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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ER'S MUSIC LIFE/LINER NOTES (DOMESTIC)

여러 음악인 / 히 식스의 전성기에 발매된 ‘김홍탁 작·편곡집’

 

히 식스(He 6)의 연주와 김홍탁의 작, 편곡으로 된 음반으로, 객원 싱어들인 선우영아, 임성훈 그리고 송혜경이 참여했다. 히 식스는 알려져 있다시피 히 파이브의 해산 후 멤버가 재편되며 결성된 밴드다. 1970년 4월 11일 경향신문에는 “‘초원’ 등 인기곡으로 알려진 에레키 그룹 「더 히·파이브」가 지난달 29, 30 양일간 살롱 코스모스로 고별공연을 갖고 17일의 시민회관 쇼 무대를 마지막으로 해산한다.”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이렇게 4월 17일 마지막 공연을 펼친 히 파이브의 잔류 멤버 두 명, 즉 김홍탁과 조용남의 후속 행동은 빨랐다. 

 

“소울과 사이키딜릭 사운드의 한국 상륙과 더불어 그룹사운드 활동무대의 총본산이 된 유네스코회관 뒤의 코스모스 룸은 살롱 드라마에 이어 전속 그룹사운드 「더 코스모스」를 조직, 미팔군 아류가 아닌 한국적인 그룹사운드를 전개해 보리라는데… 멤버들의 입대로 해산한 「히·파이브즈」의 이(二)명을 중심으로 남성 보컬 「투 에이스」에 신인 드러머의 오인조.” (동아일보 1970년 5월 9일 <연예수첩>)

 

마지막 공연 후 20일 만에 투 에이스(오승근, 홍순백)을 보컬로 내세워 코스모스라는 팀으로 새로운 활동을 시작했다는 얘기다. 그리고 다시 1970년 5월 23일 경향신문의 TV 프로그램 소개 기사를 보면 그 주 토요일 오후 8시 40분에 방영되는 ‘쇼쇼쇼’ 내용에 대한 소개가 나온다.

 

“새로 조직된 6인조 그룹 「히·식스」와 「준시스터즈」 「투에이스」 출연 ‘초원’, ‘어퀴리어스’를 합창하고 조영남, 이미자, 이시스터즈 봉봉 등이 ‘위대한 신의 힘’, ‘아씨 주제가’, ‘이화부인’ ‘낚시터의 즐거움’ 등을 부른다. 게스트로 나올 김시스터즈와 미국 TV에 대한 간담도 벌인다. 후라이보이 사회.”

 

앞서 조직된 코스모스란 밴드, 혹은 프로젝트의 활동이 얼마만큼 지속되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보름 만에 새로운 밴드가 조직되었고 그들은 곧바로 코스모스 살롱의 간판스타로 등극하게 된다. 바야흐로 히 식스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김홍탁과 조용남은 이렇게 권용남, 유상윤, 이영덕, 김용중을 영입하며 히 식스를 결성하고, 같은 해 시민회관에서 열린 ‘제2회 전국 그룹사운드 경연대회’에서 최고상을 수상한다. 그리고, 1970년 10월 14일, 히 식스의 데뷔앨범 [He 6 Vol.1]이 발매된다. [He 6 Vol.1] 수록곡을 살펴보면 히 파이브 시절에 비해서 눈에 띄게 창작곡의 비중이 높아졌다는 점이 첫 눈에 들어온다. 또 기존 가요(‘황성 옛터’)와 민요(‘울릉도 타령’)의 편곡도 눈에 띈다. 히 파이브에서 이어진 계보임을 확인 시키는 초원 시리즈 연작 가운데 두 번째 파트인 ‘초원의 사랑’, ‘말하라 사랑이 어떻게 왔는가를’의 빅 히트는 밴드 사운드에 대한 공감대를 일부 한정된 계층이 아닌 일반 대중으로 확장시켰다.

