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 처음으로 음반을 사러 돌아다녔던 곳은, 바하 악기점, 충남 악기점, 제일 악기점 이다. 아시는 분 들은 알고 있는 음악사겠지만, 단색의 소박한 슬리브를 걸치고 호객행위(?)를 하는 소위 빽판을 파는 곳이었다. 충남 악기점은 지금의 대도 악기점 근처에 있었고, 세 곳 중에는 제일 구색이 딸리는 곳이었다. 제일 악기점은 비록 가게는 작지만, 카운터 뒤의 작은 문으로 허리를 있는 대로 숙여서 들어가면 빽판만이 진열된 새로운 공간을 만나게 된다. 물론 바하 악기점은 자타가 공인하는 대전 빽판의 메카였다. 단속이 있을 때면, 커다란 합판으로 된 막이로 수많은 빽판을 가리곤 했다. 제일 악기점은 단속이 있을 때면, 빽판들을 집으로 가져다 놓고, 집에 가서 판들을 고르게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하나씩 둘씩…. 충남 악기점은 문을 닫았고, 제일 악기점은 장소를 중앙데파트로 옮겼다가 역시 문을 닫고, 바하 악기점도 신 지하상가에 작은 점포 하나를 얻어서 하는듯싶더니 소리소문없이 사라져 버렸다.
구 지하상가의 영 음악사는 그래도 지하상가 내에서 꽤 큰 가게였던 걸로 기억된다. 고등학교 때 마그마의 음반은 여기서 샀다. 중학교 때…. 그때 한창 러시(Rush)와 퀸(Queen), 그리고 레인보우(Rainbow)에 빠져있을 무렵 충남, 제일, 바하 악기점을 다 뒤져도 못 샀던 레인보우의 [Rising] 빽판을 여기서 사고, 얼마나 기뻤던지. 국민학교 때부터 친구였던 영일이는 중학 시절 내 생일날 여기서 이엘피(EL & P)의 [Trilogy] 빽판을 사 주었다. 난 영수의 생일에 제일 악기점에서 AC/DC의 [Back In Black] 빽판을 사 주기도 했다. 자주 가던 곳을 아니었지만, 한참이 지난 후 갔던 영 음악사는 없어지고 다른 가게가 들어서 있었다.
동양 음반은 원래 동양백화점에 있었다. 대학그룹들을 유독 좋아했던 어린 시절. 거기서 녹음해 온 테이프에는 마그마, 4막 5장, 백마들, 산울림, 활주로와 같은 그룹들의 노래가 있었다. 동양 레코드는 뒤에 소청 일번가 앞과 홍명상가에 음반들을 나누어 다시 가게를 열었지만, 홍명상가의 가게는 다시 구 지하상가로 옮겼다가 없어져 버리고, 소청 앞의 동양 레코드는 거의 개점 휴업상태라고나 할까. 제대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는 홍명상가의 아트 레코드를 자주 갔다. 원래 하시던 주인분이 가지고 있던 음반들까지 다음 분에게 넘기고 그만두게 된 건데, 다음에 맡으신 분은 내가 좋아하는 음악은 많이 알지는 못하시는 분이었다. 대전에서는 그래도 수입 음반의 구색이 좀 있었는데, 예스(Yes), 제임스 갱(James Gang),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 캔자스(Kansas)와 같은 음반을 거의 장당 5,000원꼴로 주셨다. 하지만, 마음이 너무 좋은 분들은 장사가 힘이 드는가 보다. 역시 그렇게 오래되지 않아서 문을 닫았다. 점포 정리 세일을 할 때 너무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여기 아르바이트하던 아가씨가 록 음악을 참 좋아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마 인숙이의 친구였던 것 같다.
