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 / 풋풋하고 신선하며 개성 강한 아마추어리즘의 기록



1. 프로듀서 김창완.

1970년대 후반, 말 그대로 혜성처럼 등장해서 수많은 히트곡과 함께 국내 락계에 커다란 이정표를 세웠던 산울림. 김창완, 김창훈 그리고 김창익 이렇게 삼형제로 이루어진 트리오 산울림의 활동은 1983년에 막을 내렸다고 할 수 있다. 물론 1984년에 10집 음반이 발표되었고, 그 이후 13집까지 앨범이 발표되기도 했지만, 10집은 김정택의 그룹 운명이 연주를 담당한 음반이었고, 11집과 12집은 김창완 솔로와도 같은 음반, 그리고 13집은 일시적인 재결합에 의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산울림 활동 기간 중에도 김창완은 [노고지리 제2집](서라벌, SR-0176, 1979), [손미나의 새 노래들](서라벌, SR-0173, 1979), [TBC-FM 7시의 데이트: 사랑의 듀엣](서라벌, SR-0204, 1980)과 같은 음반 제작에 참여한 바 있고, 대성음반의 문예부장으로 근무하며 대학가요제 출신 뮤지션들인 로커스트(1981), 인희(1982), 어금니와 송곳니(1983)를 차례로 발탁하기도 했다. 산울림의 9집 이후 김창완이 관여한 프로젝트 중 대표적인 중창팀으로 꾸러기들이 있다. 꾸러기들은 산울림의 9집이 발매된 해인 1983년에 결성된 프로젝트다.


2. 꾸러기들, 동물원의 또 다른 모델.

1985년에서 1986년 사이 나온 두 장의 정규앨범과 크리스마스 캐롤 음반 한 장, 그리고 2000년대 들어 활동당시 녹음되었던 라이브 음원이 복원된 CD한 장, 이렇게 넉 장의 음반을 발표한 그룹. 꾸러기들은 당시 다운타운가에서 주목받고 있던 포크 뮤지션들의 연합 프로젝트였다. 1기 멤버는 김창완 외에 임지훈, 최성수, 신정숙, 권진경 그리고 이호찬이며, 2기에서는 권진경과 이호찬 대신 윤설하와 현희가 참여했다. 꾸러기들의 주된 활동무대는 소극장이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공연이 뒤늦은 2001년 CD로도 발매된 바 있는 ‘꾸러기들의 100일 공연’이다. 1985년 10월 1일부터 1986년 1월 10일까지 이화여대 입구의 산울림 소극장에서 열린, 말 그대로의 100일 공연으로 꾸러기들은 당시 ‘음반 녹음 -> 라디오 방송 -> TV 출연 -> 연예면 기사’라는 판에 박힌 공식을 깨트렸다. 그리고 최성수, 임지훈, 신정숙 등 꾸러기들을 이루던 대부분의 멤버들은 김창완이 관여하고 있던 대성음반을 통해 독집음반을 발표하고 폭넓은 사랑을 받게 된다. 동물원은 애초에 이 모델을 그대로 적용한 또 하나의 프로젝트였다.


3. 동물원, 꾸러기들과 똑 같진 않았다.

