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 가운데 많은 부류가 만화 역시도 좋아하는 비슷한 기호를 보인다. 특히 몇 해 전 등장하여 지금도 연재되고 있는 <벡>과 <나나>는 록 뮤지션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만화로 특히 록 음악을 좋아하는 마니아에게 커다란 반응을 보인다. 이 두 작품을 비롯한 지금까지의 만화들 가운데에서 록 음악을 소재로 한 작품들에 대해서 살펴보자.
글 송명하 수석 기자
만화의 개념과 특징
브리태니커 백과사전(한국판)을 찾아보면 만화에 대해서 “신문이나 잡지 또는 책에 수록된 줄거리를 가진 여러 컷 짜리 그림. 글을 함께 쓰는 것이 보통이지만 전혀 없을 때도 있다. 서양에서는 사람이나 동물의 특징을 과장해서 그린 캐리커처와 어떤 사전 또는 정치적, 사회적인 풍조를 풍자하여 그린 1장짜리 그림 카툰, 줄거리가 있는 만화(Comic Strip : Comic Book 포함)를 구분해 생각하지만, 한국에서는 카툰과 만화가 혼합되어 거의 한 개념으로 통용되고 있다. 각각이 생겨난 시기는 위와 같은 순서이고, 이들 모두 드로잉과 판화를 그 표현 수단으로 하며 대체로 풍자적인 요소를 담고 있다.”라고 되어있지만, 만화 평론가 박인하의 “만화는 이미지 언어를 활용해 이야기를 담아낸 시각 매체”라는 표현이 더욱 함축성 있고 의미 전달이 빠를 듯싶다. 만화의 내용적 특징은 소설이 가지고 있는 특징과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면 잠시 학창 시절 국어 시간에 배웠던 소설의 특징을 돌이켜보자. 허구성, 진실성, 개연성, 서사성, 모방 이론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대체로 소설에 등장하는 일련의 사건들은 현실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모방하고 있지만, 사실 그대로를 소설에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력의 여과 과정을 통해 등장인물이나 배경 등에 사실과는 다른 허구를 가미한다. 이러한 허구는 바로 현실감을 효과 있게 전달하기 위한 구성 방법으로 결국 진실을 표현하기 위해 이용된다. 현실과 허구의 유추적 관계가 바로 개연성이며 필연적 인과관계에 의한 질서가 존재한다. 이러한 질서는 진실성이라는 다른 말로 이야기할 수 있고,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서술자가 있다는 점에서 서사성을 가지고 있다. 그 소재에 있어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희곡이나 시나리오 등과도 구분되며 이 모든 특징은 앞서 이야기한 대로 만화의 특징과도 일맥상통한다. 다만 만화는 칸막이로 나뉜 그림과 그림이 이어지기 때문에 소설과 달리 아무런 대사가 없이 연속되는 그림만으로도 내용을 이어갈 수 있으며, 무의미한 듯 보이는 칸막이만으로도 독자들의 무한한 상상력을 동원할 수 있다는 또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만화 소재로서의 록 음악
아무리 그 소재에 있어서 제한이 없다지만, 어찌 본다면 록 음악은 만화의 소재로 그다지 잘 어울리지는 않는다. 귀로 듣는 음악을 눈으로 보는 그림으로 바꿔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화의 특징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는 독자들이 무한한 상상력을 동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커다란 장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실제로 만화의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이 마이크 앞에 서거나 기타를 연주하는 그림만으로도 그것을 보는 독자들은 각자의 머릿속에 제각기 다른 음악을 떠올리며 몰입한다. ‘시각 매체’라는 의미를 넘어서 공감각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주인공이나 주변인들의 대사로 그들이 어떤 음악을 연주하는지 대강은 짐작할 수 있지만,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는 점. 그래서 독자들은 자신들이 들어왔던 음악의 범주 안에서 등장인물들이 부르고 연주하는 음악을 규정짓는다. 독자 자신의 상상력을 통해 완성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록 음악을 소재로 한 만화들은 단순히 작가의 상상을 주입하는 여타 만화들과 차별화되며, 같은 시각 매체를 사용하지만, 음악과 영상이 함께 어우러지는 뮤직비디오의 기능과도 그 수용에 있어서 많은 차이점을 보인다.
