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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ER'S MUSIC LIFE/EXTERNAL CONTRIBUTIONS

월간 토마토 2012년 2월호 / 음반숍, 생활의 일부였던 그 곳


송명하의 테마음악 파일 #14
 
음반숍, 생활의 일부였던 그 곳
글 송명하 (트위터 @MyounghaSong)


중학생 때, 내가 처음으로 음반을 사러 돌아다녔던 곳은 「바하악기점」, 「충남악기점」, 「제일악기점」이었다. 단색의 소박한 슬리브를 걸치고 호객행위(?)를 하는 소위 빽판, 복사판을 파는 곳 들. 「충남악기점」은 지금의 「대도악기점」 근처에 있었고, 세 곳 중에는 제일 구색이 딸리는 곳이었다. 아카데미 극장 근처의 「제일악기점」은 비록 가게는 작지만, 카운터 뒤의 작은 문으로 허리를 있는 대로 숙여서 들어가면 빽판만이 진열된 새로운 공간을 만나게 됐다. 물론 원동 사거리 「바하악기점」은 자타가 공인하는 ‘대전 빽판의 메카’였다. 단속이 있을 때면, 「바하악기점」은 커다란 합판으로 된 막이로 수많은 빽판들을 가렸고, 제일 악기점은 음반들을 집으로 가져다 놓고 집에서 음반들을 고르게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1980년대를 지나며 「충남악기점」은 문을 닫았고, 「제일악기점」은 장소를 중앙데파트로 옮겼다가 역시 문을 닫고, 「바하악기점」 역시 신 지하상가에 작은 점포 하나를 얻어서 하는 듯 싶더니,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 버렸다.

구 지하상가의 「영음악사」는 그래도 지하상가 내에서 꽤나 큰 가게였던 걸로 기억된다. 고등학교시절, 조하문의 날카로운 보컬을 자랑하던 마그마의 음반은 여기서 샀다. 또 한창 러쉬(Rush)와 퀸(Queen), 그리고 레인보우(Rainbow)에 빠져있을 중학생 시절 「충남악기점」, 「제일악기점」, 「바하악기점」을 모두 뒤져도 사지 못했던 레인보우의 [Rising] 빽판을 여기서 사고, 얼마나 기뻤던지. 초등학교때부터 친구였던 영일이는 중학시절 내 생일날 여기서 이엘피(EL&P)의 [Trilogy] 빽판을 사 주었고, 난 영수의 생일에 제일악기점에서 AC/DC의 [Back In Black] 빽판을 사주기도 했었다. 자주 가던 곳을 아니었지만, 한참이 지난 후 갔던 「영 음악사」는 없어지고 다른 가게가 들어서 있었다.

「동양음반」은 원래 동양백화점에 있었다. 대학그룹들을 유독 좋아했던 어린 시절. 거기서 500원을 주고 녹음해 온 테이프에는 마그마, 4막5장, 백마들, 산울림, 활주로와 같은 캠퍼스 밴드들의 노래들이 있었다. 나중에 소청일번가 앞과 홍명상가에 음반들을 나누어 다시 가게를 열었지만, 홍명상가의 가게는 다시 구 지하상가로 옮겼다가 없어져 버리고, 소청일번가 앞의 「동양레코드」 역시 문을 닫았다. 제대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는 홍명상가의 「아트레코드」에 자주 갔다. 원래 하시던 주인분이 가지고 있던 음반들까지 다음 분에게 넘기고 그만 두게 된 건데, 다음에 맡으신 분은 장사보다 선비 타입이셨다. 대전에서는 그나마 수입음반의 구색이 좀 있었는데 예스(Yes), 제임스 갱(James Gang),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 캔사스(Kansas)와 같은 음반들을 거의 장당 5,000원 꼴로 주셨다. 당시 서울에선 ‘원판’이란 딱지만 붙으면 무조건 20,000원을 호가하던 시대였다. 하지만, 마음이 너무 좋은 분들은 장사가 힘든가보다. 역시 그렇게 오래 되지 않아서 문을 닫았다. 점포 정리 세일을 할 때 너무 아쉬운 마음이 들었었다. 

