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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ER'S MUSIC LIFE/LINER NOTES (DOMESTIC)

신중현 [그동안 / 겨울공원]

엽전들, 세 나그네의 하드록 성향을 계승하는 신중현의 마지막 창작 앨범.

 

신중현은 1979년 12월 해금과 함께 외압에 의해 중단됐던 음악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우선 대 편성 밴드 뮤직파워를 결성해 기존에 발표했던 곡을 새롭게 편곡한 첫 독집을 1980년 발표했다. 신중현과 뮤직파워는 더 멘 시절의 명곡을 다시 부른 ‘아름다운 강산’으로 티브이 순위 프로그램 ‘가요톱텐’ 상위권에 오르며 대부의 귀환을 확실하게 신고했다. 인기의 여세를 몰아 1981년에는 ‘국풍 81’, 강변가요제 게스트 등 커다란 무대를 통해 관객과 직접 소통했다. 함중아와 결별하고 한 장의 음반을 더 발표한 인순이는 신중현과 뮤직파워를 지원군으로 펄 시스터즈의 대표곡 ‘떠나야할 그 사람’을 디스코 풍으로 편곡해 히트 차트에 상륙했다. 뮤직파워와 인순이의 음반 수록곡을 살펴보면 가요계에 복귀한 신중현의 활동은 1970년대 후반부터 대세 음악으로 등극한 디스코 음악과 1970년대 이미 자신이 발표했던 음악의 접목이 주를 이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내가 쏜 위성’과 같이 헤비메탈을 향한 본격적인 접근을 보여줬던 뮤직파워의 두 번째 음반도 있지만, 이 음반 역시도 대부분의 수록곡은 이미 발표했던 곡을 편곡한 버전들이다.

신중현이 소위 대마초 파동으로 활동 정지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했던 음악 활동은 신중현과 엽전들이다. 앞서 살펴봤던 해금 이후 신중현의 활동에서 보여준 음악은 엽전들의 음악과 많은 차이가 있다. 새로운 음악에 대한 욕심일 수도 있고, ‘업소’라는 생업을 외면할 수 없어 선택한 신중현의 또 다른 자구책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신중현은 이러한 메이저 활동과는 다른 채널에서 엽전들을 계승한 자신의 창작욕을 불태웠다. 데뷔 이후 처음으로 밴드의 이름이 아니라 신중현이라는 이름만으로 발표한 공식앨범 [기다려요 / 당신은 떠나도](1980)와 1983년에 발표한 신중현과 세 나그네의 유일한 음반, 세 나그네가 연주로 참여한 뮤직파워 보컬 출신 박점미의 솔로 앨범 [몰라 / 좀 더 가까워졌으면](1983)으로 이어진 일련의 흐름은 엽전들 시절 들을 수 있었던 하드록 성향의 신중현 사운드를 복기시킨다. 신중현의 첫 솔로 앨범에 참여한 밴드와 세 나그네는 편성까지 엽전들과 동일한 3인조 라인업이다. 또 앞서 열거한 음반들은 기존의 곡을 리메이크하지 않고 신곡으로 꾸몄다. 그러나 신중현의 이 활동은 동시대 뮤직파워 활동에 비해 주목을 끌지 못했다. 

5년이 지난 뒤 신중현은 뮤직파워도 세 나그네도 아닌 자신의 이름을 내건 두 번째 솔로 앨범 [그동안 / 겨울공원](1988)을 발표했다. 신중현은 자서전 <내 기타는 잠들지 않는다>(2003)에서 이 음반에 대해 “세 나그네 활동을 접은 뒤 한동안 방황을 했다. 그러다보니 공백 기간이 너무 길어졌다. 개인적인 침체기이긴 했지만 곡은 쓰고 싶었다. [그동안 / 겨울공원]은 그때 낸 독집이다. 내가 좋아하던 음악성을 구현하려 했다. 그러나 내가 활동을 하지 않던 시기라 고정 멤버가 없었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을 데려와 작업을 하다 보니 전체적으로 원하던 음악성을 살리지 못했다. 더군다나 레코드 업계나 가요계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더 힘들어졌다. 그때 락월드를 폐쇄하고 우드스탁을 만들었다. 지하세계로 접어든 것이다.”라고 기술했다. [그동안 / 겨울공원]은 뮤직파워로 대변되는 신중현의 메이저 활동보다 또 다른 채널에서 보여준 첫 솔로작과 세 나그네 관련 음반의 연장선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지금까지 신중현의 마지막 밴드활동으로 기록된 세 나그네 활동 이후 신중현은 이태원의 ‘라이브’, 역시 이태원 태평극장을 개조한 헤비메탈 전용 클럽 ‘록 월드’를 운영했고, 솔로 두 번째 앨범이 발표된 1988년에는 문정동으로 무대를 옮겨 ‘우드스탁’을 개업했다. 전문 공연장이 전무하다시피 했던 그 때 이 클럽들에는 수많은 당시 로커들이 거쳐 갔다. 앨범에 특별히 명기되진 않았지만, 노재명이 쓴 신중현 관련 서적인 <신중현과 아름다운 강산>(1994)을 보면 음반에 참여한 뮤지션이 신중현 외에 기타에 최구희, 베이스 기타에 이환규, 드럼에 주찬권 그리고 키보드에 허성욱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신중현이 운영하던 클럽을 거쳐 갔던 괴짜들, 믿음 소망 사랑, 그리고 들국화에서 활동한 멤버다. 물론 이전까지 신중현이 발표했던 음반과 마찬가지로 다른 연주자의 개성은 도드라지지 않고 묵묵히 신중현의 음악을 보조하는 역할에 무게를 두고 있다.

