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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ER'S MUSIC LIFE/EXTERNAL CONTRIBUTIONS

제14회 한국대중음악상 특별분야/ 공로상 김홍탁


김홍탁은 국내에서 처음 음반을 발표한 록 밴드로 기록되는 키 보이스의 기타리스트로 공식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히 파이브, 히 식스에서 음악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활동은 키 보이스를 친정집으로 하고 있는 후기 키 보이스, 키 브라더스와의 협력과 경쟁 속에서 국내 록 발전의 비옥한 자양분이 됐다. 특히 <초원>, <초원의 사랑>, <초원의 빛>으로 대변되는 소위 ‘초원’ 시리즈와 함께 <말하라 사랑이 어떻게 왔는가를>, <당신은 몰라>의 연이은 히트는 밴드음악과 대중음악이 상생할 수 있는 청사진과도 같았다.


인기의 절정에 있던 히 식스를 탈퇴한 그는 1970년대 후반 미국으로 건너가 이스트/웨스트(East/West)라는 밴드를 만들어 활동했으며, 1986년 영구 귀국하여 레코드 기획, 제작사인 ‘사운드 엔터프라이즈’를 설립 운영했다. 사운드 엔터프라이즈는 하늘바다와 같은 유능한 뮤지션을 발탁하는 한편 1987년 8월 18일과 19일 양일에 걸쳐 키 보이스, 히 식스, 산울림에서 시나위, 부활, 백두산까지, 말 그대로 국내 록 음악의 계보를 아우르는 밴드를 규합하여 ‘한국 록 그룹 페스티벌’을 개최하기도 했다. 그리고 1995년 국내 최초의 대중음악교육기관 서울재즈아카데미를 설립했다.


서울재즈아카데미에서 그는 “스타를 원하거나 대학 교수를 원하는 게 아니라 진정한 뮤지션을 원한다”는 이야기로 물의를 빚기도 했지만, 대중음악에 있어서 절대적인 것은 ‘창조적인 것’임을 강조하는 신념을 끝내 굽히지 않고 2011년 은퇴할 때까지 열정적으로 후학 양성에 힘썼다. 언젠가 김홍탁을 만나 나눈 인터뷰에서 그는 대중음악계에 있는 후배들에게 이런 말을 전했다.


“우리 직업은 멋있는 것이다. 때문에 멋지게 살아야한다. 대중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힘들 삶을 살고 있는 대중들에게 힘을 주고 대리만족을 줘야한다. 그러기 위해선 진정한 멋이 있어야 한다. 나도 일찌감치 대중음악에 몸 담아왔고 부끄러운 점도 있긴 하지만, 어쨌거나 대중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분야 가운데 하나다. 음악은 천재교육에도 필요하고 과학에도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심성을 곱게 하는 것이다. 때문에 음악 하는 사람들은 모두 착한 심성이 있다. 대중들이 대중음악인의 나쁜 점만 보지 말고 좋을 부분을 볼 수 있을 때 이 방면에서도 세계적이 뮤지션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클래식 분야에서 나왔던 것처럼.”


은퇴 이후에도 히 식스의 일시적 재결성, 2015년 김희갑, 김광석, 김종진 등 선후배 기타리스트와 함께 ‘G4 퀄텟 드림 콘서트’를 개최하는 등 그의 음악 활동은 꾸준하게 현재 진행형이다. 국내 록 음악의 태동기에 가장 확실한 한 획의 계보를 만들어냈으며, 홀연히 도미했다가 돌아와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쉬지 않고 후학 양성에 애썼던 그가 있었기에 우리의 대중음악은 한 단계 이상 발전할 수 있었다.



선정위원 송명하


http://koreanmusicawards.com/2017/winner/speci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