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경우 어린 시절 아버지의 옷을 꺼내 입고 거울을 보며 어서 어른이 되길 바라던 시절이 있을 것이다. 물론 여자의 경우에는 어머니의 화장품을 몰래 바르면서 숙녀가 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곤 한다. 하지만, 막상 어른이 된 이후에는 화장대의 거울을 바라보던 그 때를 다시 부러워한다. 꼬맹이시절 읽었던 동화책 ‘피터 팬’의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는 모습이 동화를 읽던 당시에는 전혀 부럽지 않았다가 이제 와서야 부러워지는 것. 아마도 피터 팬을 만들어낸 원작자 자신도 어른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캐릭터를 등장시켰던 듯 하다.
이런 사실에 관심을 갖고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면 흥미로운 점 몇 가지를 발견할 수 있다. 어린 시절, 학교에 가지 않는 일요일 아침에도 어김없이 일찍 일어났던 것은 ‘은하철도 999’를 보기 위해서였다. ‘우주전함 야마토’, ‘캡틴 하록’, ‘천년 여왕’이나 ‘우주 해적 퀸 에메랄다스’로 유명한 마쓰모토 레이지 원작의 이 애니메이션은 어린 시절 대할 때는 그저 어머니를 죽인 기계인간에 복수하고, 자신도 기계의 몸을 가지러 안드로메다로 여행을 떠나는 철이가 정차하는 많은 별들에서 겪는 에피소드들에 관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어른이 된 후 다시 만난 은하철도 999의 주제는 그게 아니었다. 은하철도 999는 바로 철이가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을 그린 애니메이션이다. 그가 어른이 되는 과정은 자신의 아버지 파우스트와 결투해서 아버지를 죽이고, 메텔과 이별하기까지의 과정이었다. 어린이에서 어른이 된다는 것이 어른의 눈으로 볼 때 그만큼이나 깨어지는 듯한 아픔을 동반한 일일까.
안노 히데야키의 ‘신세기 에반겔리온’은 한때 일본에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두 사람 이상만 모이는 자리에서는 격렬한 토론의 장이 벌어졌다는 애니메이션이다. 남자 주인공 신지는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 어머니를 떠올리며, 좀처럼 가까이 갈 수 없는 아버지에게 접근하기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닫으며 언제나 체념한다. 애니메이션 가운데에서 계속해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인류 보완계획’이다. 어디서인지 모르게 계속해서 출연하는 사도와 싸워가면서 해야 했던 일. 하지만, 이 인류 보완계획 역시도 신지가 어른이 되는 과정, 다시 말해서 ‘신지 보완계획’이었다는 사실은 마지막 편에 등장한다.
역시 함께 등장하는 캐릭터 미사토는 방황하는 신지의 모습에서 자신의 어린시절을 떠올린다. 그녀 역시 가까이 갈 수 없는 아버지를 가진 인물이었지만, 결국 자신의 아버지 형상을 그대로 옮겨놓은 카지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아마도 그녀의 캐릭터 자체가 어른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철이와 신지 두 주인공이 어른이 되는 과정에 있어서 주변 인물들의 도움을 받는다. 철이의 여행에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정체불명의 여인 메텔은 그의 어머니 형상을 따서 만들어진 복제인간이었다. 철이는 메텔의 품속에서 어머니의 향기를 맡는다.
신지와 함께 에반겔리온을 조종하던 레이 역시 그녀 어머니의 복제인간이다. 에반겔리온에 탑승하는, 소위 탑승구는 여인의 자궁을 형상화 한 듯 보인다. 신지가 타는 에반겔리온 초호기에 레이가 탑승했을 때 에반겔리온에서 거부반응을 일으킨 것은 에반겔리온 초호기 역시도 신지 어머니였기 때문이다. 한 에피소드에서 레이가 신지에게 했던 ‘넌 안심해도 괜찮아. 내가 지켜줄 테니까.’라는 이야기는 모성본능에 의한 이야기였고, 양수와도 같은 조종석의 액체 속에서 에반겔리온 초호기의 보호를 받는 신지 역시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른이 되었던 철이에 한술 더 떠서 에반겔리온의 ‘인류 보완계획’은 인류 전체를 집어삼키고 오직 신지와 아스카만을 남겨둔다. 아버지 이카리에서부터 어머니인 레이와 에반겔리온 모두를 떠나보내야 했다. 앞서 피터 팬의 경우처럼 이 모두가 ‘어른’이 보는 관점 아래에서의 어른이 되는 과정이다.