앨범의 오프닝트랙 ‘그동안’은 여러모로 신중현과 세 나그네의 ‘광복동 거리’를 연상시키는 묵직한 슬로우 넘버다. 오랜만에 등장한 앨범의 첫 곡에 등장하는 가사 “그동안 기뻤어. 그동안 즐거웠어. 난 이제 가지만 그때를 못 잊겠어.”라는 가사는 굳은 표정으로 톱으로 일렉트릭 기타를 썰고 있는 재킷 아트워크와 겹치며 의미심장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살짝 살짝 드러나는 지미 헨드릭스의 영향력이 흥미로운 ‘미소’나 묵직한 기타 리프와 보컬이 유니즌이 인상적인 ‘험한 길’, 단순하게 반복되는 기타 리프에 비해 종횡무진 이어지는 솔로 기타의 향연을 들을 수 있는 ‘큰 새 (너의 세계 찾아가라)’ 등은 크게 볼 때 엽전들 시절 ‘미인’으로 완성했던 타령조의 보컬 멜로디 라인에 서구식 록을 접목한 신중현식 록의 연장선 아래에 있다. 초기 신중현의 활동이나 뮤직파워와 같이 다른 보컬리스트가 불렀더라면 더욱 어울렸을법한 가요풍 ‘겨울공원’이나 댄서블한 ‘시골소녀’가 있는가 하면 헤비메탈 사운드를 담은 도도한 삼연음 진행의 ‘스쳐만 가’가 담기며 여타 신중현 관련 음반들과 비교하더라도 다채롭고 자유로운 음악성이 돋보인다. 키보드의 스트링 사운드가 이질적으로 다가올 때도 있지만, 보컬파트에 힘을 빼고 기타가 리드하는 음악으로 전체적인 사운드의 균형을 맞췄다.

 


이 음반 이후 신중현은 몇 장의 솔로 앨범을 더 발표했지만 대부분 기존에 발표했던 곡을 다시 어레인지한 음악을 담고 있다. 1997년에 발표한 [김삿갓]은 그 가운데 유일하게 새로운 창작곡들로 꾸몄지만 성격이 조금 다른 앨범이고, 엽전들을 계승했던 하드록 성향의 창작곡으로 가득 채운 앨범은 지금까지 [그동안 / 겨울공원]이 마지막이다. 앞서 오프닝트랙 ‘그동안’의 가사를 인용했지만, 엔딩트랙인 ‘당신이 가야하면’에서는 다시 “당신이 가야하면 말없이 이대로 가요. 우리의 지난날을 생각하며 남아있게 해줘요”라는 가사가 등장한다. 의도했던 부분이었는지는 몰라도 어쩌면 이 가사들은 신중현이 처해있던 당시의 분위기를 떠오르게 만든다. 전반적인 음악의 트렌드도 바뀌었을 뿐더러 해금 이전의 히트곡 제조기였던 신중현을 기대했던 음반사나 기획사에서는 처음 해금됐을 때와 다른 태도와 요구로 그를 대했다. 결국 신중현은 새로운 활동의 거점으로 생각했던 이태원에서 문정동으로 보금자리를 옮겨 은둔생활에 들어간다. 톱자국이 그대로 보이는 기타를 안고 모든 것을 내려놓은 표정으로 앉아있는 재킷 뒷면의 사진은 당시 그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 보인다.

1980년대 중반에서 1990년까지 국내에도 서구 음악에 영향 받은 젊은 헤비메탈 밴드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지상파 방송보다는 활발한 공연 활동을 통해 잠깐 동안의 신(scene)을 형성했다. 신중현은 같은 시기 라이브 클럽을 직접 운영하며 신의 배경을 자처하는 한편 이 한 장의 음반으로 우리의 록 음악이 어느 한 순간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척박한 환경 속에서 계승과 발전을 통해 이루어 온 것임을 증명해 보였다. 신중현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국내 ‘록의 대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그를 이야기할 때 이 음반에 대한 언급을 찾아보는 건 힘들다. 하지만 [그동안 / 겨울공원]은 소위 ‘기타 산조’와 함께 새로운 영역으로 빠져들게 되는 신중현의 음악 이전에 엽전들의 음악적 노선을 계승한 마지막 기록이라는 측면에서 분명 다시 평가되어야 마땅할 앨범이다. (20201203)

글 송명하 (파라노이드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