국내 본격적인 시작은 황선나의 <레이크 너를 위하여>
세상이 복잡해지고 그에 따라 사람들의 관심 분야가 더욱 세분되어 만화의 소재들도 초기에 비해서 점차로 복잡해지는 추세다. 본격적으로 국내 만화의 소재로 록 음악이 등장한 것은 1985년 발표된 황선나의 <레이크 너를 위하여>라고 할 수 있다. 마니아를 제외한 일반 음악 애호가들에게조차 헤비메탈이라는 단어가 생소할 당시 <레이크 너를 위하여>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바로 헤비메탈을 연주하는 뮤지션이었다. 황선나의 언니 황미나 역시도 록 음악 마니아로, 그녀가 그린 작품 등장인물의 이름들이나 입고 있는 의상에서 록 음악과 연관되는 소재를 찾는 일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며, 비공식적으로 배포되었다가 회수된 계간 <아트록> 2호를 보면 록과 판타지가 공존하는 황미나의 만화를 볼 수 있다.


<고독한 기타맨>과 <백색 영가>
지금까지도 국내 만화계를 대표하는 작가들로 군림하고 있는 허영만과 이현세도 록 음악이라는 소재를 자신의 작품에 도입시켰다. 1987년에 발간된 허영만의 <고독한 기타맨>은 주인공 이강토가 어린 시절 우연히 만난 한 떠돌이 기타리스트를 만나고 고등학교 시절 같은 반 급우인 사운도에게 기타를 배우기 시작, 결국 미국으로 건너가 최고의 기타리스트가 되어 금의환향하지만, 내한 공연에서 감전사하여 세상을 떠난다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물론 고봄, 푸른땅과 벌어지는 사랑의 줄다리기가 주된 내용이고, 마치 무당거미가 등장하는 만화에 권투가 쓰인 것처럼 록 음악이 전편에 펼쳐진다는 말이다. 최근 극장에서 개봉되어 흥행에 성공한 <타짜>의 원작이나 <식객> 등에서도 알 수 있듯이 허영만은 작품을 그리기 이전에 수많은 자료수집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고독한 기타맨>을 접한다면 비교적 친숙한 이름들이 많이 등장한다. 고교 시절 선생님 앞에 불려 나간 사운도에게 자신이 존경하는 인물 이름을 대라고 했을 때 나온 이름들인 지미 페이지, 에릭 클랩튼, 게리 무어, 지미 헨드릭스, 리치 블랙모어, 카를로스 산타나, 제프 벡, 브라이언 메이, 래리 캘튼, 마이클 솅커... 모두가 <핫뮤직> 독자라면 너무나 친숙한 뮤지션일 것이다. 강토는 미국으로 건너가서 활동할 때 갠트 리 스티븐스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그의 이름에 쓰인 스티븐스는 바로 밥 딜런을 찾아갔을 때 그에게 깨달음을 준 캣 스티븐스에게서 딴 이름이었다. 후반에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 이강토가 연주했던 음악은 한국적 정서에 그 뿌리를 둔 헤비메탈이었던 듯싶지만 밥 딜런이나 캣 스티븐스가 등장하는 것으로 봐서는 포크의 영향력 역시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이현세의 <백색 영가>는 허영만의 <고독한 기타맨>이 <카멜레온의 시>와 함께 커다란 히트를 거둔 이후에 등장했기 때문에 ‘아류’의 불명예로 몰린 작품이다. <고독한 기타맨>의 푸른땅에 해당하는 비열한 존재 마동탁, 그리고 역시 같은 작품의 고봄의 역할에는 엄지가, 물론 이강토의 역할에는 오혜성이 등장한다. 오혜성도 실력을 인정받지 못하던 국내 무대를 떠나 미국에서 제우스라는 이름으로 성공을 거둔 이후 내한 공연을 갖는다. <고독한 기타맨>이 이강토의 죽음으로 막을 내리는 비극이었다면 <백색 영가>는 충격 때문에 식물인간이 되었던 엄지가 오혜성의 공연을 통해 정신을 차리게 되는 일종의 해피엔딩을 다룬다는 차이가 있고, 이현세의 만화를 통해 끊임없이 등장하는 기업을 중심으로 하는 배신과 복수의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오혜성 역시도 추구했던 음악은 헤비메탈. 역시 전체적인 맥락에서 훑어보면 헤비메탈이라는 소재가 쓰였을 뿐, 야구라는 소재가 쓰인 <공포의 외인구단>과 그 전개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 만화의 소재를 넓혀주었던 이 두 작품에 등장하는 이강토와 오혜성. 둘 다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기타 천재들이다. 그들의 능력은 오히려 미국에서 더욱 크게 인정받았고, 해외 뉴스를 통해 그 소식을 전해 들은 국내 레이블은 그들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혈안이 된다. 다소 황당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그것은 바로 우리의 모습이고 우리의 희망이었다.