중학교 때 교회에서 만났던 종옥이 누나는 결혼한 다음에 서대전네거리에 조그만 음악사를 인수했다. 집이 가까운 곳이라서 고등학교 때는 학교에서 오는 길에 신중현이나, 산울림 등의 음반을 사서 돌아오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 열혈 비틀스(The Beatles) 마니아 광식이는 여기서 [Let It Be] 앨범을 사 주었고, 고등학교의 마지막 생일날은 존 레넌(John Lennon)의 [Mind Games] 앨범을 사 들고 늦게 들어오던 나를 기다리며 빈집 문 앞에서 오래도록 혼자 서 있기도 했다. 제대한 난 뒤에는 음반을 사지 않더라도 그냥 놀러 가서 이 얘기 저 얘기 하다가…. 거의 어디에 무슨 음반이 있고, 이건 없고 저건 있고. 그런 것도 다 알 정도였다. 가지고 있는 한대수의 음반 몇 장은 여기서 산 음반이다. 그 고운 음악사는 부지런한 누나의 수완으로 그 옆의 조금 더 큰 가게로 이사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오래 가지는 않았다. 역시 점포 정리. 반송할 음반들을 함께 싸주고 지금 쓰고 있는 1,500장 정도가 들어가는 CD 장식장을 얻어 가지고 왔다.
대학 때는 재지악스라는 조그만 레코드숍이 있었다. 그때 대전에서는 거의 유일한 전문음악을 취급하는 숍이었다(물론 보고 근처의 월광도 있었지만, 위치가 좀 그래서 자주 가지는 않았다). 조그만 가게였지만, 내 취향의 음악들이 많아서 좋았다. 그때 아르바이트를 하던 친구들과는 아직도 친분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역시 이곳도 지금은 아마 사진기 가게가 들어와 있는 거로 알고 있다. 역시 대학 시절, 대전극장 통엔 맑은소리라는 음악사가 있었다. 조그맣고 아담했던 가게, 슈퍼트램프(Supertramp)의 리더 로저 허즈슨(Roger Hudgson)의 앨범, 뿌(I Pooh)의 후기 아름다운 앨범, 갓 수입되었던 스패니시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의 앨범 모두 맑은소리와 관련된 기억이다. 맑은소리는 청주로 이사 갔다가…. 사장 지열이형은 지금 집 앞의 마당 깊은 집이라는 민속 주점을 하고 계신다. 요즘도 자주 들러서 이 얘기 저 얘기하며 민속 차도 한잔씩 얻어 마시고 오곤 한다. 하지만, 맑은소리는 이제 없다.
대학 졸업 후에, 아트프라자에서 아르바이트하던 아가씨가 알려준 비트닉 레코드는 대학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유길이형이 하는 가게였다. 비트닉에 대한 얘기는, 그 얘기만 해도 너무나 긴 얘기가 될 내용이기 때문에 다음에. 또 하나의 전문숍인 아우성 레코드는 지하상가 도청 쪽 끝에 있었다. 재즈를 주로 취급하던 레코드 숍. 물론 얼마 되지 않아서, 지하상가의 중앙 분수대 쪽으로 위치를 옮기며 다양한 다른 음반들도 취급했지만 1997년(아빠가 세상을 떠나신 때와 거의 같은 때라서 연도까지 기억한다) 여름에 문을 닫았다. 비트닉과 아우성의 전문 레퍼토리에서 좀 벗어나는 음반은 역시 지하상가의 블루필 레코드를 이용했다. 싹싹하고, 인상 좋은 사장님과 얘기도 많이 나누고... 필요한 음반들 잘 구해주시고, 언제나 싸게 주려고 하시고, 외상도 잘 주시고…. (-_-;;;)
오늘은 점포 정리 세일을 하는 블루필 레코드에 다녀왔다. 이제 블루필마저 문을 닫으면, 정말 대전에 단골 레코드 숍은 하나도 남지 않고 모두 문을 닫는 게 되어버린다. 인간적인 친분과는 거리가 먼, 기계적으로 할인되고 겉치레의 인사가 오가는 대규모 매장이나, 손으로 한장 한장 넘기며 고르는 재미가 하나도 없는 인터넷 상점들만 남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 남은 단골 음악사를 보내며 너무나 마음 한구석이 허전한 건 가을이라는 계절 때문인 것 같다. (20010914)
비트닉 레코드...
벌써 10년이 다 되어 가는 것 같다. 도청 앞에는 비트닉 레코드라는 레코드 가게가 있었다. 음악 게시판 쪽에서도 간간이 그 이름을 볼 수 있는 그 레코드 숍은 전문 음악만을 취급하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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