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원은 1980년대 국내 언더그라운드 포크를 이야기할 때 김두수, 곽성삼과 함께 어김없이 거론되는 인물이다. 이 세 명의 싱어 송 라이터의 음악은 ‘토속적’이고 ‘사색적’이라는 공통분모를 만들고 있지만, 확실한 개성 아래서 독창적인 영역을 구축했다. 발표 당시에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이후 이들의 음악을 찾아 듣는 사람들에 의해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 전해지며 초기에 발표한 음반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랐다. 이번에 재발매되는 이성원의 데뷔앨범 역시 마찬가지다.
이성원의 데뷔앨범은 1987년에 발매됐다. 고향인 경남 진해에서 진해상고를 나온 그는 마산의 라이브 카페를 거쳐 상경한 이후에도 몇몇 라이브 카페를 전전하다가 자신의 카페 ‘쉼표’를 열어 꾸준하게 노래했다. 또 1986년에는 크리스탈 문화센터에서 정기적인 개인 콘서트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데뷔앨범을 발표한 건 ‘쉼표’에서 노래하던 그를 유심히 지켜보던 음악평론가 김진성의 주선에 의해서였다. 수록곡은 모두 이성원이 만들었고, 전체적인 음악의 편곡은 유영선이 맡았다.
우선 그의 음악과 만나기 전에 모노톤의 운치 있는 음반의 아트워크가 눈에 띈다. 포토그래퍼 김광수가 촬영한 재킷 사진에 등장하는 이성원은 긴 머리와 덥수룩한 수염으로 ‘기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외모는 실제 그의 음악을 듣기 이전에 그에 대한 선입견을 만들기 충분했다. 실제로 데뷔앨범이 발매된 1987년 <TV 가이드>에 실린 그의 기사를 보면 ‘문단의 기인 이외수 닮은 신인가수’라는 제목 아래 그의 음악보다는 현실과는 동떨어져 보이는 그의 외모와 이야기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선입견과는 달리 그의 음반을 들어보면 우선 생각보다 목소리가 가늘고 섬세하다는 점을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다. 그리고 그 표현에 있어서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토속적인 접근을 하고 있다. 토속적인 접근이지만 투박한 질그릇의 느낌은 아니다. 섬세하고 가는 그의 음색 때문이다. 물론 필요에 따라 힘을 보탤 부분에선 짙은 호소력으로 청자를 압도한다.
전체적으로는 편곡과 연주에 있어서의 아쉬움은 남는다. 물론 편곡을 맡은 유영선을 비롯해 참여한 세션 연주인들은 당대 최고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토속적인 이성원의 매력을 끌어내기보다 비슷한 시기 이들이 참여한 일반적인 가요 스타일과 크게 다르지 않은 접근을 하고 있다. ‘선인장을 보라’, ‘거기 왜 있오’ 혹은 ‘비가 내린다’와 같은 음반의 대표곡들은 조금만 더 원작자의 의도에 맞게 편곡되었더라면 그의, 아니 1980년대 후반 국내 포크의 대표곡들로 꼽기에 충분한 곡이 되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물론 이러한 아쉬움 때문에 1980년대 언더그라운드 포크를 대표하는 이 음반의 작품성을 의심할 필요는 없다. 앞서 언급한 대표곡 외에도 ‘바람이 분다’, ‘오늘 같은 날이면’에서 들을 수 있는 탐미적인 사색은 이성원의 음악성이 온전히 꽃을 피운 두 번째 음반을 잉태하게 만드는 충분한 자양분이 되었음에 분명하다. 이성원은 1990년대 후반 이후 ‘동요 가수’로 잘 알려졌다. 그가 발표한 동요집을 들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이미 잘 알고 있는 노래지만, 그가 부름으로 인해서 완전히 이성원의 노래가 되었다는 것이다. 데뷔앨범을 다시 들어보면 1990년대 이후 그가 부른 동요와 자작곡인 이 앨범 수록곡의 간극이 그렇게 멀지 않다는 점에 다시금 놀라게 될 것이다.
이 한 장의 음반을 통해 이성원의 음악성을 오롯이 알아차리는 건 사실 무리다. 이는 의도와 결과물이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데뷔앨범이기 때문에 ‘몸을 사렸던’ 그의 처지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면 그러한 이유로 더욱 접근하기 쉬운 음반이 이 앨범이 될 수도 있다. 1992년에 발매된 [이성원 2, 나무밭에서]가 명반임에는 분명하지만, 그 음반에 직접적인 모태가 되었던 데뷔작 역시 꼼꼼히 챙겨 들어야할 문제작이다. 들으면 들을수록 한지에 먹이 번지듯 은근한 매력에 빠져드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20160709)
글 송명하 (파라노이드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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