천계영의 <오디션>
깔끔한 그림으로 책의 한 장 한 장이 마치 일러스트집과도 같은 느낌을 줬던 천계영의 <오디션>은 1998년 등장한 만화로, 송송 레코드라는 레이블 사장의 유언을 따라 딸인 송명자가 아버지가 미리 점찍어 둔 네 명의 밴드 멤버를 찾아내고, 그들을 오디션에 참가시켜 준우승까지 도달하는 과정을 담았다. 등장하는 밴드의 이름은 재활용 밴드. 스머프에서 착안한 개성 있는 캐릭터 장달봉(덩치), 황보래용(똘똘이), 류미끼(허영이), 국철(투덜이)로 구성된 이 재활용 밴드는 토너먼트 방식의 오디션을 통해 결승까지 진출한다. 자질은 갖추고 있었지만, 기술이 없었던 이들은 한 회 한 회, 마치 ‘천하제일무술대회’에 참가한 선수들이 그렇듯이 적(!)들을 물리치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실력이 쌓여간다. 1980년대 등장했던 만화들과는 달리 심각하기보다는 코믹터치의 구성으로, 그리고 무엇보다도 의상 디자이너가 꿈이었던 작가의 영향에 의해 만들어진 스타일리시한 주인공들의 캐릭터로 크게 인기를 끌었다. 역시 천재들이 등장하지만, 누군가 한눈에 천재로 알아보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만들어져 간다는 내용도 그 차이점 가운데 하나. 재활용 밴드의 음악은 토너먼트에서 상대를 맞이할 때마다 그 스타일이 바뀌기 때문에, 한가지 장르로 총칭하기는 힘들다. 때로는 일렉트로니카의 경향을 띠기도 하고, 어떨 때는 비주얼 록 밴드로 볼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블루스나 재즈를 연주할 때도 있고, 그루브한 펑키 사운드를 연주할 때도 있다. 만화 이외에도 관련된 팬시상품들이 등장했고, 개별적인 사이트 운영, 또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질 계획도 있었지만, 현재까지 후속 소식이 없어 아쉽다.


일본의 <나나>와 <벡>
<핫뮤직> 독자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만화들이다. 아직 연재가 끝나지 않았지만, <나나>는 이미 두 편의 영화가 만들어져서 국내 상영을 마쳤고, 현재 TV를 통해 애니메이션으로 방영되고 있으며, <벡> 역시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져 TV 연재는 이미 끝난 상태다. 책으로는 아직 연재가 계속되고 있는 까닭에 그 내용을 자세하게 짚어보기는 곤란하지만, 지금까지의 연재 내용을 통해 살펴볼 때 <벡>은 ‘은하철도 999’나 ‘신세기 에반게리온’ 등 일본 만화에서 공통으로 등장하는 ‘어른이 되는 과정’이 한 인디밴드에서 활동하는 유키오의 모습을 통해 그려지고 있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진행을 보면 마치 홍대 앞의 인디 신 모습을 보는 듯, 너무나 밴드나 그와 관련된 음악지, 레이블, 흥행주 등의 입장들이 사실적으로 그려지는 점이 놀랍다. 만화책으로 볼 때도 짐작할 수 있었지만, 유키오가 활동하는 밴드인 벡이 추구하는 음악은, 유키오가 노래할 때는 브릿팝 성향이고 치바가 메인 싱어로 등장할 때는 랩코어 스타일이다. 만화책으로 보며 상상만 했던 음악들이 애니메이션과 함께 실제로 만들어져 음반 역시 발표되었지만, 왠지 머릿속에 그렸던 음악에 못 미치는 듯 아쉬움을 준 바 있다.

