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블스 / 드디어 LP로 재발매되는 아웃사이더 데블스의 데뷔작


사실 2000년대 초반까지 데블스(Devils)란 밴드는 거의 잊힌 존재였다. 혹시 아는 사람이 있더라도 그저 “한때 ‘그리운 건 너’를 히트시켰던 원 히트 원더(one-hit wonder)의 70년대 밴드”정도로 기억할 뿐이었다. 데블스가 발표했던 음반들은 그 존재 유무가 논란이 될 정도로 눈에 잘 띄지 않았다. 발표한 정식 음반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그 활동 기간이 짧았던 편도 아니지만 너무나 쉽게 잊혔다. 물론 동시대에 활동하던 다른 밴드들 역시 그랬다고 한다면 다른 할 말은 없겠지만.


한 컬렉터의 끊임없는 추적과 함께 2003년 들어 데블스의 공식 두 번째 음반이 LP로 재발매됐다. 닫힌 창살을 등지고 있는 독특한 표지만으로도 관심의 대상이 되었던 데블스의 두 번째 정규작은 앞서 이야기했듯 그 존재의 유무가 논란이 될 정도로 희귀한 음반이었다. 데블스를 기억하는 이들이 떠올리는 ‘그리운건 너’가 정식으로 수록된 음반임에도 불구하고 그 실체를 만나보긴 정말 힘들었다. 데블스가 활동할 당시 국내에 ‘사이키델릭’을 표방한 밴드는 많았던 반면 본격 ‘소울’을 연주하는 밴드는 거의 없었다. 더욱이 음반으로 남긴 밴드는 손에 꼽을 정도도 되지 않는다. 희소성을 넘어 데블스의 음반이 다시 세상에 나오게 된 게 중요한 이유는 1970년대 초반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았던 국내 밴드 음악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음반은 다시 2009년 CD로 재발매됐다. CD 재발매에는 또 한 장의 희귀음반이 포함됐다. 바로 데블스의 데뷔앨범이다. 데블스의 데뷔앨범은 1970년 서울 시민회관에서 개최된 ‘제2회 플레이보이 보컬그룹 경연대회’에서 구성상과 가수왕상을 받은 기념으로 발표된 음반이다. 어쩌면 LP로 먼저 재발매된 두 번째 음반보다도 더 희소성을 지닌 음반이었다. 그 발매 순서가 뒤바뀐 이유는 최대 히트곡 ‘그리운 건 너’의 유무 때문이었겠지만, 출발 당시 데블스의 모습이 ‘날것’으로 담겼다는 점에서 자료로서의 가치 역시 큰 음반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움직임 중간에 개봉한 최호 감독, 조승우, 신민아 주연의 영화 ‘고고 70’(2007)은 이야기로만 떠돌던 데블스의 실체를 확인시켜 주기에 충분했다.


물론 ‘고고 70’은 영화인만큼 전개를 돕기 위해 많은 부분 ‘허구’의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기지촌인 왜관에서 올라온 아웃사이더 데블스와 서울 인근에서 활동하던 다른 밴드의 상황, 앞서 언급한 ‘보컬그룹 경연대회’의 모습, 데블스의 활동 거점인 닐바나 등 데블스를 이해하는데 커다란 도움이 되는 키워드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또 말 그대로 ‘전설’과도 같았던 ‘보컬그룹 경연대회’에서 관을 끌고 나오는 퍼포먼스 역시 그대로 재현됐다. ‘구성상’이라고 하는 독특한 타이틀이  영화를 통해서 실체로 드러난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 CD로만 재발매됐던 데블스의 데뷔앨범이 LP로 만들어진다. 뒤바뀐 순서였지만, 두 번째 음반의 옆자리에 꽂을 음반이 비로소 자리를 찾은 것이다.


데블스는 1967년 김명길이 조직한 앰비션스(Ambitions)가 1968년 개명한 그룹으로, 이듬해인 1969년 연석원을 비롯한 앤젤스(Angels)의 멤버들과 합쳐지며 완벽한 밴들의 틀을 갖췄다. 결성당시 주 활동무대는 기지촌이 있는 왜관이었고, 그 곳에서 6개월 정도 하우스 밴드 활동을 한 후 1969년 서울로 입성하여 이태원의 007클럽, 아메리칸 클럽, 럭키 클럽 그리고 파주의 파라다이스 클럽 등을 전전하며 활동했다. 1970년 서울 시민회관에서 개최된 ‘제2회 플레이보이 보컬그룹 경연대회’에서 데블스는 독창적인 무대 매너로 구성상과 가수왕상(연석원)을 받았고, 닐바나, 마이 하우스 등 1970년대의 전설적 고고클럽에서 활동하는 한편, 그룹사운드 경연대회 입상 기념음반 [추억의 길 / 연인의 속삭임]을 1971년 아세아 레코드를 통해 발표했다. 바로 이 음반이다. 


