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te Townshend [Pete Townshend's Classic Quadrophenia], 클래식으로 재탄생한 후의 걸작 록 오페라



첫 번째 록 오페라 [Tommy]의 성공, 그리고 후의 상황.

[Tommy](1969)의 놀라운 음악적 성취와 성공은 후를 고무시켰다. 밴드명을 후(The Who)가 아니고 토미로 아는 사람들이 생길 정도로 [Tommy]가 준 파장이 컸기 때문이다. [Tommy] 이후 리즈 대학 공연 실황을 담은 [Live At Leeds](1970)를 발표한 후의 리더 피트 타운센드(Pete Townshend)는 [Tommy]의 성과를 이어가기 위한 새로운 구상을 시작했다. ‘Lifehouse’라는 타이틀이 붙여진 이 구상은 이후 [Who's Next](1971)라 바뀌어 후의 또 다른 걸작이 됐다(처음 구상인 ‘Lifehouse’는 [Who's Next]에 수록된 곡과 그렇지 않은 곡을 모아 피트 타운센드의 솔로 앨범 [Lifehouse Chronicles](2000)로 발표된다).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The Who Sell Out](1967)이 [Tommy]의 탄생에 결정적 모티브가 된 것처럼 [Tommy] 역시 [Who's Next]의 사운드에 있어서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피트 타운센드의 신시사이저 연주는 오프닝 트랙 ‘Baba O'Riley’에서 들을 수 있듯 후의 사운드에 있어서 빼 놓을 수 없이 중요한 요소가 되었고, 녹음에 있어서도 복잡한 의도의 표현을 구현하기 위해 계속해서 새로운 방식을 찾아 나갔다. 그렇게 후는 지속적인 발전 일변도에서 1970년대를 맞는 듯 보였다. 아니 실제로 [Who's Next]의 발표와 공연활동으로 후는 ‘금세기 최고의  라이브 밴드’로 불리며 록팬의 우상을 넘어 대중의 스타가 되었다. 하지만 1972년에 접어들며 밴드는 흩어졌다. 


피트 타운센드는 [Tommy]의 제작에 정신적인 지주가 됐지만 앨범이 발표됐던 1969년 세상을 떠난 종교 지도자 메헤르 바바(Meher Baba)의 빈소를 찾아 인도로 건너갔고, 로저 달트리(Roger Daltrey)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해 리오 세이어(Leo Sayer)를 발탁하는 한편 자신의 솔로 앨범제작에 들어갔다. 인도에서 돌아온 피트 타운센드와 존 엔트위슬(John Entwistle)도 각자 솔로 음반을 제작했으며, 한창 영화에 빠져있던 링고 스타(Ringo Starr)와 어울리던 키쓰 문(Keith Moon)은 프랭크 자파(Frank Zappa)의 제의로 영화 ‘200 Motels’와 ‘That'll Be The Day’에 출연했다. 멤버들의 개인 활동이 길어지자 후의 해산은 공공연한 소문이 되어 떠돌았고, 실제로 피트 타운센드와 로저 달트리의 대립은 주먹다짐으로 이어질 만큼 심각해보였다. 


[Quadrophenia](1973)은 이렇게 극에서 극으로 치닫던 후의 상황에서 구상되어 1973년에 공개된 [Tommy] 이후 두 번째 록 오페라 음반이며, 밴드의 통산 여섯 번째 정규앨범이다. 


두 번째 록 오페라 앨범 [Quadrophenia].

1972년 5월, 피트 타운센드는 ‘Rock Is Dead - Long Live Rock’라는 타이틀로 후의 멤버들에 대한 미니 오페라를 구상했고, 이 구상이 점차 구체화되는 과정에서 마치 [Tommy]의 주인공 토미처럼 또 다른 인물 지미(Jimmy)가 탄생했다. 지미는 각성제를 과다복용하면 4명의 자아로 분열되는 인물로, 이 4명의 자아가 바로 터프 가이와 무기력한 댄서인 로저 달트리, 로맨틱한 존 엔트위슬, 피 비린내 나는 미치광이 키쓰 문, 그리고 거지와 위선자인 피트 타운센드다. 그리고 이 인물들은 수록곡 ‘Bell Boy’(키쓰 문), ‘Is It Me?’(존 엔트위슬), ‘Helpless Dancer’(로저 달트리)와 ‘Love Reign O'er Me’(피트 타운센드)와 같이 개별적인 테마를 가지며, 이 테마들은 다시 ‘The Rock’을 통해 모이고 흩어진다. 사전에 없는 단어인 ‘콰드로페니아(Quadrophenia)’는 이렇게 지미의 분열된 자아인 4를 의미하는 ‘Quadro’와 정신분열증의 ‘Schizophrenia’를 합성해 만든 신조어다. 


