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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ER'S MUSIC LIFE/LINER NOTES (DOMESTIC)

여러 음악인들 [아름다운 사람아 아름다운 노래를]

38년만에 완전한 모습으로 공개되는 국내 포크의 전설적 명반

우리의 머릿속엔 언제부턴가 우리의 1970년대 초반이 ‘청바지’, ‘생맥주’ 그리고 ‘통기타’의 시대라고 은연중에 각인되어, 당시의 젊은이들이 물질적으로는 가난했을지언정 ‘낭만’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한없는 자유로움의 동경이 대상이 되어있는 듯 하다. 하지만, 앞선 세 단어가 주는 혜택에 직접적인 수혜를 입은 사람들은 우리의 생각처럼 그렇게 보편적이진 않았다. 일반적인 젊은이들에게 미군 부대 근처에서 흘러나오는 몇몇 벌 이외에 ‘청바지’를 구할 기회는 그렇게 많지 주어지지 않았으며, 살롱이나 호프집의 ‘생맥주’보다는 선술집의 ‘막걸리’가 보편적이었다. 그리고 ‘통기타’를 치며 부를만한 ‘우리’ 스스로의 노래는 거의 없었다. 물론 1970년대 초반에 기존 해외의 곡들에 재치 있는 가사를 실어 세태를 풍자하며 대중 속으로 파고들었던 음악들을 폄하하려는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우리 자신들이 온전히 작곡하고 노랫말을 붙여 불렀던 음악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던 것은 분명하다. 적어도 우리의 귀에 지금까지 들려지고 있는 노래들 가운데서는 말이다.

 

국내에서 노래를 부르는 뮤지션이 작곡이나 작사, 편곡 등에서 주체가 되는 포크음악에 도화선이 된 인물들은 바로 김민기와 한대수였다. 미국에서 홀연히 귀국하여 특유의 히피차림으로 그 외모만큼이나 일그러진 음색과 도발적인 가사로 선보였던 한대수의 자작곡 넘버들은 이미 일찌감치 데뷔하여 어느 정도의 인지도를 얻고 있던 기존 포크 싱어들의 귓가에도 커다란 충격으로 남았으며, 고뇌하는 지성을 그대로 싯귀절과 같이 아름답지만 중의적인 가사에 담아 나지막이 읊조리던 김민기의 목소리는 1971년 레코드라는 기록 매체에 오롯이 담겨 동시대의 젊은 싱어 송라이터들을 각성시켰다. 이번에 마스터 음원을 이용해 깨끗한 음질의 CD로 재발매되는 [아름다운 사람아 아름다운 노래를]은 김민기와 동시대에 활동했고, 그의 음반에 의해 각성한 뮤지션들이 남긴 또 하나의 소중한 기록이다.

 

1972년에 발매된 초반에 참여한 인물들은 대개 당시 ‘내슈빌’이라는 음악실에서 활동하던 뮤지션들이었다. 음반의 크레디트를 살펴보면 기획자는 이강과 김유복, 제작은 ‘우리들’이라고 적혀있다. 이강은 이청과 함께 레코딩 엔지니어로 활동했던 인물이고, 김유복은 내슈빌의 세 주인 가운데 한명이다. 그리고 우리들이란 바로 음반에 참여한 젊은 뮤지션들 자신을 의미한다. 수록곡의 작사, 작곡에서 편곡이나 연주는 물론 기획과 제작까지 스스로의 힘으로 일궈냈던 사전 뜻 그대로 ‘인디’ 음반의 효시라고 부를만한 독자적인 앨범인 것이다. 물론 그 때문에 500장 밖에는 제작되지 못해서 지금까지도 초반은 부르는 게 가격일 정도로 높은 가격대를 형성하고 그나마도 구하기는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희귀음반의 대접을 받고 있으며, 두 차례에 걸쳐 재발매된 음반마저도 높은 프리미엄이 얹혀 거래되고 있는 실정이다.

