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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울림 1,2,3집

CONER'S MUSIC LIFE/LINER NOTES (DOMESTIC)

by coner 2014. 3. 3. 0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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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울림 1집부터 3집까지의 연관성.

1970년대 말, 그야말로 혜성과 같이 등장했던 산울림. 동시대의 대중음악을 연주하던 이들은 1990년대로 넘어오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 신화가 되었고, 산울림이 과거에 발표했던 음반들은 국내 락음악의 바이블이자 매뉴얼로 등극했다. 화자들의 필요에 의해서 이들은 국내 헤비메탈의 창시자가 되기도 했고, 펑크의 시조, 때로는 얼터너티브의 원조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산울림의 음악은 이러한 화자들의 한정된 관점보다 훨씬 방대하다. 그 가운데 1977년에서 1978년 사이 발매된 산울림의 초기 음반 석장은 해외와 같은 경우라면 한 세트의 음반으로 발매되었을 법한 음반들이다. 보통 한 뮤지션이 데뷔앨범을 발표할 때, 그 때까지 작곡했던 곡을 모아 음반을 내고, 그 음반의 수록곡으로 활동을 하는 도중 작곡한 곡으로 그 다음 음반을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산울림의 경우, 데뷔앨범을 만들 당시 이미 음반에 수록하지 않은 수많은 레퍼토리들을 가지고 있었고, 초기 석장의 음반에 그 곡들이 나뉘어 담겼다. 녹음 역시도 비슷한 시기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1, 2, 3집의 곡을 섞어놓고 무작위로 플레이할 경우 어떤 곡이 몇 집에 들어있는 곡이었는지 알아채기 어려울 만큼 상호간에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산울림 제1집 : ‘충격’으로 시작된 전설.

말 그대로 ‘충격’이었다. 전국은 그야말로 ‘아니 벌써’로 가득 찬 것 같았다. 음반샵이나 다운타운가는 물론 전파사, TV, 라디오에서 ‘아니 벌써’는 흘러 넘쳤고, 이듬해 공개된 사랑과 평화의 공식 데뷔곡 ‘한동안 뜸했었지’와 함께 노래 제목은 유행어가 되었다. 코미디언들은 자신의 코미디 소재에 ‘아니 벌써’를 응용했고, 아이들은 따라했다. 물론 이전에도 이렇게 큰 히트를 기록하며 유행을 몰고 왔던 곡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산울림은 이전 음악들과 전혀 다른 스타일과 가사로 등장해 데뷔와 동시에 하나의 신드롬이 되었다. 이렇게 산울림이 단숨에 신데렐라로 등극하는 데는 당시 시대적 상황도 한 몫 했다. 소위 ‘긴급조치 9호’로 1970년대 초반을 화려하게 수놓았던 락밴드들과 청년문화를 대변했던 포크 뮤지션들은 1970년대 중반 이후 브라운관과 라디오에서 모습을 감췄다. 1970년대 후반으로 넘어가며 하나 둘씩 다시 등장한 그들은 초기 모습과 달리 트로트와 결합한 형태의 음악을 선보이며 연말 ‘10대 가수 가요제’에 명함을 내밀었다.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는 몇몇 뮤지션을 제외한다면 락이나 포크 모두 예전의 신선함과 실험성을 잃어버린 메이저 음악씬이 되고 만 것이다. 이러한 음악에 길들여지지 못한 젊은이들은 AFKN을 통해 송출되는 팝음악에 심취했다.

