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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ER'S PRIVATE LIFE/BOOKSHELF

김인숙의 ‘안녕, 엘레나’

김인숙의 동명 소설집 가운데 첫 번째 단편소설이다. 사실 이 책을 산 이유는 제목 때문이다. ‘안녕, 엘레나’. 토토(Toto)의 3집 앨범 [Turn Back]에 담긴 ‘Goodbye Elenore’가 떠올랐다. 신기하게도 뮤직비디오를 좀처럼 접할 수 없었던 시절, 지상파 티브이를 통해서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던 곡. 물론 소설과 이 노래는 전혀 관계가 없다. 

소설은 주인공 소망이 직장을 그만두고 해외로 여행을 떠나는 친구에게 이복동생을 찾아 달라는 부탁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로 부터 ‘엘레나’라는 이름을 가진 이들의 사진이 이메일로 도착한다. 이들의 사진을 보고 인화해서 벽에 붙이며 소망은 아버지에 대해 생각한다. 어쩌면 이 소설은 아버지를 이해하고 용서하는 과정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친구가 보내온 사진 중에는 엘레나가 아니라 수니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도 있었다. 수니, 혹은 순이, 아니면 순희. 엘레나, 혹은 ‘에레나’와 연결되는 건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었구나.

(전략) 야, 여기에 엘레나라는 노래가 있어. 친구가 넘겨주는 노래방 책자에 과연 그런 제목의 노래가 있었다. 아는 노래가 아니어서, 친구와 나는 화면에 뜨는 가사만 보았다. 그날밤 극장 앞에서 그 역전 카바레에서, 보았다는 그 소문이 들리는 순이...... 가사는 그렇게 시작되어, 이름조차 엘레나로 달라진 순이, 순이로 끝이 났다. 밤을 새우면서 실패 감던 순이가, 다홍치마 순이가, 이름조차 엘레나로 달라진 순이, 순이...... 노래의 정확한 제목은 ‘엘레나가 된 순희’였다. (후략)



같은 노래인지는 모르겠지만 대학 시절 서클 동기 택열이가 생각났다. 목요일, 서클 정기모임이 끝나면 학교 막걸리 동산, 포니 동산을 찾아 막걸리로 뒤풀이를 하며 거나하게 취하면 돌아가며 노래를 불렀다. 택열이가 목청을 가다듬고 “쿵 리아카, 쿵 구루마, 쿵 딸딸이, 쿵 삐그덕, 쿵짜자 쿵짝, 쿵짜자 쿵짝, 싸롱에 몸을 던지고 몸 파는 양공주라고...”라고 추임새와 함께 시작했던 애창곡은 언제나 언제나 술자리의 흥을 돋우었다. 

얼마 전 자전거를 타다가 무언가에 이끌린 것처럼 대학 캠퍼스를 찾았다. 막걸리 동산, 포니 동산은 없어진 지 오래고, 넓고 여유로웠던 잔디밭과 광장은 네모반듯한 건물에 자리를 내주었다. 학교에 다닐 때도 난 언제나 겉돌고 있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제는 완전히 이방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우정의 집 국수 200원, 학생회관 짜장면 350원, 그리고 백반 500원. 뮤직비디오 속 토토의 모습처럼 이제는 다시 올 수 없는 그 시절.

1988년까지 발표된 토토의 앨범 일곱 장에는 모두 여자 이름이 들어간 제목이 있다. 1집에는 안젤라, 2집엔 로레인, 3집에는 바로 김인숙의 소설을 사게 만들었던 엘리너, 4집엔 로재너, 5집엔 카르멘과 홀리얘나, 6집엔 레아, 그리고 7집엔 파멜라와 안나가 있다. 모두 데이비드 페이치(David Paich)가 쓴 곡이다. 데이비드 페이치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노래를 만든다고 들은 것 같은데, 소망의 아버지가 원양어선을 타며 여러 나라에서 만난 또 다른 엘레나의 어머니들인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