중학교 때 교회에서 만났던 종옥이 누나는 결혼 한 다음에 서대전네거리에 조그만 「고운음악사」를 인수했다. 집이 가까운 곳이라서 고등학교 때는 학교에서 오는 길에 신중현이나, 산울림 등의 음반을 사가지고 돌아오기도 했다. 당시 열혈 비틀즈(The Beatles) 마니아 광식이는 여기서 산 [Let It Be]를 나에게 선물해줬고, 고등학교의 마지막 생일날은 존 레넌(John Lennon)의 [Mind Games]를 사 들고 늦게 들어오던 나를 기다리며 빈 집 문 앞에서 오래도록 혼자 서 있기도 했다. 여하튼 제대 하고 난 다음에는 음반을 사지 않더라도 그냥 놀러가서 이 얘기 저 얘기 하다가, 거의 어디에 무슨 음반이 있고 이건 없고 저건 있고... 주인보다 내가 더 잘 알 정도로 뻔질나게 가게를 오갔다. 가지고 있는 한대수의 음반 몇 장은 여기서 산 음반 들이다. 그 「고운음악사」는 부지런한 누나의 수완으로 그 옆의 조금 더 큰 가게로 이사를 갈 수 있었지만, 그렇게 오래 가지는 않았다. 역시 점포정리. 반송할 음반들을 함께 싸주고 1,500장 정도가 들어가는 CD 진열장을 얻어가지고 왔다.

대학 때는 중앙데파트 길 건너편 쪽 골목에 「재지악스」라는 조그만 레코드 샵이 있었다. 그때 대전에서는 거의 유일한 전문음악을 취급하는 샵이었다. 물론 보문고 근처의 「월광음악사」도 있었지만, 위치가 내 동선을 좀 벗어나는 편이라 자주 가지는 않았었다. 「재지악스」는 조그만 가게였지만, 내 취향의 음악들이 많아서 좋았다. 그때 아르바이트를 하던 흥석씨는 지금 ‘비돌’이라는 바를 운영하고 있고... 하지만, 역시 이곳도 이후 카메라 샵이 들어오며 문을 닫았다. 역시 대학시절 대전극장통엔 「맑은소리」라는 음악사가 있었다. 조그맣고 아담했던 가게. 슈퍼 트램프(Super Tramp)의 음반, 이뿌(I Pooh)의 후기 아름다운 음반, 또 갓 수입 되었던 스패니시 프로그레시브록 음반들 모두 「맑은소리」와 관련된 기억들이다. 「맑은소리」는 청주로 이사 갔다가, 사장 지열이형은 지금 우리 집 근처에 ‘마당 깊은 집’이라는 민속 주점을 하고 계신다. 요즘도 자주 들러서 이 얘기, 저 얘기. 민속차도 한잔씩 얻어 마시고 오곤 하지만, 「맑은소리」는 이제 없다.

대학 졸업 후에 신 지하상가의 아트프라자에서 아르바이트 하던 아가씨가 알려준 중부경찰서 옆의 「비트닉레코드」는 대학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유길이형이 하는 레코드샵이었다. 이곳에 대한 얘기는 그 얘기만 해도 너무나 긴 얘기가 될 내용이기 때문에 다음을 기약하기로 한다. 또 하나의 전문샵인 「아우성레코드」는 신 지하상가 도청 쪽 끝에 위치하고 있었다. 재즈를 좋아하던 지수씨가 자신의 취향대로 재즈를 주로 취급하던 레코드 샵. 물론 얼마 되지 않아서, 중앙 분수대 쪽으로 위치를 옮기며 다양한 다른 음반들도 취급 했었지만 1997년 여름에 문을 닫았다. 「비트닉레코드」과 「아우성레코드」의 전문 레퍼토리에서 좀 벗어나는 음반들은 역시 지하상가의 「블루필레코드」를 이용했다. 싹싹하고, 인상 좋은 재영 사장님. 필요한 음반들 잘 구해주고, 언제나 싸게 주려고 하고, 외상도 잘 주던 곳이다. 

마지막 점포정리 세일을 하는 「블루필레코드」에 다녀오며 “이제 블루필마저 문을 닫으면, 정말 대전에 단골 레코드 샵은 하나도 남지 않고 모두 문을 닫는 게 되어 버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적인 친분과는 거리가 먼 기계적으로 할인되고 겉 치례의 인사들만 오가는 대규모 매장이나, 손으로 한장 한장 넘겨가며 고르는 재미가 하나도 없는 인터넷 상점들만 남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 대형 음반샵들 마저도 거의 문을 닫았고, 몇 남지 않은 음반샵들은 예전 동네의 조그만 가게들보다도 적은 레퍼토리만 가지고 운영을 하고 있다. 최근 누군가 요즘 음악을 듣고 있는 사람들은 음반이 생겨난 이래로 가장 좋지 않은 음질의 음악을 듣고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 한 적이 있지만, 음반샵에서 음반을 고르는 재미를 내 후대에 살고 있는 친구들에게 물려주지 못한 점은 너무나 아쉽다. 내 성장과 같이 했던 음반샵은 단순히 음반이라는 공산품을 사고파는 장소가 아니라 음악이라는 공통 주제 안에서 울고 웃는, 생활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겨울. 땅으로 온전히 떨어지지 못하고 다시 하늘로 올라가는 눈발을 보며 옛날 생각에 잠겨봤다.
“그땐 참 좋았는데...”

글 송명하 (20120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