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뮤지션들도 마찬가지였지만, 2005년 가졌던 안지홍님과의 인터뷰는 개인적으로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인터뷰였다. 언제나 국내에는 왜 프로그레시브락 뮤지션이 없을까 했던 많은 질문들에 확실한 답을 해 줄 수 있던 밴드는 이미 잘 알려진 동서남북보다 오히려 그가 몸담았던 시나브로가 더 가까웠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러한 막연한 믿음이 실제로 바뀌게 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경기도 양평의 한 전원주택. 기르고 있는 30마리가 넘는 개들보다 내 눈에 먼저 들어온 건 지하에 마련된 작업실이었다. 자작한 기타를 비롯, 국악기에 이르기까지 말 그대로 수 많은 악기들. 웬만한 스튜디오 이상의 장비들이 원목으로 만들어져 특화된 공간에 자리잡았던 곳. 서사적인 정치 드라마 '제 5 공화국'의 음악은 바로 이 공간에서 만들어졌던 것이다.
그의 작업은 '알 수 없는 기억'이라는 프로젝트 밴드의 활동과 드라마 음악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드라마가 바로 앞서 언급한 '제 5 공화국'이고, 프로그레시브락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심은하 주연의 'M' 역시도 그의 솜씨다. 얼마 전 우연히 웹 서핑을 통해 Metallatem이라는 평균 연령 13세의 메틀 밴드의 동영상을 봤다.
많은 사람들이 천재 소년... 이라면서 관심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내 눈에 들어온 영상의 배경은 바로 원목으로 만들어진 안지홍님의 작업실 모습이었고, 악곡의 전개에서 기타, 키보드의 연주에 이르기까지 그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는 곡이었다.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목소리 변조 역시 'M'을 통해 시도했던 그의 실험과 동일했다.
인터뷰의 끝 부분에서 언급했던 2006년의 새로운 프로젝트와는 조금 차이가 있지만, 어쨌든 이 정도면 전혀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프로젝트임에 틀림없다. 끝없는 그의 진취적 창작욕에 박수를 보낸다. 조만간 다시 찾아가리라는 막연한 다짐을 해 보면서...
꼭지명 : PROGRESSIVE ROCK
부제 : ‘제 5공화국’으로 재조명 받는 국내 최초의 프로그래시브록뮤지션
타이틀 : 안지홍
전문 : 경기도 양평의 전원주택에 살면서 삽살개를 비롯한 32마리의 개를 키우고 있는 삽살개 보존협회 회원, 오래 전 이야기지만 국내 최초로 64메가디램을 발명한 공학박사 안지홍. 그는 얼마 전 종영된 TV 시리즈 ‘제 5공화국’의 음악을 담당했던 뮤지션이다.
글 송명하 수석기자 | 사진 전영애 기자
주말 밤, 많은 국민들에게 브라운관 앞을 숨죽이며 지키게 만들었던 ‘제 5공화국’은 물을 만난 이덕화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가 돋보이는 드라마였지만, 그 뒤에 흐르는 배경음악이나 독특한 분위기의 오프닝 음악 역시도 드라마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의 음악적 여정을 본인의 설명과 함께 살펴보도록 하자.
시나브로 시절
시나브로는 안지홍이 김광민과 함께 대학시절 활동했던 그룹이다. 아쉽게도 시나브로의 독집음반은 발매되지 않았지만, 이들이 1981년 가요제에 참가할 당시 발표했던 곡들은 각각 1981년 대학가요제와 국풍 81 젊은이의 가요제 기념음반에 수록되었다. 젊은이의 가요제에 참가했던 곡은 ‘을지문덕’이라는 서사적인 곡으로 곡의 중반 이후부터 안지홍과 김광민의 솔로 배틀을 들을 수 있으며, 대학가요제 참가곡인 ‘안개’는 전형적인 헤비 심포닉록 넘버이다. ‘노래’위주가 아니라, 곡의 구성이나 연주를 위주로 참가했던 몇 안되는 진보적 성향의 곡들이었다.
“김광민과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가깝게 지내던 사이었습니다. 어느 날 퀸의 ‘Love Of My Life’ 악보를 그리고 있는데, 김광민이 그걸 보고 말을 걸어왔죠. 그날 그의 집에서 음악을 들었던 것이 아마 이후 그룹을 만들게 되는 시발점이 되었을 겁니다. 김광민이 친구였던 이훈석을 소개시켜줬고, 이훈석이 초등학교 동창 문관철을 영입시켰죠. 가요제에 참가할때에는 사실 드러머가 없어서, 당시 밴드부에 있던 친구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저는 원래 클래식 기타를 쳤는데, 김광민이 한상원을 소개시켜줬습니다. 그와 함께 연주하며 록의 스케일을 익혔죠. 가요제에서 입상했던 것은 대학 3학년 때의 일이지만, 사실 1학년 때 출전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김광민이 만들었던 펑키한 곡으로 참여했었는데, 예선에서 낙방을 했죠.”
