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결성 시나위 최고의 앨범이자 지금까지도 시나위라는 이름이 록계에 남아있을 수 있는 밑거름이 된 음반
1986년 국내 헤비메탈의 신호탄으로 불리는 데뷔 음반을 발표한 시나위는 1990년 네 번째 음반을 발표한 뒤 해체한다. 길지 않았던 국내 헤비메탈의 전성기를 견인하며 록의 역사에 남을 명곡들을 발표했지만 넉 장의 디스코그래피 가운데 단 한 장도 같은 라인업이 없었을 정도로 밴드의 여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시나위가 해산한 뒤 신대철은 1991년 트리오 밴드 자유의 음반을 공개하며 블루스 성향의 하드록을 선보였다. 이렇게 밴드를 지탱하던 리더 신대철이 새로운 밴드 활동을 시작하며 시나위라는 이름은 국내 록 신에서 영원히 이름을 감출 듯 보였다.
시나위의 이름이 다시 등장한 건 1995년이다. 신대철이 프로듀스는 물론 작곡과 연주에 참여한 손성훈의 1992년 첫 독집 인연이 시나위 재결성으로 이어진 것이다. 여기에 손성훈과 전사에서 함께 활동했고 다운타운을 거친 베이시스트 정한종과 제로-지 출신 드러머 신동현이 가세했다. 음반 발매 직전 신대철은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개인적으로는 그전에 해보지 못한 자유로운 음악작업과 공연 등을 해보고 싶었고, 대중에게는 다양한 음악을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우리의 대중음악은 너무 유행에 민감해 늘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 선이 굵은 음악을 통해 경박한 우리 시대를 표현 하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신대철의 이야기대로 시나위라는 같은 이름을 사용했지만, 4집까지의 음악적 노선과 재결성 시나위의 그것은 상당부분 달랐다. 첫 곡 ‘나의 세계로’는 그나마 이전 시나위의 흔적이 남아있었지만, 대표곡 ‘매 맞는 아이’에서 볼 수 있듯 전반적으로 그런지 사운드를 적극 수용하며 신대철의 왼팔 포지션은 올라갔고 솔로 파트는 이전처럼 기교에 구속되지 않았다. 신대철 외에 다른 멤버들이 곡 작업에 적극적으로 함께했고, 곡이 다루는 주제 역시 사회 전반에 걸친 사항들에 대한 진중한 고찰로 변모했다. “어떤 틀로 시나위의 음악을 규정짓고 싶은 생각은 없다. 예전과 달라졌다는 일을 좋지 않게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런 생각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뮤지션이라면 언제나 새롭게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이 바로 시나위의 스타일이 아닐까 한다.”는 신대철의 이야기처럼 수용층 역시 가파른 변화에 처음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지만 세계적인 록 트렌드의 변화와 함께 새로운 시나위를 반가운 마음으로 영접했다.
하지만 이 라인업의 시나위 활동 역시 오래 가지 않았다. 음반 발매 직후 보컬리스트 손성훈이 다시 솔로로 독립하게 된 것이다. 손성훈의 자리는 신동현이 소개한 톰캣 출신의 김바다로 메워졌다. 김바다를 새로 영입한 시나위는 EP [Circus](1996) 발매와 함께 꾸준한 라이브 공연을 통해 확실한 가능성을 확인한 뒤 이듬해인 1997년 초 정규 6집 [Blue Baby]를 발매했다. 소외되고 버림받은 사람들을 다룬 5집의 ‘매 맞는 아이’처럼 사회 전반에 대한 진지한 주제는 6집 음반으로 고스란히 이어졌고 신대철을 제외한 다른 멤버의 곡 작업 참여 비중은 늘었다. 신대철은 이후 인터뷰에서 “당시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었던 사건들에 대해서 부른 곡들이다. 개인적으로는 록 음악의 특성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그러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우리가 참여적이고 사회적인 밴드라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서 할 수 있는 만큼은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수록곡 가운데 ‘덤벼’는 학원폭력을, ‘완장’은 사회적 권위주의를 고발하는 내용을 담았고, 마지막 트랙 ‘은퇴선언’은 젊은 가수들의 ‘은퇴 쇼’를 꼬집는 가사가 인상적이다. 그 가운데 ‘은퇴선언’은 음반 발매와 함께 순식간에 화제의 대상이 됐다. 음반 발매에 앞서 배포한 보도 자료에서 이 곡은 “어린 나이에 성공을 하고 음악적 역량의 고갈로 인해 사라져가는 한국의 대중음악인들을 비판한 곡. 깊이가 없는 음악인들이 쉽게 우상이 되고 사라지는 현실을 비판한 곡”이라는 설명이 첨부되어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그 대상이 서태지와 아이들이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시기와 가사 내용이었다.
실제로 1997년 3월 22일 <조선일보>는 ‘신곡 '은퇴선언' 발표 시나위에 항의 빗발’이라는 기사를 통해 “가요계의 은퇴 해프닝을 비판한 이 곡을 두고 서태지와 아이들의 팬들로부터 ‘서태지를 지목한 게 아니냐’는 항의가 빗발치고 있다”며 “음반 발표 후 한 달 동안 받은 항의 편지와 팩스가 4천통이 넘으며 그 때문에 사무실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라는 시나위측의 인터뷰를 내보내기도 했다. 곡을 만든 신대철은 “비뚤어진 가요계 풍토를 전반적으로 비판하려고 만든 곡일 뿐, 서태지와 아이들이나 특정인을 겨냥했던 것은 절대 아니다”라고 이야기했지만 시나위의 사무실에는 시나위의 CD를 깨트려 우송한 팬도 있을 만큼 그 파장은 크고 오래갔다. 시나위측은 “앨범을 기획할 때부터 미리 예상했던 반응이라 개의치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오히려 이러한 의도치 않은 노이즈 마케팅으로 시나위의 음반은 발매 한 달 만에 25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게 된다.
