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국내음반으로 넉장. 하지만, 편집이 달라지는 바람에 권진원씨 리뷰가 잘려나갔다는.. ㅠㅠ
송명하의 테마음악 파일 #5
채움, 넉넉해서 아름다운 음악
글 송명하 (트위터 @MyounghaSong)
우린 오래전에 헤어진 첫사랑을 언제나 마음속에 품고 살긴 하지만, 길에서 우연히 만나도 반가움에 먼저 손 내밀지 못하고 다시금 혼자 멀찍이 숨어 가슴 두근거리며 얼굴 붉힌다. 그땐 왜 그렇게 모든 면에서 서툴렀는지. 이렇게 처음이란 단어는 새로움이라는 설렘도 있지만 언제나 익숙하지 못해 모자란 듯 서툴다. 사계절을 이야기할 때 가장 처음 등장하는 봄 역시도 마찬가지다. 내년 이맘때도 올해와 다름없이 언덕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며 어김없이 봄이 찾아오겠지만, 봄은 언제나 처음이어서 새롭고 새로운 만큼 우린 또 서툴 것이다. 첫사랑의 실루엣이 눈에서 멀어지며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새어 나오는 나지막한 신음은 꿈과 현실의 경계선이 된다. 그리고 경계선 밖의 세상에서 지나간 겨울 내리던 함박눈처럼 눈이 부시게 날리는 벚꽃은 우리의 꿈이 서툴러서 모자란 아쉬움이 아니고, 계속해서 채워오고 있는 넉넉한 아름다움인 걸 일깨워준다. 다시 처음 맞는 봄. 채울 수 있는 넉넉한 음악이 있어 더욱 아름답다.
유병열 / 유병열's Story of 윤도현
뮤지션들은 과거 자신이 발표한 음반들에 대해 그 아쉬움 때문에 부끄러워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부끄러움 속에 묻혀 버리는 것은 그들의 노래 뿐 아니라 청자들이 과거 그 음악으로 가질 수 있었던 지독한 기억과 추억들도 있다. 초기 윤도현 밴드의 기타리스트로 활동했던 유병열과 윤도현이 13년 만에 한 방향을 바라보며 내 놓은 두 번째 EP는 이러한 청자들의 감성을 자극한다. 비록 윤도현은 머릿곡 ‘가슴이다’를 제외한다면 ‘Remember’에서 코러스를 넣는 정도만 참여하고 있긴 하지만, 마치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듯한 가사를 가진 ‘가슴이다’에서 들려주는 서로에 대한 배려는 과거 부활과 이승철이 재회하며 발표한 ‘Never Ending Story’를 듣는 듯 가슴이 뭉클하다.
물론 기타리스트의 솔로음반인 만큼 가사가 있는 이 한곡을 제외한다면 음반의 중심은 기타 연주에 있다. 윤도현 밴드나 비갠후와 같은 이력을 통해 거친 질감의 하드록 사운드를 펼쳐보였던 유병열의 기타세계는 자신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우며 인접장르를 향한 욕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물론 이러한 욕심은 그동안 채워왔던 그의 내공을 통해 더욱 무르익은 결과로 도출된다.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의 ‘Voodoo Chile’의 매력적인 메인 리프가 엔딩에 등장하는 공격적인 훵키넘버 ‘Punk Kid’나 긴박감 넘치는 ‘DMZ’, 얄미운 와우 사운드가 마치 도도한 고양이의 걸음걸이를 보는 듯 느껴지는 ‘Cat Dance’ 등 전반적인 수록곡은 언뜻 중기 제프 벡(Jeff Beck)의 퓨전적 어프로치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 많은 사람의 가슴을 아프게 만들었던 게리 무어(Gary Moore)에 헌정하는 ‘Remember’에는 특별히 위대한 탄생의 최희선과 부활의 김태원이 참여하여 고인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중첩되며 흐느끼는 기타 사운드로 표현했다. 싸늘하게 식어 버린 음반시장에, 그것도 연주위주의 음반을 발표한 것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반갑고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박수를 보내고 싶지만, 유려한 멜로디가 아름다운 ‘Black Moon’까지 총 여섯 곡의 트랙 가운데 어느 한 곡 자기 멋에 취해 도를 넘어서지 않으면서도 일렉트릭 기타의 매력에 흠뻑 잠길 수 있는 결과 역시도 훌륭하다. 기타 키즈나 열혈 매니아 모두를 만족시킬만한 음반이다.
