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희 [다이너마이트 소녀]

인희는 1981년, 정오차가 ‘바윗돌’로 대상을 받았던 제5회 대학가요제에 한인희라는 본명으로 출전해 ‘잊고 산 것’이라는 곡으로 금상을 받으며 데뷔한 가수다. 그녀가 직접 작곡한 이 곡은 브라운관 앞에 모여 우승자를 점치던 시청자들을 순식간에 충격에 빠트렸다. “계수나무가 뽑힌 자리, 인공위성이 앉던 그 날도 희비가 엇갈렸지...” 독특한 가사와 파격적인 멜로디, 기성가수를 능가하는 스테이지 매너는 분명 ‘순수한 아마추어리즘’을 지향하던 대학가요제 성격의 대척점에 있는 듯 보였지만, 기존 가요와의 간극을 생각한다면 어쩌면 대학가요제였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던 곡이기도 했다. 

대학가요제 수상곡들이 일반 대중들에게도 인기를 모으기 시작하자 기존 레이블들은 대학가요제 수상곡을 모은 옴니버스 앨범이나 수상자들의 독집을 발표하기 위해 서둘러 움직였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대학가요제에 출전해 수상한 가수의 경우 빠르면 그해, 늦어도 그 다음해에 독집음반이 발표됐다. 산울림의 김창완이 문예부장으로 있던 대성음반은 군에서 제대한 김창훈과 김창익으로 다시 뭉친 산울림의 7집 음반을 1호 음반으로 발표하고, 2호 음반으로 제3회 젊은이의 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은 로커스트의 음반을 제작할 정도로 당시 캠퍼스 사운드, 그것도 독특한 매력이 있는 뮤지션에 관심이 많았던 레이블이다. 이런 대성음반의 릴리즈 스케줄에 인희의 이름이 기록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인희의 독집은 1981년 대학가요제 수상 후 2년이 지난 1983년에 발매됐다. 그 이유는 당시 인희가 경희대 음대 성악과에 재학 중이었기 때문이라 추측할 수 있다. 

1979년 ‘돌고 돌아가는 길’로 대학가요제에서 금상을 받은 노사연이 단국대 음대 재학 중이었지만 국문과로 전과했던 이전의 경우처럼, 인희가 대학가요제에 입상했을 그때도 음대에 재학 중인 학생이 대중음악을 본격적으로 한다는 건 어려웠던 시기였다. 당시 기사를 찾아보면 클래식을 전공하는 입장 때문에 대중가요 가수로 데뷔하지 못하고 망설였는데, 김창훈 등 선배 가수들이 “음악을 통해 대중들의 정서를 순화시키고 많은 사람들의 애환을 함께 하는 것은 대중가요도 순수음악이상의 가치와 보람이 있다”며 끈질기게 권해 음반을 취입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음반이 발매된 1983년 인희가 대학 4학년에 재학 중인 때였다. 음반에는 산울림의 김창완과 김창훈이 작곡한 10곡이 담겨 있다. 

김창완이 여가수와 함께 작업했던 경우는 인희의 음반이 유일한 건 아니다. 1979년 발표된 손미나의 앨범에 세 곡이 담긴 것을 시작으로, 1980년 박신덕의 음반, 이은하의 1984년 음반, 꾸러기들 출신 현희의 1985년 음반 등에서 김창완은 음반 크레디트에 자신의 이름을 밀어 넣고 그 이상의 영향력을 소릿골에 새겨 넣었다. 이 가운데 ‘대중적인’ 히트를 기록했던 음반은 ‘사랑도 못해본 사람은’이 수록됐던 이은하의 음반이 유일하다. 나머지 음반들이 대중적인 히트를 기록하지 못한 이유는 가창자가 제작자의 의도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는 내용물의 완성도의 문제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김창완의 실험적 시도들이 많았던 이유를 들 수 있다. 그때 발표된 음반들이 지금 하나같이 희귀음반 취급을 받으며 천정부지의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은 뒤늦게 인정받을 만큼 앞서간 실험성을 음반에 수록했다는 또 다른 증명이 될 것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인희의 음반은 제작자인 김창완과 가창자인 인희의 매력이 제대로 녹아든 수작으로 꼽을 수 있다.

