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을러서 석달동안 포스팅을 못했다 ㅠㅠ
송명하의 테마음악 파일 #6
음악, 좋아하길 정말 잘했다.
글 송명하 (트위터 @MyounghaSong)
컴퓨터 혹은 스마트폰을 통해 우린 언제나 소셜네트워크에 쉽사리 노출되며, 그렇게 만들어진 가상의 공간을 통해 그물망처럼 엮인 주변의 사람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한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컴퓨터의 전원을 넣어 ‘로그인’을 하지 않거나, 스마트폰의 배터리가 모두 방전되어 느끼는 불안감은 이러한 지속적 관계에서 고립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정작 손을 내밀어 그들과 교감하려할 때 눈앞에 볼 수 있는 건 액정 화면 속 한 치의 오차 없이 가지런한 글씨들이며, 손끝으로 전달되는 것은 언제나 키보드나 터치 패널의 차가운 느낌뿐이다. 예전 우리의 책상 위엔 컴퓨터나 전화기 대신 커다란 책꽂이와 필기구가 빽빽이 꽂힌 연필꽂이, 그리고 연필과 공책의 따스한 감성과 함께 조그만 카세트로 들었던 음악들이 있었다. 때문에 활동했던 뮤지션들이 오랜만에 발표하는 신보들은 오래전 친구를 다시 만나는 듯 반갑다. 김훈은 『밥벌이의 지겨움』에서 “음악은, 그리고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인간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결핍의 소산인 것만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결핍의 소산인 음악이 다시 인간의 결핍을 메워준다. 음악 좋아하길 정말 잘했다.
Whitesnake / Forevermore (에볼루션뮤직)
1970년대 중반 이안 길런(Ian Gillan)에 이어 딥 퍼플(Deep Purple)의 3기 보컬리스트로 가입한 데이빗 커버데일(David Coverdale)은 그의 가입 이전까지 스트레이트한 하드록을 선보이던 딥 퍼플의 음악에 마치 배드 컴퍼니(Bad Company) 풍의 흑인적 감성을 이식시켰다. 물론 이러한 부분이 결과적으로 딥 퍼플 분열의 실질적 원인 가운데 하나로 작용했지만, 어쨌거나 데이빗 커버데일은 딥 퍼플 해산 이후에도 이러한 음악성을 고수하며 솔로 활동을 거쳐 화이트스네이크라는 자신의 밴드를 결성한다. 지난 2008년 발표된 <Good To Be Bad>는 데뷔앨범이 발표된 지 무려 30년 만에 발표한 공식 10번째 앨범이다. 전반적으로 1987년에 발매된 셀프 타이틀의 걸작앨범을 연상시키는 음악을 담았던 이 앨범으로 자신감을 추스른 화이트스네이크가 다시 3년 만에 11번째 앨범 <Forevermore>를 발표했다.
하모니카를 동반한 과거 화이트스네이크의 블루지한 노선과 현대적 느낌의 절분된 기타리프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강력한 하드록 넘버 ‘Steal Your Heart Away’를 필두로 거침없이 터져 나오는 사운드의 홍수는 지난 앨범이 매끈하게 잘 빠진 앨범이긴 했지만, 과거 밴드의 명성에 의지한 나머지 현재 밴드 멤버들의 매력을 제대로 뽑아내지 못했다는 일부의 평가를 불식시킬 정도로 화이트스네이크의 현재 모습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육중한 사운드의 레이어들 사이에 의도적으로 배치한 어쿠스틱 넘버들인 ‘One Of These Days’, ‘Fare The Well’ 등도 상큼하며, 명곡 ‘Is This Love’를 연상시키는 슬로우 넘버 ‘Easier Said Than Done’의 여유로운 감성도 좋다. 물론 음반의 베스트 트랙은 뚜렷한 기승전결 구성을 7분이 넘는 러닝타임으로 풀어나가는 서사적인 타이틀곡 ‘Forevermore’.