1973년 10월 26일과 11월 3일, 영국과 미국에서 각각 발매된 이 음반은 양국 모두 앨범차트 2위까지 올랐다. 이전에 발표했던 록 오페라 [Tommy]가 싱글 ‘Pinball Wizard’를 영국 4위와 미국 19위에 올려놓으며 앨범차트에서 영국 2위, 미국 4위를 기록한 것에 비한다면, 선행 싱글 ‘5.15’가 영국차트 20위가 기록한 미국차트 45위라는 부진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음반 판매고는 더 올라갔다는 얘기다. 특히 [Quadrophenia]가 발매되던 1973년은 전 세계 각국에 경제위기가 도래했던 시기였다. 1차 유류파동 때문이다. 10월 제4차 중동전쟁 발발 이 후 페르시아 만의 6개 산유국들이 가격인상과 감산에 돌입, 배럴당 2.9달러였던 원유(두바이유) 고시가격은 4달러를 돌파했다. LP를 제작하기 위한 원료의 부족으로 후의 음반 역시 초반엔 한정된 수량만이 제작, 공급됐다. 더욱이 두 장으로 구성된 [Quadrophenia]의 경우 다른 음반에 비해 사정이 더 좋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놀랄만한 실적이 아닐 수 없다. 


앞서 언급했듯 복잡했던 밴드 내부 사정에도 불구하고 1960년대 말부터 다져온 밴드의 대외적 위상과 절정기를 달리던 음악성이 맞물린 결과였다.


피트 타운센드, 무언가 아쉬움이 남았다.

피트 타운센드는 원래 [Quadrophenia]에 대한 밑그림을 그릴 때, 그 타이틀과 내용이 주는 느낌처럼 쿼드러포닉(quadraphonic) 사운드로 만들 것을 구상했다. 쿼드러포닉 사운드는 1960년대 말에 개발되어 1970년대까지 발전, 존속됐던 일종의 4채널 서라운드 음향이다. 당연히 음장감 표현이 스테레오(stereo)보다 우수했다. 하지만, 당시 미디어와 재생을 위한 플레이어의 가격이 비쌌던 까닭에 일반적으로 많이 보급되지 않았다. 그 때문인지 피트는 쿼드러포닉 사운드로 만들긴 하되 보통의 스테레오 시스템으로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을 택했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사운드가 모노 사운드처럼 하나로 모이고, 다시 흩어지는 입체 음향이랄까. 마치 처음 이 음반을 구상할 때 필름 스코어를 생각했던 것처럼 하나의 영화를 보는 것과 같은 효과를 스테레오 음향으로 만들어내려 했다는 얘기다. 


음반이 발표된 뒤 피트 타운센드가 술회했던 것처럼 믹싱을 하는 동안 16트랙 테이프들이 천정까지 쌓일 정도로 후반 작업에도 많은 노력이 동원됐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피트를 제외한 후의 모든 멤버는 그 결과에 만족하지 못했다고 한다. 또 애초에 모든 곡을 완성하고 레코딩에 들어간 건 아니었지만, 결과물은 음반에 수록된 곡보다 훨씬 많았다. 로저 달트리가 15시간짜리 음반이라고 표현한 건 약간 과장이 있었지만, 어쨌거나 녹음된 음원을 모두 수록했다면 두 장이 아니라 넉 장(quadruple)의 LP세트로 발표됐을만한 음반이었다. 계속해서 등장하는 ‘4(quad)’라는 그림자는 어쩌면 피트 타운센드가 처음부터 작정하고 접근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또 애초에 피트 타운센드는 [Quadrophenia] 작업을 위해 스튜디오를 만들었지만, 공사는 일정 안에 끝나지 않았고 결국 녹음을 위해 로니 레인(Ronnie Lane)의 이동용 스튜디오를 빌렸다. 오케스트라 버전의 [Tommy] 작업, 또 앞서 언급한 것처럼 멤버들의 솔로활동 역시 [Quadrophenia]의 완성을 늦춘 요인들이었다.