입사한 후 수많은 락 뮤지션들과 만나왔지만, 정말로 ‘제대로’음악을 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뮤지션들을 만났을 때의 느낌은 철모르는 어린아이의 그것과도 같다고 생각했다. ‘어른’들의 자를 가지고 그들을 잰다면 하찮고 별 볼일 없는 것에 불과할 지는 모르지만, 같은 눈높이를 가지고 본다면 한계가 없는 무궁 무진한 세상. 철이나 신지가 깨어지는 아픔을 견뎌가며 힘들게 된 어른의 과정은, 이미 어른이 된 사람들이 ‘내가 이렇게 어른이 된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스스로가 만들어 낸 가식이 아닐까.
물론 세상의 어떤 일을 하던지 용기는 필요하다. 철부지처럼 한가지 계획만을 세워서 앞만 보고 나아가는 것도 그렇지만, 세상과 타협하며 자신을 내 던지는 것 역시도 용기 없이는 되지 않는다.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어린 시절 철부지의 마음을 고스란히 가지고 사소한 일에도 기뻐하고 또 슬퍼할 수 있는 쪽의 사람이 되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어른이 된 이후의 책임감을 감당할 수 없어 회피하는 행동이라고 손가락질할지도 모르지만, 이미 그 기준이라는 것 역시도 그들에 의해 그어진 선일 뿐 커다란 의미가 없는 것일 테니 말이다.
언제까지나 피터 팬처럼, 아버지 파우스트와 대면하기 전의 철이처럼 또, 아버지를 미워하고 있을 때의 신지처럼 그렇게 살고싶다. 물론, 철부지 어린아이의 마음을 가진 뮤지션들이 주위에 있다면 더욱 좋겠다.
(월간 핫뮤직 2005년 7월호)
이런 사실에 관심을 갖고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면 흥미로운 점 몇 가지를 발견할 수 있다. 어린 시절, 학교에 가지 않는 일요일 아침에도 어김없이 일찍 일어났던 것은 ‘은하철도 999’를 보기 위해서였다. ‘우주전함 야마토’, ‘캡틴 하록’, ‘천년 여왕’이나 ‘우주 해적 퀸 에메랄다스’로 유명한 마쓰모토 레이지 원작의 이 애니메이션은 어린 시절 대할 때는 그저 어머니를 죽인 기계인간에 복수하고, 자신도 기계의 몸을 가지러 안드로메다로 여행을 떠나는 철이가 정차하는 많은 별들에서 겪는 에피소드들에 관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어른이 된 후 다시 만난 은하철도 999의 주제는 그게 아니었다. 은하철도 999는 바로 철이가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을 그린 애니메이션이다. 그가 어른이 되는 과정은 자신의 아버지 파우스트와 결투해서 아버지를 죽이고, 메텔과 이별하기까지의 과정이었다. 어린이에서 어른이 된다는 것이 어른의 눈으로 볼 때 그만큼이나 깨어지는 듯한 아픔을 동반한 일일까.
안노 히데야키의 ‘신세기 에반겔리온’은 한때 일본에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두 사람 이상만 모이는 자리에서는 격렬한 토론의 장이 벌어졌다는 애니메이션이다. 남자 주인공 신지는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 어머니를 떠올리며, 좀처럼 가까이 갈 수 없는 아버지에게 접근하기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닫으며 언제나 체념한다. 애니메이션 가운데에서 계속해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인류 보완계획’이다. 어디서인지 모르게 계속해서 출연하는 사도와 싸워가면서 해야 했던 일. 하지만, 이 인류 보완계획 역시도 신지가 어른이 되는 과정, 다시 말해서 ‘신지 보완계획’이었다는 사실은 마지막 편에 등장한다.
