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대수 [상처] 어쿠스틱 재즈로 표현한 위로와 치유의 음악


한대수의 열 번째 앨범이다. [상처]가 발매되기 5개월쯤 전, 한대수는 다리를 다쳤다. 한상원과 함께 공연을 준비하던 중 폭우가 쏟아졌는데, 나무다리를 건너다 발을 헛디뎌 뼈가 부러진 것이다. 그는 그 때 죽을 수도 있다는, 그래서 죽음은 영원하고 삶은 순간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 부러진 다리의 엑스레이 사진은 음반의 재킷 아트워크로 쓰였고, 어쩌면 당연하게도 이러한 생각들은 음반에서도 드러난다. 비록 과거에 발표했던 음악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리메이크 위주의 음반임에도 불구하고. 


한대수가 발표했던 음악 가운데에는 이미 죽음을 다룬 곡이 있다. 2집 [고무신](1975)의 이색작 ‘여치의 죽음’과 3집 [무한대](1989)에 수록된 ‘과부타령’이다. ‘여치의 죽음’에서 말하는 죽음은 상징적인 제도의 몰락을 의미한다. 유신체제에 대해서일 수도 있고, 공산주의에 대한 것일 수도 있다. 또 어떤 커다란 힘에 의해서 억압받던 음악인에 관한 곡일 수 도 있다. 그런가하면 ‘과부타령’의 죽음은 한대수가 17살에서 18살 정도에 미국의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이스트 빌리지(East Village)에 살 때의 이야기이다. 


“당시에는 홀어머니가 아이들을 키우며 사는 집안이 많았다. 그들은 사회적으로 아무리해도 안 되는 헤어날 수 없는 구멍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었고, 말 그대로 ‘연명’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삶을 살았다. 죽음만이 해방의 길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던 그들이 원했던 죽음에 관한 노래다.”


해방으로서의 죽음에 대한 노래라는 얘기다.


[상처]에도 죽음에 관한 노래가 실렸다. 바로 ‘먼지’라는 곡이다.


“‘먼지’는 내 자신에 관한 노래로,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곡이다. 예전 ‘바람과 나’에서 ‘무명 무심 무감한 님’이라는 가사의 노래를 부른 바 있지만, 누군가 유명무실(有名無實)이라는 붓글씨를 나에게 선물해 주었는데, 아파서 그랬는지 주변에 마약을 통해서나 많은 이유들로 세상을 떠난 사람들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내가 먼지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지는 ‘고체가 죽은 가루’를 말한다. 그러한 내 처지를 현대의 사회에 빗대어서 곡을 만들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육신을 어렵게 만든 ‘상처’가 ‘자유의 억압’ 혹은 ‘죽음’을 떠오르게 만들었을지언정 음반 [상처]는 다분히 그 상처를 치유하고 극복하려는 의지를 담았다. 


“대통령에서부터 소시민까지, 전 세계의 인류들은 모두 상처 속에서 살고 있다. 이번 음반은 음악을 하는 입장에서 그것을 표현하려고 애썼고 치유한다는 의미에서 음악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어쿠스틱 재즈로 표현하려고 했다”는 그의 이야기처럼 특유의 경상도 악센트로 등장하는 타이틀 트랙 ‘상처’는 어쩌면 체념 속에 침잠할 것 같은 자신의 현재 상태와는 대조적인 밝은 톤으로 그 자신과 우리를 동시에 어루만진다. 그리고 ‘어쿠스틱 재즈’ 표현을 담당한 건 이미 [천사들의 담화](1992)를 함께 제작했던 이우창이다. 그는 음반 전체적으로 한대수를 서포트하는 한편 데뷔앨범의 명곡 ‘바람과 나’에서는 오히려 한대수의 목소리를 배재한 채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한대수는 ‘재즈 편곡의 걸작’이라며 이우창을 추켜세웠다. 역시 데뷔앨범에 자신의 목소리로 녹음한지 꼭 30년 만에 다시 부른 ‘행복의 나라’를 부르는 한대수의 심정은 어땠을까. 점층적으로 고조되며 더해지는 악기 파트, 환호와 박수소리... 당시 동경하던 ‘행복의 나라’와 지금의 그 곳은 분명 다르겠지만, 어쩌면 달라졌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크게 변하지 않은 탓인지 전해지는 느낌에는 큰 차이가 없다. 


