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퀸텟 [멋쟁이 아가씨 / 사랑의 마음]

오색 빛깔 무지개와 같이 각기 다른 개성을 한 데 모은 ‘전설’의 음반

 

무지개 퀸텟은 한때 그저 “한대수의 두 번째 음반에 세션을 맡은 밴드” 혹은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밴드와 전혀 계보로 엮을 수 없는 무지개라는 밴드가 있었다”는 정도의 소문으로만 떠돌았던 밴드다. 계보로 엮을 수 없었기 때문에 다른 밴드의 인터뷰에도 등장하지 않았고, 유일한 독집은 금지곡의 멍에를 쓰고 사라졌다. 구성원 역시 이후 뚜렷한 활동이 없었기 때문에 밴드의 존재에 대해 명쾌한 해답을 내놓는 이도 없었다. 하지만 실체는 있고 음반도 남아 있었다. 무지개 퀸텟은 산 마리노에 고정적으로 출연해 무대를 꾸리던 솔리스트들이 모인 일종의 프로젝트 밴드로 그 중심에는 이경석이 있었다. 이경석은 밴드 활동 이후에 윤복희, 배인숙, 김수희 등의 음반에 작사/작곡 및 편곡자로 활동한 인물로 화려한 오케스트레이션이 동반된 명곡들을 탄생시킨 바 있다. 무지개 퀸텟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를 풀어가기 전에 잠시 이경석에 대해 살펴보자.

이경석이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중학교 2학년때 기타 하나를 선물 받으면서부터다. 당시 피아니스트였던 누나의 악보를 보며 독학으로 기타를 익혀나간 덕에 독보 능력을 함께 익힐 수 있었으며 중학교 3학년 시절에는 래즈 앤 레스(Lads & Less)라는 아마추어 밴드를 조직할 정도로 음악에 푹 빠졌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입학하며 이후의 진로를 아예 음대로 결정했다. 1968년 가정형편상 돈을 벌기 위해 미8군 무대를 기웃거리다 오르간 주자로 처음 프로 활동을 시작한 그는 기타, 오르간, 보컬 등 가리지 않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밴드의 멤버로 활동했다. 경희대 작곡과에 입학한 후에도 쉬지 않고 우드스탁스, 라스트 찬스 등 10개 이상의 밴드를 전전하며 일반적인 직장인들의 월급을 훨씬 웃도는 수입을 올리기도 했다. 미8군 시절에는 올 에이(All A)를 받을 정도로 그 연주실력 역시 인정받았다. 1970년대 초반 그는 산 마리노라는 일반 무대에 올라 고정적인 공연을 펼친다. 당시 산 마리노에는 엄진이 연예부장으로 근무했다. 그리고 엄진이 문예부장으로 있던 포시즌 기획과 자연스럽게 인연을 맺게 됐다.

포시즌 기획은 신세계 레코드에서 파생된 기획사로 신세계의 윤상호 대표와 실질적으로 포시즌 기획의 대표로 있던 강찬호 상무의 아버지가 만든 회사로 1973년 경 설립됐다. 설립 이후 포시즌 기획을 통해 발매되는 음반은 복기호가 편곡을 전담했으나, 이경석이 가세한 이후 복기호는 주로 트로트 성향의 곡을, 그리고 이경석은 록이나 팝 성향의 곡을 편곡하는 분업이 이루어진다. [멋쟁이 아가씨 / 사랑의 마음]은 1974년에 발표한 무지개 퀸텟의 유일한 음반으로 포시즌 기획의 강찬호가 제작했고 이경석과 엄진이 공동 프로듀스를 담당했다. 당시 산 마리노에서 활동하던 솔로 가수들의 음반이라는 의도를 가지고 만든 음반이었던 만큼 밴드의 이름과 곡 제목을 정한 뒤 각각 그 가수의 개성에 맞는 곡을 만들고 음반의 제작에 이르기까지 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다만 한 달 안에 결과물을 만들어야 했던 빡빡한 일정은 제작 후 일말의 아쉬움이 되기도 했다.

우선 무지개 퀸텟이 발표한 유일한 독집의 재킷을 보자. 왼쪽부터 정성환(보컬), 이은덕(건반), 김덕성(드럼), 김혜수(피아노), 이경석(기타) 그리고 김현규(베이스) 이렇게 여섯 명이 카메라를 주시하고 있다. 다섯 명이 아니고 여섯 명이다. 여섯 명이면 어째서 섹스텟(Sextet)이 아니고 퀸텟일까. 그건 밴드의 원래 구상이 다섯 명이었던 까닭이다. 연주에 있어서 클래식 전공자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당시 중앙대 피아노과에 재학 중이던 김혜수가 뒤늦게 합류하며 밴드의 이름은 무지개 퀸텟이었지만 편성은 섹스텟이 됐다. 드러머 역시 원래는 김지훈이었지만 음반에는 참여하지 못했고 김현규의 친구였던 김덕성이 가입했다. 김지훈은 1978년 솔로 음반을 발표하며 이 음반에 수록됐던 ‘이렇게 당신 생각에’를 리메이크해 수록하기도 했다. 재킷 사진의 배경은 창진동의 한 골목이다. 사진 좌측 건물 2층에 바로 포시즌 기획 사무실이 있었다. 두 번째 음반을 구상한 한대수가 엄진을 만나러 찾아온 곳도 이곳이고, 거기서 인연을 맺게 된 무지개 퀸텟은 한대수의 2집 [고무신]의 세션을 맡게 된다.