김창기의 인터뷰를 보면 동물원은 “대학 1학년 때부터 같이 술 마시고 노래하던 친구들”이었다. 유준열과 김창기는 고등학교 동창이고, 이 둘을 중심으로 밴드가 조직된 것이다. 이렇게 같은 82학번 친구들인 김창기와 유준열, 김광석, 박경찬에 함께 활동하던 이웃밴드의 기타리스트 이성우, 그리고 노래패 메아리의 멤버 박기영과 배영길이 참여했다. 밴드명인 동물원은 김창기의 곡 가운데서 착안한 것. 김창기는 “‘동물원’은 갇혀있다는 느낌이다. 사회에서는 체제 속에 갇혀있고, 대학에서는 이데올로기 속에 갇혀있는 게 우리라고 생각했다.”라고 인터뷰를 통해 밴드명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이렇게 모인 밴드는 김창완에게 발탁된다. 그 중간에 다리를 놓았던 건 꾸러기들에서 김창완과 함께 활동했던 임지훈이다. 임지훈과 김창기는 임지훈이 꾸러기들 해산 후 발표한 솔로앨범에 수록된 ‘기다리면 대답해 주시겠어요’, ‘영아의 이야기’, ‘사랑의 썰물’, ‘내사랑’을 김창기가 작곡하며 이미 인연을 맺은 바 있다. 개성 강한 뮤지션들의 모임, 또 음반 발표 후 소극장 공연을 통한 홍보 등 이렇게 시작된 동물원의 역사는 분명 그 모델이 꾸러기들이었다. 하지만, 동물원과 꾸러기들은 분명 달랐다. 그 가운데 가장 다른 점은 꾸러기들처럼 다운타운가의 스타들이 아니고 대학가의 실력가들이란 점, 또 노래 잘하는 가수들의 모임이 아니고 노래 만들기를 좋아하는 작곡가들의 집단이라는 점이다.


4. 그 출발은 개성 강한 개개인의 옴니버스. 

잠시 동물원 데뷔 당시 잡지 기사를 보자. 

“(전략) 그룹 리더는 따로 없으며 그룹 결성을 제의한 김창기(26, 연세대 의대 본4)를 비롯 건반의 박기영(24, 연세대 정외 4), 베이스 기타 유준열(26, 고려대 대학원 물리학 전공), 기타의 박경찬(26, 고려대 물리학 4), 김광석(26, 명지대 경영졸), 이성우(26, 고려대 화공 4)와 드럼을 맡은 최형우(26, 고려대 화공 4) 등. 이 중 김창기는 최근 가수 임지훈의 히트곡인 ‘사랑의 썰물’을 작사 작곡한 장본인이고 박경찬, 유준열은 대학가요제 본선대회 출전에다 노래솜씨는 물론 작편곡과 뛰어난 연주 실력으로 대학가 축제마당에선 스타로 알려져 온 인물, 그룹 결성 기념으로 옴니버스 형식의 음반을 내기로 했으나 돈이 없어 미루고 있던 차에 이들의 활동을 지켜보던 산울림의 김창완이 지난 8월 전격 스카우트, 꾸준히 취입준비를 시켜 올해 가요계의 히든카드로 내놓게 된 것.” <동물원, 옴니버스 음반 히트 조짐> TV 가이드 (1988년 2월 6일, 제336호)

기사의 타이틀을 보면 ‘옴니버스 음반’이란 표현이 눈에 띈다. 분명 동물원이라는 하나의 밴드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모습은 출발 당시 개개인이 모인 집단이라는 인식이 강했단 얘기다. 김창기의 인터뷰를 보면 “처음에는 앨범을 만들려고 했던 게 아니라 우리가 노래를 못한다는 것을 아니까 우리의 노래들을 다른 가수에게 팔려고 했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물론 이들의 곡은 다른 가수에게 팔려 나가지 않고, 동물원이라는 밴드의 음반에 수록됐다. 그리고 각자 만든 곡들은 대부분 스스로 부르거나 듀엣으로 다른 구성원과 호흡을 맞췄다. 이런 과정에서 기존 가요계에서 볼 수 없던 신선하고 개성 강한 결과가 만들어진 것이다.


5. 김광석, 동물원의 ‘간판스타’로 떠오르다.