 

그렇게 ‘창작곡을 만들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히 파이브 시절과 달리 히 식스의 활동에서 창작이라는 행위는 무척 중요한 부분으로 떠올랐다. 어쩌면 당시 라이벌로 존재했을 신중현의 음악활동 역시 이러한 히 식스, 엄밀히 말한다면 김홍탁의 행보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신중현의 활동이 꾸준히 이어진 데는 펄 시스터즈, 김추자 등 어쩌면 신중현이 이끄는 밴드의 객원싱어라고 볼 수 있는 가수들의 히트곡 퍼레이드가 있었으니 말이다. 그 음반들에 어김없이 등장했던 ‘신중현 작·편곡집’과도 같이 이 음반은 ‘김홍탁 작·편곡집’음반이다. 아쉽게도 이 음반 이후 ‘김홍탁 작·편곡집’이란 문구가 등장하는 음반은 그렇게 많지 않았지만.

 

우선 선우영아가 부른 ‘내 님이 그리워’는 퍼즈 이펙트를 이용한 도발적인 기타 사운드가 히 식스의 데뷔 앨범에 수록된 ‘울릉도 타령’을 연상시키는 하드록 넘버로, 하모니 보컬로 참여한 히 식스 멤버들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오프닝 트랙으로 이 곡을 배치한 이유는 동시대에 활동했던 신중현이 여성 보컬리스트와 함께 만들어냈던 성과를 의식한 김홍탁의 의도로 보인다. 선우영아는 ‘눈물의 연인’, ‘분홍빛 러브레터’, ‘청춘무정’ 등 대표곡을 들어보면 팝이나 록 스타일보다는 트로트 성향의 가수로 볼 수 있다. 하지만 히 식스가 가세한 이 곡에서의 짧은 변신은 성공적으로 도출됐다. 파피 패밀리(The Poppy Family)의 ‘That's Were I Went Wrong’는 물론이고 정훈희와 김추자의 버전이 잘 알려진 헤드바와 데이빗(Hedva & David)의 동경가요제 우승곡 ‘나오미의 꿈(I Dream Of Naomi)’을 통해서 역시 본격 팝 스타일로의 접근을 들려준다.

 

‘당신은 몰라’는 이후 히 식스(1972)와 검은 나비(1974)에 의해 다시 녹음되어 히트했던 곡으로, 신중현에 의해 데뷔했던 임성훈이 녹음한 이 음반의 버전이 최초다. 그 가운데 검은 나비의 버전이 가장 크게 히트했다. 김홍탁이 미국으로 떠난 후 김추자, 이현, 윤항기 등의 가수들이 무단으로 취입했는데, 당시엔 저작권에 대한 확실한 인식이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발표들이 가능했다. 하지만 검은 나비의 경우는 그 상황이 조금 달랐다. 음반에 ‘깔리는’ 곡으로 취입했던 몇몇 뮤지션들과는 달리 빅 히트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이후 김홍탁이 그 소문을 듣고 한국에 있는 동생을 통해 이 곡의 무단 사용에 문제제기를 했고, 결국 무단 사용자들이 신문에 사과문을 게재하는 등의 조치로 원만히 해결되었다. 이 한 곡이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았는지를 유추해낼 만 하다. 그리고 이 음반에 수록된 임성훈의 버전이 말 그대로 ‘오리지널’이다.

 

김홍탁이 이전에 재적했던 키 보이스와 히 파이브가 각각 발표한 바 있는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과 ‘초원’의 히 식스 버전을 통해 밴드와 녹음의 진화과정을 보는 것도 흥미로우며, ‘내사랑 끝없이(Can't Stop Loving You)’에서 검은색 창법을 제대로 소화하는 임성훈의 또 다른 모습 역시 주목할 만하다.

 

이 음반 이후 히 식스는 국내 록의 소중한 유산 가운데 노른자위를 차지하는 [He 6와 함께 고고를! GoGo Sound 71 제1집](1971)과 [He 6와 함께 고고를! GoGo Sound 71 제2집](1971) 그리고, 실질적인 마지막 앨범 [사랑의 상처 / 아름다운 인형](1972)을 발표한다. [사랑의 상처 / 아름다운 인형]의 재킷에 등장하는 ‘인기의 정상을 달리는 여러분의 히 식스’라는 표기가 전혀 과장된 표현이 아니었고, 여기에 음악적으로 가장 무르익는 시기였다는 점은 음반을 들어본 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데뷔작과 히 식스의 후기 명반군의 연결고리에는 바로 이 음반이 있었다. (20160729)

 

글 송명하 (파라노이드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