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의 새로운 음반이다. 밴드 결성부터 따지자면 40년이 가까운 시간이 흘렀고, 첫 번째 앨범이 발표된 시점으로 생각해도 33년이 되었다. 두 번째 음반이 1983년에 발표되었으니 30년 만에 나오는 음반. 해외에서도 이러한 경우는 그렇게 흔하지 않지만, 국내를 생각해보면 떠오르는 뮤지션이 없다. 물론 현재 무당의 멤버 가운데, 예전에 활동했던 멤버는 리더인 최우섭 밖에 남지 않았지만, 무당의 역사는 그의 음악 여정과 다르지 않았다는 점은 그의 이력을 조금만 살펴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헤비메틀의 선구자 최우섭, 그리고 무당
최우섭은 원래 1968년 무렵 라스트 찬스(Last Chance)에서 정식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그는 베이스 기타를 연주했고, 김태화, 곽효성, 이순남 등이 함께 활동했다. 라스트 찬스는 알려져있다시피 당시 국내에서 가장 하드한 사운드를 구사하는 밴드였고, 긴 장발로 이름을 날렸다. 이후 최우섭은 라스트 찬스를 탈퇴해 자신의 밴드 와일드 파이브(Wild Five)를 결성한다. 와일드 파이브의 주 무대는 당대를 풍미했던 클럽들인 실버타운, 오비스 캐빈 등이었고, 산타나의 음악을 주로 연주했다. 하지만, 1970년대 초반 국내에서 락음악을 하는 일은 그다지 녹록치 못했다. 1970년대 중반 이전 음악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떠난 최우섭은 현지에서 밴드 무당을 결성한다. 그때가 1975년이고 멤버는 김태화, 정진 그리고 미국인 드러머 자니(Johnny)로 구성되었다. 이렇게 결성된 무당은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시애틀, LA를 돌며 교민을 상대로 공연을 펼쳤는데, 시애틀 공연에서 키보디스트 장화영이 밴드에 합류하게 된다. 장화영은 이후 H2O활동으로 알려진 장영의 본명이다.
이렇게 활동하던 중 보컬을 맡은 김태화는 1979년 서울국제가요제에 ‘바보처럼 살았군요’란 곡으로 출전하기 위해 귀국했고, 이후 솔로 활동으로 인정을 받게 되며 다시 무당에 합류하기가 힘든 상황이 되었다. 당시 미국에 남아있던 최우섭은 무당 활동을 하며 공연 프로모터의 일을 겸하게 되었는데, 서병후의 권유로 레이프 가렛의 국내 공연 유치를 추진하게 된다. 공연의 오프닝으로는 사랑과 평화를 가장 먼저 물망에 올렸지만 레이프 가렛의 음악과 너무 달랐기 때문에 자신의 밴드 무당을 이끌고 국내에 입성하게 된다. 물론 당시 무당은 정식 멤버로 보기 어려운, 일종의 급조된 밴드였지만 몇 차례 공연을 가진 후에는 관객석에 무당의 이름을 적은 피켓이 등장할 정도로 반향을 일으켰다. 이러한 무당에게 곧바로 음반사의 러브콜이 들어왔다 당시 오아시스 레코드의 문예부장 석광인이었다.
최우섭 자신은 급조된 멤버들이 막무가내로 만든 음반이었기 때문에 아쉬움이 많이 남는 음반이라고 밝힌 바 있긴 하지만, 당시 국내 실정으로 본다면 획기적인 음반임에 틀림없었다. 몇몇 밴드를 제외한다면 캠퍼스 밴드의 연장선과 같은 음악을 하거나, 변종된 트로트를 연주하는 밴드들이 대부분이던 국내 음악판에 서구에서나 들을 수 있는 락사운드를 선보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창작자들의 기를 꺾곤 했던 사전 심의 제도는 해외에서 들어온 밴드라고 해서 예외의 대상은 아니었다. 의욕적으로 창작했던 곡들이 그 의미를 잃게 되고, 그러한 현실에 맥이 빠진 최우섭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3년만에 음반사와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귀국해 두 번째 음반을 발표한다. 바로 ‘멈추지 말아요’가 들어있는 음반이다. 서구의 하드락과 국내의 정서를 절묘하게 결합한 락발라드 스타일의 이 곡은 국내 하드락 초창기의 명곡으로 이후 이현우에 의해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두 번째 음반을 발표한 뒤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한 무당은 우선 낙후되었던 국내 공연문화를 새롭게 만드는 데 앞장서는 동시에 흩어져있던 음악 동료들을 모으고, 후배들을 발탁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TV활동을 통해서는 당시까지 볼 수 없었던 말 그대로 쇼킹한 스테이지를 선보였으며, 한국판 우드스탁이라고 할 수 있는 용평 페스티벌, 남이섬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로 우뚝 섰다. 이태원을 주 무대로 활동하며 연습실 겸 라이브 클럽을 열어 초기 부활이나 시나위가 합주실로 썼다는 점도 잘 알려진 사실이고, 그 공간을 중심으로 이중산, 배수연, 김광석, 김석규 등 실력파 뮤지션들이 다시 모일 수 있었다. 무당이 고문격으로 활동했던 메틀 프로젝트에서는 뮤즈에로스, 블랙 신드롬의 전신 밴드도 있었다.