혹시 예전에 그렇게도 좋아했던 뮤지션이 갑자기 생각나 최근 근황을 찾아보고 그 모습이 너무 늙었다고 불평한 적이 있다면, 그 전에 우린 우리의 거울을 먼저 잘 닦을 필요가 있다. 그 음악이 예전과 똑같다고 불평할 필요도 없으며, 또 예전과 변했다고 손가락질할 필요도 없다. 잠시 잊고 살았던 건 어디까지나 우리들이었을 뿐, 그들은 언제나 묵묵하게 음악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꾸준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켜왔다. 화이트스네이크의 이번 음반 타이틀처럼 말이다.
Duran Duran / All You Need Is Now (강앤뮤직)
우린 일반적으로 뮤지션의 외모가 그들의 활동에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1980년대 뉴웨이브의 선봉장으로 활동했던 듀란듀란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그 수려한 용모로 대중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는 데는 성공했지만, 남성들은 이들의 이러한 외모 때문에 밴드를 외면했고 여성들은 음악을 듣지 않고 외모에만 집착했다. 2000년대 중반 재결성 공연을 담은 DVD의 스페셜피처를 보면 “이제야 청중들이 우리의 얼굴을 그만 바라보고 음악을 들어주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앞서 언급한 이야기들의 방증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 말에 디지털로 공개되었고, 올해 출반된 듀란듀란의 열세번째 스튜디오 음반의 타이틀 <All You Need Is Now>은 그런 면에서 볼 때 의미심장하다. 전반적으로 특유의 훵키 리듬과 유려한 멜로디, 그리고 진취적인 신서사이저 연주로 대변되던 전성기 밴드의 기존 노선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지만, 받아들여지는 느낌은 분명 다르다. 밴드의 의도와 관계없이 그들을 감싸고 있던 하나의 껍질이 벗겨진 탓일 것이다. 80년대 중반 이들을 사랑했던 팬은 물론, 다시 돌아온 뉴웨이브의 트렌드에 빠져있는 현재의 록팬들을 공히 만족시킬 수 있는 음반이다. 다른 이유로 정당한 평가를 받지는 못했지만 듀란듀란은 그만큼 시대를 앞서갔던 밴드였던 것이다.
이 외에도 비록 국내에는 다소 늦게 정식 발매되긴 했지만 브라질리언 감성 충만한 보사노바 넘버로 8년 전 심야 FM을 통해 많은 사랑을 받았던 ‘Blue Glasses’가 수록된 고릴라즈(Gorillaz) 출신의 하토리 미호(Hatori Miho)와 벡(Beck)의 스모키 호멜(Smokey Hormel)로 구성된 스모키 앤 미호(Smokey And Miho)의 <The Two EPs>, ‘Bette Davis Eyes’와 같은 팝에서 티어즈 포 피어즈(Tears For Fears)의 ‘Shout’와 같은 뉴웨이브는 물론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의 ‘The Wind Cries Mary’ 등 전혀 다른 출신성분의 음악들을 감성적인 재즈라는 영역 속으로 흡수한 안야 레르흐 앤 프랑크 지흐만(Anja Lerch & Frank Sichmann)의 <Lieblingssongs> 등도 이달에 빠뜨릴 수 없는 음반들이다.
송명하의 테마음악 파일 #7
여행, 음악이 있어 더욱 즐겁다.
글 송명하 (트위터 @MyounghaSong)
여름이 기다려지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휴가’가 있다는 게 가장 클 수도 있다. 정교한 기계장치의 톱니바퀴 부속품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일상을 떠나 우린 언제나 앞이 탁 트인 바다의 풍경이나, 맑은 공기를 호흡할 수 있는 한적한 산을 마음속에 품고 산다. 그리고 휴가가 다가올수록 깊숙한 곳에 들어있던 바다와 산을 조금씩 현실로 끄집어내려 노력한다. 예전엔 친구들과 놀러갈 계획을 세울 땐 혼자 집에서 카세트테이프를 녹음하곤 했다. 소위 여행에 어울리는 음악들. 나 나름대로의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녹음해서, 막상 이어폰을 통해 나오는 음악과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그럴싸하게 어울릴 때면 얼마나 가슴 속으로 대견하고 뿌듯한 느낌이 들었던지. 어른이 된 후에도 어딘가로 떠날 계획을 세우면 어김없이 비어있는 CD에 나만의 플레이리스트를 담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어렸을 때와 달리 정작 휴가때가 되어도 마음속에 들어있던 바다와 산은 좀처럼 현실로 나오질 못한다. 그리고 “내년엔 정말...”이라며 다시금 다짐을 한다. 하지만, 그게 뭐 그리 대수인가. 우리에겐 이미 여행을 생각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녹음해둔 CD가 있지 않은가 말이다. 여행을 떠났건 그렇지 않건 간에 그 음악이 있어서 우린 마음속으로 몇백번이고 여행을 떠날 수 있으니까.
