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과 리바이벌 크로스 [내 마음 흔들려]

퇴폐적이고 관능적인 가수와 만난 1970년대 초중반 화려했던 국내 밴드 사운드의 모습을 대변하는 호연



김지연과 ‘황소가수’

김지연은 몇 해 전만 하더라도 베일에 싸인 가수였다. 신중현의 더 멘과 함께 [나만이 걸었네 / 그대 있는 곳에](1973)를 발표한 지연이 김지연과 동일 인물이냐 그렇지 않냐도 확실하게 밝혀지지 못했다. 다른 많은 이유도 있겠지만, 우선 김지연의 활동 기간이 무척 짧았고, 지연의 음반이나 김지연의 음반 모두 희귀음반이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얼마 전 지연의 음반이 44년 만에 재발매되며 궁금증은 많은 부분 해소되었다. 김지연은 한양여고와 서라벌예대를 나온 무용 전공의 가수였으며, 문공부 주최 전국민속 예술제 등에서 16회 입상했다. 이후 신중현에게 보컬 트레이닝을 받고 발표한 음반이 앞서 언급한 [나만이 걸었네 / 그대 있는 곳에]다. 그리고 김지연과 신중현 사이에 다리가 된 인물은 김추자의 매니저로 잘 알려진 소윤석이다. 

소윤석은 김지연을 자신의 해병대 동기에게 소개받아 신중현에게 보컬 트레이닝을 받게 했고, 음반이 나온 뒤에는 (김)지연의 매니저로 활동했으며, 이후 결혼까지 골인했다. 소윤석이 매니저로 활동한 건 김지연이 마지막이다. 이렇게 소윤석은 레슬러 출신 매니저로 잘 알려져 있지만, 1969년 김추자의 데뷔앨범에서는 ‘잃어버린 친구’, ‘웬일일까요’, 그리고 ‘소야 어서 가자’ 이렇게 세 곡을 부른 가수였다. ‘소야 어서 가자’. 우리 가요 가운데는 그렇게 많이 소재로 등장하지 않는 ‘소’가 등장한다. 그러고 보니 (김)지연의 독집 음반에도 ‘소 같은 사나이’란 곡이 있다. 소윤석이 가수활동을 할 때 별명은 ‘황소가수’였다. 소윤석 자신도 인터뷰를 통해 “생긴 것도 소같이 생기고, 레슬링도 대표선수로 했으니까”라는 이유로 그런 별명이 붙었다고 밝혔지만, 어쨌거나 이 모든 정황이 바로 소윤석이라는 한 사람을 가리키고 있다는 합리적인 추측이 가능하다. (김)지연의 음반이 빛을 보지 못한 채 사장되고, 신중현은 자신의 밴드 엽전들에 정성을 기울이던 상황에서 소윤석과 김지연의 시선이 신중현과 가장 유사한 음악성을 가진 함중아를 향하게 된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도 있겠다.


함중아와 신중현

함중아는 경북 포항에서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복잡한 가정사로 인해 어려서 형제가 뿔뿔이 흩어졌고, 바로 위형인 함정필과 경기도 파주로 올라가 전쟁고아와 혼혈아동을 돕는 펄벅재단에서 자랐다. 그리고 그곳에서 알게 된 친구들과 신중현을 찾아가 록 음악에 인연을 맺게 된다. 이후 약 2년 동안 신중현의 밑에서 음악을 배웠다. 당시 상황에 대해서는 밴드 멤버인 함중아와 정동권의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함중아는 한 인터뷰를 통해 “신중현 씨가 워낙 바쁜 분이니 제대로 가르칠 시간이 없죠. 그냥 옆에서 보고 배우는 거예요. 당시 신중현 사단 중에서는 펄시스터스가 최고 스타였지. 사무실에 있다 보면 가수들이 참 많이 찾아왔어요. 바니걸스, 김추자 등등. 옆방에 있으면 연습하는 게 다 들려요. 보고, 듣고, 우리끼리 해보고... 그렇게 배우는 거죠.”라고 이야기했고, 정동권은 “신중현로부터 기타 등 악기를 2년간 체계적으로 배우고, 그의 주선으로 당시 이대 음대교수였던 이교숙씨한테 작곡 등 음악 이론공부를 병행했어요.”라고 또 다른 인터뷰에서 말했다. 어쨌거나 신중현을 찾아간 함중아와 혼혈아 친구들은 2년이라는 시간동안 밴드로서의 틀을 갖추게 됐다.