원맨 프로젝트 ‘알 수 없는 기억’
동아기획을 통해 1992년 발매된 알 수 없는 기억의 음반은 당시로 볼 때 획기적인 음반이었다. 비록 음반사에서 몇몇 실험적 성향이 짙은 곡들의 수록을 꺼려해서 누락되긴 했지만, 이후 국내 드라마 음악의 역사를 다시 쓰게 되는 안지홍의 음악세계가 구체화되기 시작한 음반이다. 지금까지도 그가 드라마 음악을 맡을 때 사용하는 이름이나, 그의 이메일 아이디 역시 바로 알 수 없는 기억이다.
“미국 유학시절 원 맨 밴드 형식으로 녹음한 음원들과 삼성에서 연구원으로 있을 당시 녹음한 곡들로 구성된 음반입니다. 마치 홈 메이드 쿠키와도 같이 혼자의 힘으로 한 16트랙 녹음을 마스터링 없이 발매한 음반으로, 음질 면에서는 아쉬움이 남죠. 유학시절 느낀 점은 최근 들어 점점 음악이 어려워지고 있지만, 진정한 명곡들은 음악이 어려운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실제로 우리가 록의 명곡이라고 하는 곡들은 그렇게 어려운 곡들이 아니죠. 구성이 중요하다는 점을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이 음반을 통해서도 간헐적으로 시도했지만, 이후 드라마음악을 하면서 정립해 나가게 되는 부분이죠.”
최초의 정치드라마 음악 ‘제 3공화국’에서 ‘제 5공화국’ 까지
미디로 표현한 취주 파트 음색과 찰흙으로 빚은 인형의 모습이 독특한 인상을 남겼던 제 3공화국은 안지홍이 처음으로 맡았던 드라마 음악이다.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음악세계는 개성있는 드라마들에 그의 음악이 수록되는 계기를 만들게 된다.
“5.16이 과연 쿠테타냐, 아니면 혁명이냐 하는 드라마의 주제에서 착안한 것이 군가풍의 행진곡 리듬에 브라스파트를 입히는 일이었습니다. 대신 기존 행진곡과는 달리 마이너 음계를 사용했죠. ‘Veritas Non Vitiari (진실은 왜곡될 수 없다)’는 라틴어 제목의 제 4공화국 음악은 록이 가진 비트에 합창을 넣어서 극적인 효과를 만들었고, 이번 제 5공화국의 음악 ‘Deus Non Vult (신은 그러지 않을 것이다)’에서는 이전까지 시도했던 브라스파트에 합창과 록 비트를 섞으면서 메탈풍의 강한 베이스 드럼 라인을 삽입했습니다. 라틴어의 제목과 가사를 사용하는 것은 드라마에서 다루는 내용이 우리나라라는 한정된 공간을 벗어나는 진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학구적이고 철학적인 용어를 사용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였습니다.”
‘M’ 그리고, 기타 영화나 드라마 음악들
그 소재 면에서부터 호기심을 자아내기 충분했던 드라마 M은 특히 안지홍의 음악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빛을 발했다. 그가 직접 발탁한 여성싱어 최윤실의 목소리는 전성기 애니 헤이슬럼을 능가할 정도의 순수함과 깨끗함을 가지고 있었고, 프로그레시브록 성향 가득한 안지홍의 음악과는 너무나 잘 어울렸다.
“기존에 우리나라에 없던 장르의 드라마였기 때문에 무척이나 재미있게 작업했던 시간이었습니다. 편성이나 콘셉트 등 모든 것을 저 혼자 맡아서 했고 아날로그 테이프로 백워드 마스킹을 한 후에 다시 반주를 입히는 등 새롭고 독창적인 시도도 많이 했죠. 제가 만든 목소리 변조음이 원래 계획에 없던 드라마에 삽입되기도 했습니다.”
이 외에도 ‘한 뼘 드라마’, ‘이혼하지 않는 이유’에서는 제 3국어로 된 가사로 타이틀을 만들기도 하고, ‘그들의 포옹’을 비롯 수많은 드라마 음악에 참여했다. 최재훈의 ‘함께 있으면 좋을 사람’으로 유명한 ‘고스트 맘마’나, ‘손톱’ 등의 영화음악 역시도 그가 담당한 음악들이다. 라틴어, 독일어나, 스페인어 등 3국의 가사가 등장하는 이유는 해외시장 진출을 생각하는 그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그가 담당한 음악들은 클래식의 영향으로 하프시코드나 플루트 등 고악기의 사용과 합창을 중요시한다는 점. 또 국악을 포함한 월드뮤직의 영향력을 느낄 수 있으며, 거의 스스로가 만들기 때문에 샘플링 음원이 많이 사용되지만 기계적이거나 차가운 감정보다는 인간적이고 따스한 감성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음악에 있어서도 드라마와 같은 구성을 중요시하는 그의 음악성 때문일 것이다.
안지홍은 내년에 새로운 프로젝트를 구상중이다. 그가 남긴 수많은 곡들이 있지만, 음반에 수록되지 못해 아쉬웠던 팬들에게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최윤실이나 김명기와 같은 탁월한 보컬리스트를 만난 게 커다란 행운이었다고 이야기하는 그의 새로운 프로젝트로 지금까지 함께 해왔던 아티스트들과 함께, 수많은 그의 실험들을 음반으로 만날 수 있을 듯하다. 안지홍의 끝없는 창작력이 프로그래시브록의 불모지와도 다름없는 국내 록 필드에 있어서 시원한 단비가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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