 

음반의 녹음이 수원의 시민회관에서 열렸던 발표회 형식의 공연을 담은 라이브라는 얘기도 있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고 녹음은 마장동에 있던 ‘유니버어살 스튜디오’에서 이루어졌다. ‘세노야’에 대한 관심으로 본인은 원하던 그렇지 않았건 이미 어느 정도 유명세를 얻고있던 김광희와 대학 축제나 방송출연 등 활발한 활동으로 인지도를 쌓은 대학가의 스타 방의경을 비롯 고경훈, 박두호, 김태곤, 박두영, 김현숙과 서활 등 8명의 각기 다른 뮤지션들이 참여하고 있지만, 음반 전체의 흐름에 어떤 통일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비단 음반에 수록된 음악뿐만 아니라 이들 활동에 전반적인 공동체 의식이 있었음을 증명하는 부분이다. 또 이러한 공동체 의식 가운데 기존 프로 음악인들과는 전혀 다른 길을 가려는 독자적 음악관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것을 음반에 옮기기 위해 자신들이 다룰 수 있는 어쿠스틱 기타와 피아노 외에 플루트나 첼로 등 일반 포크 음악에서 많이 사용되지 않던 악기들을 과감히 도입했다. 때문에 이 음반에 수록된 곡과 같은 곡이 이후 다른 음반에 수록되었더라도 그 느낌은 확실하게 다르다. 

 

작곡가로는 이미 이름이 나 있던 김광희의 음성을 직접 들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곡인 ‘나 돌아가리라’는 ‘가난한 마음’으로 제목이 바뀌어 양희은이나 현경과 영애의 음반에도 수록된 바 있었고, 박두호의 ‘8번 (아야 우지마라)’는 김태곤에 의해 국악풍으로, 황경숙에 의해 업템포의 곡으로 불린 바 있지만 이 음반에 수록된 신선함이나 진솔함과는 많은 거리가 있다. 양희은의 음성으로 많이 알려졌지만, 이미 국내 포크 매니아들에게는 전설적인 존재로 추앙받고 있는 방의경의 ‘불나무’ 역시 마찬가지. 기존 재발매 음반에서 누락되었던 김태곤과 서활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는 것도 이번 CD 재발매로 맛볼 수 있는 커다란 행운 가운데 하나다. 특히 특유의 사투리 억양만 제외한다면 ‘송학사’나 ‘망부석’을 히트시킨 인물과 동일 인물임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미성을 구사하는 김태곤의 ‘하루 이틀 사흘’은 어쿠스틱 기타와 어울린 플루트와 첼로 반주로 입맛 까다로운 아트록 팬들도 스피커 앞에서 걸음을 멈추게 만들 흡인력을 가지고 있으며, 내슈빌에서 활동하던 뮤지션들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지만 밴드활동을 잠시 멈추고 음반에 참여한 서활의 ‘내 마음과 흰 새’는 여타 활동과는 전혀 다른 그의 음악성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무척 흥미롭다.

  

이미 두 차례에 걸쳐 재발매되긴 했지만 원래의 앨범과 다른 자켓과 수록곡으로 등장한 탓에 많은 아쉬움을 남겼던 음반이 38년이 지나 원래 그대로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선보인다. 그것도 재발매 음반에 수록되었던 세곡과 2집을 위해 아껴두었던 두 곡의 미발표 트랙이라는 보너스와 함께. 음반에는 “더욱 많은 분들이 우리와 같은 뜻으로 진실의 아름다운 노래를 지어 부르고 더욱 더 많은 분들이 이 아름다운 노래를 우리들과 함께 불러 주시기를...”이라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당시에는 큰 목소리를 내지 않고 소박하고 진솔한 자신들의 모습을 그대로 담은 기록이었고, 이후에는 한정된 수요에도 불구하고 음반을 구하려는 사람들에 의해 ‘전설’이 되어버린 음반. 하지만 이제 재발매를 통해 언제까지나 함께 부를 수 있는 ‘아름다운 노래’가 되어 정말로 ‘아름다운 사람들’이 원했던 그 위치를 찾은 게 아닐까. 정말 명반은 골동품과도 같이 LP장에 꽂혀 먼지만 쌓여가는 음반이 아니라 가까운 곳에서 언제나 꺼내 들으며 듣는 이의 마음을 위로하고 감싸줄 수 있는, 생활과도 같은 음반일테니 말이다. (20100213)

 

글 송명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