이렇게 신중현의 문하생으로 있으며 알게 된 가수 가운데 장현이 있었다. 장현은 알려져 있다시피 대구 수성호텔 나이트클럽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신중현에게 발탁되어 상경한 뮤지션이다. 그는 함중아에게 자신이 있던 수성호텔 나이트클럽을 소개해줬다. 대구로 내려가 어렵사리 올라간 무대, 함중아는 신중현을 통해 배웠던 록 음악을 무대에서 연주했다. 하지만 당시 그곳의 트렌드는 록 보다는 소울음악이 대세였다. 함중아 자신의 표현에 의하면 ‘단 하루만에’ 쫓겨났다. 그렇게 다시 서울로 올라간 함중아에게 장현은 다시 대전의 유성호텔 나이트클럽을 소개했다. 함중아는 대전에서 약 6개월 정도를 신중현의 레퍼토리로 연주했다. 2년간의 훈련과 6개월 동안의 실연은 함중아를 신중현 사단 가운데 신중현에 가장 가까운 음악성을 가진 뮤지션으로 거듭나게 만들었다. 하루는 신중현이 함중아가 일하던 유성호텔 나이트클럽에 우연히 들른 적이 있다. 신중현은 자신의 레퍼토리만 연주하는 밴드가 궁금해 당시 사장에게 “쟤들 누구요?”라고 물어봤다고 한다. 그리고 옛 제자들임을 확인한 뒤 당장 서울로 올라와 오디션을 볼 것을 제안했다. 그땐 신중현이 막 퀘스천스(Questions)를 해산한 시기였는데, 이렇게 다시 올라온 함중아와 그 친구들과 함께 골든 그레이프스(Golden Grapes)라는 밴드를 결성하게 된다. 


골든 그레이프스, 그리고 리바이벌 크로스 혹은 양키스

골든 그레이프스의 첫 앨범 [즐거운 Go Go  파티, 그리워라 / 생각하는 마음]은 1972년 2월 10일 발표됐다. ‘신중현 Sound Vol.3’이라는 부제와 같이 신중현이 작사, 작곡과 편곡을 담당했으며, 멤버는 해리 딕슨(기타, 베이스, 보컬), 리처드 해리슨(베이스, 봉고, 보컬), 봅 엥겔(오르간), 리카르도 벤(콩가, 보컬), 빌 잭슨(드럼)이라는 영문으로 표기되었다. 첫 음반 이후 신중현은 새로운 밴드 더 멘의 활동에 치중하게 되고 골든 그레이프스는 오롯이 함중아와 그 친구들의 밴드가 됐다. 골든 그레이프스는 1972년 8월 3일부터 6일까지 서울 시민회관에서 열린 ‘주간경향컵 쟁탈 제1회 뉴 스타 팝 그랑프리 콘테스트’에 출전해 그랑프리를 차지했다. 한 인터뷰를 통해 함중아는 이 콘테스트에서의 그랑프리가 지금까지도 자신이 ‘생애 최고의 순간’으로 꼽는 무대였다며 “신중현 씨 앰프를 몰래 들고 나갔죠. 그런데 이게 공연을 하다 펑 터져버린 거야. 아주 귀한 건데. ‘야, 이거 우리 죽었구나’ 싶었지. 그래서 머리를 짜 낸 게... 상패가 큰 컵이었는데 여기에다 술을 가득 따라서 받쳐 들고 갔어요. 물론 무지하게 혼났지. 그러면서도 제자들이 1등 했다니까 좋아하시더라고.”라고 회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골든 그레이프스는 분열됐다. 함중아와 그의 형 함정필 사이에 음악적 갈등이 생겼기 때문이다. 함중아에 의하면 그가 하드록 성향이었던 반면 함정필은 알앤비 등 흑인음악을 선호했다. 결국 함중아는 밴드를 이탈해 새로운 밴드를 결성했고, 남은 함정필은 함중아의 자리에 1975년 오디션을 통해 뽑은 윤수일을 보강했다. 그리고 1976년 안타 기획에서 주최하고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그룹사운드 경연대회’에 출전해 그랑프리를 차지하며 골든 그레이프스라는 이름 대신 안타기획에서 제안한 이름인 윤수일과 솜사탕으로 활동하게 된다. 한편 함중아가 결성한 밴드는 리바이벌 크로스(Revival Cross), 한글 이름으로는 ‘십자가’다. 함중아 외에 정동권, 한태곤, 이수한, 신창호로 구성된 이들은 이후 양키스(Yankees) 혹은 ‘초록별’로 개명해 활동했다. 그리고 양키스는 다시 함중아, 정동권, 신창호로 축소되었다가 해산한다. 양키스의 해산 배경에는 레이건 정부시절 불법체류 13년이면 시민권을 얻을 수 있는 포괄이민개혁법안에 의해 멤버들이 미국 시민권을 얻게 됐다는 점도 있었다. 어쨌든 골든 그레이프스를 떠나 리바이벌 크로스를 결성한 함중아는 1974년, 자신의 첫 번째 창작곡을 세상에 공개한다. 음악성은 물론 음반의 구성 역시도 음악적 스승 신중현의 행보를 그대로 따랐다.