Fleet Foxes / Helplessness Blues (비트볼레코드)
플릿 폭시스(Fleet Foxes)는 2006년 시애틀에서 결성된 밴드다. 2006년에 발표한 자주제작의 셀프타이틀 EP, 그리고 그 EP를 곰씹어 듣던 미국의 대표 인디레이블 ‘서브팝’과 계약하고 2008년 발표한 EP <Sun Giant>와 정규앨범 <Fleet Foxes>는 순식간에 이들의 위상을 바꾸어놓았다. 20대라는 나이와 자신들이 현재 살고 있는 현재란 시간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듯, 깊은 산속을 연상시키는 맑고 투명한 목소리의 공명과 화음, 공간을 울리는 일렉트릭 기타의 절묘한 리버브 효과로 만들어진 씨줄은 벤조, 만돌린, 플루트, 피들 등 독특한 악기로 구성된 날줄과 함께 직조되어 초기 사이키델릭 시절의 아련한 꿈과도 같은 캔버스를 만든 것이다. 결국 소포모어 징크스란 이들에게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닌 듯 올해 발표된 정규 두 번째 음반 <Helplessness Blues>를 통해 밴드는 더욱 성장했고, 사운드의 스펙트럼은 더욱 넓어졌다. 이미 태어나기 전부터 DNA에 각인되었던 듯 처음 들어도 전혀 이물감이 느껴지지 않는 타이틀곡 ‘Helplessness Blues’는 이미 올해 초 인터넷을 통해 프리 다운로드 형태로 공개되었던 트랙으로, 이어질 정규 음반에 대한 기대를 현실로 구체화시킨 트랙이다. 앨범 말매 이전 이들이 언급했던 “업비트의 곡들이 줄어들 것이지만 더욱 그루브해질 예정”이라는 이야기에 전적으로 동의하기는 어렵겠지만, 어쨌거나 1960년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낭만적인 포크음악이라는 밴드의 시선은 한 치의 오차 없이 같은 곡을 응시하며 그들의 시선 속으로 청자를 무의식 가운데 끌어들이고 있다는 점에는 이의를 재기하지 못할 듯 싶다.
Jonny / Jonny (비트볼레코드)
조니(Jonny)는 틴에이지 팬클럽(Teenage Fanclub)의 송라이터 노먼 블레이크(Norman Blake)와 역시 고끼스 자이고틱 먼키(Gorky's Zygotic Mynci)의 송라이트 유로스 차일드(Euros Child)가 만나 결성한 듀오다. 이들의 이전 이력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분명 호기심에라도 조니의 새로운 창작물에 관심을 가질 듯하다. 뉴 어쿠스틱 무브먼트, 혹은 C-86 무브먼트의 주역으로 활동하며 수많은 기타팝 아티스트들의 선봉에 섰던 노먼 블레이크, 그리고 사이키델릭과 팝, 로큰롤 등이 독특한 방식으로 교차되는 음악을 표현했던 유로스 차일드의 결합. 아, 물론 조니 결성 이전 이들의 음악을 접하지 못했던 독자라도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자신들이 표현했던 음악들 가운데 교집합을 추려, 가장 편안하게 풀어간 음반이기 때문이다. 모든 수록곡에서 원초적인 로큰롤 리듬이 배경으로 깔리며, 보컬의 하모니는 예전 아메리카(America)의 음악을 듣는 듯 언제나 가볍고 부담 없다. 그 재료로 쓰인 음악들은 로큰롤에서 글램록, 아트록, 사이키델릭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지만, 그 표현에 있어서는 최소한으로 무게를 줄였다. 전반적으로 낭만적이고 몽환적이긴 하지만, 힘없이 느슨하거나 맥이 빠져 나른하지도 않다. 오히려 지루한 장맛비로 끈적이는 장판과 눅눅해진 침대의 매트리스를 잠시 잊게 만드는 보송보송하고 가칠가칠한 신선함으로 가득하다.
