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음악과 흑인음악, 그리고 락과 디스코의 절묘한 줄타기
대가들의 콜라보레이션은 언제나 청자를 흥분시킨다. 단순히 기교나 기술의 물리적 나열이 아니라 그들의 이전 경력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새로운 화학적 반응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파 코포레이션(Far Corporation)은 프로듀서 프랭크 패리언의 프로젝트다. 원래 이름이 ‘프랭크 패리언 코포레이션(Frank Farian Corporation)’이었다는 점을 떠올린다면 의미는 명쾌할 것이다. 부연하자면 파 코포레이션은 프랭크 패리언 프로젝트의 축약형 이름이며, 당연하게도 뮤지션이 아닌 프로듀서가 이 프로젝트의 브레인이다. 프랭크 패리언은 70/80년대에 걸쳐 각각 보니 엠(Boney M)과 밀리 바닐리(Milli Vanilli)를 스타덤에 올려놓았던 프로듀서다. 밀리 바닐리의 경우 소위 ‘립싱크 스캔들’로 논란이 거세게 일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프랭크 패리언이 얼마나 그 시대의 음악판을 잘 읽고 있었으며, 그 음악을 어떻게 이용했던 인물이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되기엔 충분할 것이다. 파 코포레이션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프랭크 패리언 코포레이션이 처음 조직 된 것은 1985년 폴 사이몬(Paul Simon)의 ‘Mother And Child Reunion’을 리메이크해 녹음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녹음에 참여했던 건 일찌감치 프랭크와 함께 활동했던 보니 엠을 위시한 유로디스코 성향의 뮤지션들이었지만, 프로그레시브락 밴드 바클리 제임스 하비스트(Barclay James Harvest)의 존 리스(John Lees)나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칸타토레 안젤로 브란두아르디(Angelo Branduardi)의 이름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 역시 흥미롭다. 이렇게 녹음 된 곡은 싱글로 발매되어 여러 유럽 국가들에서 10위권에 오르는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이러한 성과에 고무된 프랭크는 같은 해 새로운 프로젝트 파 코포레이션을 조직해 싱글이 아닌 정규 음반 제작에 들어간다. 파 코포레이션에 참여한 뮤지션들은 우선 토토(Toto)의 스티브 루카서(Steve Lukather), 데이빗 페이치(David Paich), 바비 킴볼(Bobby Kimball)의 이름이 눈에 띄며, 루시퍼스 프랜드(Lucifer's Friend), 트리움비라트(Triumvirat)를 거쳐 패스포트(Passport)에서 활동했던 커트 크레스(Curt Cress)와 설명이 불필요한 일급 세션 드러머 사이몬 필립스(Simon Phillips), 또 여러 프로그레시브락 명반들의 크레디트에 자주 등장하는 색소폰 주자 멜 콜린스(Mel Collins)와 이후 맥컬리 솅커 그룹(McAuley Schenker Group)에서 활동하게 되는 로빈 맥컬리(Robin McAuley)등 이다. 그야말로 초호화 세션뮤지션의 모임이라고 할 만 하다. 그리고 이렇게 모인 거대 세션 집단은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Stairway To Heaven’을 리메이크하여 첫 번째 곡으로 수록한 앨범 [Division One]을 발매한다. 10분에 육박하는 앨범 수록버전과는 달리 러닝타임이 짧은 ‘Stairway To Heaven’의 싱글버전은 영국 싱글차트 8위를 기록했는데, 레드 제플린이 4집 앨범을 발표할 당시 싱글로 커트하지 않았기 때문이 싱글차트에는 처음으로 등장한 셈이 되었다.