하지만 의욕은 결실로 이어지지 못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결과에 낙담하고 세상과 타협하는 자신의 모습에 실망한 최우섭은 어느 날 TV쇼를 마치고 멤버를 모은 자리에서 “오늘로 끝”이라며 밴드의 해산을 통보했다. 그렇게 길지 않았던 무당의 역사는 끝이 난 듯 보였다.
30년만의 새 앨범 [Past & Future Vol.1]
이번에 발표되는 무당의 음반은 최우섭을 중심으로 김현모(B)와 이도연(D)과 같은 젊은 피가 수혈되었다. 물론 작곡에서부터 모든 과정을 지휘했던 인물이 최우섭이기 때문에 30년이라는 시간을 굳이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2집의 연장선이라고 할 만큼 예전 무당의 특징들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음악을 담았다. 그 특징이란 강렬한 음악 뒤에 자리 잡은 보컬의 유려한 멜로디라인이다. 30년이라는 시간의 흐름 때문에 최우섭의 목소리의 변화를 우려했던 이들이라도 첫 곡을 듣는 순간 안도의 한숨을 돌릴 수 있을 것이다.
데뷔앨범 수록 버전이 도입부 키보드 연주로 사이키델릭한 분위기의 곡이었고, 두 번째 음반 수록 버전은 본격 하드락 트랙으로 변모해 공연에서는 지해룡의 오고와 한봉의 드럼 배틀을 볼 수 있던 버전이었던 ‘무당’은 이번 음반에 ‘Magic Dance’라는 타이틀로 다시 수록되었다. 8분이 넘는 러닝타임을 자랑하는 이 곡은 두 번째 음반 수록곡인 ‘그 여름을’의 메인 리프와 ‘무당’의 멜로디 라인을 결합시켰다. 거기에 영롱한 신서사이저 도입부와 사물을 등장시키며 원래 의도였던 국악의 느낌과 락음악을 접목했다. 2집의 명곡 ‘멈추지 말아요’도 다시 수록되었다. 일렉트릭 기타로 시작하는 전형적인 락발라드 형태를 뗬던 2집 수록 버전에서 크게 달라지진 않았지만, 어쿠스틱 기타의 도입부 연주와 흘러가듯 유려해진 진행에서는 연륜이 묻어난다. 앞서 발표되었던 ‘무당’이나 ‘멈추지 말아요’의 가사가 이번 음반 수록 버전과 다른 이유는 최우섭이 인터뷰를 통해 밝혔던 것처럼 ‘사지가 절단되었던 곡’의 원본 가사를 수록했기 때문이다. 이미 이전 곡에 익숙하더라도 비교해서 감상하는 재미가 있다. 신곡 ‘Game Over’는 공격적인 기타 리프를 가진 본격 하드락 트랙이며, 락커빌리 스타일 ‘백수탈출’의 현실적인 가사도 흥미롭다.
물론 아쉬움은 있다. 휴지기가 오래였던 만큼 더 많은 곡을 수록한 정규 앨범을 발표했으면 어땠을까하는 바람 말이다. 사지만, 이 역시도 밴드는 간과하지 않은 듯하다. 음반의 타이틀에 붙은 ‘Vol.1’이라는 표시는 이 한 장의 음반은 그 시작의 의미라는 것에 대한 부연설명이 되고 있으니 말이다. 잃어버렸던 가사를 다시 찾았다는 커다란 의미 외에, 간과되었던 국내 하드락의 뿌리를 재조명 할 수 있다는 점. 또 출발 당시의 음악성을 이어가고 있는 연륜 있는 락커들이 절대 부족한 현실 가운데, 용기 있는 발걸음을 다시 떼어 놓았다는 점 등 여러 가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음반이다. (20130525)
글 송명하 (파라노이드 편집장)
'CONER'S MUSIC LIFE > LINER NOTES (DOMESTIC)'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버닝 햅번, 원숙해진 버닝햅번 그 내면의 성찰, 그리고 어느때보다 공격적이고 강한 사운드 (0) | 2013.12.10 |
---|---|
모던 스팟, 사랑을 속삭이듯 포근한 크리스마스 음악 (0) | 2013.12.10 |
김태곤, 창작욕 왕성했던 실험으로 충만한 데뷔앨범 (0) | 2013.09.22 |
들국화 II, 데뷔앨범의 빛에 가려버린 비운의 음반 (0) | 2013.09.17 |
김두수 / 보헤미안, 보헤미안이 남긴 포크 프로그레시브의 걸작 (0) | 2013.09.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