‘멋쟁이 아가씨’는 정성환이 보컬을 담당한 곡이다. 정성환은 산 마리노에 출연하던 팀 가운데 유일하게 록 음악을 했던 고려대학교 밴드의 보컬리스트였는데, 로버트 플랜트(Robert Plant) 스타일의 거친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이 곡은 그의 매력을 십분 살리려는 의도로 만든 곡으로, 음반의 오프닝에 걸맞는 업비트의 본격 하드록 넘버다. 하지만 음반의 베스트 트랙으로 꼽을 만한 곡임에도 불구하고, 발표 이후 창법이 유치하다는 이유로 금지곡에 묶이고 만다. 음반 발매와 함께 방송 출연 등 활발한 활동을 벌이려던 밴드의 의도가 한풀 꺾이며 밴드로서 롱런하지 못하는 단초가 된 것 역시 이 곡이다. ‘가을은 가고’는 이은덕이 리드보컬을, 나머지 멤버들은 코러스를 맡았다. 차분한 실내악 풍의 편곡, 그리고 솔리스트와 같은 멜로디를 이끌고 나가는 피아노 연주에서 앞서 클래식을 전공한 피아니스트가 필요했다던 이경석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멋쟁이 아가씨’와 마찬가지로 이 곡을 비롯한 음반 전체적으로 독특한 퍼커션 사운드는 세션으로 참여한 유복성의 연주다. 

사이키델릭한 오르간 인트로를 가진 ‘빗속의 사랑’은 피아노를 맡은 김혜수가 리드보컬을 맡았다. 평소 산 마리노에서 포크 싱어로 활동했던 다른 멤버들이 보컬을 맡은 곡과 달리 아마추어의 신선하고 풋풋한 보컬을 들을 수 있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역시 단순한 ‘반주’의 위치를 넘어서는 피아노를 비롯한 악기 파트의 폭 넓은 활용에도 귀 기울일 만 하다. 정성환과 이은덕이 각각 보컬을 담당한 ‘당신은 몰라’와 ‘나는 어떻하라구’의 연주는 같은 해 발매된 윤항기의 음반 [나는 어떻하라구]에 수록된 연주와 동일하다. 당시 같은 기획사에서 나오는 음반의 경우 이런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마찬가지의 경우라고 보면 되겠다. 두 곡 모두 이경석 편곡, 무지개 퀸텟의 연주가 아니다. 이경석이 직접 보컬을 맡은 ‘사랑의 마음’은 탱고 리듬을 가진 라틴 풍의 곡이다. 록에서부터 플라멩코에 이르기까지 그 경계를 두지 않는 이경석의 기타 연주를 들을 수 있다. 김현규가 노래한 ‘웬일일까’는 코러스의 효과적인 활용이 돋보이는 곡.  ‘이렇게 당신밖에’는 ‘멋쟁이 아가씨’와는 또 다른 지점에서 정성환이 가진 탁성의 매력을 제대로 드러낸 곡이고, ‘그 얼굴’은 당시 산 마리노에서 흘러나왔을 법한 전형적인 포크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엄진의 동생이 당시 흑룡부대의 상사로 근무했던 까닭에 만들었다는 ‘흑룡부대가’를 포함한 총 10곡을 담은 이 음반을 발표한 무지개 퀸텟의 활동은 앞서 언급했던 타이틀 트랙 ‘멋쟁이 아가씨’가 금지로 묶이는 바람에 1년도 채 되지 않는 시간동안 추진력을 잃고 만다. 포시즌 기획에서 제작한 옴니버스 음반인 [포시즌 영패밀리] 시리즈에 무지개 사운드라는 팀 이름으로 몇 곡을 수록하긴 했지만, 확고한 방향을 가지고 있던 이경석과 달리 나머지 멤버는 이후 진로를 결정하지 못하고 결국 뿔뿔이 흩어졌다. 이후 다른 음반에서 그 이름을 찾아볼 수 있었던 멤버는 이종식과 사랑의 샘에 리드 보컬로 가입해 ‘화분’을 히트시켰던 정성환 뿐이었다. 반면 이경석은 제대 후 포시즌 기획의 편곡자로 활동하는 한편 이백천이 설립한 광고회사에 김도향 이후 가세해, 그보다 뒤에 합류한 윤형주와 함께 수많은 CM송 제작을 맡게 된다. 특히 실업야구 시즌, 롯데의 응원단에서 보여준 오케스트라 지휘로 롯데제과 경영진으로부터 인정받은 후 롯데제과 CM송의 90% 정도를 소화해 내기도 했다. 이경석은 당시 클라이언트로부터 돈을 받으며 오케스트라를 활용할 수 있었던 경험이 이후 가요 편곡에 있어서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이경석 자신은 이 한 장의 음반으로 평가를 받는다는 게 창피할 때도 있다고 이야기했지만, 무지개 퀸텟의 유일한 독집은 여러모로 흥미로운 음반임에 틀림없다. 국내 록의 계보에서 동떨어진 만큼 그 누구보다도 독특한 음악성을 자랑하고 있으며, 전반적으로 포크록에 그 기반을 두고 있긴 하지만 오색 빛깔 무지개와 같이 각기 다른 개성의 보컬리스트와 함께 다양한 장르를 선보이고 있다는 점 역시 그렇다. 그리고 악기파트와 코러스의 적절한 활용은 편곡자로서 이경석의 위치를 확인시켜준다. 이는 베토벤과 벤처스, 그리고 비틀스를 동일선상에 놓고 창작과 편곡, 연주에 있어 필요한 부분들을 골고루 흡수한 그의 비범한 재능과 다름 아닐 것이다. 올해는 이경석이 프로 무대에서 활동한 지 50년이 되는 해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전설’로만 회자되던 음반의 실체를 만날 수 있어 정말 다행이다.  (20181220)

글 송명하 (파라노이드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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