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뮤지션이 이전에 몸담았던 밴드의 음악을 꺼내 듣는 것은 마치 한 ‘야사’를 꺼내보는 것만큼이나 재미있는 경우가 많다. 밀크우드는 카스의 릭 오케이섹과 벤자민 오어가 몸담았던 포크 트리오로, 1972년 발표했던 유일한 음반이 이번에 세계 최초로 국내에서 CD화되었다.
카스(The Cars)의 전신 그룹. 본격적인 뉴웨이브 사운드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의 로킹한 음반이 아닐까 하는 막연한 의구심을 가질 독자도 있겠지만, 밀크우드(Milkwood)가 추구했던 음악은 어쿠스틱 사운드를 그 뿌리에 두고 있는 완연한 포크록이다. 재킷의 사진만으로 본다면 카스가 활동하던 당시보다도 더 원숙한 모습. 하지만 분명 1972년에 발표된 앨범이고 음반의 뒷면에는 릭 오케이섹(Ric Ocasek)과 벤자민 오어(Benjamin Orr)의 원래 이름인 리처드 옷케이섹(Richard Otcasek)와 벤자민 오체코프스키(Benjamin Orzechowski)의 이름이 명기되어 있다. 이 두 명의 멤버는 각각 어쿠스틱 기타와 베이스 기타, 그리고 보컬을 담당했고 다른 한 명의 멤버는 자스 굿카인드(Jas. Goodkind)로 리드 기타와 일렉트릭 기타를 맡고 있다. 이 외에도 세션으로 참여한 드럼과 퍼커션, 이후 카스에서 키보디스트로 활동하게 되는 그렉 호크스(Greg Hawkes)가 담당한 취주파트 편곡이 색다른 분위기를 주도한다.
릭 오케이섹이 처음으로 작곡을 시작한 것은 1960년대 후반이다. 1949년 메릴랜드 볼티모어에서 태어난 그는 16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가 나사(NASA)로 직장을 옮기면서 오하이오의 클리블랜드로 전학을 가게 되는데, 큰 키와 갈색으로 염색한 머리 등으로 학교 동료들에게 ‘왕따’를 당하며 자연스레 음악으로 그 관심이 옮겨간 것. 자신이 작곡한 곡을 연주할 밴드를 결성하게 되고, 벤자민 오어와 인연을 맺은 것도 바로 1960년대 후반이다. 릭 오케이섹은 “그(벤자민)가 제 아파트에 와서 어쿠스틱 기타를 치며 노래를 했어요. 그때 부른 노래가 비틀스의 ‘Yesterday’였는데 제가 태어나서 들은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였어요. 그에게 이야기했죠. ‘정말 대단해. 함께 밴드에서 활동하자’라고 말이죠.”라고 벤자민 오어를 만났던 당시를 회상한다.
벤자민 오어가 합류한 릭 오케이섹의 로컬 그룹은 MC5나 스투지스(The Stooges)와 같은 그룹의 공연 오프닝을 담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공연활동의 가시적 성과에 고무되어 뉴욕으로 진출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쓰디쓴 실패뿐이었다. 중서부로 다시 돌아온 릭 오케이섹은 바로 보스턴으로 떠나고, 그곳의 음악 신에 익숙해질 무렵 다시 벤자민 오어를 불러들였다. 이렇게 두 명의 멤버가 몇몇 그룹들을 전전하다가 보스턴에서 결성한 트리오가 바로 밀크우드(Milkwood)다. 카스 이전의 활동 가운데에서는 가장 성공적인 밴드였고 유일하게 음반을 발표했던 밴드. 밀크우드의 음악은 내면으로 침잠하는 사색적 영국 포크록과는 그 뿌리가 분명 다르고, 존 바에즈(Joan Baez)나 밥 딜런(Bob Dylan)과 같은 참여적 성향의 음악과도 구분된다. 굳이 구분을 하자면 크로스비 스틸스 내시 앤 영(Crosby, Stills. Nash & Young)이나 아메리카(America)와 같이 하모니를 중시하는 편안한 포크록에 가깝다고 할까.
음반은 재킷에서 보이는 겨울 숲의 풍경이 그려지는 ‘With You With Me’로 시작한다. 밴드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음악을 듣는다면 노래를 부르는 인물이 누군지 알아차리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릭 오케이섹이 보컬을 담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듣는다면 두 번째 곡인 ‘Dream Trader’에서는 고개가 끄덕여진다. 앞서 크로스비 스틸스 내시 앤 영이나 아메리카를 언급한 것과 같이 시종 풍성하고 따스한 보컬의 화음을 들을 수 있다는 것 역시도 밀크우드음악의 가장 큰 특징. 또 ‘Bring Me Back’의 후반부 코러스에서 어렵지 않게 비틀스(The Beatles)가 발표한 ‘Girl’의 코러스라인을 떠올릴 수 있는 것은 벤자민 오어가 열혈 비틀스 마니아였음을 부연하는 것 같아 무척이나 흥미롭다. 컨트리 앤 웨스턴의 분위기를 풍기는 ‘Lincoln Park’는 음반에서 유일하게 벤자민 오어가 작곡한 곡(이외의 곡들은 모두 릭 오케이섹이 작곡했다). 음반에서 주목해야할 트랙은 ‘Timetrain Wonderwheel’이다. 업비트의 공격적인 어쿠스틱 기타로 시작하는 이 곡은 그렉 호크스의 관악파트 편곡이 빛을 발하는 곡으로, 점차적으로 발전해 나가는 진행에서 프로그레시브록으로의 접근도 어렵지 않게 감지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We've Been Through’는 스틸기타가 동원된 전형적인 컨트리 넘버로, 역시 상큼한 보컬 하모니를 가지고 있다.
앞서 여러 밴드들을 떠돌며 몸소 체험한 다양한 음악들은 결국 이들 두 멤버의 음악적 스펙트럼을 넓혀주었고, 의외의 결과물을 도출시켰던 보스턴은 이후 결성되는 카스의 활동 거점이 되었다. 또 버클리 대학에 다니며 더 나은 돈벌이를 위해 밴드를 전전하던 그렉 호크스를 만난 것도 바로 밀크우드의 음반이 발표되던 시기였으니, 이 정도라면 전문에서 이야기했던 ‘야사’의 한 부분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나도 소중한 역사가 아닐까. 톱 10 히트 메이커 카스처럼 세련되고 매끄러운 사운드는 아니지만, 그 재킷에서 보이는 어색한 모습만큼이나 소박하고 풋풋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음반이다. (글 송명하, 월간 핫뮤직 2007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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