이후 발매되는 음반과 달리 데블스에 데뷔앨범에 수록된 곡은 대부분 밴드 멤버 외의 작곡가가 작곡한 곡과 번안곡이다. 번안곡은 ‘프라우드 메리’와 ‘두 그림자’인데 공교롭게도 모두 C.C.R.의 곡이다. ‘두 그림자’의 원곡은 ‘Long As I Can See the Light’. 밴드 멤버들이 직접 작곡한 곡이 많지 않다는 점 외에 이후 앨범과의 차이는 또 있다. 앞서 ‘가수왕’ 상을 받았던 연석원의 존재다. 검은 냄새 물씬 풍기는 연석원의 보컬은 분명 이 음반에서 밴드의 얼굴을 담당했다. 후속앨범들에서 들을 수 있는 밴드 특유의 사운드보다 보컬에 더 큰 무개를 싣고 있다는 얘기다. 첫 곡 ‘추억의 길’을 필두로 데뷔앨범임에도 불구하고 이전의 수많은 공연 경험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연석원의 노련한 보컬은 라이처스 브라더스(Righteous Brothers) 혹은 퍼시 슬레지(Percy Sledge)의 소울이 그대로 묻어난다. 김명길이 보컬을 담당하며 소울과 타령을 오가는 ‘연인들의 속삭임’ 역시 후속 앨범의 느낌과 적잖은 차이가 있다. 물론 특유의 기타 사운드는 ‘밤비’와 같은 곡에서 이미 본 궤도에 올라섰고, 하모니 보컬의 매력도 적제적소에서 빛을 발한다. ‘프라우드 메리’의 힘찬 브라스파트는 전형적인 데블스 사운드를 그대로 담고 있다.


이후 보컬리스트였던 연석원의 군 입대 등을 이유로, 한차례의 대폭적인 멤버교체를 단행하게 되어 김명길(기타, 보컬), 최성근(키보드), 채완식(베이스, 보컬), 유기원(드럼), 홍필주(트럼펫), 박문(테너 색소폰)으로 밴드를 재정비한 데블스는 계속해서 당대 최고의 고고클럽들이던 닐바나, 타워 클럽, 로얄호텔 지하 클럽 등 수많은 클럽에서 활동하는 한편 최고의 문제작으로 손꼽히는 소위 ‘철창’ 앨범으로 불리는 2집 음반의 제작에 들어가게 된다. 그렇게 1974년 ‘그리운 건 너’가 수록된 밴드의 대표작이 발표되고 ‘그리운 건 너’를 방송에서 틀기 적합한 길이로 축소한 버전을 담고 있는 히 식스, 혹은 유심초와의 스플릿 음반 [그리운건 너 / 저녁 한때 목장 풍경](1975)이 이어졌다. 1977년, 밴드의 이름을 내 건 마지막 앨범 [너만 알고 있어 / 사랑의 무지개]을 발표하고, 데블스는 자신들의 온전한 활동보다 다른 뮤지션들의 편곡과 연주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이은하의 ‘밤차’, ‘아리송해’, 윤승희의 ‘아빠랑 엄마같이’, ‘제비처럼’, 정난이의 ‘제 7광구’ 등 당시 디스코의 열풍과 맞물린 데블스의 소울 / R&B 사운드는 그야말로 주가를 올린 바 있다.



밴드 해산 이후 기타리스트 김명길은 퀘스천스(The Questions)라는 밴드를 결성해 한 장의 음반을 발표했다. 2008년 개봉된 최호 감독, 조승우, 신민아 주연의 ‘고고 70’에 데블스가 직접적인 소재로 쓰이면서 다시 한 번 주목을 받았고, 그와 함께 김명길을 주축으로 잠시 재결성해 공연을 가진 바 있다. (20170104)


글 송명하 (파라노이드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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