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대수가 58세 되던 해인 2006년 발표한 [욕망(Urge)]는 그 발매와 함께 인터넷 매체들을 통해 급속히 입소문이 번져나갔다. 그건 비단 새로운 앨범을 발표했다는 단편적인 이야기도 아니고, 조승우가 주연을 맡았던 영화 ‘타짜’의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그의 음악이 흘러나왔기 때문도 아니다. 바로 앨범 재킷과 속지를 아내의 누드사진으로 꾸몄기 때문이다. 음반에 수록된 음악들은 오히려 재킷에 의해 가려졌고, 누드 사진은 그저 누드 사진일 뿐 그 의미를 알고자하는 사람은 그다지 없는 듯하다. 어차피 여인네들의 벌거벗은 사진들은 인터넷을 통해 얼마든지 볼 수 있는데도 말이다. 한대수에게는 언제나 ‘최초’라는 단어가 어울린다. 국내 최초의 히피가수이며, 국내 최초의 싱어 송 라이터다. 그렇다면 그가 발표한 이번 앨범은 최초로 자기 아내의 누드를 재킷에 담은 뮤지션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진 않겠지만 재킷에 현혹(?)되어 음반에서 정작 중요한 음악을 놓쳐버리는 우를 범하지 말자.
언젠가 진행했던 인터뷰에서 한대수는 “나이가 먹어갈수록 음악을 만드는 게 힘들다”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 때문인지 그 인터뷰를 한 후 처음 나온 음반인 [Urge]에 한대수가 직접 작곡을 담당한 곡은 몇 곡 되지 않는다. 작곡에 참여한 뮤지션들은 장영규, 달파란, 방준석, 이병훈로 이루어진 ‘복숭아’라는 창작집단이다. 이미 ‘타짜’, ‘라디오스타’, ‘달콤한 인생’과 같은 영화 음악에 참여함으로서 그 인지도를 넓혀간 바 있는 이들의 전력인 어어부 프로젝트나, 삐삐 롱 스타킹, 유 앤 미 블루와 같은 밴드들을 열거해 봐도 충분히 그 능력이 입증된 이들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관건은 과연 그들의 창작물과 자유로운 한대수의 음악이 얼마나 어울릴 수 있느냐 일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작곡이라는 강박관념에서 자유로워진 한대수의 가사가 어떻게 표현되었을까 하는 점이다.
물론 이렇게 젊은 뮤지션들이 한대수의 음반에 참여한 건 ‘최초’가 아니다. 이미 세 번째 음반 [무한대](1989)에선 손무현, 김민기, 김영진, 황수권, 김종서 등 당시 헤비메탈의 첨병이었던 뮤지션들이 대거 참여했고, [기억상실](1990)과 [천사들의 담화](1992)에서는 잭 리와 이우창이 각각 조력자가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전작들과 이번 음반의 가장 큰 차이점은 앞서 이야기한 것과 같이 연주 뿐 아니라 작곡에 젊은 피가 수혈됐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복숭아와 한대수의 궁합은 무척이나 잘 어울린다. 또 데뷔 당시와 비교한다는 것은 무의미하지만, 직접 담당한 수록곡들의 가사들도 충분히 한대수스럽다.
한대수는 인터뷰를 통해 “미국에서 고등학생 시절에 영문학의 점수는 오히려 그곳에 살고 있던 미국 학생들보다도 높았다. 아주 재미가 있고 관심이 많았는데, 영시에 쓰이는 일종의 라임(Rhyme)을 가요에도 적용해 보고 싶었다. 가요를 시적으로 개척하는 데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이번 음반에서도 직접적으로 당시 미국 대통령 조지 부시를 향하는 공격적인 가사의 내용도 그렇지만, ‘지렁이’, ‘갈망’이나 ‘아마게돈’처럼 예전 2집의 타이틀곡인 ‘고무신’과 같이 각운을 맞춘 가사들이 살아났다.
그리고 음악적인 표현에 있어서도 어쿠스틱기타로만 표현하는 포크도 아니고, 밴드의 기본편성으로 꾸며 가는 원초적인 록음악에서도 조금 떨어졌다. 아코디언과 벤조, 그리고 다채로운 퍼커션 등 곡들에 따라 더욱 구체적인 악기가 사용된 까닭에 ‘월드뮤직’에서 받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전작인 [상처]에서 객원 보컬리스트 린다 컬린(Lynda Cullen)을 영입하며 의도했던 ‘새로운 문화 개척’은 이제 음반의 분위기와 함께 한대수 스스로의 몫으로 넘겨진 것이다. 물론 [고무신](1975)에 수록됐던 ‘여치의 죽음’을 통해서는 인도 음악이, 이우창과의 작업이었던 [천사들의 담화]를 통해서는 현대 재즈를 선보인 바 있지만, 그 영역이 더욱 확장됐다는 점에도 주목할 만하다. 음반 전체적으로 들을 수 있는 한대수의 목소리는 보컬의 음역대를 올려서 거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물 좀 주소’와 같이 저역에서 디스토션을 건 듯 불만을 토로하는 스타일이 아니고, 일종의 비명이나 절규와도 같은 목소리다.
한편의 포르노그래피를 보고 난 느낌의 ‘바닷가에’와 같은 곡이 있는 가하면 마지막곡인 ‘대통령’에서는 코러스로 참여한 아이들이 김정일과 ‘소주 한잔’을 하자고 한다. 어찌 된 것인지 외형적으로는 무척이나 많은 변화가 있는 듯하지만, 결국 음반을 다 듣고 나니 변하지 않는 자유인의 모습인 한대수였던 것이다. 하지만, 한대수의 초창기 활동과 이 음반이 나오던 2006년의 상황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던 걸까. 음반의 뒷면 철조망 사진은 여러모로 두 번째 음반 [고무신]을 연상시킨다. [고무신]은 알려진 것처럼 일반 대중들이 접할 기회가 있기 전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욕망]의 재킷 누드 사진은 ‘자체 검열’을 통해 타이포그래피로 센서 처리가 됐다.
예전에 인터뷰를 위해 한대수를 찾았을 때, 그가 입버릇처럼 하던 이야기는 ‘고독’하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러한 그의 정서는 이번 음반에서도 어김없이 자리 잡아서 음반의 전체적인 느낌은 재킷에서 보이듯 음습하고 어둡다. 하지만 그 안으로 조금만 들어가 볼 때, 언제나 처럼 정말 고독한 것이 아니고 마치 어린아이가 투정을 하는 것과도 같이 보인다면 지나친 오해일까. 세월이 흘러서 변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도 많다. 그 외형에 있어서는 무척이나 변한 것 같지만, 내면적으로는 언제나 변하지 않는 자유인이며 히피의 모습 그대로인 한대수처럼 말이다. [욕망]은 현재까지 발표된 한대수의 정식 음반 가운데 마지막 음반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의 활동을 돌이켜본다면 언제 또 불쑥 새로운 음반을 들고 우리 곁을 찾아오리라 생각하는 건 그렇게 무리한 요구는 아닐 듯싶다. 아니 꼭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P.S. 이번에 최초로 공개되는 LP버전은 레코드의 가장자리부터 가운데로 진행되는 게 아니고, 가운데에서 가장자리로 플레이시켜야 하는 음반이다. ‘되감기’, ‘새로운 출발’ 등 여러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지만, 항상 틀에 얽매지 않은 그의 모습을 닮았다. (20151202)
글 송명하 (파라노이드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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