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스 [Sweet & Blue]

신촌블루스의 보컬리스트 제니스가 발표하는 첫 독집 [Sweet & Blue Hours]

현재 신촌블루스의 보컬로 활동하고 있는 제니스의 첫 독집이다. 제니스가 신촌블루스에서 활동을 시작한 건 2008년이다. 우연한 기회에 미국 생활을 마치고 귀국해 다시 활동을 준비하고 있던 엄인호의 레이더에 포착된 그녀는 이미 10년 이상 밴드의 얼굴로 활동하며 신촌블루스를 거쳐 간 보컬리스트들 가운데 가장 오래도록 활동하고 있다. 활동명인 제니스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어려서 접한 재니스 조플린은 제니스의 음악적 방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엄인호 역시 그러한 분위기에 이끌려 러브콜을 보냈을 것이고.

예전에 했던 인터뷰에서 엄인호는 신중현을 존경한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학창시절 극장에서 봤던 신중현의 공연은 엄인호의 인생을 바꿔놓는 계기가 됐다. 어찌 본다면 엄인호의 지금까지 활동은 예전 신중현의 행보와 많이 닮았다. 기타리스트 겸 보컬리스트라는 점을 접어놓더라도, 자신의 음악을 가장 잘 표현해 주는 파트너와 함께 명곡들을 발표했다는 점이 그렇다. 신중현에게 김추자, 박인수, 펄 시스터즈, 김정미, 이정화가 있었다면 엄인호에게는 한영애, 김현식, 정서용, 정경화, 강허달림이 있었다. 그리고 이제 제니스의 이름을 그 옆에 넣을 차례다.

제니스의 이번 앨범은 엄인호가 리더로 있는 신촌블루스로서가 아니라 본격적으로 후배 음악인의 음반 제작을 시작한 ‘제작자 엄인호’의 첫 음반이다. 타이틀 [Sweet & Blue Hours]는 엄인호가 신촌블루스 활동을 시작한 뒤 두 번째 발표한 솔로앨범 [엄인호 II Sweet & Blue Hours](1994)와 동일하다. 엄인호의 [엄인호 II Sweet & Blue Hours]는 신촌블루스의 네 번째 앨범 [Rainy Day Blues](1994)와 2년이 채 안 되는 시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 성격에 있어서는 많은 차이가 있는 음반이었다. 그 차이는 발라드에 가까운 대중적인 접근으로, 부드러운 측면을 강조했다는 점이다.

엄인호는 인터뷰를 통해 “외국의 블루스에 뿌리를 두고 있긴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은 ‘가요’였다. 부담 없이 연주하는 데에 중점을 두었다. 만일 카피를 많이 했다면 지금의 신촌블루스는 없었을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한 바 있다. 이 이야기를 두고 볼 때 어쩌면 엄인호의 의도가 가장 부각됐던 앨범은 [엄인호 II Sweet & Blue Hours]였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동일한 제니스의 첫 독집 타이틀은 무척 의미심장하다. 처음 구상에서 음반의 발표까지 5년에서 6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이 시간은 그의 의도를 현실로 만들려는 굳은 의지의 흔적과도 같을 테니 말이다. 

제니스 역시 ‘Sweet & Blue Hours’라는 타이틀 덕분에 과장하지 않은 진심을 담아 노래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물론 음반 수록곡은 이미 예전에 발표됐던 곡이 대부분이다. 이미 신촌블루스를 거쳐 갔던 개성 강한 보컬리스트가 청자의 뇌리 깊이 강한 인상을 심었던 대표곡 역시 없지 않다. 이렇게 남은 청자의 선입견을 지우기 위해 제니스는 나름대로의 이미지를 그리며 새로운 접근을 시도했다. 그녀가 그린 폴라로이드 사진과도 같은 이미지는 예전 프랑스 여행 중 파리의 작은 바에서 음악을 듣던 추억이다. 이 한 장의 음반 속에서 제니스는 그 때 작은 바에서 노래 부르던 가수가 된다.