<나나>는 행운을 의미하는 나나(7)라는 이름을 가진 두 명의 여주인공이 등장하는 순정 만화. 코마츠 나나는 사랑이 없으면 한순간도 견디지 못하는 캐릭터이고 오사키 나나는 한 남자를 사랑하는 펑크 밴드의 보컬리스트. 시골에서 상경하는 열차에 우연히 같은 좌석에 앉게 된 두 나나가 같은 방을 쓰게 되고 그들이 도쿄에서 엮어 가는 이야기들을 그렸다. 국내 만화 가운데 <오디션>이 그랬던 것처럼, 나나의 등장인물들 역시 무척이나 스타일리시하며, 이들이 입고 나오는 옷들은 소위 ‘명품’으로 불리는 실제 의상이 등장한다. 오사키 나나의 애인 랜이 소속해 있는 트랩네스트(트라네스)가 추구하는 음악은 비주얼 적인 측면이 강조된 제이팝 스타일의 음악이며 오사키 나나의 밴드 블랙 스톤즈(브래스트)는 펑크를 추구한다. 국내에서도 개봉된 실사영화 ‘나나’에서 오사키 나나 역에는 현재 인기의 상한가를 달리고 있는 나카시마 미카가 맡았고, 그녀가 부른 주제가는 라르캉시엘의 하이도가 작곡하여 히트한 바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들이 맡았던 음악보다는 오히려 애니메이션 음악을 맡은 츠치야 안나의 음악이 만화에 등장하는 이미지와 잘 어울리지 않았는지 하는 생각이다. 실제로 인디 활동을 했던 그녀는 애니메이션 나나의 히트와 함께 지난해 서머소닉 페스티벌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만화, 그 이후
사실, 일본의 만화시장과 우리의 그것을 비교한다는 것은 애초에 큰 무리가 있지만, 그래도 <나나>와 <벡>의 경우를 보며 부러운 점이 있다. 일본에서 만화는 곧 산업이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만들었던 안노 히데야키가 처음 에반게리온의 모습을 그렸을 때 캐릭터의 수정을 요구했던 것은 바로 프라모델 제작사인 반다이였다. 그만큼 만화는 만화 이외에 다른 산업들과 유기적인 관계가 있다는 점에 대한 반증이 된다. 록 뮤지션이 등장하는 앞서 두 만화의 경우는 액션 피겨나 프라모델이 아니라 음악 관련 상품으로 제작되어, 또 다른 특수를 거둔 바 있다. <벡>에서 유키오는 펜더 텔레캐스터를 사용하는데, 일본 펜더에서는 텔레캐스터 벡 모델을 만들어 시판했다. <나나>는 mp3 플레이어로 만들어졌다. 도시바의 mp3 플레이어 기가비트는 코마츠 나나, 오사키 나나, 트라네스, 브래스트 버전의 한정판 mp3 플레이어를 만들어 만화의 독자들을 공략했다.

애니메이션과 영화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DVD와 O.S.T.가 여러 버전으로 발매되었고, 화보집 등이 등장했던 것 역시도 당연한 결과였다. 그에 반해 만화가 히트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상품으로 이어지지 못했고, 현재 만화 그 자체도 구하기 어려워진 국내의 실정은 너무나도 안타깝다. 이현세가 자신의 작품 <아마게돈>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면서 여러 가지 부가 산업들로의 확장을 꾀했지만 애니메이션 자체의 실패로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고, 얼마 전 재개봉한 ‘로보트 태권 V’ 역시 지금 변변한 프라모델 하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오디션>이 커다란 관심을 모았고 <나나>와 <벡>이 고정된 팬층을 가지고 있는 만큼 국내에도 조만간 록 음악을 소재로 한 만화들이 다시 만들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때는 아예 처음 기획 단계부터 관련된 여러 산업과 연계하여 진행해 보는 것이 어떨까.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감동했을 때를 기억할 만한 기념품 하나쯤을 소장하고 싶은 욕심을 가지고 있다. 만화를 보고 받은 감동을 오래도록 간직할 수 있는 상품이 만들어진다는 것. 떡 줄 사람은 생각도 하지 않고 있을지 모르지만, 생각만으로도 왠지 배가 불러오는 기분이다. 월간 <핫뮤직> 2007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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