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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ER'S MUSIC LIFE/EXTERNAL CONTRIBUTIONS

순도 100%의 국산 헤어메탈 앨범, Exciting Game / 제로 지


01. Exciting Game
02. Reproducted Man
03. Dirty Mind
04. Night Walker
05. Technopia (Break Out)
06. The Day After (Instrumental)
07. 회색빛 도시
08. Girls 인형을 사요


1989 / 대도레코드


1988년 [Friday Afternoon]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등장한 일련의 연작 옴니버스 음반 시리즈는 국내 헤비메탈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하나의 축을 담당한다. 물론 1980년대 중반에 등장해 소위 ‘일반 무대’로 진출했던 시나위, 부활, 백두산의 역할이 국내 헤비메탈의 대중화에 혁혁한 공훈을 세웠던 것은 분명하지만, 이러한 대중화의 반대편에는 보다 진중하게 한 장르를 파헤치며 결속력을 다진 이들이 있었다. 뮤지션들의 동맹인 ‘메탈프로젝트’와 ‘메탈체인’은 여전히 건재했고, 한국 헤비메탈클럽에서 발행하던 회지에서는 이들 동맹의 소속 뮤지션들에 관한 특집기사를 다뤘다. 그리고 서문악기, 파고다 예술회관이나 송설라이브 클럽, 이후의 비바아트홀 등은 이들을 집결시키는 또 하나의 아지트가 되었다. [Friday Afternoon]의 발매는 바로 이를 거점으로 움직이던 블랙 신드롬, 크라티아, 아발란쉬 등 급진적인 실력파 뮤지션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는 계기가 되는 커다란 사건이었다.


제로 지(Zero G)는 1989년 [Friday Afternoon II]에 수록된 ‘Tears Of Gypsy’로 정식 음반 데뷔한 밴드다. 1987년 예루살렘 출신의 기타리스트 김태영이 새로운 밴드를 조직 할 것을 결심하고 크라티아의 멤버들과 이야기하던 도중 같은 자리에 있던 보컬리스트 김병삼을 소개 받고, 이후 친분이 있던 베이시스트 박창규(전 이데아, 크라티아 출신)와 드럼에 김병삼의 후배 이주한을 영입하며 밴드의 틀을 갖추며 12월 결성되었다. 1988년 8월 송도 해수욕장에서 열린 록 콘서트에 참가하여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고, 밴드명인 제로 지는 ‘무중력 상태’를 의미하는 말로, 독자적인 음악을 계속하겠다는 강한 이미지를 담고 있다. [Exciting Game]은 [Friday Afternoon II]가 발매된 이듬해인 1989년 공개된 제로 지의 데뷔앨범이다. 호피무늬와 가죽으로 치장된 패션, 소위 ‘띄움 머리’의 헤어스타일이나 메이크업으로 치장된 멤버의 사진이 담겨있는 재킷에서 부터 밴드의 지향점인 헤어 메탈의 영향력을 예견할 수 있고, 타이틀 트랙 ‘Exciting Game’이 시작되자마자 이러한 짐작을 확인할 수 있다. 시종 하이톤의 샤우팅이 매력적인 보컬리스트 김병삼의 장점을 십분 살린 곡의 진행이나, 자신감 있는 김태영의 안정적인 기타워크는 신인 밴드의 데뷔앨범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음반의 깊이 있는 완성도에 일조한다.


대부분의 수록곡들이 영어 가사로 되어있고, 전형적인 8비트의 흥겹고 댄서블한 헤어메탈의 진행 공식을 그대로 따르는 듯 하지만, 짤막한 연주로 김태영이 자신의 입지를 확연하게 드러내고 있는 어쿠스틱 소품 ‘The Day After’나, 한글 가사의 가능성을 실험대에 올린 알찬 구성의 ‘회색빛 도시’, ‘Girls 인형을 사요’도 청자의 마음을 붙잡아두는 매력이 있다. 하지만 ‘Girls 인형을 사요’의 엔딩부분 갑작스런 페이드아웃은 ‘옥의 티’랄까, 음반에 있어서 가장 아쉬운 부분 중 하나다. 사운드 프로듀서로 블랙 신드롬의 김재만이 참여하고 있으며, 백그라운드 보컬에도 역시 블랙 신드롬의 박영철과, 시나위의 김종서, 그리고 나티의 정형섭이 참여한 점도 이채롭다. 시기적으로 해외에서는 이러한 메탈 음악이 득세하고 있었고, 국내에도 시류의 흐름에 영향 받아 자신의 음반에 반영한 밴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제로 지의 데뷔앨범처럼 순도 100%를 자랑하는 헤어메탈 음반은 그렇게 많지 않다.


1992년 발매된 두 번째 음반 [E.Z Come E.Z Go]에서는 드러머가 신동현(이후 시나위에 가입)으로 교체되었다. 김병삼은 1993년 블랙 신드롬의 보컬리스트 박영철과 함께 맨 투 맨(Man To Man)이라는 프로젝트를 결성해 한 장의 앨범을 발표한 바 있고, 1996년에는 토이 박스(Toy Box)를 조직해 활동한다. [Friday Afternoon II]에 참여했던 밴드 가운데 가장 의욕적인 활동을 벌였으며, 블랙 신드롬과 함께 음악은 물론 비주얼적인 면에서도 가장 본토의 그것에 가까운 면모를 보여줬던 제로 지는 2집 발표 후 활동정지에 들어갔다가 1999년 김태영을 중심으로 보컬에 박재용, 베이스에 임현균으로 멤버를 재정비해 세 번째 앨범을 발매한 후 해산한다.
 

글 송명하 (20111128)


* 다음뮤직(http://music.daum.net/)과 백비트(http://100beat.hani.co.kr/)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