록 버전까지 두 버전으로 담긴 ‘거리에 서서’는 1993년 발표된 정경화의 첫 독집 [정경화 1]에 처음 수록됐던 곡이다. 정경화의 음반 수록곡에서 가장 신촌블루스의 스타일에 가까웠던 곡으로 아침 드라마의 타이틀곡으로 사용되기도 했지만, 이 곡을 가장 많이 부른 건 정경화가 아니라 제니스일 것이다. 제니스가 가입한 뒤 신촌블루스의 공연에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던 대표곡으로, 속삭이는 듯 들리는 위스퍼링 창법과 연주를 주도하는 어쿠스틱 기타 연주는 음반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암시한다. ‘태양은 언제나’는 박보가 작곡해 엄인호와 함께 발표했던 곡인데, 이번에 가사를 새롭게 붙여 녹음했다. 원곡이 가지고 있던 가사에서 벗어나 엄인호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아 이후 제니스는 물론 신촌블루스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명곡으로 자리 잡을 소지 가득하다.

 


‘푸들푸들’은 최항석과 부기몬스터의 2018년 앨범 [Good But Blues Man]에 엄인호가 참여해 부른 ‘푸들푸들블루스’를 제니스가 다시 부른 버전이다. 노래의 스타일이나 재미있는 가사는 제니스의 목소리와 만나며 원곡과는 완전히 다른 매력을 전해준다. 제니스가 신촌블루스의 노래 가운데 가장 좋아한다고 밝힌 ‘Angie’는 원래 2002년에 발표된 옴니버스 앨범 [국내 최고 아티스트 23인의 조화: Artist]에 엄인호 솔로 곡으로 담겼던 곡이다. 신촌블루스 버전으로는 [신촌 Blues Revival](2014)에 제니스의 음성으로 담긴 버전이 오리지널이다. 기존 신촌블루스 음반에 비해 끈끈하고 나른한 색깔을 걷어낸 느낌이다. 앞서 언급했던 파리의 작은 바의 이미지가 어떤 것이었는지 자연스레 떠올릴 수 있다.

대중들에게 신촌블루스라는 이름을 알린 데뷔곡 ‘아쉬움’은 원곡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지만 가벼운 재즈 스타일로의 접근을 볼 수 있다. ‘루씰’과 ‘골목길’은 엄인호가 신촌블루스를 거쳐간 보컬리스트 가운데 최고로 꼽고 있는 한영애와 김현식의 버전이 우리에게 익숙하다. 제니스의 ‘루씰’과 ‘골목길’은 각각의 템포를 바꿔놓으며 차별화를 꾀했다. 이미 몇 차례씩 녹음된 바 있고 다른 뮤지션에 의해 리메이크되기도 했지만, 각 보컬리스트에 어울리는 편곡으로 끊임없이 새로움을 이어가는 명곡들이다. ‘루씰’에서는 ‘푸들푸들’에 이어 최항석이 같은 길을 먼저 간 선배를 위해 다시 한 번 기타 연주를 헌납했다.

분명 제니스의 이름으로 발표되는 음반이긴 하지만 지금까지 신촌블루스를 거친 다른 보컬리스트가 그랬던 것처럼 이 앨범과 신촌블루스를 따로 떼어 이야기하긴 힘들 것 같다. 아니 따로 떼어 이야기할 수 없는 앨범이다. 그만큼 제니스의 첫 독집에는 신촌블루스의 또 다른 앨범이라고 해도 이의가 전혀 없을 만큼 엄인호의 의도가 확실하게 녹아들었고, 제니스는 그 의도를 확실하게 기록으로 남겼다. 어찌됐건 무척 반갑다. 거장의 이어지는 행보가 반갑고 천편일률적인 음악판에 개성 강하고 걸출한 ‘가수’가 등장했다는 것도 그렇다. 앞서 언급했듯 이 앨범은 ‘제작자 엄인호’의 첫 작품이다. 두 번째, 세 번째... 앞으로 이어질 앨범들도 무척 기대된다. (20210512)

글 송명하 (파라노이드 편집장)

 


처음 원고를 의뢰받았을 땐 타이틀이 앞서 써놓은 것 같이 [Sweet & Blue Hours]였는데, 발표 후 보니 그냥 [Sweet & Blue]였다. 그래서 본문 내용이 내가 쓴 것과는 좀 다르게 나왔다. ㅠ 이 원고가 어찌 보면 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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