[Quadrophenia] 이후의 쿼드로페니아.

1979년, [Quadrophenia]는 스크린으로 옮겨졌다. 우리에겐 ‘K2’로 잘 알려진 프랭크 로댐(Franc Roddam) 감독의 데뷔작으로 주연인 지미 역은 필 다니엘스(Phil Daniels)가 맡았고, 록 팬들에게 익숙한 스팅(Sting)과 토야(Toyah)도 조연으로 등장했다. 이미 영화로 개봉됐던 [Tommy]와 달리 ‘Quadrophenia’는 뮤지컬이 아니고 극 영화였다. 어쩌면 처음 필름 스코어로 기획됐던 피트 타운센드의 의도가 제대로 표현됐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후는 ‘Quadrophenia’의 O.S.T. 작업을 하며 수록곡의 믹싱을 다시 했고 새로운 믹싱은 베이시스트 존 엔트위슬이 맡았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멤버들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서였을 터다. 하지만 로저 달트리는 오히려 처음 발표된 음반의 믹스보다 O.S.T.의 리믹스 버전이 더 못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결국 [Quadrophenia]는 1996년 다시 한 번 믹싱이 이뤄지며 원본에서 부분적으로 묻혔던 로저 달트리의 보컬이 되살아났다. 그리고 후는 1996에 시작해 이듬해까지 쿼드로페니아 투어(Quadrophenia Tour)를 단행한다. 새로운 믹싱이 드디어 두 멤버에 들었던 게 가장 큰 이유였다. 2011년에는 5장으로 구성된 CD 박스세트가 발매됐다. 처음 녹음은 되었지만 앨범에는 수록되지 않았던 데모곡들이 추가되고, 수록곡 전체는 5.1 채널 서라운드 사운드로 다시 믹싱됐다. 그리고 이 음반은 다시 2014년 블루레이 디스크로 제작되었다. 그리고 원래 앨범을 제작했던 멤버들 가운데 남은 두 멤버인 피트 타운센드와 로저 달트리를 주축으로 다시 쿼드로페니아는 무대에 올라갔고 그 결과물은 같은 해 DVD [Quadrophenia - Live in London]로 발매됐다.


이쯤 되면 원작은 1973년에 발매됐지만, 그 의도가 오롯이 결과로 만들어진 건 40년을 넘겨서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결과가 만들어진 2014년. 피트 타운센드는 또 하나의 ‘도전’에 대한 발표를 한다. 바로 클래식 버전의 [Quadrophenia]인 [Pete Townshend's Classic Quadrophenia]다.


Pete Townshend's Classic Quadrophenia.

피트 타운센드가 1973년 후의 앨범 [Quadrophenia]를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다시 편곡하게 된 건 미래에 자신들의 곡을 연주하게 될 다른 뮤지션을 위해 풀 오케스트라 스코어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이 작업을 위해 그가 떠올린 인물은 [Tommy] 이후에 구상했던 또 하나의 록 오페라 ‘Lifehouse’를 30년 만에 온전한 앨범 [Lifehouse Chronicles](2000)로 만드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던 레이첼 풀러(Rachel Fuller)였다. 영국출신으로 인디팝 뮤지션이자 작곡가인 그녀는 1996년 런던 챔버 오케스트라(London Chamber Orchestra)에서 피트 타운센드와 만나, 그가 구상하고 있던 ‘Lifehouse’ 프로젝트의 어레인저로 [Lifehouse Chronicles]라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이후 레이첼 풀러는 후와 피트 타운센드의 음반에 작곡가로서도 그 이름을 남길 만큼 계속되는 유대관계를 가져왔다. 음악은 물론 인간적으로도.