새로운 바람은 ‘대학가요제’에서 시작되었다. 1977년 MBC에서 시작된 대학가요제는 서울대 캠퍼스 밴드 샌드 페블스의 ‘나 어떡해’에게 대상을 안겨주며 그 동안 잊고 살았던 밴드 음악이 가지고 있던 ‘날 것’의 신선함과 실험성을 청자들의 가슴 속에서 다시금 꿈틀거리게 만드는 도화선이 되었다. 또 대학가요제 출신 밴드들의 출전곡들이 밴드 스스로 생산해낸 자작곡이 대부분이었다는 점에서 1970년대 초반 국내 포크의 모습 역시 품고 있었다. 산울림은 이러한 대학가요제의 바람몰이와 그 시작을 같이 했다. 하지만 산울림과 대학가요제에 출전한 캠퍼스 밴드들과는 커다란 차이 몇 개가 존재한다. 우선 캠퍼스 밴드들은 각 학교를 대표하는 밴드들로 활동하는 한 해가 지나면 다음 학번에게 기수를 물려주고 본격적인 활동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산울림은 애초에 그런 밴드가 아니라 삼형제가 만든 밴드였기 때문에 꾸준한 활동을 벌일 수 있었다. 또 가요제 출전 밴드들과 달리 입상의 중압감에서 자유로웠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그리고 밴드의 상황아래서 기적과 같은 데뷔앨범이 탄생했다. 바로 산울림 제1집이다.

앞서 언급했던 ‘아니 벌써’는 이 음반의 첫 번째 트랙이다. 바스러진 과자와도 같이 굵은 입자의 퍼즈 이펙트가 만들어내는 기타 리프는 신중현과 엽전들의 히트곡 ‘미인’ 이후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본격 락 사운드였다. 그 기술이 정교하거나, 음이 정확하지는 않았지만, 또 그 사운드 역시 허점이 많았지만 그래서 오히려 살아 꿈틀거리는 락음악이 되었다. ‘아니 벌써’의 히트와 함께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거야’, ‘불꽃놀이’, ‘문 좀 열어줘’가 줄줄이 라디오 방송의 전파를 탔다. 대학가요제에 대한 관심과 함께 그들의 음악을 위주로 선곡하는 프로그램들이 생겨나며 산울림의 인기몰이에도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거야’의 절묘하고 섹시한 템포 체인지, ‘안타까운 마음’의 소박한 그루브, ‘그 얼굴 그 모습’의 음습한 서정성은 비슷하게 선곡되던 산울림 이외의 곡들과 확실한 경계를 만드는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또 ‘불꽃놀이’의 락킹함, ‘문 좀 열어줘’의 엉뚱함과 놀라움은 당시 가요에 환멸을 느끼며 AFKN에 채널을 고정시켰던 팝 마니아들의 호기심을 얻어내기 충분했다. 본격 락사운드였지만 그와는 대조적으로 이야기를 하듯 현실감 있는 구어체 가사와 어눌한 듯 신선한 목소리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한 번 듣고 그들의 이름을 기억해낼 수 있는 개성으로 가득했다. 이러한 밴드 사운드와 가사, 창법은 이후로 이어지는 독창적 음악, 즉 산울림 사운드의 시작이 되었다. 당시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한다면 ‘전설의 시작’이 되었던 것이다.




산울림 제2집 : 실험성 충만한 산울림 최고의 명반.

산울림의 두 번째 음반은 데뷔앨범이 발매된 이듬해인 1978년에 공개됐다. 음반의 첫 번째 트랙은 데뷔앨범의 충격적 히트곡 ‘아니 벌써’의 바통을 이어받아 산울림 활동의 롱런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다. 리프에 이어 직접 주제로 돌입하는 ‘아니 벌써’와는 달리 베이스 기타의 시퀀싱 플레이 위로 진행되는 자유분방하고 사이키델릭한 일렉트릭 기타의 연주의 유영을 들을 수 있는 전주가 압권인 곡. 사실 요즘 방송을 들어봐도 3분이 넘는 곡이 나오는 경우가 그렇게 많지 않다. 하물며 1970년대 후반에 발표된 6분대의 이 곡이 자주 전파를 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하지만 청취자들의 계속되는 리퀘스트는 방송국에 새로운 편법을 만들면서 이 곡의 방송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 편법은 마로 전주 부분을 모두 떼어내고 퍼즈 사운드에서 크린톤으로 넘어가는 부분부터 송출하는 것이었다. 때문에 방송에서만 이 곡을 접해보고 음반을 처음 구입해 들어본 사람들은 예기치 못한 전주부분 연주에 당황하기도 했다. 어쨌든 이렇게 실험적인 트랙이 음반의 첫머리에 자리 잡고, 대중적인 히트까지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은 데뷔앨범의 뜻하지 않은 성공의 영향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만드는 부분이다.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외에 귀를 기울여 들어봐야 할 실험적인 트랙이라면 ‘안개 속에 핀 꽃’, ‘어느 날 피었네’, ‘이 기쁨’을 들 수 있다. 

