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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ER'S MUSIC LIFE/EXTERNAL CONTRIBUTIONS

월간 토마토 2011년 1월호...

대전에선 이미 어느정도의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문화전문지 토마토에 올해 1월호부터 기고를 시작했다. 아무래도 전문적인 음악지가 아닌만큼 일반적인 독자들을 상대로 해야한다는 생각으로, 음반의 선택과 문체를 어렵지 않게 풀어가려는 생각을 하고 접근했는데... 읽는 사람들은 어떨 지 모르겠다. 내가 맡은 꼭지는 신보에 대한 리뷰지만, 앞서 이야기한 것과 같이 쉽게 풀어가기 위해 일단은 하나의 주제를 놓고 글을 써 봤다. 핫뮤직에 쓰던 분량과 토마토의 분량이 너무 달라서 결국 원고가 넘쳐 들어가지 못한 원고도 있고, 잘려나간 부분도 있어... 여기엔 원문을 그대로 올려본다.

송명하의 테마음악 파일 #1
겨울, 그 쌉사름한 아픔의 음악

글 송명하 (트위터 @MyounghaSong)

사람의 피부는 때로 너무나 연약하다. 조금만 예리한 무언가에도 쉽사리 상처를 입는다. 주변이 싸늘한 겨울엔 더하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이보다 훨씬 여리다. 한 번 마음을 홀려버린 음악에는 몇 년이 지난 후에도 언제나 습관처럼 아파하며, 그 가운데 부유하고 또 침잠한다. 손끝의 상처에 밴드를 바르듯 오늘도 우리는 상처 입은 마음에 음악을 바른다. 겨울이라서 더 아픈 마음에도 음악을 바르며, 아물만한 상처를 또 쓰다듬고 더 큰 아픔을 만들어 그 아픔으로 위로받는다. 그래서 때로 겨울에 음악을 듣는 일은 너무나 잔인하다. 테마 음악 첫번째, 이번 겨울에 만나는 새로운 음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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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ivia]는 리사 오노의 뒤를 잇는 차세대 보사노바 싱어로서의 위치를 가지고 있지만, 심혈관을 관통하는 브라질리안의 정서를 가진 그녀의 정서와는 태생부터 다른 올리비아(Olivia)의 신보다. 그녀의 음악은 브라질에서 출발해 프랑스를 거쳐 일본에 안착한 보사노바를 그 뿌리에 두고 있긴 하지만, 어느 한 장르로 귀속시키기 어려운 횡적 다양성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 놀라운 확장 능력은 모타운 사운드(Ain't No Sunshine), 블루 아이드 소울(I Can't Go for That)을 거쳐 모던 포크(Luka)에 이르기까지 길고 가느다란 촉수를 드리운다. 언뜻 프랑스의 끌로딘 롱제(Claudine Longet)와 마찬가지로 남성들의 보호본능을 자극하며 속삭이는 듯 들리는 보컬은 비틀즈의 ‘Here, There and Everywhere’에서 완벽한 교집합을 이루고 있으며 청자들에게 비교청취를 종용한다. 올리비아의 전작들처럼 보사노바 음반을 기대했던 이들에게는 의외의 작품이 되겠지만, 보컬 음색의 특징은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매력적인 음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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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영이 오랜만에 발표한 다섯번째 솔로음반 [정원영 5]는 말 그대로 ‘정원영의 사계’다. ‘봄타령’, ‘그 여름의 끝’, ‘가을이 오면’으로 이어지는 그의 사계는 한 계절 한 계절 독립적인 개체로서가 아니고, 흰 건반과 검은 건반 사이를 계속해서 가로지르는 손가락과 같이 영속적인 하나의 흐름 가운데 존재한다. 그리고 그 흐름은 ‘겨울’로 정점을 이룬다. 물론 그 정점 역시도 외향적 분출이 아니고 내면적 성찰이다. 솔로음반 사이의 다리역할을 했던 정원영 밴드가 발표한 두 장의 음반에 비교할 때, 수록곡 대부분이 피아노와 보컬로만 이루어진 미니멀한 형태를 띠고 있으며, 그 보컬 역시도 ‘싱(Sing)’으로서의 의미가 아니라 악기의 일부분인 듯 피아노 사운드에 스펀지처럼 흡수된다. 오랜 친구인 사진작가 김중만의 칼리그라프가 독특한 음반 자켓 역시 앨범 하나가 소설 같은 한 권의 책이길 바랐던 정원영의 의도가 그대로 투영되었다. “누군가는 그리워할 내 냄새가 아직 남아있을꺼야”라는 자켓의 문구처럼 자신의 위치로 돌아온 가장 정원영스러운 앨범이다.


스웨덴 예테보리 출신 듀오 제이제이(jj)의 정규 두 번째 음반 [n° 3]는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운 음악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일렉트로니카로 표현되는 스칸디나비안 포크에 결합된 힙합이라고 해야 할까. 물과 기름처럼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상극적 재료들의 혼합물은 감정이 하나도 섞이지 않아 흰 색의 캔트지 위에 온통 회색의 파스텔로만 색을 칠하는 듯 무채색으로 나열되는 보이스와 함께 차가운 공기 속을 천천히 유영한다. 힙합이라는 재료가 들어가긴 했지만, 검은 잉크를 사용한 전통의 힙합과는 완전히 반대편에 서 있는 듯 특유의 리듬감 이외에는 그렇게 큰 빚을 지지는 않는 듯 들린다. 이는 엔야(Enya)를 떠오르게 만들며 빈 공간을 울리는 투명한 공명이나, 펫 샵 보이스(Pet Shop Boys)처럼 취중 이야기를 듣는 듯 희미하고 몽롱한 독백들이 굵은 선의 그루브를 충분히 포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My Life’ 등 힙합 넘버들을 커버하긴 했지만, 자신들의 음악에 필요한 만큼만 섭취하며 이를 재료로 감성을 자극하는 이들. 재치 있고 영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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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명의 스웨덴 출신 보컬리스트다. [Embraceable]은 스톡홀롬 출신으로 스티븐 시걸의 영화 ‘어택 포스’의 여주인공이라는 이색 경력을 가진 리사 러브랜드(Lisa Lovbrand)의 데뷔작이다. 전체적인 음반의 분위기는 전통적인 스탠더드 여성 재즈 보컬리스트들의 어법을 그대로 따르고 있어, 유럽의 색깔이 배재된 월드 와이드적이라고 할만하다. 전통적이고 스탠더드하다는 표현을 쓰긴 했지만, 고루하지 않고 지극히 모던하다. 이는 트럼펫계의 신사 크리스 보티(Chris Botti)나, 팝퓰러한 편곡의 귀재 데이빗 포스터(David Foster)의 참여 덕분일 수도 있고, 어린 시절부터 전문교육을 받았던 그녀 자신의 의도일 수도 있다. 청자들의 의표를 찌르며 전방 배치된 도어즈(Doors)의 ‘Light My Fire’나, 크리스 보티의 트럼펫과 대화를 하듯 소절을 주고받는 타이틀 트랙 ‘Embraceable You’, 오랜만에 등장하는 데이빗 포스터의 보컬이 반가운 ‘When I Fall in Love’ 등 대부분의 수록곡이 차가운 겨울 날 벽난로가 따듯한 거실에서 눈보라가 치는 유리창 밖을 바라보는 듯 포근하다. 리사 러브랜드. 신인이지만 얼굴도 예쁘고 노래도 잘한다.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