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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국화 II, 데뷔앨범의 빛에 가려버린 비운의 음반

CONER'S MUSIC LIFE/LINER NOTES (DOMESTIC)

by coner 2013. 9. 17.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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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국화의 고정적인 팬층 가운데는 소위 “밥보다 팝을 더 좋아 한다”는 ‘팝송 마니아’들이 많았다. 이는, “그래,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이 정도라면...”이라고 생각하는 팝 음악에 대한 대리만족의 결과라고 바꿔 말할 수 있다. 사실 들국화 이전의 음악과, 들국화 이후의 음악을 구분할 수 있는 가장 커다란 것 중의 하나가 바로 길거리에서 파는 ‘길표 테이프’들이 팝 음악에서 가요로 옮겨가는 과정이고, 그 중심점에 들국화가 있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그렇게 들국화는 데뷔앨범과 2집 사이의 공연활동을 통해 어떻게 발생되었는지 모를 소위 ‘오빠부대’와 ‘팝송 마니아’ 모두를 아우르며 자신들의 음악적 원류인 포크와 록의 사이에서 자신의 자리를 확고하게 만드는 작업을 이어갔다. 그 작업에 사용된 소재는 들국화가 공연에서 레퍼토리의 일부분으로 삼았던 해외의 음악에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들국화 이전에 해 왔던 멤버들 좀 더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최성원의 활동이다. 이러한 음악들은 들국화라는 필터를 거치면서 확실하게 화학적 변화를 일으켰다. 물론 그 변화의 중심에 서 있던 것은 전인권이고, 전체적인 조율을 한 것은 최성원과 허성욱이다. 그리고 이러한 소재가 데뷔앨범보다 더욱 필요하게 된 시점이 바로 두 번째 음반 제작 시점이었다.

들국화의 2집 음반 발매 당시의 상황을 잠시 살펴보자. 데뷔앨범 자켓에는 네 명의 멤버(전인권, 최성원, 허성욱, 조덕환)가 등장하지만, 사실 조덕환은 음반 녹음을 마친 후 다른 멤버들과의 음악적 의견 차이로 밴드를 떠나게 된다. 세 명이 남은 들국화는 데뷔앨범에서 드럼 세션을 담당했던 주찬권을 비롯해서 최효남(주찬권과 최효남은 믿음소망사랑의 멤버로 활동중이었다), 허성욱의 친구였던 손진태(손진태는 시인과 촌장의 하덕규가 이끌던 노란 잠수함에서 함춘호가 가입하기 전 활동했다), 최윤식, 김해식 등과 밴드를 추슬러 장기공연을 진행했고, 그 이후에는 손진태와 주찬권이 정식 라이브 멤버로 합류하며 5인 체제를 이룬다. 데뷔앨범과 두 번째 음반 사이에 발매된 라이브 앨범이 바로 이 시기에 녹음된 음반이다. 라이브 앨범 발매 후 데뷔앨범에 참여했던 최구희까지 라이브 멤버로 가입하며 2집의 실질적인 라인업이 갖춰진다. 당시 공연의 홍보전단을 보면 ‘공포의 6인 구단’이라는 표현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어쨌거나 밴드로서는 트윈기타 체제를 갖추면서 가장 연주력이 뛰어난 상황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공연과 음반은 상황이 다르다. 새로운 앨범을 발매하기 위해선 신곡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데뷔앨범 녹음을 마치고 조덕환이 밴드를 떠난 것은 단순히 들국화에서 보컬/기타를 담당하던 멤버가 탈퇴한 것이 아니라(실제로 조덕환이 데뷔앨범에서 맡은 기타의 비중은 그렇게 높지 않다), 걸출한 작곡가 한 명을 잃은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앞서 이야기한 ‘소재’는 더욱 큰 필요로 다가왔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들국화의 음반과 떼어내 생각할 수 없는 옴니버스 음반이 바로 [우리노래전시회](서라벌, SRB-0142, 1984)라고 알고 있다. 최성원의 프로듀스로 발매된 이 음반에는 최성원을 비롯해 전인권과 허성욱이라는 데뷔앨범의 정식 멤버 가운데 조덕환을 제외한 세 명의 멤버, 즉 들국화의 핵심 멤버들이 참여하고 있음은 물론 데뷔 앨범에 수록된 ‘그것만이 내 세상’과 ‘매일 그대와’, 그리고 두 번째 음반의 ‘오 그대는 아름다운 여인’과 ‘제발’이 담겨있는 까닭이다. 하지만 주목해야할 음반은 또 있다. 따로 또 같이의 두 번째 음반 [따로 또 같이 II](대성음반, DAS-0116, 1984)를 비롯해서 남궁옥분의 두 번째 음반 [꽃분이 / 잠 못 이루는 이 밤을](오아시스, OL-2197, 1979), 조덕환이 활동했던 고인돌(Korea Stones)의 1978년 대학가요제 동상 수상곡 ‘날개’를 작곡한 이영재와 이장희의 동생 이승희 그리고 최성원이 함께 만든 [노래의 날개](서라벌, SRB-0004, 1980), 장은아의 [장은아 2](서라벌, SRB-0068, 1982), 강은철의 데뷔앨범 [강은철](예음사, OL-0085, 1983), 우순실의 데뷔앨범 [Woo Soon Syl](태광음반, VIP-20013, 1984),  등이 바로 그 음반들이다. 언뜻 잘 조합이 되지 않는 나열인 듯하지만, 이 음반의 수록곡들에는 최성원이라는 공통분모가 존재한다. 따로 또 같이의 음반에서는 최성원과 허성욱이 세션으로 참여했고, 남궁옥분의 음반과 강은철의 음반에는 ‘내가 찾는 아이’와 ‘사랑하는 님을 찾으면’(들국화의 음반에는 ‘님을 찾으면’으로 수록)이, 이영재/이승희/최성원의 음반에는 ‘매일 그대와’와 ‘내가 찾는 아이’, 장은아와 우순실의 음반에는 ‘사랑일 뿐이야’가 담겨있다. 2집 음반 수록곡 가운데 ‘제발’, ‘오 그대는 아름다운 여인’, ‘님을 찾으면’, ‘내가 찾는 아이’는 이미 기존에 다른 편곡과 음성으로 녹음되었던 곡이다. 거기에 ‘너랑 나랑’과 ‘조용한 마음’은 비슷한 시기에 음반을 발표했던 괴짜들의 음반 녹음이 조금 더 빠르다. 하지만 이 곡들은 우리에게 ‘들국화’의 곡으로 남아있다. 앞서 언급한 바 있듯 들국화라는 필터를 거치며 완전하게 화학적 변화가 된 까닭이다.