해랑 / 1998년 내리던...
해랑은 국내엔 그렇게 많지 않은 보사노바 싱어 송라이터다. 10대 시절 음악에 매력을 느껴 공부하던 중 친구의 권유로 재즈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10년 전 자신이 음반을 낸다면 보사노바 음반을 내야겠다고 일기장에 써 두었다고 한다. 이번에 발매된 해랑의 데뷔음반은 바로 이러한 결심이 그동안 채워왔던 노력을 통해 현실로 만들어진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음반에 수록된 곡 가운데 해랑이 직접 작곡을 담당한 곡은 ‘1998년 내리던...’과 ‘라라라쏭’이다. 가볍고 상큼한 브라질발 보사노바의 매력이 그대로 전해지는 ‘라라라쏭’은 처음 듣더라도 이내 콧노래를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흡인력이 강하다. 육중한 첼로가 분위기를 압도하는 ‘Gentle Rain’이 되었건, 흐르는 듯 매끄러운 색소폰이 인상적인 ‘1998년 내리던...’이 되었건 반투명한 해랑의 목소리는 자켓의 사진을 굳이 다시 보지 않더라도 갓 껍질을 깨고 나온 병아리의 노랑 솜털처럼 보송보송하다.
권진원 / 멜로디와 수채화
1985년 강변가요제로 데뷔하여 1987년부터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일원으로 활동하다가 1991년 데뷔앨범을 발표하며 솔로로 나서, ‘살다보면’, ‘Happy Birthday To You’와 같은 곡으로 국내 여성 싱어 송라이터의 계보를 이어가고 있는 권진원이 6집을 발표한 지 5년 만에 발표한 앨범이다. ‘분홍자전거’는 ‘살다보면’의 연장선상에 있는 곡으로 예쁜 가사처럼 화사한 봄날 자전거 하이킹의 배경음악으로 적절한 음악이며, 자신의 딸이 걸음마를 하던 모습을 생각하며 작곡한 ‘예쁜 걸음마’는 3박자의 왈츠 리듬이 발랄한 연주곡이다. 전체적으로 피아노와 어쿠스틱 기타 그리고 실내악풍 현악 반주가 권진원의 목소리와 대등한 위치에 자리하여 클래식과 팝에서 포크, 월드뮤직을 넘나드는 그녀의 이전 이력들을 고급스러운 멜로디로 융화시키는 데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물감보다 물을 많이 사용한 수채화처럼 청량감이 상쾌한 음반이다.
Modern Spot / Focal Point
박중권(기타), 고중원(드럼), 이준현(베이스), 조종성(퍼커션) 그리고 정유리(피아노, 신서사이저)로 구성된 5인조 퓨전재즈 밴드 모던 스팟의 데뷔앨범이다. 데뷔앨범이라고는 하지만, 멤버들은 이미 레코딩 세션과 라이브 밴드, 영화와 드라마 음악 제작을 통한 활동을 해왔던 베테랑 연주인들이다. 밴드를 결성하고도 각자의 스케줄에 쫓겨 앨범의 구상에서 발표까지 1년 이상의 기간이 소요되었지만, 제작기간이 길었던 탓인지 멤버간의 호흡은 스위스 태엽시계의 톱니바퀴처럼 정확하게 들어맞아 악곡은 치밀하고 연주는 정교하다. ‘2 Color’라고 이름 붙이진 첫 번째 트랙의 제목처럼 박중권과 정유리가 작곡한 음악들 사이의 간극은 멀어 보이지만, 봄바람과 봄비 그리고 봄 햇살이 모두 봄이라는 커다란 틀 안에서 존재하듯이 이질감은 없다. ‘Get On The Van’은 정밀한 섹션과 개개인의 순발력이 돋보이며, 노노리나의 보컬이 삽입된 ‘It's A Beautiful Day’의 가벼운 숨고르기도 좋다. 멤버들의 이야기처럼 드라이브에 적합한, 연주는 어렵지만 듣기엔 부담 없는 앨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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