결국 파 코포레이션의 대표곡이 되어버린 ‘Stairway To Heaven’을 들어보면 이 프로젝트가 추구하는 음악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원곡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도입부 연주와 로빈 맥컬리의 건조한 목소리는 커트 크레스의 일렉트릭 드럼 연주와 함께 한차례 변화로 이어지며, 펑키한 리듬파트와 코러스가 덧입혀져 디스코풍의 중반부로 치닫는다. 코러스 라인이 합쳐진 중반부 진행에서 프랭크의 손을 거쳤던 보니 엠의 향기를 맡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고음의 클라이맥스 보컬은 바비 킴볼이 맡았다. 토토의 프론트맨 바비 킴볼의 목소리는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백인임에도 불구하고 흑인의 필을 간직한 음색이다. 토토에서 그가 이탈했을 당시 공연에서 그의 자리를 대신했던 세션 보컬리스트들이 흑인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결국 파 코포레이션에 의해 재탄생한 ‘Stairway To Heaven’은 백인음악과 흑인음악, 그리고 락과 디스코의 절묘한 줄타기를 보여주고 있으며, 이는 이 음반 아니 파 코포레이션의 음악적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키워드 들이다. 일급 세션 뮤지션들이 만들어 낸 고급스런 팝음악이랄까. 당시엔 잘 쓰지 않는 단어였지만 A.O.R.(Adult Oriented Rock)이라는 표현도 어울릴 듯하다. 물론 이러한 조합을 어색하지 않게 만드는 중심에는 프랭크 패리언이라는 탁월한 두뇌가 있었다.
사실 파 코포레이션의 ‘Stairway To Heaven’이 발표될 당시, 락음악 애호가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확실하게 엇갈렸다. 일종의 ‘성역’과도 같았던 명곡을 팝적으로 재해석하고 재배치한 프랭크 패리언의 의도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곡 이후 리메이크 혹은 트리뷰트 음반의 열풍을 타고 쏟아졌던 수많은 명곡들의 다른 버전들을 들어보면, 파 코포레이션의 접근은 오히려 확실한 의도 하에 이루어졌던 진중한 작업이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것이다. ‘Stairway To Heaven’에 접속곡으로 이어지는 편안하고 고급스런 퓨전 풍 발라드 ‘You Are A Woman’이 지나고 등장하는, 마치 토토의 ‘Hold The Line’을 듣는 듯 익숙한 ‘One Of Your Lovers’도 빠트릴 수 없는 트랙. 프리(Free)의 ‘Fire And Water’ 역시 앞서 이야기했던 파 코포레이션의 특징이 그대로 살아있다. 펑키한 리듬으로, 원곡이 가진 끈끈함 대신 상큼하고 가벼운 새 옷을 갈아입었다. 물론 창작곡 가운데도 ‘Johnny Don't Go The Distance’와 같은 곡은 구성력의 묘미를 살린 필청 트랙이며, 이 외에도 총 9곡의 신선한 트랙들이 각기 다른 매력을 뽐내고 있다. 물론 전체적인 틀이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백인음악과 흑인음악, 그리고 락과 디스코의 절묘한 줄타기를 보여주는 고급스런 팝음악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파 코포레이션은 이 앨범을 발매하고 2년 뒤인 1987년 새로운 앨범 [Advantage]의 녹음을 마쳤지만, 앨범에 앞서 싱글로 발매한 ‘One By One’와 코크니 레벨(Cockney Rebel)의 곡을 리메이크한 ‘Sebastian’이 차트진입에 실패하며 폐기되고 말았다. 원래 두 번째 음반에 수록 예정이었던 ‘Make Believe’와 ‘Big Brother’는 각각 프랭크가 프로듀스를 맡았던 제인(Jayne)과 밀리 바닐리의 음반에 수록된 바 있고, 남은 몇몇 곡과 이 음반에 수록된 곡을 짜깁기하여 2009년에 [Star Collection]이라는 타이틀의 음반으로 발매하기도 했다. 1994년에는 프랭크의 프로듀서 인생 25주년을 기념하여 데뷔앨범에 참여한 대부분의 뮤지션들에 씬 리지(Thin Lizzy) 출신 기타리스트 스코트 고햄(Scott Gorham)이 참여한 두 번째 앨범 [Solitude]이 발매되었지만, 역시 대중들의 관심을 얻는 데는 실패하고 만다.
글 송명하 (월간 파라노이드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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