사실 [Quadrophenia]는 록 오페라 음반임에도 불구하고 철저하게 세션을 배제하고 밴드의 형태로 녹음한 음반이었다. 대신 후반작업을 통해 존 엔트위슬의 브라스 파트가 더빙되었고, 피트 타운센드는 자신의 신시사이저 연주를 비롯한 여타 연주들을 겹겹이 레이어로 쌓아 복잡한 구상을 구체화 시켰다. 레이첼 풀러는 우선 이러한 후의 음악을 다시 분해해서 컴퓨터로 샘플링한 후 합성해서 데모 음원을 만들었다. 편곡을 할 때 피트 타운센드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한 것은 “후를 위해 작곡한 록 오페라의 ‘양식(modality)’와 ‘사명(mission)’을 둘 다 지키고, 1972년과 1973년 연주자 및 가수로서의 후의 역할에 대해 경의를 표하는 것”이었다.


“과거에도 같이 작업한 적이 있고, 둘이 잘 맞는다. 피트는 작곡가로서 천재적이다. [Quadrophenia]는 내게 아주 관현악적으로 들렸기 때문에, 작업하기에 수월했다. 앨범의 하모니와 멜로디에 아주 충실하게 편곡했다. 작품이 있는 그대로 완벽했기 때문에, 나만의 특징을 남기고 싶은 충동을 참아야 해서 가장 어려웠다”는 그녀의 이야기는 피트 타운센드가 원래 음반을 만들 때 얼마나 계획적이고 치밀하게 편곡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될 듯하다.





물론 새로이 분해, 결합된 오케스트라 편곡의 데모는 피트 타운센드에게 전혀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갔다. 비록 보컬이 입혀지지 않았지만 “음악이 웅장하고 리듬감 있게 진화하면서 언젠가는 멋진 발레음악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그는 이야기한다. 보컬을 맡은 알피 보(Alfie Boe)는 데모를 들은 도이치 그라모폰의 마크 윌킨슨(Mark Wilkinson)이 추천한 인물로, 우리에겐 ‘레미제라블’ 25주년 기념 콘서트에서 맡았던 장발장 역으로 잘 알려진 테너 겸 뮤지컬 배우. 그리고 연주는 로버트 지글러(Robert Zigler)가 지휘하는 로얄 필 하모닉 오케스트라(Royal Philharmonic Orchestra)가 담당했고, 런던 오리아나 합창단(London Oriana Choir)이 가세해 웅장함을 더했다.


전체적으로 피트 타운센드와 록계의 영원한 반항아 빌리 아이돌(Billy Idol), 그리고 영화 ‘Quadrophenia’에서 지미 역을 맡았던 필 다니엘스가 참여하고 있긴 하지만 보컬리스트로서 그들의 역할은 극히 미미하다. 그리고 후의 [Quadrophenia]가 익숙한 록 팬이 듣더라도 어쩌면 전혀 새로운 음악을 듣고 있는 듯 철저하게 클래식 혹은 ‘록’이라는 단어를 뺀 말 그대로의 오페라를 듣고 있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1960년대 말에서 현재까지 하나의 유행처럼 내려오는, 록 밴드가 자신의 히트곡을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스타일과는 전혀 다르다는 얘기다. 어쩌면 그런 경우보다는 존 로드(Jon Lord)나 로저 워터스(Roger Waters)가 했던 것처럼 처음부터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을 작곡한 경우에 더욱 근접하게 들린다. 원곡들이 이미 록 음반의 수록곡으로 발매되었고, 빌보드 팝 차트에 랭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피트 타운센드는 지금도 새로운 대작을 위해 계속되는 작업을 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과거에 발표했던 모든 프로젝트의 결정판을 엮을 계획도 가지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이번에 발표되는 [Pete Townshend's Classic Quadrophenia] 역시 그 계획의 일환일 수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런 혹은 또 다른 형태로 편곡된 과거의 걸작들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원래의 의도를 최대한 되살리면서 그간의 노하우와 아쉬웠던 점들을 계속해서 보완한 이러한 작업들을 접하는 건 언제나 가슴 벅차고 흥분되는 일이다. 특히 이번 음반과 같이 그 결과물 역시 출중할 경우에는 더욱 더. (20150619)


글 송명하 (파라노이드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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