송명하의 테마음악 파일 #8
음악의 즐거움
글 송명하 (트위터 @MyounghaSong)
이번 원고는 만들어진 지 15년이 넘은 휴대용 CDP와 묵직한 헤드폰으로 음악을 모니터하며 작업했다. 15년. 그리 오래되지는 않은 것 같지만 그 사이 우리의 음악청취 환경은 참 많이도 바뀌었다. 듣고 싶은 음악이 있으면 레코드숍에 달려가 CD나 카세트테이프를 구입하고, 조금이라도 일찍 그 음악을 듣기 위해 집에 돌아가는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비닐 껍질을 벗겨, 가지고 있던 휴대용 CDP나 녹음기에 끼웠다. 그리고 눈을 감고 나만의 음악실로 순간이동 한다. 그 기억을 이제 음원사이트를 통해 전송받은 음악을 휴대전화나 MP3 플레이어에 ‘전송’하는 행동이 대신한다. 음질이니 사운드니 여하튼 음악을 포장하고 있는 다른 모든 것을 배제하고 근본적으로 음악이 주는 즐거움은 당시의 기억이나 현재의 행동 모두가 동일하지 않을까. 누군가 집에 찾아왔다가 책꽂이에 꽂혀있는 『음악의 즐거움』이란 책 제목을 보고 “음악이 즐거운 걸 꼭 이 책을 읽어야 알아요?”라고 물은 적이 있다. 물론 아니다. 음악은 그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즐겁다. 그리고 그 즐거움은 인류가 음악을 만들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변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인 진리일 것이다.
Journey / Eclipse (에볼루션뮤직)
인터넷과 통신, 또 이를 통한 소셜 네트워크의 발전은 예전엔 상상도 못했던 꿈속의 이야기를 현실로 바꿔놓곤 한다. 2007년 합류하여 2008년 앨범 <Revelation>부터 저니에 새로운 성대를 이식한 필리핀 출신 보컬리스트 아넬 피네다(Arnel Pineda) 역시 이 경우에 해당한다. 본국에서 저니 카피밴드로 활동하던 그의 클럽 공연 동영상이 인터넷 사이트 유튜브(youtube.com)에 올랐고, 당시 새로운 보컬리스트를 물색하던 저니의 레이다망에 잡혀 말 그대로 ‘전격 발탁’된 것이다. 그리고 매끄러우면서도 힘에 넘친 밴드의 간판 스티브 페리(Steve Perry)의 다이내믹한 음색을 그대로 빼다 박은 아넬의 음성은 한장의 정규음반과 함께 기존 밴드의 히트곡을 담은 보너스 CD로 확실하게 검증되었다. <Eclipse>는 저니의 통산 열네번째 스튜디오 앨범이다. 전작이 새로운 보컬리스트 아넬 피네다가 얼마나 스티브 페리에 가까운 보컬리스트인지를 증명하기 위한 밴드의 여러 시도를 담긴 했지만 저니 특유의 미려한 멜로디라인이 적잖이 거세되었다는 아쉬움을 남겼던 반면, 새로운 앨범에서는 필리핀 마닐라에서의 대규모 공연으로 자신감마저도 장착한 저니의 힘찬 도약이 마치 일식을 막 벗어난 햇살처럼 눈부시다. ‘City Of Hope’, ‘Edge Of The Moment’를 필두로 펼쳐지는 닐 숀(Neil Schon)의 날카로운 기타 사운드는 전성기의 화려함으로 완벽히 복귀했으며, ‘Tantra’, ‘To Whom It May Concern’의 서정적인 접근은 ‘Open Arms’나 ‘Faithfully’와 같은 명곡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모든 요소를 충분히 갖췄다. 해외 노장 밴드들의 선전은 그 활동만으로도 부러움의 대상이 되곤 하지만, 정작 부러운 건 그들과 함께 나이를 먹어가며 계속해서 응원을 보내주는 팬들이 있다는 점이다. 특히 아무리 좋은 곡을 발표하고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공중파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통해 주목받지 못하면 잊히는 것도 아니고, 아예 인식조차 되지 못하게 되는 우리나라와 같은 현실에선 더욱 그렇다. 저니의 기존 팬들은 물론 그들의 2세, 3세들까지도 함께 공연장을 찾아 공감대를 형성할 만큼 세대를 초월한 만족감을 선사할 수작 앨범이다.