일렉트릭 기타의 아르페지오에 초기 산울림 사운드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인 넘실대는 오르간 연주가 입혀지는 ‘안개 속에 핀 꽃’ 역시 6분대에 육박하는 곡으로, 특히 확실한 기승전결식 구성과 중반부 이후 사이키델릭한 연주는 ‘가수 산울림’이 아니라 ‘락밴드 산울림’의 위치를 확실하게 새길만한 베스트 트랙. 도입부의 완만한 퍼즈 기타 사운드에서 업비트로 발전해 나가는 과정이 신선한 ‘어느 날 피었네’는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노래 불러요’와 함께 방송을 통해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특히 ‘노래 불러요’는 그때까지 대부분의 가요 가사가 비교적 멜로디의 마디에 맞추어 만들어졌던 것과는 달리 생각지도 않았던 부분에 브레이크가 걸리며, 마치 해외의 락음악을 듣는 느낌을 전해주는 점도 흥미롭다. 사실 연주에 있어서는 적잖이 허점이 노출되고 있는 산울림의 사운드를 풍성하게 만들어준 일등공신이라면 세션으로 참가한 오르간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 무엇보다도 김창훈의 베이스 연주를 꼽을 수 있다. ‘어느 날 피었네’, ‘이 기쁨’에서는 그러한 사실을 확인시켜주기라도 하듯 종횡무진 쉬지 않고 프렛을 가로지르는 베이스 연주를 들을 수 있다. ‘이 기쁨’은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퍼즈, 와와나 페이저 등 사용할 수 있는 이펙트를 총 동원했음은 물론 스테레오 효과를 통한 간접적인 ‘애시드 트립(acid-trip)’의 카타르시스 역시도 동반한 음반의 숨겨진 명곡이다. 이 외에도 김창훈의 후배기수 샌드 페블스가 1회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획득했던 ‘나 어떡해’의 산울림 버전, 염세적이라는 이유로 방송 불가 판정을 받았지만, 상여가 나가는 전통적 느낌이 그대로 표현된 ‘떠나는 우리 님’ 등 그야말로 어느 곡 하나 빼 놓을 수 없는 수작들로 구성된 음반이다.




산울림 제3집 : 본격 삼인조 밴드의 응집력을 보여준 문제작.

일반적으로 산울림의 최고작을 꼽으라면 세 번째 음반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우선 음반의 뒷면을 가득 메우고 있는 대곡 ‘그대는 이미 나’의 실험성이나, 뒤늦게 주목받았던 김창훈의 ‘내마음 (내마음은 황무지)’가 수록된 앨범이고, 데뷔앨범의 ‘아니벌써’나 두 번째 음반의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와 같은 히트곡이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 사실 세 번째 음반에도 ‘한 마리 새 되어’가 심심치 않게 라디오 전파를 탔지만, 온 국민의 히트곡이었던 ‘아니 벌써’와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에 비길 바는 되지 못했다. 물론 전작에 수록되었던 스매시 히트곡들이 결코 노골적인 상업적 코드의 삽입에 의한 히트가 아니라, ‘아마추어리즘’에 입각한 ‘신선함’으로 일궈낸 업적임을 상기해 볼 때 히트곡의 유무는 음반 전체의 작품성 선정에 그다지 큰 영향이 되지는 않겠지만, 어쨌거나 이 음반은 앞선 두 장의 음반과는 조금 다른 구석이 있다. 앞서 서문에서 1, 2, 3집의 음반을 섞어놓고 무작위로 플레이할 경우 어떤 곡이 어느 음반에 들어있는지 잘 알아차리기 어려울 만큼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고 했지만, 세 번째 음반을 자세히 들어보면 앞선 두 장의 음반과 달리 전자 오르간이나 피아노가 빠졌다는 외형적인 차이가 있다(‘그대는 이미 나’에선 효과음과 같이 삽입되기도 했지만). 세션이 참여하지 않고, 말 그대로 삼인조 밴드의 기본편성으로 녹음된 음반이란 얘기다. 1집에서부터 마치 기타의 역할 분담을 하는 듯 했던 김창훈의 화려한 베이스워크는 산울림의 특징 가운데 하나였지만, 키보드 파트가 빠진 이상 김창완의 기타가 담당할 역할이 그만큼 커졌다. 