어린 시절, 동물원에 갔던 기억을 떠 올려보자. 기린, 사슴, 타조, 얼룩말 등 처음 보는 동물들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동물원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호랑이였다. 호랑이를 보러 동물원에 가서 이 동물 저 동물들을 보고 왔다고 할까. 호랑이는 분명 동물원의 간판이었다. 그렇게 생각할 때, 그룹 동물원의 호랑이로 키워진 건 김광석이었다. 아무리 잘 만든 노래라고 할지라도 그 노래를 누가 부르느냐에 따라서 받아들여지는 느낌은 완전히 다르다. 동물원의 데뷔앨범 가운데 가장 먼저 히트한 ‘거리에서’가 바로 김창기가 작곡하고 김광석이 부른 노래다. 김광석은 일찍이 1982년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대학연합 동아라 ‘연합메아리’에서 본격적으로 노래하기 시작했다. 노래패에서 노래를 불렀기 때문에 그 창법 자체가 일반적인 가요를 듣던 사람들에겐 생소했지만 가슴속 깊숙이 파고드는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 좋은 노래와 노래 잘 하는 가수의 만남이 아마추어들의 단발형 옴니버스로 끝날 수도 있었던 동물원의 활동을 프로 뮤지션의 지속적인 활동으로 만드는 촉매가 된 것이다. 물론, 그 첫 작품인 데뷔앨범은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아마추의 단발형 옴니버스의 성격을 띠고 있다. 어쩌면 그 때문에 긴 생명력을 가질 수 있었다. 마치 호랑이를 보러 갔다 왔지만, 머릿속에는 재주 부리던 원숭이나 예쁜 앵무새가 더 많이 남았던 것처럼.


6. 동물원 1집, 풋풋하고 신선하며 개성 강한 아마추어리즘의 기록.

김광석이 부른 ‘거리에서’의 스매시 히트는 동물원이라는 신인그룹의 이름을 알리는 데 혁혁한 공훈을 세웠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것처럼 동물원의 데뷔앨범은 김광석의 노래가 전부는 아니었다. 풋풋하고 신선한 대학가의 젊은 작곡가들의 살아서 펄떡거리는 음악들이 담긴 음반이기 때문이다. ‘거리에서’와 함께 히트한 곡은 ‘변해가네’다. 역시 김창기가 작곡하고 박기영이 노래를 담당한 곡. 독특한 리듬과 단순한 악기편성으로 진행되는 이 곡에서 박기영의 노래는 분명 잘 부르는 노래가 아니다. 또 연주 역시 허점투성이다. 하지만 들을수록 매력이 넘치는 곡이란 건 이미 대중적인 히트가 증명했고, 리쌍, 안녕바다의 리메이크로 확인됐다. 그런가하면 이 두곡에 이어 ‘말하지 못한 내사랑’도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유준열이 만들고, 유준열과 김광석이 듀엣으로 화음을 맞춘 곡. 이어지는 김창기가 작곡하고 노래까지 맡은 ‘잊혀지는 것’과 함께 이후 발매될 동물원의 음반들에 수록되는 대표곡들의 ‘원형’을 듣는 듯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전체적인 편곡 역시 독특하다. 전형적인 발라드 문법도 아니고, 포크락의 성격을 띠지도 않는다. 텐션코드와 당김음으로 보사노바 스타일인가 했더니 어떻게 들으면 알앤비 같기도 하다. 물론 이 모든 게 애초에 아마추어로 시작했기 때문에 제각각의 그릇에 물을 담듯 의도와 달리 표현됐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전형적인 룰을 따르지 않아서 강한 개성을 여과 없이 담았다고 보는 편이 낫겠다.


동물원의 두 번째 음반은 1집과 같은 해인 1988년 발매됐다. 기간은 그리 큰 차이가 나는 건 아니지만, 그 느낌은 사뭇 다르다. 두 번째 음반이로 확실하게 프로 뮤지션이 됐달까. 물론, 풋풋하고 신선했던 이들의 이미지가 완전히 바뀌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1집에 비해 보다 전문적인 연주인들의 참여로 인해 여러모로 매끄러운 음반이 되었다. 김광석이 마지막으로 참여한 음반, 이번에는 좋은 노래와 안정적인 연주의 만남까지 이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2집을 최고의 음반으로 여기는 충분한 이유가 될 것이다. 그래도, 어쩌면 데뷔 당시의 수줍음까지도 서툰 연주와 함께 담긴 데뷔앨범이 주는 색다른 매력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동물원의 값진 유산이다. “뭐 재미있는 거 없나? 들어봐.”로 시작하는 ‘비결’의 시작부분 멘트처럼 언제 들어도 또 다른 재미로 청자를 반기는 흥미로운 음반이다. (20150303)


글 송명하 (파라노이드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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