데뷔앨범의 ‘매일 그대와’나 ‘사랑일 뿐이야’가 작곡자인 최성원의 목소리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반면, 두 번째 음반의 머릿곡 ‘제발’은 [우리노래 전시회]의 버전과 완벽히 다른 새 옷을 입었다. 전인권은 데뷔앨범과 달리 목소리에 스크래치를 넣어 모래알과 같이 굵은 입자의 또 다른 개성을 만들었다. 믿음소망사랑의 공중분해로 들국화의 정식멤버가 된 최구희와 주찬권, 들국화 사운드의 키를 가지고 있던 허성욱의 안정되고 매끄러운 연주와 대를 이루는 전인권 목소리의 이러한 ‘의도된 자연스러움’은 앨범 전체의 가장 커다란 특징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역시 [우리노래 전시회]에 이광조의 음성으로 실렸던 ‘오 그대는 아름다운 여인’은 최성원을 중심으로 멤버들이 코러스를 넣는 하모니 보컬로 편곡되었다. 이광조의 버전에서 맡을 수 있었던 퀸(Queen)의 ‘Love Of My Life’의 냄새는 모두 증발하고 건조한 또 다른 곡이 되었다. ‘축복합니다’의 확장판으로 편곡된 ‘내가 찾는 아이’는 언뜻 멜로디에서 존 덴버(John Denver)의 음성으로 잘 알려진 ‘Junk’가 떠오르는 곡으로, 최성원의 폴 매카트니적 감수성을 엿볼 수 있는 트랙. 이러한 감수성은 이후 솔로 음반을 통해 더욱 심화되어 ‘색깔’과 같은 곡에서 확실하게 드러난다. ‘너랑 나랑’은 당시까지 들국화의 곡에서는 접하기 어려웠던 토속적인 멜로디를 가지고 있다. 물론 이 곡은 들국화 참여 이전에 최구희가 함께 했던 그룹 괴짜들이 음반에 먼저 수록하기도 했지만, ‘완성’이라는 의미에서 들국화의 음반 수록 버전에 조금 더 무게를 둘 만 하다. 물론 작곡에서 전인권의 비중이 증가한 부분도 눈에 띄는 변화 가운데 하나다. 데뷔앨범의 ‘행진’에 후속편이라고 할 수 있는 ‘쉽게’는 신선한 하모니와 함께 음반 발매 이전부터 사랑을 받았던 곡이고, ‘하나는 외로워’는 들국화 해산 이후 발매된 ‘추억 들국화’의 음반에 수록된 ‘머리에 꽃을’을 도출하는 시발점으로서의 의미도 가진다. 프로그레시브한 진행과 전인권 보컬의 매력을 가득 담은 ‘너는’은 음반의 베스트 트랙 가운데 하나.

사실 전체적으로 보자면 준비된 첫 번째 음반에 비해 보잘 것 없는 음악, 혹은 각자의 개성이 뿔뿔이 흩어져 버린 일관성 없는 음반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다. 바로 이러한 부분이 데뷔앨범에 비해 이 음반이 푸대접을 받는 이유기도 하다. 하지만 이 음반은 들국화의 이름으로 가장 많은 공연을 소화해냈던 멤버들이 정식으로 밴드에 합류하여 밴드로서 하나가 된 유일한 음반이다. 어쩌면 수록곡의 가사들에서 ‘우리 모두’를 강조하거나(하나는 외롭지), ‘내가 찾는 아이 매일 볼 수 있지’를 부르며(내가 찾는 아이) 의도적으로 개인보다 전체를 내세운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밴드의 활동은 이 앨범 이후 그렇게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데뷔앨범의 수록곡들처럼 공연을 통해 많이 불릴 기회도, 그러한 기회를 통해 오래도록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곡의 생명력 역시 연장할 여건이 되지 못했다. 시대를 초월한 걸작으로 언제나 언급되는 데뷔앨범의 벽은 또 하나의 수작이 설 자리를 남겨두지 않았다. 들국화라는 이름과 함께 선뜻 이 앨범의 자켓이 떠오르지 않는 것은 음반의 수록곡들이 기대에 못 미쳤다기보다 이러한 이유가 더 클 것이다. 


글 송명하 (파라노이드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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