김지연과 리바이벌 크로스

지연과 더 멘의 음반 그리고 김지연과 리바이벌 크로스의 음반을 비교할 때 가장 처음 눈에 들어오는 건 재킷의 아트워크다. 지연의 음반은 지극히 평범한 인물사진인데 비해 게이트 폴드로 제작된 김지연의 음반엔 파격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법한 그녀의 역동적인 모습이 담겼다. 재킷 내부의 사진 역시도 리바이벌 크로스의 멤버 사진과 함께 춤추는 김지연의 사진들이 눈길을 모은다. 다분히 퇴폐적이고 관능적이다. 앞서 무용을 전공했다고 언급했지만, 댄스 가수로서 그녀의 매력을 충분히 담은 아트워크는 수록된 음악의 내용을 대변한다. 그렇게 함중아에게는 최초의 자작곡 음반이라는 도전과 의욕이, 김지연에게는 전작의 실패를 만회하려는 절박함이 한 장의 음반에 녹아들었다. 지연의 음반에서 지나치게 김추자를 의식해 어딘가 쫓기는 느낌이 들었던 김지연의 창법은 보다 자신감 있고 안정적인 면모를 드러낸다. 표면적으로 이 음반 역시 지연의 음반과 마찬가지로 앞면에는 김지연의 노래가 담겼고, 뒷면은 리바이벌 크로스의 연주곡 위주로 채워졌다. 김지연의 노래를 받쳐주는 리바이벌 크로스는 특유의 코러스와 흐느적거리는 오르간, 그리고 쉴 새 없이 이어지며 청자의 중심을 무너트리는 퍼커션 연주를 그 특징으로 하고 있다. 필요한 부분에서 자신의 자리를 파고드는 현악이나 목관악기 파트의 과감한 수용은 앞서 정동권의 이야기인 ‘체계적인 음악 이론 공부’를 부연하는 대목일 것이며, 신중현의 밴드 가운데 더 멘 시절의 방법론에 대한 노골적인 접근이라고도 볼 수 있다. 실제로 ‘내 마음 그 곳에’에 등장하는 오보에 연주는 다분히 더 멘 시절 손학래의 역할을 되짚어보게 만든다. 