Joelle / Love Letters (칠리뮤직)
조엘은 미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재즈 싱어다. 이국색 완연한 비주얼이나, 스탠더드 넘버를 비롯한 영어로 된 수록곡들이 그녀의 국적을 쉽사리 알아차릴 수 없게 만들긴 하지만, 그 목소리를 들어보면 서구 혹은 국내의 재즈싱어들처럼 깊은 울림으로 휘어잡기보다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타 보사노바 싱어들처럼 가벼운 터치로 청자를 감싸 안는다는 점을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다. 스웨덴 재즈 디스크대상에서 네 차례나 수상한 피아니스트 안데쉬 패숀(Anders Persson)의 연주에 덧입혀지는 모리 야스토의 콘트라베이스 선율은 단촐한 연주파트의 구성에도 불구하고 조엘의 음색과는 대조적으로 두터운 질감의 레이어를 만들어낸다. 물론 목소리와 연주간의 이질감은 전혀 없으며, 이러한 상호 보완적인 질서는 음반 전체를 관통하는 주요한 포인트다. 안정된 연주 사이에서 조엘은 ‘My Wild Irish Rose’와 같이 재즈라는 무거운 어깨의 짐을 잠시 내려놓고 본격적인 아일랜드 특유의 청명한 목소리를 선보이는가 하면, ‘When I Fall In Love’나 ‘Moon River’와 같은 스탠더드 넘버들에선 고즈넉한 속삭임으로 청자를 위로한다. 타이틀 ‘Love Letters’로 알 수 있듯이 전반적인 정서는 ‘사랑’이라는 키워드로 이루어졌고, 그녀의 사랑은 맹목적인 강요나 일방적 주도가 아님을 이야기하는 듯 차분한 독백으로 채웠다. 가볍게 산책하듯 듣기 적당하다.
신윤철 / 신윤철 (비트볼레코드)
두말할 필요가 없는 국내 록의 대부 신중현의 둘째 아들 신윤철이 17년만에 발표한 솔로음반이다. 물론 그 중간에 원더버드나 서울전자음악단을 통해 계속해서 활동해 왔지만, 어쨌거나 오랜만에 발표한 솔로음반이라서 더욱 반갑다. 스튜디오가 아니라 강원도의 한 펜션에서 아날로그 장비를 이용해 최대한 라이브감을 살려 녹음했다. 때문에 원초적인 날이 서 있는 거친 사운드가 인상적이다. 보컬에는 소울 보컬리스트 정인 장재원,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의 조웅, 아트 오브 파티스의 김바다 그리고 예전 유앤미 블루의 방준석과 같이 다양한 장르와 음색의 객원싱어들이 기용되었지만, 그들의 개성과 어우러지는 신윤철 특유의 음악성은 또 다른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낸다. 김바다가 참여한 ‘누구나’의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식 접근을 제외한다면 서울전자음악단의 사이키한 성향에서 벗어나, 예전 신중현 트리뷰트 앨범에 참여했던 복숭아의 음악처럼 정제된 스타일은 러프한 음반의 녹음과는 반대 방향에서 긴장의 팽팽한 끈을 맞잡고 있다. 방준석의 호소력는 보이스가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만한 가사를 공감하게 만드는 ‘소년시대’, 정인의 새로운 면모를 만날 수 있는 ‘여름날’, 음반의 크레디트를 다시 살펴보게 만드는 장재원의 ‘꿈같던 하루들’ 등 어느 한곡 놓치기 아까운 음반. EP의 짧은 러닝타임이 원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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