물론 이러한 판매고는 단순히 음반의 일시적 화제성에서만 기인한 게 아니다. 6집 [Blue Baby]는 5집 음반과 EP [Circus]를 통해 차곡차곡 쌓아온 음악적 실험이 축적되며 어느 한 곡 빼놓을 수 없는 완성도를 자랑하는 결과로 도출됐다. 폐부를 예리하게 가르듯 거칠고 날카로운 음색을 가진 김바다의 보컬은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힘차게 퍼덕이며 완벽한 시나위의 새로운 한 축이 됐다. 또 전작 EP와 동일한 라인업으로 안정된 ‘원 팀’으로 자리 잡은 시나위의 당시 상황은 음반의 완성도에 확실하게 일조했다. 이미 EP [Circus]를 통해 공개했던 세 곡의 신곡은 새로운 편곡과 연주로 더욱 안정감 있게 재수록됐다. 삶의 괴로움과 인간의 나약함을 죽은 나무에 비유하며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는 일상의 삶을 노래한 ‘죽은 나무’는 EP 수록 버전이 라디오헤드의 ‘Creep’과 유사하다는 평가를 들은 탓인지 신대철의 도브로 기타를 전면에 내세운 어쿠스틱 버전으로 새롭게 거듭났다.
시나위 최고의 명곡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서커스’는 불 꺼진 공연장의 허무함을 통해 벗어나기 힘든 인간의 굴레를 이야기하지만 희망적인 메시지를 통해 청자를 다독인다. 돈과 권력을 쫓는 인간들을 비판한 ‘고깃덩어리’와 함께 EP 수록 버전의 거친 부분을 다듬어 안정된 사운드를 들을 수 있다. 재결성 이전 신대철이 잠시 활동했던 자유에서 보여줬던 블루스에 기반을 둔 클래식 하드록, 그리고 5집 앨범부터 들을 수 있었던 얼터너티브 성향과 함께 6집 음반은 사이키델릭 사운드로 접근하며 이후 시나위 사운드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에 대해 신대철은 “사실 사이키델릭 때문에 음악을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60년대 사이키델릭 음악의 기본은 블루스가 있고, 상호 연관되어 발전했다. 사이키델릭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서커스’와 함께 음반 최고의 성과로 볼 수 있는 타이틀 트랙 ‘Blue Baby’, 그리고 ‘해랑사’나 ‘내버려둬’, ‘폐허’에서 들을 수 있는 시나위식 사이키델릭 사운드는 때론 몽환적으로 또 때론 날카롭게 청자의 중심을 무너트린다.
앨범이 발표된 1996년은 한국 록 음악의 대부이자 신대철의 아버지 신중현이 활동 40주년을 맞는 해였다. 시나위의 6집 [Blue Baby]는 이러한 신중현에 대해 경의를 표하는 것 역시 잊지 않는다. ‘해랑사’는 당연히 ‘사랑해’를 뒤집은 단어로, 신중현과 엽전들이 1974년 발표한 데뷔앨범에 담긴 ‘나는 너를 사랑해’의 가사에 등장하는 “해랑사를 너는 나”를 떠오르게 만든다. 또 이정화가 보컬을 맡았던 덩키스가 1969년 발표한 ‘꽃잎’을 리메이크하며 신중현의 지난 행보를 되새긴다. 앞서 이야기했듯 젊은 가수들의 ‘은퇴 쇼’를 꼬집는 가사를 가진 ‘은퇴선언’의 가사 역시도 신중현의 우직한 발걸음을 돋보이게 만든다. 실제로 신중현은 이듬해인 1997년, 새로운 접근을 선보인 [김삿갓]을 발표한 바 있다.
[Blue Baby]는 명실공이 재결성 시나위 최고의 앨범이자 지금까지도 시나위라는 이름이 록계에 남아있을 수 있는 밑거름이 된 음반이다. 이 앨범을 통해 시나위는 재결성과 함께 변모한 밴드 사운드를 완성했으며 활발한 공연 활동을 통해 시나위라는 이름을 일부 록 마니아 뿐 아니라 보다 폭 넓은 청자들에게 각인시켰다. 지상파 방송에서 대규모 페스티벌, 인디 밴드와 함께 서는 클럽공연에 이르기까지 그 활동 범위를 한정짓지 않고 오직 앞으로만 전진할 수 있게 만들었던 음반. 1990년대 국내 록 음악이 낳은 최고의 명반 가운데 한 장이며 제2의 전성기를 스스로 쟁취하는데 결정적인 단초를 제공한 앨범이다. (20211018)
글 송명하 (파라노이드 편집장)
시나위의 이 음반엔 개인적으로 아픈 추억이 있다. 라이너노트에 표시를 내진 않았지만, 글을 작성하며 계속해서 그 생각에 어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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