역시 함께 등장하는 캐릭터 미사토는 방황하는 신지의 모습에서 자신의 어린시절을 떠올린다. 그녀 역시 가까이 갈 수 없는 아버지를 가진 인물이었지만, 결국 자신의 아버지 형상을 그대로 옮겨놓은 카지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아마도 그녀의 캐릭터 자체가 어른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철이와 신지 두 주인공이 어른이 되는 과정에 있어서 주변 인물들의 도움을 받는다. 철이의 여행에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정체불명의 여인 메텔은 그의 어머니 형상을 따서 만들어진 복제인간이었다. 철이는 메텔의 품속에서 어머니의 향기를 맡는다.
신지와 함께 에반겔리온을 조종하던 레이 역시 그녀 어머니의 복제인간이다. 에반겔리온에 탑승하는, 소위 탑승구는 여인의 자궁을 형상화 한 듯 보인다. 신지가 타는 에반겔리온 초호기에 레이가 탑승했을 때 에반겔리온에서 거부반응을 일으킨 것은 에반겔리온 초호기 역시도 신지 어머니였기 때문이다. 한 에피소드에서 레이가 신지에게 했던 ‘넌 안심해도 괜찮아. 내가 지켜줄 테니까.’라는 이야기는 모성본능에 의한 이야기였고, 양수와도 같은 조종석의 액체 속에서 에반겔리온 초호기의 보호를 받는 신지 역시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른이 되었던 철이에 한술 더 떠서 에반겔리온의 ‘인류 보완계획’은 인류 전체를 집어삼키고 오직 신지와 아스카만을 남겨둔다. 아버지 이카리에서부터 어머니인 레이와 에반겔리온 모두를 떠나보내야 했다. 앞서 피터 팬의 경우처럼 이 모두가 ‘어른’이 보는 관점 아래에서의 어른이 되는 과정이다.
입사한 후 수많은 락 뮤지션들과 만나왔지만, 정말로 ‘제대로’음악을 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뮤지션들을 만났을 때의 느낌은 철모르는 어린아이의 그것과도 같다고 생각했다. ‘어른’들의 자를 가지고 그들을 잰다면 하찮고 별 볼일 없는 것에 불과할 지는 모르지만, 같은 눈높이를 가지고 본다면 한계가 없는 무궁 무진한 세상. 철이나 신지가 깨어지는 아픔을 견뎌가며 힘들게 된 어른의 과정은, 이미 어른이 된 사람들이 ‘내가 이렇게 어른이 된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스스로가 만들어 낸 가식이 아닐까.
물론 세상의 어떤 일을 하던지 용기는 필요하다. 철부지처럼 한가지 계획만을 세워서 앞만 보고 나아가는 것도 그렇지만, 세상과 타협하며 자신을 내 던지는 것 역시도 용기 없이는 되지 않는다.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어린 시절 철부지의 마음을 고스란히 가지고 사소한 일에도 기뻐하고 또 슬퍼할 수 있는 쪽의 사람이 되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어른이 된 이후의 책임감을 감당할 수 없어 회피하는 행동이라고 손가락질할지도 모르지만, 이미 그 기준이라는 것 역시도 그들에 의해 그어진 선일 뿐 커다란 의미가 없는 것일 테니 말이다.
언제까지나 피터 팬처럼, 아버지 파우스트와 대면하기 전의 철이처럼 또, 아버지를 미워하고 있을 때의 신지처럼 그렇게 살고싶다. 물론, 철부지 어린아이의 마음을 가진 뮤지션들이 주위에 있다면 더욱 좋겠다.
(월간 핫뮤직 2005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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