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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ER'S MUSIC LIFE/EXTERNAL CONTRIBUTIONS

월간 토마토 2011년 4월호...

4월호부터는 지면이 약간 늘어서, 넉장의 리뷰를 하며 그 가운데 한장은 조금 길게 작성했다.
앞으로도 계속 이런 포멧을 유지할 건지, 아니면 더 좋은 어떤 방법이 있을 지.. 조금은 고민 중~

송명하의 테마음악 파일 #4
봄, 넘치는 생명의 음악

글 송명하 (트위터 @MyounghaSong)

누군가의 뒷모습이 쓸쓸해 보인 적이 있다면, 아니 모든 사람의 뒷모습은 쓸쓸한 것이라고 스스로 정의를 내렸다면 그건 눈에 보이는 이가 쓸쓸한 것이 아니고 그를 보고 있는 자신이 쓸쓸한 까닭이다. 마찬가지로 봄이라고는 하지만 얇은 옷을 입고 쇼윈도에 서 있는 마네킹이 아직 낯선 이유는, 그를 보고 있는 우리 마음에 아직 봄의 따스한 온기가 파고들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원하건 그렇지 않건 이미 창 밖 회갈색 풍경 가운덴 연한 연두색의 점들이 세포분열을 하며 조금씩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이제 바깥의 차가운 바람이 들어올까봐, 혹은 나약한 나 자신의 발가벗은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굳게 닫았던 마음의 빗장을 풀고 창문을 활짝 열어 가득 넘치는 생명의 기운을 호흡할 시간이다. 겨울은 정말 길었다.

 

Adele / 21
아델의 두 번째 앨범이다. 마이스페이스(www.myspace.com)에 올린 세 곡의 데모트랙이 XL레이블 담당자의 눈에 띄여 계약을 맺었고, 2008년 <19>라는 타이틀로 등장한 데뷔앨범은 본국인 브릿 어워즈 크리틱스 초이스와 미국의 그래미어워즈 신인상을 비롯 여러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음과 동시에 대중적인 사랑 역시도 한 손에 움켜쥐게 만들었다. 물론 음반의 타이틀은 데뷔앨범 발매 당시 그녀의 나이를 의미한다. 말 그대로 10대의 무서운 나이에 일약 음악계의 뜨거운 감자로 등극한 것이다. 그것도 메이저 레이블의 대대적 물량공세나 화려한 외형이 아니라 오직 음악성만으로 일궈낸 결과라는 데 그 가치는 더욱 빛났다. 그리고 3년만에 발표된 두 번째 음반. 앨범의 자켓이나 내지 모두 이번 음반의 성격을 대변하듯 온통 흑백의 사진과 디자인이다.

이미 디지털 싱글로 발매되어 새로운 음반에 대한 기대치를 증폭시켰던 머릿곡 ‘Rolling In The Deep’과 ‘Rumour Has It’은 어쿠스틱 기타의 인트로와 함께 더욱 자신감 있게 들리는 보컬, 어깨가 들썩이는 힘에 넘친 사운드가 일정하게 반복되는 복고풍 여성 코러스 라인과 함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보듬어 나가는 우리와 동시대의 새로운 클래식이다. 피아노와 현악이 뼈대를 이루는 ‘Turning Tables’가 되었건 피아노와 코러스만이 주재료로 쓰인 ‘Take It All’이 되었건, 아니면 팝퓰러한 컨트리의 느낌으로 다가오는 ‘Don't You Remember’, 혹은 ‘Someone Like You’가 되었건 아델의 매력적인 목소리를 감상하는 데 어느 하나 부족한 곡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 이야기를 할 때 모던한 R&B를 구사한다는 이유로 언제나 에이미 와인하우스(Amy Winehouse)를 거론하곤 하지만, 실제로 앨범 전체를 듣고 나면 그 차이는 명쾌하다. 젊은 나이에 어떻게 이렇게 연륜이 묻어나 진득한 감정의 기복을 태연하고도 능수능란하게 표현해 내는지, 그저 청자는 부러움에 침을 삼키는 일 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이 앨범이 차트에서 넘버원을 기록함과 동시에 데뷔앨범이 다시 영국차트 상위권으로 진입했고, 아델은 비틀즈 이후 처음으로 두 곡의 싱글과 두 장의 앨범을 동시에 히트차트 5위권에 진출시킨 뮤지션이 되었다. 10대에서 20대로 넘어가는 성장의 흔적이며, 세 개의 진한 나이테를 더한 성숙의 기록 <21>. 봄날의 새로운 생명이 기지개를 켜듯 꿈틀거리는 에너지로 충만하다.