세 번째 음반의 첫 번째 곡은 연주 없이 김창훈의 공격적인 목소리로 시작하는 ‘내마음 (내마음은 황무지)’다. 키보드 파트가 없어진 대신 정말 삼인조의 기본편성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락킹한 트랙을 첫머리에 배치한 것이다. 산울림의 치밀한 계산과 진취적 음악성을 엿볼 수 있는 배열이다. 산울림 사운드가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매력은 클린톤의 기타 사운드와 퍼즈 사운드가 곡 템포의 변화와 함께 효과적으로 사용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공식은 ‘내마음 (내마음은 황무지)’ 뿐 아니라 ‘아무말 안해도’와 같은 곡에도 동일하게 적용시킬 수 있다. ‘한 마리 새 되어’는 클린톤으로만 이루어진 곡으로 다음해부터 시작되는 소위 ‘산울림 동요앨범’의 사운드를 미리 들을 수 있는 곡. 3집 앨범 가운데서는 라디오 전파를 가장 많이 탔던 곡이다. ‘아무도 없는 밤에’는 이전까지 들을 수 없었던 본격 블루스 연주를 도입한 곡이다. 8분이 넘는 러닝타임으로 구성되어 보컬 보다는 연주에 초점을 맞췄다. 이후 산울림의 음반에서도 좀처럼 듣기 어려웠던 색다른 넘버다. ‘그대는 이미 나’는 컬렉터들에게 이 음반을 사게 할 동기를 만들었고, ‘한국락 바로세우기’라는 이야기가 나오기 전 산울림의 음반을 재평가할 때 가장 먼저 거론되었던 곡. LP시대였던 당시 음반의 B면을 모두 채운 18분대의 러닝타임도 파격적이었다. 대개 산울림의 음악들이 점층적으로 발전되는 모습을 보여줬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곡의 시작부터 저돌적으로 몰아붙이는 정공법을 택했고, 반복되는 다른 파트 연주에 비해 김창완의 기타가 커다란 활약을 한다. 밴드로서 누리기 어려웠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산울림이었지만, 그 인기에 안주하기보다 그 인기를 바탕으로 더욱 실험적인 밴드의 응집력 있는 길을 모색한 것이다.

하지만 이 앨범을 끝으로 ‘응집력’이란 의미에서의 산울림의 음반은 한동안 유보된다. 4집에서 6집까지의 음반 역시도 훌륭한 작품이란 데는 이의가 없지만, 4집은 독집이긴 하지만 산울림이 부른 드라마나 영화의 주제가를 모아놓은 음반이라는 성격이 강했고, 5집이나 6집은 김창완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이 군 복무하던 시절 발표된 음반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산울림이 발표한 정규 13장의 음반은 개성이라는 측면에서 모두 다 일정 수준 이상의 만족감을 선사한다. 그 가운데서도, 시대적 상황을 놓고 볼 때 초기 석장의 음반은 이들의 음악을 이해하기 위해 꼭 들어야하는 명반군이다. (20140206)


글 송명하 (파라노이드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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