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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ER'S MUSIC LIFE/EXTERNAL CONTRIBUTIONS

복고와 세련미가 공존하는 대중 친화적 록사운드, 11월 / 11월



01. 착각
02. 우리를 내려다보는 이들에게
03. 내게 마지막으로 남은 것
04. 하늘을 보며
05. 거울 속의 얼굴
06. 머물고 싶은 순간
07. 독백
08. 어느 요일, 맑음
09. 11월 테마

1990년 / 서울음반

11월은 장재환과 김영태로 이루어진 프로그레시브록 밴드 하늘 바다의 유일한 음반에서 하몬드 오르간 세션을 담당했던 김효국이 머릿속에 그렸던 구상이 실체로 만들어진 밴드로, 1989년 11월에 결성되었다. 밴드의 이름이 11월인 것도 바로 그 때문.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김효국), 전인권과 파랑새(박기형), 믿음 소망 사랑(조준형), 그리고 밴드의 모태가 되었던 하늘 바다(장재환, 김영태) 등 실력파 밴드를 거친 검증된 멤버들로 구성된 밴드였기 때문에 음반의 발표와 함께 마니아들의 많은 관심을 모은 바 있다.

밴드 내에 리드 보컬이 따로 없고 자기가 작곡한 곡을 자기 자신이 불러, 인간냄새 나는 소위 ‘휴먼 록’을 표방했던 밴드로 데뷔앨범 발매 후 라이브 그룹으로 명성을 쌓아나감과 동시에 여러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의 공연에서 게스트나 연주를 담당하며 뮤지션과 음악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그 실력과 재능을 인정받았다. 박경의 [Experimental Naked Eyes](1990), 강문수의 [Vol. 1](1991), 강철수 원작의 만화를 영화로 만든 유진선 감독의 ‘돈아 돈아 돈아’(1991) O.S.T.가 바로 11월이 세션을 담당했던 음반들이다. 사실 앨범 발매 이전에는 하늘 바다의 후신이라는 선입견 때문인지 프로그레시브 록 성향의 음반이 되지 않을까 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김효국의 하몬드 오르간을 전면에 배치한 복고적 사운드와 세련된 곡 구성을 받쳐주는 안정된 연주의 현대적 사운드가 융합된 대중 친화적인 록 음악이 담겨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어렵지 않은 멜로디와 리드 보컬리스트가 따로 없다는 점을 오히려 밴드의 장점으로 승화시켜 퀸(Queen)을 연상시키는 보컬의 화음을 특징으로 내세운 타이틀 트랙 ‘착각’은 “착각은 자유”라는 당시 유행어를 가사에 포함시킨 재미있는 가사가 눈에 띄며, 간결하고 담백한 사운드는 향후 11월의 사운드의 키워드가 된다. 장재환이 송메이킹과 보컬을 담당한 ‘우리를 내려다보는 이들에게’의 중반부 기타 애들립은 하늘 바다 시절 보여줬던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적 감성의 연장선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 ‘거울 속의 얼굴’은 하늘 바다의 음반에 수록된 곡을 리메이크한 곡으로, 이전 버전에 비해 느리고 정갈하게 편곡되었다. 이 외에 가벼운 보사노바 풍 진행에 상큼한 보컬 하모니를 가진 ‘머물고 싶은 순간’, 블루지한 ‘독백’, 드럼 솔로가 강조된 연주곡 ‘11월 테마’ 등 어느 한곡 할 것 없이 베테랑 연주인들의 솔직하고 안정된 연주를 들을 수 있다.

하지만 리드 보컬을 따로 두지 않고 자신의 곡을 작곡자가 직접 부름으로 해서 전반적으로 산만하고 개인의 개성들이 융화되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남는다. 또 프로그레시브록, 특히 핑크 플로이드 추종자였던 장재환과, 퓨전 성향의 기타리스트 조준형 사이의 부조화는 밴드의 결속력 자체를 와해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결국 장재환이 1991년 음악적 견해 차이를 이유로 두 번째 음반 녹음 도중 탈퇴하고, 남은 멤버들은 보다 대중적인 취향을 강조한 두 번째 앨범 <Vol. 2>를 발표한다. 하지만 두 번째 음반 발매 후에도 밴드 멤버들 간의 결속력은 이들을 따라다니는 고질적인 문제가 되어 밴드는 얼마 가지 않아 해산하고 만다. 정규음반 이외에 1993년 ‘빛과 소금 / 11월 / 하늘 바다’의 이름으로 발표된 [Unplugged Music]은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출연했던 빛과 소금의 언플러그드 공연에 조준형과 장재환이 참여한 것을 계기로 만들어진 음반이다. 같은 해 조준형은 엄인호, 정경화, 김목경과 함께 [Super Stage] 음반에 참여한 바 있고, 장재환, 김효국은 전문 세션맨의 길을 걷게 된다.

글 송명하 (20111231)

* 다음뮤직(http://music.daum.net/)과 백비트(http://100beat.hani.co.kr/)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