조덕환 / Long Way Home
조덕환은 전인권, 최성원 등과 들국화를 결성했던 창단멤버다. 비록 데뷔앨범을 발표한 뒤 개인적인 이유 때문에 미국으로 떠나게 되어 우리 기억 속에 그렇게 또렷한 흔적을 심어놓진 못했지만, 그가 작곡한 ‘세계로 가는 기차’,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축복합니다’와 같은 곡을 통해 우린 그와 계속해서 관계를 맺어왔다. 2009년 귀국하여 2010년 인천의 ‘펜타포트록페스티벌’을 통해 귀국신고를 한 그가 이번엔 솔로앨범을 발표했다. 들국화 시절의 동료들인 최성원과 주찬권이 함께 참여했다는 점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 반가운 것은 음반의 수록 한계시간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그의 음악세계다. 들국화 결성 이후 25년 동안 자신의 회고담, 혹은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활동에 대한 스스로의 출사표를 대변하는 듯한 ‘수만리 먼 길’을 필두로 펼쳐지는 흙먼지 날리는 거친 질감의 록 사운드는 과거 회상적 나약한 탄식이 아니라 미래 지향적 굳건한 의지의 표명이다. 시대를 빗겨간 한 뮤지션의 솔로앨범이 아니라 연륜있는 록커가 과연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어떤 음악을 해야 하는 지를 보여주는 한권의 지침서라고나 할까. 어린 시절 뛰놀던 동네를 오랜만에 걷다가 그때 군것질하고 장난감을 사던 가게가 문득 눈에 띌 때가 있다. 그 가게를 보면서 혼자 속으로 생각했던 “그 곳에 계속 있어줘서 고마워”란 이야기, 이제 그를 위해 입 밖으로 꺼낼 때가 되었다.


Peppermoon / Les Moissons D'Ambre
일찍이 연극과 결합된 형태로 발전된 음악이라는 전통 때문인지, 아니면 청자들의 그러한 선입견 때문인지 프랑스의 음악은 계속해서 영/미의 팝음악에 노출되고 그 영향을 흡수하면서도 언제나 속삭이듯 이야기하는 느낌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페퍼문의 두 번째 음반 <Les Moissons D'Aambre> 역시 그렇다. 페퍼문은 파리를 거점으로 결성된 혼성 트리오로, 인터넷 공간인 마이스페이스를 통해 자신들의 존재를 알려 성공한 케이스다. 실제로 이들은 데뷔앨범 셀프 타이틀곡 ‘Nos Ballades’로 전세계 애호가들의 마우스 위에 놓인 오른손 검지 손가락을 원격조정하며 마이스페이스 재생횟수 10만회를 기록시켰다. 국내엔 CF에 삽입되며 많이 알려진 프랜치 시크룩의 대명사 프랑수아 아르디(Francois Hardy)의 1969년 발표곡 ‘Comment Te Dire Adieu’의 리메이크 버전은 물론 전작의 감성적 연상선상에 있는 ‘Le Bonheur, Ca Fait Mal’, 타이틀 트랙 ‘Cocoon’에 이르기까지 여성 보컬리스트 아이리스(Iris Koshlev)는 앞서 이야기한 프랜치팝의 독특한 분위기에 벨 앤 세바스찬(Belle And Sebastian), 토리 에이모스(Tori Amos) 풍 인디팝 사운드를 접목시켜 이야기하듯 노래하고, 노래하듯 이야기하며 청자들의 귓속 연약한 솜털을 쉴 새 없이 간지럽힌다. 가장 자주 꺼내 입는 셔츠의 단추로 만들어 청명한 하늘, 온화한 햇살을 맞으러 나갈 때 언제나 함께 하고픈 음반이다.


Girls / Broken Dreams Club
2009년에 데뷔앨범 <Album>을 발표한 걸스가 두 번째 음반 발매에 앞서 발표한 EP 음반이다. 고립된 종교집단 속에서 자라나 사회와 격리되었던 이유로 성인이 될 때까지 비틀즈(Beatles)나 비치 보이스(Beach Boys)와 같은 밴드의 음악조차도 들을 기회가 없었던 보컬리스트 크리스토퍼 오웬의 환경은 오히려 트렌드에 집착하지 않는 신선함이라는 개성을 걸스의 사운드에 이식시켰다. 그리고 이러한 개성은 데뷔앨범을 빌보드 히트시커스 차트 3위로 진입시킬 정도로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번에 국내에 소개되는 EP <Broken Dreams Club>은 데뷔앨범에 놀라운 반응을 보여줬던 팬들에 대한 감사의 표시와, 정규 두 번째 음반의 사운드를 미리 점치게 만든다는 이중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데뷔앨범의 뜻하지 않은 히트는 로파이적인 성격을 뗬던 전작과 달리 이번 음반의 사운드를 더욱 윤택하게 꾸밀 수 있게 만들었다. 하지만, 현대판 빈티지라고 할 만한, 음반을 관통하는 크리스토퍼 오웬의 정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The Oh So Protective One’에서 들을 수 있는 카리브 해안의 칼립소 리듬에 겹치는 브라스파트와 ‘Carolina’의 전반부를 수놓는 스틸기타의 슬라이드 연주는 그 이질적 구성과는 무관하게 춘곤증과 같은 봄날의 나른함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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