어쿠스틱 재즈와 함께 앨범 [상처]를 구성하는 또 하나의 커다란 축은 월드뮤직, 혹은 민속음악이다. 객원 싱어 린다 컬린의 목소리에 한대수가 보조를 맞추는 ‘Black Is The Color’는 7분이 넘는 음반에서 가장 긴 러닝타임을 자랑하는 곡이다.


“이태원의 한 클럽에서 노래 부르는 모습에 반해서 함께 녹음하게 되었다. 우리 젊은이들은 너무 시대의 흐름에 따라가는 영국과 미국의 음악들만 추종하는 것 같아서 아쉽다. 이미 ‘여치의 죽음’을 통해서는 인도의 음악을, 이우창과의 작업을 통해서 현대 재즈를 소개했던 것처럼, 린다 컬린을 통해서는 아이리시 포크 음악을 소개하고 싶었고 계속해서 새로운 문화를 소개할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싶다”는 그의 이야기처럼 이 앨범에 이어진 [욕망]을 통해서는 이러한 그의 의도가 더욱 심화되어 전면 배치된다.


김민기의 명곡 ‘아침이슬’은 양희은, 조영남, 홍민은 물론 윤항기나 방주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뮤지션이 자신의 음반에 수록한 적이 있는 곡이다. 그 가운데서도 한대수 버전은 지금까지의 아침이슬 가운데에서 가장 처절하게 들린다. 김민기 역시 자신의 데뷔음반에서 한대수가 작곡한 ‘바람과 나’를 부른 바 있는데 어쩌면 30년 만에 하는 대답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의외로 본인의 대답은 명쾌했다.


“처절하게 들렸다니 성공한 것 같다(웃음). 김민기와 3년 전쯤 함께 술을 먹다가 ‘아침이슬’을 부르게 되었는데, 다들 좋아했다. 그래서 녹음하게 되었다.”


이렇게 [이성의 시대, 반역의 시대](1999)에서 빅토르 최의 ‘혈액형’이외에는 다른 사람들의 노래는 거의 하지 않았는데, [상처]에서는 자신이 이전에 발표했던 곡 외에 다른 작곡가가 만든 곡의 비중도 크다. 때문에 ‘한대수 종합선물세트’라는 느낌으로 다가왔다는 내 이야기에 그는 “나는 음반을 심각하게 생각하면서도, 그 때 그 때의 좋은 곡이 있으면 언제나 반영하려고 한다”고 답했다.


이 음반이 발표될 당시 한대수의 마지막 앨범이라는 보도들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때 회자되던 마지막이라는 이야기는 음반 제작의 외적인 애로사항과 내적 아이디어의 고갈에서 비롯된 이야기였을 것이다. 하지만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 돌아보면 이후에 공식 음반도 발표되었고, 싱글이나 다른 뮤지션과의 콜라보 작업도 이어졌다. 이번 최초 LP 재발매에 맞춰 음반이 발매될 당시 나눴던 인터뷰를 다시 들쳐 냈다. 그는 당시 인터뷰를 통해 “언제나 새로운 소리를 얻기 위해서 노력하는 편이다”라는 이야기를 남긴 바 있다. 인터뷰를 정리할 때는 그저 넘겨버렸던 한 줄의 답변이었는데, 10년이 넘게 지나 다시금 음반의 수록곡과 함께 되새겨보니 그 의미가 명확하다. 잔뜩 찌그러진 목소리로 “물 좀 주소~”를 외치던 그의 모습이 새로웠던 것처럼 “이 노래가 뭐더라?”라고 다소 어눌하게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 역시도 새롭다는 것을 10년이 지나 알게 됐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오래도록 CD장을 장식하던 음반이 아니고 새롭게 LP를 꺼내 턴테이블에 올려놓는 그 누구라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까 한다. ‘힐링’이라는 단어가 지금처럼 유행하기 훨씬 전에 그가 그 자신을, 그리고 우리를 위로했던 음반이다. (20151207)



글 송명하 (파라노이드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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