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 외로움’이라는 히트곡을 남긴 바람꽃의 기타리스트로, 또 윤도현의 초기 사운드를 구축했던 숨은 공로자로 우린 유병열을 기억해 왔다. 물론 윤도현 밴드를 탈퇴한 후 자신의 밴드 비갠후를 결성해 2002년 데뷔앨범을 발표했지만 그의 이름은 비갠후라는 밴드의 기타리스트로서가 아니라 휘성이나 인순이, 빅마마, 거미 등의 세션 기타리스트로 더 많이 알려졌다. 때문에 앞서 ‘기억해 왔다’는 표현대로 유병열의 음악에 대해서 우리가 생각하는 시점은 언제나 현재나 미래가 아니라 과거였다. 하지만 그는 과거의 기록에 안주하며 현실 속으로 진입하지 못하는 주변의 많은 뮤지션과 그 행보를 달리했다. 우선 2009년 시원스런 창법의 걸출한 보컬리스트 김길중을 맞아들이며 자신의 밴드 비갠후를 재정비해 정통 하드록 성향의 정식 두 번째 음반을 발표했다. 동시에 스스로의 자세를 낮추며 홍대의 인디씬으로 과감하게 파고들어, 그 설 자리를 잃어가던 정통 록을 표방하는 밴드들을 규합시켰다. 그리고 지난해인 2010년에는 다시 기타리스트 유병열로 돌아와 그 동안의 활동을 통해 하지 못했던 자신만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휘성과 낯선이 피처링한 ‘Love Tension’을 비롯해 모두 5곡이 수록된 EP 《YBY 1st Mini Album》은 밴드의 일원으로서가 아니라, 뮤지션 유병열로서의 지난 활동을 집대성함과 동시에 앞으로의 활동을 예시하는 미래가 담긴 음반이었다. 그 예시 가운데 하나는 다른 뮤지션들을 위해 유병열이 연주를 했던 과거와 달리, 그와 함께 활동했던 뮤지션들이 그를 중심으로 집결하는 것이었다. 그 두번째 결실이 바로 올해 초 공개된 EP 《유병열's Story of 윤도현》이다.
유병열's Story of 윤도현
뮤지션들은 과거 자신이 발표한 음반들에 대해 그 아쉬움 때문에 부끄러워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부끄러움 속에 묻혀 버리는 것은 그들의 노래뿐 아니라 청자들이 과거 그 음악으로 가질 수 있었던 지독한 기억과 추억들도 있다. 유병열과 윤도현이 13년 만에 한 방향을 바라보며 내 놓은 두 번째 EP는 이러한 청자들의 감성을 자극한다. 비록 윤도현은 머릿곡 ‘가슴이다’를 제외한다면 ‘Remember’에서 코러스를 넣는 정도만 참여하고 있긴 하지만, 마치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듯한 가사를 가진 ‘가슴이다’에서 들려주는 서로에 대한 배려는 과거 부활과 이승철이 재회하며 발표한 ‘Never Ending Story’를 듣는 듯 가슴이 뭉클하다.
물론 기타리스트의 솔로음반인 만큼 가사가 있는 이 한곡을 제외한다면 음반의 중심은 기타 연주에 있다. 윤도현 밴드나 비갠후와 같은 이력을 통해 거친 질감의 하드록 사운드를 펼쳐보였던 유병열의 기타세계는 자신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우며 인접장르를 향한 욕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물론 이러한 욕심은 그동안 채워왔던 그의 내공을 통해 더욱 무르익은 결과로 도출된다.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의 ‘Voodoo Chile’의 매력적인 메인 리프가 엔딩에 등장하는 공격적인 훵키넘버 ‘Punk Kid’나 긴박감 넘치는 ‘DMZ’, 얄미운 와우 사운드가 마치 도도한 고양이의 걸음걸이를 보는 듯 느껴지는 ‘Cat Dance’ 등 전반적인 수록곡은 언뜻 중기 제프 벡(Jeff Beck)의 퓨전적 어프로치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 많은 사람의 가슴을 아프게 만들었던 게리 무어(Gary Moore)에 헌정하는 ‘Remember’에는 특별히 위대한 탄생의 최희선과 부활의 김태원이 참여하여 고인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중첩되며 흐느끼는 기타 사운드로 표현했다.
싸늘하게 식어 버린 음반시장에, 그것도 연주위주의 음반을 발표한 것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반갑고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박수를 보내고 싶지만, 유려한 멜로디가 아름다운 ‘Black Moon’까지 총 여섯 곡의 트랙 가운데 어느 한 곡 자기 멋에 취해 도를 넘어서지 않으면서도 일렉트릭 기타의 매력에 흠뻑 잠길 수 있는 결과 역시도 훌륭하다. 그리고 유병열은 4개월여가 지나 솔로 기타리스트가 아니고, 밴드 비갠후의 일원으로 다시 돌아온다.
Began Who / Bridge 2.5
자신의 솔로 EP에 윤도현과 호흡을 맞춘 ‘가슴이다’를 발표할 때도 그랬지만, 최대한 청자들에 가까이 갈 수 있는 음악을 만들려 한 의도가 음반 전체에 드러난 비갠후의 미니 앨범이다. 음반도 여름을 맞춰 공개되었고, 수록곡 역시 따가운 햇살을 맞으며 여행을 떠나는 길에 듣기에 안성맞춤인 곡으로 채워졌지만 아쉽게도 유난히 비가 많았던 올 여름의 특성상 방송을 통해 에어플레이 되는 일은 많지 않았다.
음반발표 이후에 가졌던 짧은 인터뷰에서 유병열은 이곡을 조용필의 ‘여행을 떠나요’와 같이 오래도록 우리의 여행에 동반자가 되는 국민가요가 되길 바랐지만 그렇게 되지 않아 아쉽다는 이야기를 남겼다. 하지만 조용필의 ‘여행을 떠나요’ 역시 음반의 발표와 함께 주목을 받았던 노래가 아니라 해를 거듭하며 꾸준한 사랑을 받았던 곡이라는 점을 돌이켜 본다면 아직 아쉬워하긴 이르다. 음악은 뮤지션에 의해 만들어지지만, 그 음악이 얼마만큼의 수명을 가지는가는 청자들에 의해 결정되는 문제기 때문이다. 앞서 최대한 청자에 다가갈 수 있는 음악이라는 이야기를 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비갠후라는 밴드의 전형적인 음악성 안에서의 변모임은 직선적이고 드라이브감 넘치는 ‘간다’와 ‘돈다’ 같은 곡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지난 봄 사석에서 만난 유병열은 후배들이 잘 될 수 있다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어떤 도움이라도 주겠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러한 이야기는 상상마당에서 진행한 밴드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에서 우승한 여성 3인조 러버 더키가 올해 발표한 데뷔 음반에 프로듀서로 참여한 것 이외에도 많은 후배 뮤지션들의 음반과 공연에 게스트로 참여하고 있는 그의 모습에서 확신할 수 있다. ‘기타리스트 유병열의 2011년을 기억하라’라는 다소 거창한 글의 제목은 위에 열거한 그의 쉼 없는 활동이 앞으로 발표될 비갠후의 결성 10주년을 기념하는 앨범과, 계속해서 발표하는 솔로 EP를 집대성한 앨범의 단초가 되는 것이라는 점에 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비가 갠 후의 하늘처럼 푸르고 높으리란 것 역시 자명한 사실일 것이다.
글 송명하 (2011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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