 


그런데 이상한 부분이 있다. 연주곡을 제외한 곡에서 들을 수 있는 리바이벌 크로스의 연주는 분명 골든 그레이프스와 더 멘, 그리고 이후 함중아와 양키스간의 다리를 놓는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 뒤의 연주곡 ‘비’, ‘사랑의 노래’, ‘고별’ 그리고 ‘사랑해’는 그 스타일이 전혀 다르다. 그 이유는 이 4곡이 일본 드러머 지미 다케우치(竹内和三郎)가 발표한 음원을 무단 수록한 것으로, 오리지널 앨범과 아무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때문이 이번 재발매에서는 이 네 곡을 삭제하고 리바이벌 크로스의 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양키스 명의로 발표된 연주곡 두 곡을 담았다. ‘테마 1’은 [Yankees GoGo Bump]에, ‘날아라 로빈’은 [GoGo 경음악]에 각각 담긴 연주곡으로 두 음반 모두 1976년에 발표된 음반이다. 어렵사리 찾은 원본 마스터테이프에서 꼼꼼하게 복원된 두 곡은 앞서 언급했던 리바이벌 크로스의 특징인 쉴 새 없는 퍼커션과 흐느적거리는 오르간 연주가 그대로 이어지며 양키스와 리바이벌 크로스가 결코 다른 밴드가 아님을 증명해 보인다. 독일의 디스코 그룹 실버 컨벤션(Silver Convention)의 1975년 히트곡 ‘Fly, Robin, Fly’를 편곡한 ‘날아라 로빈’에서의 펑키(funky)함과 ‘테마 1’의 공격적인 퍼즈톤 기타 사운드는 1970년대 초중반 화려했던 국내 밴드 사운드의 모습을 대변하는 호연이다.


다시 함중아

폭풍처럼 다가오는 그 사나이
바위처럼 믿음직한 미스터 소
거짓 없는 너털웃음 매력있어
언제 봐도 매력있네 그 사나이

허윤정이 1980년 히트시킨 ‘그 사나이’의 원곡 ‘미스타 소’의 가사 일부분이다. 함중아와 양키스의 1978년 음반에도 ‘그 사나이’로 수록됐지만, 원래는 함중아의 목소리가 처음 수록된 1975년 음반에 ‘미스타 소’로 먼저 담겼다. 확실하진 않지만 제목과 가사가 바뀐 이유는 한 장의 음반 이후 김지연과 함중아가 결별한 까닭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 두 뮤지션의 조합이 두 번째 음반으로 이어졌다면, 어쩌면 김지연이 처음으로 ‘미스타 소’를 부른 가수가 됐을지도 모른다. ‘미스타 소’의 ‘소’ 역시도 소윤석을 가리키는 건 당연할 테니 말이다. 어쨌든 이렇게 김지연과 결별한 함중아는 스스로 마이크를 잡고 밴드의 보컬리스트로 나선다.

보컬그룹 「십자가」에서 퍼스트 기타와 리더로 활약하고 있는 함중아군이 자작곡 「나를 웃겼네」를 직접 불러 가수로 데뷔했다.
노래는 요즘 히트하고 있는 신중현의 「미인」과 비슷한 스타일의 리듬으로 연예가의 화제가 되고 있다.
함군은 69년 보컬 「신중현과 골든 그레입스」의 한 멤버로 출발, 작년부터는 김지연양의 「내마음 흔들려」 「웃어주세요」 등 작곡도 했다. (경향신문 1975년 3월 8일, 보컬 「십자가」 리더 함중아 가수로 데뷔)

기사 가운데 ‘십자가’는 물론 리바이벌 크로스를 말한다. 그런데, 이 음반은 양키스의 이름으로 발표됐다. 앞서 이야기했던 이 두 그룹이 동일 그룹임을 부연하는 부분이다. 어쨌든 함중아는 이렇게 양키스의 보컬을 맡으며 정식 가수로 데뷔해 수많은 히트곡을 발표한 인기가수로 우뚝 서게 된다. 이렇게 김지연과 리바이벌 크로스가 함께 한 유일한 음반은 ‘제2의 김추자’ 만들기를 의도했던 또 다른 시도로 볼 수도 있지만, 함중아의 음악적 뿌리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그 음악적 뿌리는 블라인드 테스트를 했을 때 쉽사리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신중현에 근접해 있다는 점 역시 무척 흥미롭다. (20180320)

글 송명하 (파라노이드 편집장)

  Comments,   0  Trackbacks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