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성 30년을 맞는 거장들, 시작을 회고하다.
RUSH [Feedback]
드림 씨어터를 필두로 한 여타 프록메틀 그룹들에게 이정표가 되었던 러쉬가 결성 30주년이 되는 6월 29일 기념 음반을 발표했다. 언제나 앞으로만 향해 나가던 그들의 새 작품은 뜻 밖에도 그들이 10대 시절, 무명 그룹을 전전하며 부르던 6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반에 이르는 락 르네상스 시절의 하드락 그룹들이 발표한 곡들에 대한 오마쥬였다. 30분이 채 안되는 EP음반이지만, 그들이 그려낸 선배들의 모습을 함께 살펴보자.
만일 러쉬를 잘 알고 있는 독자들이라면, 이번에 발표한 러쉬의 새로운 음반이 선배 그룹들의 곡들에 대한 리메이크가 수록되었다는 사실이 어쩌면 충격적일런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1996년 발표된 러쉬 트리뷰트 음반인 [Working Man]이 드림 씨어터 출신의 존 페트루치, 마이크 포트노이 라던가, 베이스의 빌리 시언, 스튜어트 햄, 또 심포니 X 출신의 마이클 로메오, 마이크 피넬라를 비롯 스티브 모스, 딘 카스트로노보, 조지 린치 등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만큼 당대 최고의 테크니션들을 총 동원해서 만든 음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러쉬는 지금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그룹이기 때문에 트리뷰트라는 이야기는 어불성설이다.”라는 이유로 음반에 러쉬라는 그룹명을 절대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대표곡들의 사용허가를 내 주지 않았던 사실을 기억하고 있을테니 말이다.
1974년 데뷔앨범을 발매할 당시의 멤버는 베이스와 보컬을 담당한 게디 리(Geddy Lee), 기타에 알렉스 라이프슨(Alex Lifeson) 그리고, 드럼에는 존 러트시(John Rutsey)였다. 초기의 음악적인 성향은 레드 제플린(Led Zeppelin)과 흡사한 스타일의 직선적인 락이었다. 이후 현재의 드럼을 맡고있는 닐 퍼트(Neil Peart)가 가입하면서 발표된 두 번째 음반 ‘Fly By Night’에서부터 복잡한 악곡 전개와 심오한 가사를 동반한 러쉬의 특징들이 나타나며, 네 번째 음반인 [2112](1976)에서부터는 본격적으로 신서사이저를 도입하면서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프로그레시브메틀(Progressive Metal)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키게 된다.
30년의 음악여정동안 어느 한 음반 소홀히 넘길 수 없지만, 그 가운데에서 러쉬의 최고 전성기를 뽑아내라고 한다면 1976년부터 1981년까지라는 데에 이의가 없을 것이다. 신화의 내용이나 선과 악의 극적인 대비와 같은 가사내용들은 당시 대학들에 러쉬의 가사만을 따로 연구하는 동호회가 생길 정도로 난해했고, 3인조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완벽한 연주실력은 수많은 추종자들을 거느리게 만들었다. 우리가 러쉬의 최고 곡들로 꼽고있는 ‘Xanadu’, ‘Cygnus X-1’, ‘Hemispheres’, ‘Natural Science’를 비롯해서, ‘Tom Sawyer’, ‘Limelight’, ‘The Spirit Of Radio’와 같은 히트곡들 모두가 이 시기에 발표된 음악들이다.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러쉬의 인기가 한풀 꺾이게 된 시기는 러쉬의 음악에서 신서사이저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졌을 때와 일치한다. 곡의 길이가 짧아지고 점차 부드러워지는 러쉬의 음악에서 더 이상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팬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들은 새롭게 발매되는 러쉬의 음악에 귀 기울이기 보다는 예전에 발표된 음반을 한 장씩 꺼내 들으면서, 이제는 돌아오지 못할 당시의 음악들로 아쉬움을 달래곤 했다. 