인희의 유일한 독집에 수록된 10곡 가운데 세 곡(‘당신이 날 불러주기 전에는’, ‘그래 걷자’, ‘내 화가여’)은 김창완의 첫 번째 독집 [기타가 있는 수필](1983)에, 한 곡(‘독수리가 떴네’)은 [산울림 제10집](1984)에, 두 곡(‘가지마’, ‘옷 젖는 건 괜찮아’)은 [산울림 제11집](1986)에 다시 수록됐지만 이 음반의 버전과는 연주와 분위가 사뭇 다르다. 모두 인희의 음반 뒤에 발표된 곡이라는 점은 이 곡들이 원래 만들어질 때 인희의 음반 수록을 염두에 두고 작곡되었음을 암시하는 부분이다. 여타 음반에 수록되지 않았던 ‘어울리지 않아요’, ‘별의 전설’, ‘초록별의 전설’ 그리고 타이틀곡 ‘다이너마이트 소녀’는 말할 필요도 없을테고. 연주에 있어서도 공을 들인 흔적이 여기저기서 드러난다. 산울림의 음악에서 들을 수 있는 김창완의 독특한 퍼즈 이펙트 기타 사운드는 ‘가지마’와 같은 곡에서 존재감을 드러내지만, 이 한 장의 음반은 단순히 산울림의 반주에 인희가 노래한 음반이 아니고 인희를 위한 ‘맞춤형’ 음반이란 걸 알아채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인희가 성학과 학생이란 점을 염두에 둔 탓인지 오프닝 트랙으로 수록한 ‘당신이 날 불러주기 전에는’은 현악과 목관파트가 들어간 실내악 스타일의 편곡이 독특하다. 음반 전체적으로 인희의 목소리는 성악의 발성을 사용하기보다는 다양한 음색으로 뮤지컬 스타일을 향한 접근을 시도한다. 독특한 레게 스타일의 ‘어울리지 않아요’를 들으면 연주를 담당한 밴드가 누구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이 음반과 같은 해에 역시 대성음반을 통해 음반을 발표한 장끼들이다. 장끼들은 엄인호(기타, 보컬)를 위시해 박동률(기타, 보컬), 이응수(베이스, 보컬), 라원주(키보드, 보컬) 등 젊은 작곡가 집단과 드러머 장수연으로 구성된 밴드다. 블루스와 레게를 일찌감치 시도했던 선구자적인 시도가 다양한 표정을 가진 인희의 보컬과 만나며 독특한 매력으로 도출됐다. 장끼들 외에도 음반 전체적으로 산울림의 김창완과 김창훈, 그리고 김창완이 한때 함께했던 세션 전문 그룹인 운명이 연주에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별의 전설’은 언뜻 노고지리의 ‘찻잔’을 연상시키는 차분한 연주 위에 실린 인희의 낭독으로 시작한다. 내용은 [기타가 있는 수필](1983)에 담긴 김창완의 낭독 ‘꿈’을 듣는 듯 엉뚱한, 혹은 잔혹한 김창완식의 짧은 동화가 실려 있으며, 이어지는 ‘초록별의 전설’과 함께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한 편의 짧은 뮤지컬 소품을 들려준다. 김창완의 어쿠스틱 버전으로 익숙한 ‘그래 걷자’의 원곡은 단순하지만 인상적인 트윈 리드 기타 연주를 들을 수 있고, 산울림과 어금니와 송곳니의 음반에 나란히 수록된 ‘독수리가 떴네’는 보다 원초적인 접근으로 가사가 가진 느낌을 더욱 잘 살리고 있다는 생각이다. 두 대의 일렉트릭 기타가 만들어내는 트윈 리드 기타 시스템은 음반에 수록된 록 성향의 곡들에서 특히 빛을 발하는데, 마치 인희를 지칭하는 듯한 제목인 타이틀곡 ‘다이너마이트 소녀’에는 이러한 특징이 가장 잘 담겼다.

한 장의 독집 음반 발표 후 인희는 김창훈, 운명과 함께 한달 동안 ‘운명의 밤’이라는 공연을 가지기도 했지만 결국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졸업 후에는 뉴욕 줄리아드 음대로 유학을 떠났고, 로마에서 오페라 수학을 했다. 그리고, 1994년 오페라 ‘체칠리아의 노래’를 연극으로 각색해 주인공으로 출연하여 공연을 펼쳤다. ‘체칠리아의 노래’는 이후 비공식 음반으로 발표되기도 했다. (20190503)

글 송명하 (파라노이드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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