란 도움이 되는 시기였다고 밝힌 만큼, 소위 아버지 세대의 락(Dad-Rock)이라고 불리는 그의 음악이지만 힘있고 자신감에 넘치는 보컬을 들을 수 있는 첫 번째 트랙 ‘Blink And You'll Miss It’을 필두로 이어지는 곡들에서는 전혀 세대간의 이질감을 느낄 수 없다. ‘Come On / Let's Go’나 ‘From The Floorboards Up’과 같은 단순한 진행의 곡들에서는 초창기 잼이 가지고 있던 순수한 느낌을 받을 수 있으며, ‘Pan’이나 ‘The Pebble And The Boy’의 서정미는 오히려 시대를 초월하는 공감대를 형성할 만 하다.
이러한 폴 웰러의 음악에 있어서 그저 세월이 흘렀다는 이유로 ‘원숙’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어쩌면 무의미한 것일런지도 모른다. 그는 그저 억척스럽고도 묵묵히 자기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계속 해 오고 있는 것이며 시류에 의해 간사하게 흔들리는 청자들의 마음을 조롱이라도 하듯이 스스로의 힘으로 계속되는 전성기를 이어나가고 있으니 말이다. (2005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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