이러한 러쉬의 올드스쿨 팬들에게 러쉬가 지난해 건넨 DVD [Rush In Rio]라는 선물은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수만의 관객 앞에서 앞서 언급한 최 전성기의 곡들을 당시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재현해낸 그들에게 이미 지난 세월은 숫자 놀음 밖에는 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결성 30주년을 맞는 올해 러쉬는 30주년 기념 공연 투어 데이트 발표와 함께 두 번째의 선물을 우리에게 건넸다. 6월 29일 발매된 음반 [Feed Back]이 바로 그것이고, 그 선물은 지난해 발표한 [Rush In Rio]보다 조금 더 앞쪽으로 시계바늘을 돌리게 만든다. 첫 번째 곡은 블루 치어(Blue Cheer)와 후(The Who)의 노래로 잘 알려진 ‘Summertime Blues’이다. 음반의 첫 곡인 이 곡만 들어도 신서사이저의 의존도가 높은 요즈음 러쉬가 추구하는 음악이 아니고, [2112] 이전의 음악. 마치 크림(Cream)과 같이 가장 기본적인 악기 편성으로 원초적인 락 음악을 추구할 당시 러쉬로의 회귀라는 사실을 쉽게 감지할 수 있다. 마치 1974년 공개된 러쉬의 데뷔 음반에 수록된 ‘In The Mood’나, ‘What You're Doing’을 듣는 듯한 편곡은 뮤트를 하지 않은 강력한 기타 톤과 함께 정확하게 30년 이전으로 시간을 돌려놓는다. 제프 벡(Jeff Beck)이 인도 악기인 시타 연주의 효과를 일렉트릭 기타로 시험했던 야드버즈(Yardbirds)의 ‘Heart Full Of Soul’은 이미 솔로로 독립한 제프 벡 자신이 리메이크하기도 했고, U.C.L.A.출신의 기타 영웅 조슈아(Joshua)에 의해서도 다시 연주된 바 있는 곡으로, 게디 리의 고음 보컬 때문에 러쉬를 멀리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한번쯤 권해보고 싶은 곡이다. 어쿠스틱 기타와 함께 어렵지 않게 원곡이 갖는 매력을 살려나가면서도 러쉬만의 음악으로 재창조된 곡이다. 브라이언 오거(Brian Auger)가 발표했던 ‘The Seeker’역시도 편안한 분위기로 불러주고 있고, 이어지는 ‘For What It's Worth’와 ‘Mr. Soul’은 닐 영과 크레이지 호시즈(Neil Young & Crazy Horses)의 곡으로 특히 러쉬가 데뷔하기 이전 캐나다가 낳은 최고의 스타중의 한 사람인 닐 영에 대한 그들의 존경심이 아닐까 생각되는 트랙. ‘Shape Of Things’역시 ‘Heart Full Of Soul’와 마찬가지로 제프 벡 재적 당시 야드버즈의 곡이다. 이전에 리메이크했던 제프 벡 그룹의 연주가 원초적인 락 음악에 가깝고, 게리 무어(Gary Moore)의 연주가 정통 헤비메틀 스타일이었다면, 러쉬의 편곡은 오히려 원곡에 가까운 편곡을 보여주고 있다. 분절된 느낌의 행진곡 풍인 원곡이 가지는 느낌과 역시 러쉬가 가진 동일한 특징을 교차시키며, 마치 초창기 구현해 냈던 자신들의 음악과 같이 전개해 나간다. 중반부 이후의 애들립에서 들리는 기타 톤이 제프 벡 그룹이 발표한 리메이크 버전에서의 기타톤과 유사한 점에도 귀기울여볼 만 하고, 근래에 발표된 마이클 쉥커(Michael Schenker)의 버전과 비교해서 감상해 보는 것도 좋겠다. 도어스와 함께 LA를 중심으로 한 사이키델릭 음악을 이끌었던 러브(Love)가 발표한 ‘Seven & Seven Is’와 에릭 클랩튼이 솔로로 전향한 이후에도 단골 레퍼토리로 연주되던 크림(Cream)의 대표곡 ‘Crossroads’역시도 빼 놓을 수 없는 트랙들이다.
언제나 과거를 회상할 때 드는 생각은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다. 물론 과거가 언제나 아름답지만은 않겠지만, 지나서 생각할 때의 당시는 온통 아름다운 기억들이다. 오선지가 빼곡하게 채워진 새카만 음악공책을 떠나서, 과거 그들에게 음악을 하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던 음악들을 하나씩 다시 꺼내서 연주하던 러쉬의 마음도 바로 그런 것이었을 것 같다. 우리도 숨돌릴 틈 없이 쏟아져 나오는 신보들의 홍수를 떠나서, 그들과 함께 떠나는 과거로의 시간여행에 가벼운 마음으로 동참해 보는 건 어떨까. (월간 핫뮤직 2004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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